*가나다순

경기문화재단

세상물정이라는 테이블에 모이자

과학 분야 『세상물정의 물리학』 리뷰



경기도와 경기문화재단은 경기천년을 기념하여 ‘새로운 경기’로 나아가기 위해 도민의 생각의 틀을 확장하고 삶의 질 향상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분야별 우수 도서 100선을 선정하였습니다. 전문가들로 구성된 선정위원회의 추천과 심의로 경영경제, 과학, 문학, 문화, 사회, 아동, 인문의 7개 분야에서 200선이 엄선되었고, 10대부터 50대 이상의 경기도민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설문조사를 통해 최종 100선이 선정되었습니다. 선정된 책들은 도민 누구나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는 것들로, 읽을거리를 찾는 도민에게 실질적 가이드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최종 선정된 경기그레이트북스 100선은 경기문화재단 홈페이지(www.ggcf.kr), 경기천년 홈페이지(ggma.ggcf.kr) 및 경기문화콘텐츠플랫폼 GGC(ggc.ggcf.kr)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세상물정의 물리학』

김범준 지음, 동아시아, 2015






세상물정이라는 테이블에 모이자


이정모 - 서울시립과학관장



“과학자들은 실험을 하는 사람이다. 과학자들은 천재든지 최소한 엄청 똑똑한 사람이다. 과학자들은 글을 잘 쓰지 못한다. 그리고 과학자들은 세상에는 관심이 없고 작은 세계에 빠져 있는 괴짜들이다.”


모두 오해다. 일반화할 수 없다. 실험하지 않는 과학자도 엄청 많다. 과학자들이 다른 분야의 학자보다 특별히 더 똑똑하지도 않다. 똑똑하다기보다는 엉덩이가 무거워서 한 문제에 천착할 뿐이다. 글을 잘 쓰는 과학자도 많고, 과학자들은 의외로 세상 문제에 관심이 많다. 내가 이렇게 말해봐야 납득하기 쉽지 않을 테지만.


이 모든 오해를 한 번에 해결한 사람이 있다. 성균관대학교의 통계물리학자 김범준 교수가 바로 그 사람이다. 김범준은 초전도 배열에 대한 이론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지만(음, 그게 뭔지 모르겠다), 그 후에는 통계물리학 분야인 상전이, 임계현상, 비선형 동역학, 때맞음 등에 대한 연구를(이게 무슨 말인지 몰라도 된다) 한다. 그런데 최근에는 복잡계 물리학의 틀 안에서 사회, 경제, 생명 현상을 설명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물질의 복잡계 이론을 인간 사회에 적용하는 것이다. 왜?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 문제에 관심이 많고 문제 해결에 대한 과학적인 답을 찾기 위해서다.


세상에 살고 있는 물리학자가 세상에 대한 관심을 두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 같지만 딱히 그렇지도 않았다. 물리학자들은 말한다. “표준적이고 전통적인 물리학에는 ‘지금, 여기’란 없고. 물리학 논문에는 ‘나’가 없다.” 왜? 물리학에는 시간과 공간과 인간을 뛰어넘는 보편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게 어디 물리학만의 이야기이겠는가? 모든 과학은 보편성이라는 명분으로 특별한 공간과 시간과 상황에 놓인 인간의 문제에서 눈을 돌리기 일쑤였다.


그런데 물리학자 김범준은 『세상물정의 물리학』에서 통계물리학이라는 틀로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허니버터칩의 성공이나 교통 체증과 전염병 확산 같은 다양한 현상을 주목한다. 공공성과 경제 효율의 딜레마를 다루는 제9장 ‘학교와 병원과 커피점의 사정’을 살펴보자. 김범준은 경남 진주의료원 폐업과 시골 초등학교 통폐합 문제를 물리학적으로 접근하여 설명한다. 학교와 커피점의 분포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이윤을 추구하는 커피전문점과 공익 성격에 맞추어 이동 거리를 생각해야 하는 학교의 분포도를 작성했다. 커피전문점은 인구밀도에 정비례하여 분포한다. 인구밀도가 낮은 곳에서는 커피점 사이의 거리가 멀 수밖에 없다. 이때 커피전문점이 행복한 상황과 그 가게에서 커피를 마시는 사람이 행복한 상황이 다를 수 있다.


커피가 아니라 학교라면 어떠해야 할까? 각 학교에 등교하는 학생의 통학 거리 합을 각각의 학교에 대해 계산한 뒤 모든 학교가 같은 값을 갖도록 학교를 배치해야 한다. 이것을 고려하면 학교는 인구밀도의 3분의 2승에 비례하게 놓아야 한다고 한다. 커피점과 학교의 배치가 다른 이유는 시설의 목적이 이윤 추구인지 아니면 공익인지에 달려 있다.


학교를 정부가 운영하지 않고 사기업에 맡긴다면 어떻게 될까? 학생 수가 적은 시골에서는 학교를 유지하지 않을 것이다. 학교 밀도는 인구밀도에 비례하게 될 것이다. 커피점처럼 말이다. 이게 합리적일까? 증가한 통학 거리를 이동하느라 소모할 학생과 아이들을 차로 태워주느라 생기는 부모들의 시간 총합을 생각해봐야 한다. 이 시간은 미래를 이끌어갈 학생의 공부 시간 그리고 생산적인 활동에 투자해야 할 부모의 시간이다. 국가적으로 엄청난 낭비다.


인문학적인 생각을 뒷받침하는 정확한 계산 혹은 통계가 가지는 힘은 인문학도의 상상을 초월한다. 정확하고 객관적인 지표에 반론을 제시하기 어렵다. 물리학자는 과학적인 분석을 통해 시골 학교의 통폐합은 큰 틀에서 보면 경제적으로도 이익이 아니라고 진단한다. 그러면서 KTX와 인천국제공항의 민영화 그리고 진주의 의료원 폐업 같은 사회기반시설과 관련한 논란을 단지 시설 하나하나의 이익 구조라는 면만 보고 결정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어떤 사회적인 갈등이 발생할 때마다 누가 어느 편에 설지 우리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사대강 사업에 찬성한 사람은 무상급식에 반대하고 국정교과서에 찬성한다. 이들이 투표하는 정당은 정해져 있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사회를 진단하는 수단이 없기 때문에 단순한 결정을 하는 것이다. 홍준표 전 경남도지사가 비용을 이유로 진주의료원을 폐쇄하자 진보 진영은 비용 외적인 이유로 반대했다. 그런데 김범준 교수의 진단에 따르면 바로 그 비용 때문에 폐쇄가 부당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정치에 물리학이 필요한 이유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통계물리학은 아름답다. 어떻게 해야 프로야구팀의 이동거리 차이를 최소화함으로써 경기 일정을 공평하게 짤 수 있을지, 왜 연휴의 고속도로는 꽉 막히는지, 윷놀이를 할 때 업는 게 좋은지 아니면 잡는 게 좋은지, 주식투자를 할 때는 왜 장기보유전략이 옳은지를 물리학적으로 보여준다.


진단이 과학적이면 처방이 지혜로운 법이다. 김범준은 ‘빅데이터로 본 민주주의 사회의 허울’이란 부제가 붙은 첫 번째 글에서 뒷담화를 권한다. 일이 제대로 이뤄지려면 때가 맞아야 한다. 그래서인지 ‘골든타임’을 운운하는 많은 사람은 강력한 지도력을 주장한다. 하지만 연구에 따르면 실제로는 상명하복 구조가 있을 때보다 계층을 넘나드는 의사소통이 활발할 때 더 강한 ‘때맞음’이 발생한다. 따라서 의사결정이 일방통행식으로 이뤄지면서 잘못된 결정이 반복된다면 구성원들은 뒷담화를 해야 한다. 가장과 직장과 국가를 사랑한다면 뒷담화를 풍성하게 해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책 제목은 노명우의 『세상물정의 사회학』에서 빌려왔다. 여기에 대해 노명우는 사회학자와 물리학자가 우리가 살고 있는 동일한 세상의 ‘세상물정’을 궁금해하는 한, 각자가 속한 분과 학문의 차이는 놀랍게도 무색해진다고 했다. 융합은 방법론의 나열이 아니라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놓은 테이블 주변에 전문가들이 모인 형상에서 탄생한다. 사회학과 물리학이 ‘세상물정’이라는 질문을 통해 만났다. ‘세상물정’의 테이블에 사회학자뿐만 아니라 물리학자도 앉았다. 자, 이제 당신이 앉을 차례다. 다른 벗들을 데리고 와야 한다. 그래야 테이블 세팅이 끝난다. 이제는 진도를 나갈 때다.






* 함께 읽으면 좋은 책


『세상물정의 사회학』

노명우 지음, 사계절, 2013


『정재승의 과학콘서트』

정재승 지음, 어크로스, 2011


『저도 과학은 어렵습니다만』

이정모 지음, 바틀비, 2018





이정모 - 서울시립과학관장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생화학을 공부하고 독일 본 대학교에서 유기화학을 연구했지만 박사는 아니다. 안양대학교 교양학부 교수와 서대문자연사박물관 관장을 거쳐 현재는 서울시립과학관장으로 일하면서 대중의 과학화를 위한 저술과 강연활동을 하고 있다. 『저도 과학은 어렵습니다만』 『달력과 권력』 『공생 멸종 진화』 『해리포터 사이언스』 『유전자에 특허를 내겠다고?』 등을 썼으며 『인간이력서』 『매드사이언스북』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세부정보

  • 주최/ 경기도

    주관/ 경기문화재단

    선정위원/ 한기호 위원장(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김종락(대안연구공동체 대표), 장은수(편집문화실험실 대표), 강양구(코리아메디케어 콘텐츠본부장), 김세나(콘텐츠큐레이터)

    진행/ 김세나(콘텐츠큐레이터), 윤가혜(경기문화재단), 김민경(경기문화재단)

    문의/ 문화사업팀 031-231-0849

@참여자

글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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