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다순

경기문화재단

영원한 자유를 향한 시적 양심

문학-현대-운문 분야 『김수영 전집 1 시』 리뷰



경기도와 경기문화재단은 경기천년을 기념하여 ‘새로운 경기’로 나아가기 위해 도민의 생각의 틀을 확장하고 삶의 질 향상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분야별 우수 도서 100선을 선정하였습니다. 전문가들로 구성된 선정위원회의 추천과 심의로 경영경제, 과학, 문학, 문화, 사회, 아동, 인문의 7개 분야에서 200선이 엄선되었고, 10대부터 50대 이상의 경기도민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설문조사를 통해 최종 100선이 선정되었습니다. 선정된 책들은 도민 누구나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는 것들로, 읽을거리를 찾는 도민에게 실질적 가이드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최종 선정된 경기그레이트북스 100선은 경기문화재단 홈페이지(www.ggcf.kr), 경기천년 홈페이지(ggma.ggcf.kr) 및 경기문화콘텐츠플랫폼 GGC(ggc.ggcf.kr)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김수영 전집 1 시』 

김수영 지음, 이영준 엮음, 민음사, 2018








영원한 자유를 향한 시적 양심


류대성 - 작가






“김수영은 사랑, 자유, 설움, 정직, 양심, 혁명, 성숙의 시인이다, 김수영은 첨예한 현실 인식과 서정성의 줄다리기 한 가운데에서 드물게 성공적으로 위치한 시인이다, 김수영은 이론과 실천이 고통스럽게 통일되어 사상이 몸을 얻은 진정한 근대적 모더니스트이다.”


『김수영, 혹은 시적 양심』에 나오는 말이다. 김수영 시인에 대한 세간의 평가에 대체로 동의할 수밖에 없다. 1921년에 태어나 일제 식민지, 8․15 해방, 6․25 전쟁, 4․19 혁명, 5․16 군사정변에 이르기까지 온몸으로 한국 근현대사를 살아낸 시인이 바로 김수영이다. 그는 유럽의 자유와 변혁 운동을 촉발됐던 ‘68혁명’이 일어난 겨울, 마흔 여덟의 나이에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김수영의 대표작이 된 마지막 시 「풀」을 남긴 채.


우리에게 익숙한 그의 시는 우리에게 위로와 격려를 건넨다. 일상의 고통과 좌절을 잠시 잊게 하거나 지치고 힘든 어깨를 토닥여준다. 하지만 김수영은 독일의 시인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말대로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를 살았다. 김수영은 참혹했던 식민지 시절을 거쳐 전쟁과 혁명의 열기를 온몸으로 겪었다. 그의 언어는 비극적인 현실 관통하여, 독자들은 그의 언어를 마주할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 잘 벼린 칼날처럼 날선 정신의 힘을 보여주기도 하고 부패한 현실의 악취를 들추기도 한다. 그에게 시는 공감과 배려가 아니라 질문과 각성의 도구였다.


김수영은 그의 시 「생활」에서 말했듯이 “생활은 고절(孤絶)이며 비애이었다 그처럼 나는 조용히 미쳐간다 조용히 조용히”라고 고백할 만큼 쉽지 않았다. 그가 말한 “모든 것을 제압하는 생활”의 위력은 시 곳곳에 배어 있다. 소설가 김훈의 말대로 밥벌이의 지겨움과 일상의 비애는 그가 견뎌야 했던 시대의 아픔과 별개의 것이었다. 시인도 잠을 자고 밥을 먹고 사랑을 나눈다. 아내 김현경과의 만남과 이별 그리고 재회 과정을 통해 김수영은 일상적 행복과 불행 그리고 삶의 ‘희로애락’을 경험한다. 시인이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에서 “왜 나는 조그만한 일에만 분개하는가”라는 질문은 생활인으로서의 비애이며, 동시대인에게 던지는 자각의 메시지다.


시대와 불화했던 지식인의 고뇌는 일상적 사랑조차 전쟁과 혁명을 통한 각성으로 나아간다. 이상적 자아의 목소리는 일상적 사랑에도 그대로 스민다. 그는「사랑」에서 이렇게 말한다. “어둠 속에서도 불빛 속에서도 변치 않는 사랑을 배웠다 너로해서 그러나 너의 얼굴은 어둠으로 불빛으로 넘어가는 그 찰나刹那에 꺼졌다 살아났다 너의 얼굴은 그만큼 불안하다” 사랑에 대한 그의 시에서 이성을 향한 열정보다 시대의 불안과 실패한 혁명의 그림자가 엿보인다.


턱을 괸 사진 속, 김수영의 형형한 눈빛은 쿠바의 혁명가 체 게바라를 닮았다. 「폭포」에서 ‘나태와 안정’을 거부하는 단호함을 엿볼 수 있으며, ‘권위적 구조’와 ‘부패한 관료’에 대한 혐오가 드러난다. 칼보다 강한 펜으로 쓴 그의 시는 일상에서 느끼는 참담함에 대한 위악과 자조의 표현이다. 시인의 일상적 사랑과 이상적 자아는 끝까지 서로 화해하지 못한 채 가학적이고 반어적인 표정으로 마주한다.


해방 이후 한국문학은 새로운 부흥기를 맞는다. 억눌렸던 일제강점기와 달리 다양한 욕망이 반영되어 시의 토양도 비옥해진다. 1920년대 서구 유럽의 모더니즘이 유입되어 1930년대 김기림, 김광균, 정지용, 이상 등에 의해 꽃을 피웠고, 1950년대 전후 모더니즘은 김경린, 김수영, 박인환이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었으며, 60년대 송욱, 김춘수, 박남수 등으로 이어졌다.


김수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대의 아픔을 이해해야 한다. 그는 산문「내가 겪은 포로생활」에서 “세계의 그 어느 사람보다도 비참한 사람이 되리라는 나의 욕망과 철학이 나에게 있었다면 그것을 만족시켜준 것이 이 포로생활이었다”라고 고백한다. 김수영의 고백은 가슴을 아프게 한다. 6․25전쟁에 참전했다가 포로수용소에서 보낸 시기를 회상하는 장면이다. 이 장면은 최인훈의 소설 『광장』의 주인공 이명준은 이념의 갈등과 대립을 피해 제3국을 택하는 장면이 겹친다. 마치 전쟁의 상처에 고통받는 개인의 아픔을 반어법으로 절규하는 김수영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시대의 희망은 포기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념 전쟁과 실패한 혁명 그리고 성공한 쿠데타의 후유증은 여전히 21세기를 지배하지만, 당대를 살았던 김수영의 시는 근대적 표상과 새로운 시 정신으로 충만하다. 그는 「사랑의 변주곡에서」 쓴 “욕망이여 입을 열어라 그 속에서 사랑을 발견하겠다 도시都市의 끝에 사그러져가는 라디오의 재갈거리는 소리가 사랑처럼 들리”는 시대를 상상해보자.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다. 여전히 김수영의 시가 가슴을 울리는 이유는 시대를 뛰어넘는 보편성 때문이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폭포」에서 말하듯 “곧은 절벽을 무서운 기색도 없이” 떨어지는 맑은 폭포의 물줄기처럼 시원하게 독자의 잠든 영혼을 깨운다. 들불처럼 촛불을 밝힌 사람들이 바로 김수영이 「풀」에서 말한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 민중들의 모습이 아닐까?


스물아홉의 젊은 나이에 심야극장에서 요절한 시인 기형도는 침묵을 “소리의 뼈”라고 했다. 21세기를 사는 우리는 한 순간도 쉼 없이 목소리를 높인다. 네트워크로 울려 퍼지는 수많은 말들, 미세먼지만큼 해로운 가짜뉴스, SNS로 주고받는 사적인 이야기들…. 잠시 침묵 속에 나를 맡기면 다른 소리가 들린다. 그 침묵은 외면과 무관심이 아니라 비판과 변화를 촉발하는 성찰의 시간이다. 김수영의 시편들은 일상적 수다 대신 간결하고 묵직한 언어의 힘을 보여준다. 그는 사후 50년이 지난 오늘도 여전히, “시를 논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산문의 의미이고, 모험의 의미이다. 시는 온몸으로, 바로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 그것은 그림자를 의식하지 않는다. 그림자에조차도 의지하지 않는다. 시의 형식은 내용에 의지하지 않고 그 내용은 형식에 의지하지 않는다.”(「시여, 침을 뱉어라」)라고 외친다.


김수영의 시적 주제는 자유다. 그 자유는 일상의 한계를 벗어난 상상력이며 불가능한 일에 대한 도전이다. 우리는 매일 아침 눈을 뜨고 잠이 들 때까지 ‘꿈’을 꾼다. 밤에 꾸는 꿈은 몽상에 불과하지만 낮에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 그 꿈이 비록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우리는 모두 내일을 향한 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1960년, 4․19 시민혁명은 좌절했고 엄혹한 군사 독재정권을 맞이했다. 상처는 깊고 아팠으며 그 후유증은 여전히 남아 남아 있지만 말이다.


『김수영의 전집 1 시』를 읽으며 우리는 그가 살던 시대와 현재는 어떻게 다른지, 또 지금은 그때보다 자유로워졌는지 비교할 수밖에 없다. 조금 자유롭게 그리고 가볍게 산책하듯 김수영의 시를 읽지 않으면 시퍼렇게 날선 말들에 베일 수도 있다. 산문 「제 정신을 갖고 사는 사람은 없는가」에서 “자기의 죄에 대해서 몸부림은 쳐야 한다. 몸부림은 칠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가장 민감하고 세차고 진지하게 몸부림을 쳐야 하는 것이 지식인이다”라고 힘주어 말했던 김수영을 기억하며 한 편의 시를 통해 각자의 삶을, 이 시대를, 먼 미래를 조망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 함께 읽으면 좋은 책


『김수영, 혹은 시적 양심』

이은정 지음, 살림, 2006


『김수영 전집 2 산문』

김수영 지음, 이영준 엮음, 민음사, 2018


『김수영을 위하여』

강신주 지음, 천년의상상, 2012






류대성 - 작가 


한겨레, 중앙일보에 서평, 사설비교 칼럼을 연재했고, 고교독서평설 등 여러 매체에 고전, 서평 관련 글을 써 왔다. 오랫동안 국어 교사로 일했고 전국도서관, 교육청, 학교에서 독서, 글쓰기, 고전 관련 강의를 계속하며 책과 단단히 얽힌 삶을 살고 있다. 『책숲에서 길을 찾다』『청소년을 위한 북 내비게이션』등을 썼고, 『고전은 나의 힘』『마중물 독서』 시리즈 등을 기획했고 편자로 참여했다.




세부정보

  • 주최/ 경기도

    주관/ 경기문화재단

    선정위원/ 한기호 위원장(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김종락(대안연구공동체 대표), 장은수(편집문화실험실 대표), 강양구(코리아메디케어 콘텐츠본부장), 김세나(콘텐츠큐레이터)

    진행/ 김세나(콘텐츠큐레이터), 윤가혜(경기문화재단), 김민경(경기문화재단)

    문의/ 문화사업팀 031-231-0849

@참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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