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문화재 : 육구삼+] 음애 이자 묘역 陰崖 李耔 墓域

경기도기념물 제172호




조선전기의 문신이자 기묘명현己卯名賢 중 한 사람인 이자李耔(1480 ~1533)의 묘이다. 이자의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차야次野, 호는 음애陰崖·몽옹夢翁·계옹溪翁이다. 이색李穡의 후손으로, 대사간 이예견李禮堅의 아들이다. 1506년 중종반정 후에 발탁되어 홍문관수찬·교리 등을 지내다가 1517년부터 홍문관 전한·직제학을 거쳐 부제학에 이르렀다. 그 후에 좌승지로 옮겼다가 다음해에 대사헌이 되었다. 이 무렵 조광조趙光祖·김정金淨 등의 신진 사류들과 교유를 하면서 도학정치의 이상을 실현하고자 했으나, 그들의 급진적 개혁 정책을 완화하고자 노력하였다. 1519년 기묘사화가 일어나 사림파가 참화를 입게 되자 그도 여기에 연좌되어 파직·숙청되었다. 그 뒤 음성·충주 등지에 은거하여 세상을 등지고 독서와 시문으로 소일하고, 이연경李延慶·김세필金世弼·이약빙李若氷 등과 학문을 토론하며 여생을 마쳤다. 저서로는 『음애일기陰崖日記』와 시문집인 『음애집陰崖集』이 있고, 『기묘명현록己卯名賢錄』에 올랐다. 시호는 문의文懿이다.


음애 이자 묘역 전경, 2015 ©경기문화재연구원


이자의 묘는 용인시 기흥구 지곡동의 구아산의 서쪽 기슭 한산이씨 묘역에 위치하여 있다. 한산이씨의 묘역은 묘역 입구에서부터 차례대로 아래에서부터 이추, 이자, 이운, 이예견의 묘 등 많은 조선시대 묘가 조성되어 있으며 석물이 잘 갖추어져 있다. 이자의 묘는 쌍분인데, 부인인 정경부인 의령남씨宜寧南氏, 정경부인 인천채씨仁川蔡氏와 함께 조성된 것이다. 묘역은 2계로 나뉘었으며, 상계에는 봉분 2기, 혼유석, 상석을 배치하였고, 하계에는 향로석, 문인석 2기를 배치하였으며 동쪽에는 묘표를 세웠다. 서쪽에는 2001년에 새로 건립한 묘표가 있다. 옛 묘표는 옥개방부형屋蓋方趺形의 큰 규모인데, 음기에는 ‘崇禎紀元後五丙子四月曰立(숭정기원후 오병자사월일립)’이라는 기록이 있어 1936년에 제작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음애 이자 묘, 2015 ©A&A문화연구소


봉분의 아래에는 앞부분에만 4매의 장대석을 받쳤는데 양 끝은 앞쪽으로 각을 꺾은 형태이다. 이러한 형태는 서울의 광평대군 이여李璵(1425~1444) 등 조선초기의 묘제에서 드물게 나타나며 이 외에도 같은 한산이씨 묘역 내의 부친 이예견李禮堅(1436~1510), 아들 이루李耬의 묘역에서도 유사하게 설치되었다.


   음애 이자 구(舊)묘비, 2015 ©경기문화재연구원


음애 이자 문인석, 2015 ©경기문화재연구원


문인석은 금관조복형金冠朝服形으로 얼굴은 둥글고 신체표현이 유연한 16세기 전반기의 전형적인 양식이다. 금관의 량梁의 구획이 명확하지 않고 금관 뒷면의 장식만 형상화한 단순한 형태이다. 뒷면 허리띠 아래로는 후수의 문양을 커다란 꽃잎형의 운문으로 양각하고 좌우로는 패옥佩玉을 연주문의 형태로 음각하였다. 안정적인 신체비례에 어깨면은 둥글고 소매의 옷주름은 부드러운 16세기 전반기의 우수한 작품이다. 상석, 혼유석, 향로석은 후대에 추보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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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화 @김다혜

    • 시대/ 조선시대

      규모/ 일원

      / 쌍분, 묘비(구·신) 2기, 상석 1기, 혼유석 1기, 향로석 1기, 문인석 1쌍, 표지석 1기, 계체석

      주소/ 용인시 기흥구 지곡동 산11-17

      지정일 / 2000.06.12

      소유자 / 한산이씨 종중

      관리자/ 한산이씨 종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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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경기문화재단

    자기소개/ 경기 문화예술의 모든 것, 경기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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