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문화재 : 육구삼+] 청풍김씨 문의공파 묘역 淸風金氏 文毅公波 墓域

경기도기념물 제177호





<청풍김씨 문의공파 묘역은 문익공 김식文毅公金湜(1482~1520)을 비롯하여 3대손 영의정 김육金堉(1580~1568), 4대손 김좌명金佐明(1616~1671), 7대손 김성응金聖應(1699~1764), 8대손 김시묵金時黙(1722~1772)의 묘이다.

김식은 청풍김씨로 사림파의 대표적 인물 중의 한 사람이다. 그는 당시 사림의 영수로 숭앙받던 조광조趙光祖와 함께 훈구세력 제거에 앞장섰을 뿐만 아니라 왕도정치의 실현을 위해 미신타파·향약실시·정국공신의 위훈삭제 등의 개혁정치를 폈다. 조광조 등과 함께 기묘팔현己卯八賢으로 일컬어지며, 명종 때 복관되어 선조 때에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시호는 문익文毅이다. 김육은 문신으로 실학적 성향을 지니고 대동법大同法의 시행 등 제도개혁을 추진한 정치가이다. 영의정을 역임하였고,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김성응 묘, 2015 ©경기문화재연구원


묘역은 남양주시 삼패동 산29-1 소쿠리마을 왼쪽 편 산기슭에 위치하고 있다. 청풍김씨 묘역은 위 5명의 묘역을 비롯하여 조선중기 이후부터 이곳에 안장되어 세장지世葬地를 이루어 왔다. 특히 위 5기의 묘역들은 인물의 역사적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석물의 예술적 가치가 뛰어나다. 묘역의 석물 중 가장 예술적 가치가 뛰어난 것은 김육과 김좌명의 신도비이다.


김식 묘, 2015 ©경기문화재연구원


김육과 김좌명의 신도비는 소쿠리마을 도로변에 위치하고 있으며, 8m의 간격을 두고 나란히 세워져 있다. 이 신도비들은 모두 이수·비신·비대·대좌로 구성되어 있다. 규모는 총 높이가 4m에 이르는 대형이다. 김육 신도비의 비문은 이경석李景奭이 찬하고, 아들 김좌명이 글을 써서 1664년(현종5)에 건립한 것이다. 이수螭首에는 전·후면에 2마리의 이무기가 앞발을 치켜들고 여의주를 다투는 형상을 생동감 있게 묘사하고 있다. 비대에는 상단에 연판문蓮瓣紋을 조각하고, 전·후면에는 2구획으로 나누어 절지문折枝紋과 기린麒麟을 조각하였으며, 좌우 측면에는 절지문과 연당초문蓮唐草紋을 새기고 있다.


김육 신도비, 2015 ©경기문화재연구원



김좌명 신도비, 2015 ©경기문화재연구원


김좌명 신도비의 비문은 박세당朴世堂이 찬하여 1679년(숙종5)에 건립한 것이다. 이수에는 전·후면에 2마리의 이무기가 앞발을 치켜들고 여의주를 다투는 형상을 생동감 있게 묘사하고 있다. 비대에는 상단에 연판문을 조각하고, 전·후면에는 2구획으로 나누어 절지문折枝紋과 해태를 조각하였으며, 좌우 측면에는 상단에 절지문과 하단에 2구획으로 나누어 화문花紋을 새기고 있다. 이 두 신도비는 전체적으로 비례가 안정감 있고, 조각이 우수한 신도비이며, 양질의 석재를 사용하여 보존상태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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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화 @김다혜

    • 시대/ 조선시대

      규모/ 일원

      / 묘 5기(김식·김육·김좌명·김성응·김시묵)

      / 신도비 4기

      주소/ 남양주시 삼패동 산29-1, 산41-1 외

      지정일/ 2001.09.17

      소유자 / 청풍김씨 문의공파

      관리자 / 청풍김씨 문의공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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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경기문화재단

    자기소개/ 경기 문화예술의 모든 것, 경기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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