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백신] 융통성과 녹음과 여유

<예술가의 코로나 처방전>3_작가 안대근

<예술가의 코로나 처방전>은 유례없는 팬데믹(pandemic) 시대, 어려움에 처한 문화예술계를 묵묵히 지켜온 작가들의 눈으로 코로나19를 이야기하는 프로젝트입니다. 17명의 예술가가 바라본 코로나19란 무엇이며,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예술가의 코로나 처방전>을 통해 일상 속에 새겨진 코로나19의 아픈 흔적을 함께 나누고 치유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며, 나아가 상처를 회복하고 포스트코로나를 향해 한 발짝 성장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예술가의 코로나 처방전>은 7월 24일(금)부터 8월 28일(금)까지 매주 월,수,금요일 지지씨(ggc.ggcf.kr)에서 만나 볼 수 있습니다.



융통성과 녹음과 여유



안대근(작가)


언젠가 친구와 지방 소도시의 조그만 놀이공원에 간 적이 있다. 놀이기구라고 해봐야 고작 대여섯 개뿐이라 놀이공원이라고 하기에도 조금 민망한 곳이었다. 그중에서도 겨우 바이킹 앞에만 손님이 몇몇 서 있었다. 나와 친구는 입구에 있는 마트에서 아이스크림을 한 개씩 사서 나란히 손에 들고 바이킹을 타기 위해 기다렸다. 공중에서 좌우로 요동치던 배가 조금씩 잠잠해지다가 이내 멈췄고, 우리는 바이킹을 타려고 막대에 조금 남아 있는 아이스크림을 호로록 삼켰다. 친구가 내 손에 들린 아이스크림 봉지와 막대를 갑자기 집어 가며 말했다. “쓰레기통에 얼른 버리고 올게.” 10미터 정도 떨어진 쓰레기통으로 뛰어간 친구는 그 앞에 멈춰서 잠시 고민하는 듯했다. “야, 뭐 해. 얼른 와. 이제 입장한다!” 내가 외쳤고, 친구는 가져간 쓰레기를 손에 그대로 쥔 채로 총총 돌아왔다. 나는 바이킹 맨 뒷자리에 앉아 물었다.


“왜 안 버리고 다시 들고 왔어?”


“버리려고 했는데 가보니까 일반 쓰레기통이 없었어. 플라스틱, 유리, 캔, 종이만 있고.”


“뭐야, 그냥 아무 데나 넣고 오지. 융통성 없기는.”


친구는 괜찮다고, 이따가 버리면 된다고 말하며 웃었다. 맨 뒷자리는 무서워서 싫다는 친구를 꼬드겨 겨우 맨 뒷자리에 앉혀 놓고 나는 친구가 손에 쥔 쓰레기를 가져와 내 주머니에 넣었다. 조심한다고 했는데도 아이스크림 봉지에서 흐른 끈적끈적한 액체가 바지에 살짝 묻었다. 달고 시큼한 과일 향이었다. 나는 친구에게 말했다.


“야. 출발한다. 안전바 꽉 잡아.”


친구는 끼리끼리라고 했던가. 융통성 없는 이 친구와 오랜 시간을 함께할 수 있던 이유는 아무래도 나 또한 융통성 제로인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주변에서 융통성 없다는 말을 자주 들어서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 알바할 때 마감 시간 1~2분 남기고 손님을 받아 동료들의 퇴근 시간을 늦춘다든지, 회사 컴퓨터로는 정말 회사 일만 해야 하는 줄 알고 할 일이 없을 때도 회사 홈페이지만 계속 들여다본다든지. 물론 그건 신입 사원 때 아주 잠깐이긴 했다.




나는 그런 게 너무 어려웠다. “쉬는 시간이 따로 없으니까 적당히 눈치 봐가면서 쉬면 된다.”는 선배의 말에서 ‘적당히 눈치를 본다’는 건 도대체 얼마큼의 눈치일까. “원래 환불은 절대 불가인데 고객이 너무 유별나다 싶으면 특별히 봐주기도 한다.”는 상사의 말에서 ‘너무 유별난’ 고객의 기준은 뭘까. “교수님이 지난주에 과제 내주신 거 까먹으신 것 같으니까 우리 이번 한 번만 다 같이 모른 척하고 넘어가자.”는 친구의 말에서 ‘이번 한 번만’은 정말 이번 한 번에서 끝나는 걸까.


융통성을 발휘해야 하는 상황이 생길 때마다, 나를 그런 상황 속에 내던진 사람들을 원망하기보다는 자책하는 편을 택했다. 그건 융통성 부족에 대한 내 콤플렉스 때문이기도 하고, 나 역시 융통성이 현대인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덕목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법과 규칙, 그리고 모두가 합의한 기준을 지키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안 걸리면 그만인 일, 굳이 나에게 책임을 지우지 않는 일, 순간마다 요리조리 유용한 판단을 취하면 효용이 더 커지는 일이 세상에는 많으니까. 애매한 선택의 상황에서 이득이 되는 방향으로 재빠르게 판단하는 사람들을 보며 나는 존경심 반, 질투심 반을 느꼈다.


그런 내가 요즘 다시 고민에 빠졌다. 지금이야말로 융통성을 발휘해야 하는 날들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코로나 이후 융통성을 발휘해야 하는 순간이 더 많아졌다. 명확한 지시를 내리기 어려운 시기다 보니까, 이건 하지 말라고, 또 저건 해도 된다고 기준을 하나하나 정해주기보다는 개인의 자율적인 판단에 맡기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이 밀집하는 곳은 피해야 한다고 지침이 내려오지만, 사람들의 밀집까지는 그 누구도 완벽히 막지 않는다. 예전과 다름없이 영화관에 가는 사람들을 보고는 눈살을 살짝 찌푸렸지만 영화 산업 전반이 흔들리게 되자 국가 예산을 써 다시 사람들의 방문을 유도한다. 지난봄 제주에서는 자꾸 몰리는 관광객을 어찌할 도리가 없어 유채꽃밭을 갈아엎었지만, 그러는 사이에도 다른 여행지 곳곳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찾아주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새 단장이 한창이다. 바깥에서는 마스크를 안 쓰면 죄인이 되지만, 오히려 사람들이 밀집한 실내에 들어오면 어느새 답답함을 견디지 못하고 쉽게 마스크를 벗게 된다.


무책임한 말로 들릴지 모르겠으나, 이건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 막대기를 하나 들고 운동장 바닥을 절반으로 가르듯, 되는 것과 안 되는 것을 구분 지을 수 없는 일. 책임지겠다는 말로 상대의 자율성을 제한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책임지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누군가에게 이래라저래라 하는 건 더욱 쉽지 않다는 것을 나도 이미 잘 알고 있다. 언젠가 그런 답답함을 지닌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코로나가 잠잠해지길 기다리면서 자기는 지인들과의 만남도 다 미루고 최대한 거리두기를 실천하며 살고 있는데, 거리, 가게, 술집에 넘쳐나는 사람들을 보면 자신만 바보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하는 성실함은 요즘처럼 시시각각 재편되는 시대에 융통성 없는 고집일지도 모르겠다고.


▲ 안대근, 〈융통성과 녹음과 여유〉, 2020. ⓒ경기문화재단


그들에게 나도 조금은 미운 사람일까. 요즘 나는 가끔 가던 대중목욕탕엔 가지 않지만, 헬스장에서는 마스크를 쓰고 운동을 한다. 좋아하는 노래방엔 가지 않지만, 영화를 보러 극장엔 발걸음을 한다. 조금 어색한 사람들에게 연락이 오면 코로나가 잠잠해진 뒤에 보자고 만남을 미루지만, 보고 싶은 사람들과는 시간을 내서 만나 밥을 먹고 술을 마신다. 왜 저긴 안 가고 거긴 가냐고 물으면 사실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다. 마음속 죄책감의 마지노선에서 힘겹게 쥐어짜내고 있는 희미한 융통성이라고 해야 할까.


“그때그때의 사정과 형편에 따라 일을 처리하는 재주”라는 뜻의 융통성은 종종 ‘여유’라는 말로 대체되기도 한다. 그렇게 보면 융통성은 여유에서 나오는 걸까 싶기도 하고, 융통성이 있어야 여유를 누릴 수 있는 것 같기도 해서 융통성 없는 내 모습에 괜히 더 주눅이 들지만 나는 이제 내 나름의 융통성을 발휘해 보려 한다. 놀이동산에서 쓰레기를 버릴 곳이 마땅히 없을 땐, 쓰레기통을 찾을 때까지 지저분한 것들을 내 양손으로 감싸고 걷는 일 같은 것. 융통성이 있지만 융통성 없고, 융통성 없지만 그래서 어느 정도는 융통성이 있는 일들.


여느 질병이 다 그렇겠지만 코로나19는 특히 고령자일수록, 그리고 기저질환이 있을수록 치사율이 높다. 그래서 건강한 이들이 걸려 약한 사람들이 죽어가는 병이라는 꼬리표가 붙기도 한다. 지난달 강연 일정이 있어 남쪽의 지방에 다녀왔는데, 멀리 내려간 김에 하루 더 머물다 온 그곳에서 관광객을 제외하고는 내 또래의 사람들을 거의 만나지 못했다. 시간이 흐르면 점점 더 어르신이라 부를 사람들만 남게 되는 곳에 머물면서 나는 몇몇 친절을 마주했다. 무심한 듯하지만 다정한 인사들, 바다의 잔잔한 파도처럼 나른한 일상의 여유들. 한번은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있는데 비가 세차게 쏟아지기 시작했다. 식사를 마친 할아버지가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자 주인아주머니가 말했다. “버스 시간 다 됐는교? 시간 남았으면 좀 더 쉬다 가시지예.” 빗소리를 들으며 아주머니가 내준 수정과를 마시는 할아버지의 시간이 느리게 흘렀다.


안 되는 이유만을 찾는 융통성 없는 시선들이 주인아주머니의 여유를 앗아가지 않았으면 좋겠고, 원칙이라면 무시하고 보는 속이 텅 빈 융통성이 할아버지의 여유를 앗아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작가 소개] _ 안대근




작가 소개 _ 안대근


부천에서 학창 시절을 보내고, 경희대학교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했다. 마음속 작은 방에 머문 사람들에 대한 기억을 투박한 손글씨로 썼다가 첫 책을 내게 됐다. 글을 통해 순한 사람이 순하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싶은 소망이 있다. 《웃음이 예쁘고 마음이 근사한 사람》, 《보고 싶은 사람들 모두 보고 살았으면》을 펴냈으며, 비정기적으로 메일링 서비스 ‘매일메일근’을 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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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대근 @경기문화재단 @어라운드

    • 2020 ggc special feature <예술가의 코로나 처방전>

      기간/ 2020.07.24(금) ~ 2020.08.28(금)

      참여필진/ 박준, 이억배, 안대근, 사이다, 스튜디오 김가든, 이소영, 김정헌, 계수정, 안상수, 한수희, 원일, 장석, 강은일, 허남웅, 김영화, 김도균, 유열

      책임기획/ 노채린(경기문화재단), 김채은(어라운드)

      기획총괄/ 황록주(경기문화재단 통합홍보팀장)

      제공/ 경기문화재단 지지씨, <예술백신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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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경기문화재단

    자기소개/ 경기 문화예술의 모든 것, 경기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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