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다순

경기문화재단

침묵의 봄

<예술가의 코로나 처방전>11_시인 장 석

<예술가의 코로나 처방전>은 유례없는 팬데믹(pandemic) 시대, 어려움에 처한 문화예술계를 묵묵히 지켜온 작가들의 눈으로 코로나19를 이야기하는 프로젝트입니다. 17명의 예술가가 바라본 코로나19란 무엇이며,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예술가의 코로나 처방전>을 통해 일상 속에 새겨진 코로나19의 아픈 흔적을 함께 나누고 치유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며, 나아가 상처를 회복하고 포스트코로나를 향해 한 발짝 성장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예술가의 코로나 처방전>은 7월 24일(금)부터 8월 28일(금)까지 매주 월,수,금요일 지지씨(ggc.ggcf.kr)에서 만나 볼 수 있습니다.



침묵의 봄



장 석(시인)




문은 닫혀 있네


꽃잎 날리는 길

반은 이쪽으로 반은 저쪽으로

내달리던 것들의 자취가 없네


기쁨과 슬픔이

혼례와 장례가 발길을 돌리네

신도 제 정처의 문을 들어서지 못하네


동네 횟집의 수족관

밀집해 있던 물고기

무중력 유영을 하네

얼굴을 바닥에 대고 거꾸로 서 있는

가장 어린 것


두려움을 감춘 화난 표정으로

문은 입을 다물고 있네

상인방의 푸른 칠은 벗겨지고

봄볕은 깨진 유리창으로 들어가네

소식이 각다귀처럼 빗발치던 곳


스스로 돌보지 못하는

사랑이 밀집해 있네

흰 마스크를 쓴 아이들과

검은 마스크의 노인들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무소식의 깊은 골짜기 안

사랑의 탁아소와 요양원


태고의 해안선을 따라

우리는 내내 밀집을 향해 이동해 갔네


집과 축사와 도시를 만들고

끝내는 학살의 구덩이를 파

돼지와 닭을 묻고

우리도 가장 밀집하게 밀접하게

서로 껴안았네


때로는 비참한 난민으로

대부분은 행복한 여행객으로

늘 바삐 이동했네


을지로사가 지하보도의 쉼터

접속이 끊긴 늙은이와

거의 끊긴 젊은이가

기둥을 사이에 두고 등을 맞댄 채

휴대전화 충전줄에 매달려 있네

서로의 그림자처럼


세상을 뒤덮고 있는 그물에 걸려

거미가 다가오는 것도 모르네

당신을 떼어내면

누가 나도 벗어나게 할까


이 봄의 볕과 공기는 참 좋네

우리가 저지르는 비천함의 참혹을 경고했듯

저지르지 않으면 가능한 아름다움을

알려주네


밀집을 벗어나 밀접하고

잘못된 거짓 연결을 끊으라 하네

사랑한다고 말하기에는

아직 늦지 않았다고


흙구덩이 안에서 나와

어머니는 아이를 안고

다시 봄길을 곱게 걸어가시길


두려움과 놀라움의 손을 잡고

해변을 따라 겸손하게 갔던

그 봄날처럼




[작가 소개] _ 장 석



작가 소개 _ 장석


198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시집으로는 《사랑은 이제 막 태어난 것이니》, 《우리 별의 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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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부정보

  • 2020 ggc special feature <예술가의 코로나 처방전>

    기간/ 2020.07.24(금) ~ 2020.08.28(금)

    참여필진/ 박준, 이억배, 안대근, 사이다, 스튜디오 김가든, 이소영, 김정헌, 계수정, 안상수. 한수희, 원일, 장석, 강은일, 허남웅, 김영화, 김도균, 유열

    책임기획/ 노채린(경기문화재단), 김채은(어라운드)

    기획총괄/ 황록주(경기문화재단 통합홍보팀장)

    제공/ 경기문화재단 지지씨, <예술백신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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