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다순

경기문화재단 코로나19 예술백신TFT

한 가족을 위한 텃밭 마당극(조미숙 님 가족, 창작꿈터 놀이공장)

양평 거인의 정원에서 공연이 열리다


비대면 시대에 문화예술은 어떻게 이어져야 할까요?

이전의 대면 사회에서 우리는 과연 진심으로 대면한 적이 있었을까요?


‘진심대면’이란 예술가와 문화수용자가 주체 대 주체로 만나 귀 기울여 대화하고,

예술의 가치와 위로를 전달하며, 그 속에서 진심을 주고받는 새로운 문화예술 방식입니다.


'진심대면-한 사람을 위한 예술'에 선정된 서른 네 팀의 수기를 통하여 진심대면의 순간들을 전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진심대면의 새로운 소규모 문화예술 패러다임을 공유하고,

나아가 예술의 가치와 본질을 발현시키고 재난 시대의 아픔을 치유하기를 희망합니다.


한 사람, 한 가족의 관객을 마주하는 ‘진심대면’의 순간들을 대면해 보세요.


문화수용자 가족을 위한 ‘맞춤형 연극놀이’를 통해 현재의 자기 마음 상태를 들여다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했다. 가족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을 ‘음악과 함께하는 낭독 공연’으로 공연하여 일상적이지 않은 또 다른 새로운 일상을 살아낸 2020년 한 해를 서로 위로하고 원기를 불어넣으려 했다.





혹시 내 안에 거인이 있나?

나도 거인처럼 문을 닫고 지낸 것은 아닐까?

서울에서 태어나 40년 넘게 살다가 10여 년 전에 내려온 나의 양평살이는 밖에 있는 사람들이 보는 것처럼 낭만적이거나 자연 친화적이지 않다. 익명성이 보장(?강요)되는 환경에 너무 익숙해져서인지 좁은 지역사회가 주는 관심이 압박감으로 다가왔고, 그래서 스스로를 고립시키며 지냈는지도 모른다.


산으로 둘러싸여 솥과 같다는 정배리에, 그것도 마을회관 바로 앞에 집을 짓고 살면서도 이웃과 소통하고 지내는 것이 어색하고 불편했다. 스스로 정배아파트라고 하며, 이웃과의 소통이 쉽지 않았다. 좁은 지역사회가 보여주는 관심과 소문은 ‘니가 어제 한 일을 다 알고 있다’ 와 같은 상황은 프라이버시가 침범된다고 느꼈고 스스로를 고립시키기로 결정하며 지내왔다. 너무 익숙한 일상이 된 지 오래다. 그래 내 안에도 거인이 있었구나.



양평에 내려온 지 10년이 되었지만, 속 깊은 대화를 나누는 이웃은 손으로 꼽힌다. 그런데 그 중 한 분이 어린이 공연과 프로그램을 만든다는 단체를 소개해 주었다. 전통 염색을 배우고 싶다고 했다. 나도 대학 시절 연극동아리에 있었고, 주변에 동아리 선후배들이 아직 연극을 하고 있어서 예술가들의 어려움을 알고 있었기에 선뜻 제안에 응했던 게 사실이다. 올해 내내 코로나 탓에 사람을 만날 기회가 없었던 탓인지 자연스레 많은 이야기가 풀려나왔다.


그 뒤, 이 단체가 찾아가는 예술 공연 사업에 지원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듣고 공연을 수락한 것은 코로나로 수학여행을 가지 못한 채 중학교를 졸업하게 된 중3 아들과, 온라인으로 입학식을 대신해야 했던 중1 딸과 그 친구들을 위로하고 싶어서였다. 올해 작은 텃밭을 만들어둔 앞마당, 우리의 정원에서 할 공연은 <거인의 정원>으로 결정했다. 우리 집에서 공연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 어쩌다 보니 동네 유치원, 초등학생 어린이들 몇 명에게도 알려지고, 자연스럽게 엄마들이 함께하게 되었다.



막상 공연날짜가 다가오자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코로나가 심각해지고 있었고. 쥐 죽은 듯이 조용히 살다가 하필 이런 시기에 괜히 일을 벌여 탈이라도 나면 어쩌지, 걱정이 많았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우리 집에 찾아온 것도 처음이었다.


겨울 밤, 우리 집을 배경으로 무대가 설치되었다. 음악이 흐르고, 작은 무대를 꽉 채우는 두 배우, 조명과 그림자로 만들어지는 환상적인 거인의 정원. 황홀한 겨울밤이었다. 무엇보다 코로나로 어려운 시절을 보내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주는 선물이었다. 커다란 거인의 그림자와 정원은 모두를 집중하게 했고, 아름다운 음악은 겨울밤에 봄볕처럼 따뜻했다.



연극이 끝나고, 초등생 아이가 재미있었다며 다른 연극도 보고 싶다고 했다. 코로나가 아니어도 내가 사는 곳은 문화 소외지역이라 좋은 공연을 보기 힘들다. 이 아이들에게 좋은 추억을 만들어 주었다는 생각에 그동안 걱정했던 무거운 마음이 사라졌다. 내 마음의 정원에도 봄이 오고 있었다.


나에게 봄을 선물해준 모든 분께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2020년은 일 년 내내 겨울이 계속된 것만 같았다. 취소되는 공연 일정에 마음을 졸이다 무엇이든 해보기로 마음먹으면, 함께 모이기조차 힘든 날이 찾아왔다. 천연염색활동가 조미숙 선생님을 만나는 날도, 몇 번이나 마음을 먹어야 했다.


조미숙 선생님 댁을 처음 찾았을 때, 정원 한쪽에 하얀 꽃을 매달고 서 있는 목화 나무가 마음을 사로잡았다. 코로나로 꼼짝 못하는 시간을 버티려 아끼어 가꾸던 정원 한쪽에 텃밭을 만들고 배추를 심으셨다 했다. 이야기를 나누며 이 시기가 힘든 것은 우리만이 아님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었다. 학교에 가지 못하는 아이, 친구들과 어울릴 기회를 잃고 힘들어하는 아이들과 이를 안타까워하는 엄마의 마음에 위안이 되고 싶었다. 사춘기에 접어들어 정체성을 고민한다는 아이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면 좋을까 생각했다.



공연을 하는 날, 양평을 향해 가는 우리의 마음은 솔직히 복잡했다. 코로나19가 다시 확산되며 다른 공연들도 모두 취소되고, 올해의 마지막 공연이 될 터였다. 시작은 낭독공연이었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다 보여주기로 했다. 1년 만에 처음으로 무대에 서게 된 배우와, 기회가 없어 처음으로 선보이게 되는 오브제들이 있었다.


선생님 댁 마당 데크에 막을 세우고 공연 준비를 마쳤을 무렵, 이웃 아이들이 슬며시 나타났다. 어머니들은 낮은 담장 밖에서 서성이시고, 아이들은 정원 곳곳에 스티로폼 상자를 하나씩 깔고 앉았다. 이웃집에서도 커튼을 걷고 창에 기대어 공연을 보아 주셨다. 공연을 시작할 때는 아직 날이 밝았는데 끝날 무렵에는 어둑해졌다.



공연 후 이어진 연극놀이에서 그 나이답게 과묵한 오빠는 물에 비친 나무 그림자를 만들어냈고, 좀체 입을 열지 않던 동생도 코로나가 바꾸어 놓은 자신의 생활과 꿈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작은 사람들이 가득한 정원 한 조각의 제목은 ‘코로나 끝난 날’이었다.


오랜만에 관객에게 우리의 이야기를 들려준 날, 지친 가족을 위로하고자 만든 기회였지만 우리 역시 큰 위안을 받았다. 우리에게 가장 힘이 되는 것은 역시 ‘관객’이라는 것을, 눈을 빛내며 봐주는 어린이들의 얼굴이 우리의 꽃이라는 것을 또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지금 이 겨울은 그저 봄이 잠시 잠든 것뿐이라고, 꽃들이 잠시 쉬고 있을 뿐이라고 믿어 본다. 그리고 곧 찾아올 봄에 선생님과 함께 작업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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