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다순

경기문화재단

과거, 현재, 미래를 잇는 타임머신

개관 12주년 맞은 전곡선사박물관을 찾아서

1978년, 연천 전곡리에서는 세계 고고학계를 놀라게 한 아슐리안형 주먹도끼의 발견 이후 1979년부터 2010년까지 17회 이상의 발굴조사가 진행되었다. 그 결과 주먹도끼를 비롯한 사냥돌, 주먹찌르개, 긁개, 홈날, 찌르개 등 다양한 종류의 석기가 발견되었으며 선사유적의 가치를 인정받아 이 일대가 사적 제268호로 지정‧보호되었다. 그리고 35년이 지난 2011년 4월 25일에 전곡선사박물관이 개관했다.


연천의 간판이 전곡리라면 전곡리의 간판은 전곡선사박물관이다. 역사적 의의가 큰 발견 이후에도 변변한 관람시설이 없던 전곡리에 박물관과 유적공원, 선사시대체험마을이 들어서면서 DMZ 관광 일색이었던 연천에 새로운 활기가 돌았다. 어느덧 10년도 더 된 일이 되었지만 전곡선사박물관 개관 후 얼마 되지 않아 방문했던 때의 기억이 생생하다. 박물관의 생경한 외관이 살짝 충격적이었기 때문이다. 나와 동행한 이들 모두 ‘저게 뭐지?’했다.


그때의 경험 때문에 전곡선사박물관 개관 이후에 완공된 서울 DDP(동대문디자인플라자) 건물을 봤을 때도 큰 감흥이 없었다. 동대문운동장이 있던 자리에 세운 DDP 건물은 마치 비행물체가 내려앉은 듯 한 낯선 외관으로 2014년 완공 당시 큰 화제가 되었다. 완공 초기에는 주변과의 조화, 동대문운동장이 가진 역사성을 살리지 못한 건물로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지만 시간이 흐르자 건물에 대한 대중의 이미지는 긍정적으로 변했다. 미래 지향적인 분위기로 서울 도심 풍경의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게 ‘불시착한 비행물체’의 이미지는 전곡선사박물관이 처음 선사했다. 지금이야 DDP처럼 익숙해졌지만 첫인상은 다소 기묘하기까지 했다.


미스터리 시리즈에는 선사시대 동굴 벽화에 비행물체가 그려져 있다거나 선사시대 지층에서 현대 문물이 나왔다는 사례(물론 검증되지는 않았다)를 예로 들어 발달된 외계의 ‘인류창조설’이 심심찮게 등장한다. 그러니까 전곡선사박물관은 그런 황당한 미스터리 이야기가 떠오를 정도로 선사시대와는 궤가 맞지 않는 미래형 비정형 건물로 보였다. 은빛 스테인리스 외장재를 두른 곡선의 거대한 외관은 햇빛에 반사되어 번쩍번쩍 자체 발광하고 있었고 그 건물에서 당장 외계인이 튀어나온대도 이상하지 않았다. 더욱이 주변은 건물 한 채 없이 비어있는 강 유역이라 DDP처럼 도심 속 하이테크 건물의 느낌도 아니었다. 건축가의 의도를 더듬었다.


건물의 설계자는 프랑스 Xtu 건축사무소의 아눅 레장드르, 니콜라스 데마지에르다. 이들은 주먹도끼가 발견된 땅에 올릴 건물을 설계할 때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을까. 주변과의 조화? 선사시대를 연상케 하는 디자인? 문득 구석기축제의 보도사진이 떠올랐다. 원시인과 돌도끼 분장 등 클리셰로 범벅된 이미지를 보면서 나는 조소하지 않았던가. 건축가들은 그런 식의 과거 재현을 원치 않았을 것이다. 가령 구석기인들이 살았을 법한 동굴이라든지 움막 같은 것을 모티프로 설계해 ‘여기가 선사박물관’임을 직관적으로 드러내고 싶진 않았을 것이다. 단순히 참신해보이기 위한 설계가 아니라 건물을 마주한 이들이 한 번 더 생각할 수 있도록, 낯설지만 은유적이며 상징적인 장소로 각인시키고 싶었을 것이다. 그 건물을 미확인비행물체라고 상정한다면 누구나 호기심과 두려움이 동시에 생길 것이다. ‘저게 뭘까?, 저 안에는 무엇이 있을까?’ 호기심은 사람들을 건물 내로 유도하는 촉매가 되고 두려움은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것들을 주의 깊게 살피는 동력이 된다. 그렇게 건축가의 의도는 성공한다. 즉 건축가는 선사시대와 현대의 사람들을 잇는 ‘연결고리’로써 박물관을 설계했을 것이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잇는 타임머신 같은 것이다.


한편 건축가는 ‘예술은 자연의 모방’이라는 명제도 잊지 않았다. 전곡선사박물관은 위에서 보면 원시 세포인 아메바를, 측면에서 보면 용 혹은 뱀을 닮은 형태를 띠고 있다. 또한 한낮에는 볕을 반사시켜 쨍하게 빛나지만 오후에는 볕을 머금어 거울마냥 산천을 비춘다. 건물은 오롯하게 하나의 예술 작품이다. 나는 10년 전보다 더 열린 마음으로 기꺼이 ‘전곡선사박물관’이라는 타임캡슐에 탑승했다.


1층 상설전시장, ‘전곡의 주먹도끼’ 5점이 먼저 관람객을 맞이한다. 1978년부터 2006년에 발굴된 것까지 크기와 암석의 종류, 모양이 조금씩 다른 아슐리안형 주목도끼들이다. 언뜻 흔한 돌덩이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타격을 통해 날을 조성한 흔적이 보인다. 주먹도끼는 구석기인에게 만능연장이었고 현대인에게는 과거의 문을 여는 만능열쇠가 되었다. 인류의 조상에게 닿는 토템인 셈이다. 하여 10만~20만 년 전 인류의 후손은 얼마나 대단한 존재들인가. 이들은 아득한 과거의 조상이 무심하게 깎아 만든 돌도끼를 주워 새로운 가치를 창출한다.

‘거대한 동굴’로 한 발짝 더 들어서면 주먹도끼에 이은 박물관의 시그니처, 시간 순으로 도열한 고인류 모형 14점을 만난다. ‘인류 진화의 위대한 행진’이라는 작품명이 아주 근사하다. 모형은 멈춰서 있지만 표정과 눈동자, 털 끝 하나까지 섬세하게 표현되어 있어 당장이라도 성큼성큼 걸어 나갈 것만 같다. 문득 밤이면 전시물들이 살아 움직이며 관내를 활보하는 영화 <박물관이 살아있다>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모형 중 8점은 고인류 복원 분야에서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프랑스의 복원전문가 엘리자베스 데이너스가 제작했다. 그의 작품을 한 공간에서 여러 점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높은 전시라고 한다. 인류의 선두에는 사헬란트로푸스 차덴시스가 섰다. 약 7백만~6백만 년 전 최초의 인류로 파악되는 고인류다. 침팬지와 닮은 모습인데 화석의 형태는 침팬지와 다르다. 학명은 ‘차드에 살았던 사헬이라는 인류’라는 뜻인데 보통 투마이라는 별칭으로 불린다. 투마이는 차드어로 ‘삶의 희망’이란 뜻이다.

희망이 곧 진화라고 할 수 있을까. 다만 여기, ‘나’라는 진화된 존재가 세상에 나와 걷고 생각하고 또 그 생각을 글로 쓰는 신비에 대해 생각한다. 풍진 세상에 고난 없는 삶이 어디 있겠냐마는 그래도 생을 축복이라 여기며 희망을 갖고 산다. 내가 사라진 후에도 삶은 계속 이어질 것이며 어떤 방식으로든 인류는 시나브로 행진해 나아갈 것이다. 대재앙으로 공룡처럼 멸종되는 일만 없다면 말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이름의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남쪽의 민꼬리 원숭이’는 350만 년 전 출현했다. 이후 ‘손 쓴 사람’ 호모 하빌리스, ‘곧게 선 사람’ 호모 에렉투스, ‘슬기로운 사람’ 호모 사피엔스에 이르기까지 외형과 능력의 변화는 드라마틱하게 이어진다. 앞선 학명들은 대표적으로 알려진 고인류만 언급한 것이고 전시에는 생소하지만 저마다 다른 특징을 가진 학명의 고인류들이 사이사이 끼어있다. 행진의 가장 끝에는 만달인이 서 있다. 유인원과 비슷한 외모의 투마이가 수백만 년의 세월을 지나며 오늘날의 인류와 닮은 만달인이 되었다. 만달인은 1만 년 전에 지금의 북한 평양 근교인 만달리에서 살았던 장년 남자다. 매우 드물게 발견되는 한반도 구석기 인골로 현대 한국인의 모습을 추적하게 한 귀한 사료다. 엄연하게 만달인이 마지막 주자는 아니다. 약 700만 년 행진의 끝에는 내가 서있으니까.


전시실 내에서는 고인류 모형 14점 외에도 사자, 얼룩말, 호랑이 등 실제 동물의 박제들과 매머드 뼈로 만든 집, 사냥과 의복 제조 방법, 원시 동물 등을 볼 수 있다. 쇼베, 알타미라 등 프랑스와 스페인 등에서 발견된 구석기 동굴벽화를 비슷하게 재현한 코너도 있다. 특히 빙하시대에 살았던 코끼리 매머드에 대해서 자세하게 다룬다. 거대한 덩치를 증명하는 매머드 뼈와 얼음 속에 묻혀 생존 때와 거의 비슷한 모습으로 발견된 새끼 매머드의 화석도 흥미롭다. 추위를 견디기 위한 털이 덥수룩한 대형 코끼리의 모습은 구석기시대 동굴벽화에도 그려져 있다. 매머드는 후기 구석기인들의 주요 사냥감이기도 했다. 그렇게나 큰 동물을 사냥하기 위해 여러 명이 협동해야 했고 필연적으로 사냥 도구가 발달했다. 사냥은 일종의 혁명이었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사냥을 당하는 처지였다면 진화한 호모 사피엔스는 최상위 포식자가 된 것이다.


앞으로 수십, 수백만 년 후 인간은 어떤 모습으로 달라져 있을까. 미래의 인류는 고도의 문명을 이룩했다고 자부하는 현 인류를 단지 ‘걷고 생각하는 털 없는 영장류’ 정도로 치부할까? 신체기능의 무엇이 도태되고 무엇이 살아남을까. 진화된 인류는 어떤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을까. 우리는 시작도 끝도 아닌 어느 중간 지점에서 잠시 스치듯 우주를 다녀간다.


글·사진 여행작가 유승혜

※ 본 글은 '경기그레이트북스' 시리즈 중 제33권 『50만 살의 청춘- 경기 북부로 떠나는 시간여행』, <연천군 : 오래된 미래>에서 발췌했습니다


세부정보

  • 전곡선사박물관

    주소/ 경기도 연천군 전곡읍 평화로 443번길 2

    관람료/ 무료

    운영시간/ 매주 화-일요일, 10:00-18:00 (월 휴관)

글쓴이
경기문화재단
자기소개
경기 문화예술의 모든 것, 경기문화재단
누리집
www.ggcf.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