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창생공간] 기다림을 통해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생활적정랩 빼꼼> - 2

발효하는 시간으로 사유하는 인문학적 가치들

공간으로서의 <생활적정랩 빼꼼>을 '창생공간'이라고 부른다. 창생공간은 만들기를 실천하는 시민과 작업자를 위한 열린 제작공간이다. 생산과 연구, 기록, 네트워크, 자립에 대해서 고민하는 물리적 공간이자 인적 네트워크망을 의미한다. 발효, 재활용, 천체관측, 재봉 등 생활 기술을 매개로 지역 문화를 만들어간다.


생활적정랩 빼꼼은 상탑로 골목에서 주민들과 만난다. 수원역에서 1.5킬로미터 반경(도보 10∼15분) 지역인 서둔동의 상탑로 골목은 서울대 농대(시초 1907년 농림학교, 서둔동)와 농촌진흥청을 기반으로 형성된 상업 지역이다. 두 시설이 2003년, 2014년 각각 서울 관악과 전북 완주로 이전하면서 골목은 활력을 잃었다.


최근 유휴부지던 서울 농대는 학교 건물을 리모델링하여 생활문화센터와 경기청년창작소 등 다양한 문화기반시설이 들어서고 있다. 이를 시작으로 향후 다양한 문화공간과 시설이 더욱 확충된다고 한다. 문화적 환경이 매우 취약한 동네에 이러한 변화들은 마땅히 많은 기대감을 갖게 한다. 서둔동을 비롯해 평동, 오목천, 고색, 호매실, 금호동, 구운동 등 서울대 농대와 가까운 지역은 물론이고 기존의 문화시설이 내보이지 못했던 생태적 환경과 한 장소에 집중되어 있는 문화인프라에 갈증을 느끼는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 될 수 있다.


다만 그런 문화적 풍경이 익숙지 않은 사람들에게 일상, 생활에서 문화나 예술이 교류되고 집적되기 위해서는 동네의 가게들과 이웃한 관계로서의 문화가 매우 중요하다. 서울대 농대와 관련된 주민들의 기억은 아주 구체적이다. 농대를 나왔다는 백발의 할아버지, 농대 학생들이 부르는 팝송을 농대 담장 너머에서 동경하며 들었던 앙카라 고아원(서둔동 벌터) 아이의 기억, 농대 교수들이 살았다는 지붕 낮은 양옥집 등은 농대 바깥의 농대의 또 다른 기억이고 현실이다. 커뮤니티스튜디오104는 서둔동의 이런 이야기들을 수집하고 기록하면서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가는 일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아무리 문화적이라고 해도 농대의 기억이 소비되지 않고 새로운 무언가의 바탕이 되는 것들 말이다.




‘식육판매모범업소’라는 간판을 떼지 않은 이 공간은 약 20여 년간 정육점이었다. 상탑로가 시장으로서의 매력을 잃게 되면서 정육점의 운은 어려워졌다. 우리가 이 공간을 발견했을 때, 상업적 기능이 쇠락한 상가 골목의 한쪽편이기는 했어도 작은 의원과 약국, 유치원, 문구점, 성당과 교회등과 인접한 동네 교차로에 자리 잡고 있어 주민들과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는 장소라고 생각했다.


10평 내외의 1층과 5평 내외의 지하 공간으로 분리되어 넓지 않은 것에 비해 활용도를 높일 수 있다. 공간의 모양도 좁은 땅의 모양에 따라 지어진 건물의 특성상 최근에 보기 힘든 비정형성 탓에 1층과 지하로 내려가는 복도, 삼각형의 지하공간이 의외의 흥미로움을 느끼게 한다. 임대료가 저렴할 것이라고 예상했던 것에 비해 보증금 500만 원에 월세 50만 원의 임대료를 감당하기에는 비싸다고 생각했지만 그 정도는 감수하자고 할 만큼 매력이 있었다. 


공간의 구성은 1층과 지하로 공간이 분리되어 있어 효율을 높일 수 있는데, 각각 최대 15명, 7명 내외(성인 기준)의 모임이나 워크숍이 가능한 규모로 요리나 조리, 스터디나 강좌, 각종 활동 등을 할 수 있다.




임시방편으로 행해지던 요리와 조리가 일상적으로, 편리하게 이뤄질 수 있는 일련의 주방시설이 필요하다는 것은 공간 조성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다. 요리대와 조리대, 개수대를 유기적으로 배치하였으며 온수 사용이 가능하도록 하였다. 크지 않은 공간이기 때문에 새로운 구조물을 들여오기보다는 인테리어 측면에서 공간의 톤을 바꿀 수 있는 디자인을 고려하였다. 페인팅과 나무를 활용한 마감과 공간의 주요한 기능인 조리대에는 작가주도의 작업을 했다. 그 결과 기성화된 것들과 차이를 보인다. 발효와 관련된 일이 대부분 주방을 통해 이뤄지기 때문에 주방의 편의성은 향후 발효를 중심으로 한 활동에서 꼭 개선되어야 할 부분이었고, 기대했던 바대로 진행되었다.




하지만 <빼꼼>은 단지 발효키친으로의 정체성에서 끝나지 않고, 발효를 통해 동네, 사람, 삶 등을 살피는 인문적 행위를 지향한다. 그렇기에 빼꼼의 활동을 발효와 관련된 제조행위에 국한하지 않는다. 또한 발효의 ‘전문성’을 지향하지도 않는다.


빼꼼을 통해 발효를 접한 이들이 개별적으로 또는 그룹으로 좀 더 심화된 발효활동을 하는 것은 지지하고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빼꼼>의 공간에서는 발효를 통해 생각해볼 수 있는 삶의 태도, 사회의 면면, 삶의 실천, 지성과 같은 것들을 이야기하고 기록, 공유하고자 한다. 그러한 이유로 ‘발효키친’이라는 컨셉이 자칫 일반적인 요리강좌나 조리실 등 좁은 범주로 이해되지 않기를 바랐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방기능과 함께 동일한 비중으로 다양한 문화적 활동, 생활연구나 공부, 모임 등이 이뤄질 수 있는 매개 기능도 필요했다. 이와 관련된 기본적인 도구인 책상(기존의 것을 사용), 의자 등과 책장의 설치로 자료를 공유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 외에 삶에서 필요한 추가적인 도구(재봉틀, 공구 등)를 마련하여 사람들이 소소하게 빼꼼을 경유할 수 있도록 하고, 빼꼼도 공간 안에서, 활동에서 필요한 크고 작은 도구들을 직접 제작하여 사용할 수 있도록 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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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경기상상캠퍼스

    자기소개/ 옛 서울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학 부지에 위치한 경기상상캠퍼스는 2016년 6월 생활문화와 청년문화가 함께 하는 복합문화공간으로 다시 문을 열었습니다. 울창한 숲과 산책로, 다양한 문화예술과 자연이 어우러진 경기상상캠퍼스는 미래를 실험하고 상상하는 모두의 캠퍼스라는 미션과 함께 새로운 문화휴식 공간으로 거듭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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