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집에 사는 예술가] 봉인된 언어

용인_손종준 작가의 작업실



1978년 인천에서 태어난 손종준 작가는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를 졸업한 후 일본으로 건너가 타마미술대학 대학원 미술연구과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2007년부터 매년 한국과 일본에서 개인전을 선보였고,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예술의 전당, 경기도미술관, 백남준아트센터, 동경 국립신미술관, 후쿠오카 아시아미술관, 뉴욕 PS35 갤러리 등 수십 회의 기획전에 초청받았다. 손종준 작가는 2012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 2013 홍은예술창작스튜디오, 2014 고양레지던시에서 입주 작가로 활동하는 한편, 2012 APT(Artist Pension Trust) 선정 작가, 2013 SeMA 선정 작가, 2014 현대자동차 Brilliant30 선정 작가로 지정되는 등 미술계 내외부로부터 각광받고 있다.



용인에 정착한 지 2년여가 되어 가는 손종준 작가는 혼자 쓰는 작업실에 적응 중이다. 유학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온 후 난지와 고양 등지에서 3년 연속으로 다른 작가들과 레지던시 생활을 한 까닭이다.


“어떻게 보면 대학 생활로 되돌아간 것 같았어요. 입주 작가들끼리 MT도 가고 교류도 많았고…… 아주 즐거웠던 시간이었어요. 작업이 잘 안 될 때 서로 힘이 되어 주기도 하고 근거리에 누군가 작업하고 있다는 생각에 위안이 되기도 하고요. 그런 시간이 수년 흐르자 다른 한편으로는 내 작업이 정체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어요. ‘아, 이대로는 안 되겠다.’라고 생각했을 즈음, 새로운 작업실을 물색하기 시작한 거죠.”


레지던시를 마치고 작업실을 알아보기 위해 작가는 서울 근교에서만 100군데가 넘는 곳을 찾아다녔다. 마침 서울 생활에도 염증을 느끼던 터라 서울보다 한층 느린 용인의 일상에 이끌렸다. 용인에서 처음으로 얻은 작업실을 뒤로하고 옮긴 지금의 작업실 주변은 전형적인 전원의 풍경을 지니고 있다. 비슷한 연령대의 입주 작가들과 함께 작업하며 정신없이 지나갔던 레지던시 이후 밀도 있는 개인 작업을 이루어 나가기에 현재의 작업실은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공간이다.



 



“미술을 시작한 게 고3 때니까 좀 늦은 편이죠. 원래는 사관학교에 가고 싶었어요. 누군가를 구하는 것에 대한 선망이 있었는데 사춘기가 뒤늦게 찾아오면서 조금 다른 저의 모습을 발견하게 됐어요. 스스로 복잡한 조립을 하면서 희열을 느꼈고, 손으로 뭔가 만드는 것에 재능이 있다는 걸 알게 된 거죠.”


미대에 진학한 후 3~4학년이 되어 스스로 어떤 작가가 되고 싶은지 자문하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부터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돕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은 예술 작업을 통해서 어떤 방식으로든 사회에 기여하고 싶다는 이상으로 발전했다. 작업과 사회적 고민을 연결시키기 위한 손종준 작가의 시도는 졸업과 동시에 일본 유학으로 이어졌다. 한국과 비슷한 것 같지만 깊이 들여다보면 다른 점이 많은 일본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작가는 무수히 많은 노력을 했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한국어 강사로, 때로는 대리운전 기사로 동분서주했다. 일본 사회 특유의 답답함 때문에 힘들기도 했고 크고 작은 차별을 겪기도 했지만, 유학 생활 동안 인생에서 중요한 순간을 많이 맞이했던 일본이 작가에게는 제2의 고향이나 다름없다.


“일본에서 겪은 미술 교육은 제가 한국에서 경험했던 것과는 굉장히 달랐어요. 한국의 선생님들은 대체로 엄격한 편이잖아요. 근데 일본 미대의 선생님은 학생도 마치 작가와 같이 여기고 동등하게 존중해 주는 분위기예요. 권위적인 부분이 적은 느낌이죠. 마치 선생님이 아니라 카운슬러 같다 할까요? 일본에서 고생도 많이 했지만, 알게 모르게 보고 배운 것도 많아서 편하게 느껴져요. 그래서 나 스스로 굳이 ‘한국 작가’라는 테두리 안에 가두기보다는 ‘아시아 작가’라고 생각하면서 작업하고 있어요.”



〈Defensive Measure 0030〉, 110×73㎝, Digital Print, 2007



최근까지 이어 오고 있는 〈Defensive Measure〉 연작이 탄생한 것도 작가가 일본에서 유학 생활을 하던 중이었다. 그가 유학생 신분으로 미술대학에 몸담고 있던 2004년 즈음 일본에서는 일명 히키코모리(引き籠もり)로 알려져 있는 은둔형 외톨이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었다. ‘틀어박히다.’라는 뜻을 가진 히키코모리가 일본 사회에서 늘어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후 작가는 이들에 대한 관심과 함께 사회적인 구조에 대해서도 고민하기 시작했다.


“물론 내 작업은 치료가 아닙니다. 대신 사회에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문제를 형상화하고 관객들에게 이런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보게끔 환기시키고 싶은 거죠. 내가 히키코모리란 개념을 접하고 난 뒤에 붙잡은 키워드는 콤플렉스였어요. 누구에게나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콤플렉스가 있고 그것이 어쩌면 사회로부터 숨고 싶은 마음을 만드는 게 아닐까 싶었어요.”



어렴풋한 아이디어로 시작한 〈Defensive Measure〉 연작은 손종준 작가가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한 작업을 거치면서 조금씩 구체화되었다. 작업을 위해 사회에서 소통 때문에 어려움을 겪거나 스스로를 사회로부터 차단하는 이들, 또는 내면의 상처로 인해 고통받는 이들을 찾아다녔다. 작가가 작업에 참여시키기 위해 접근했던 이들 가운데 작가의 의도를 오해한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작가가 자신을 대상화하려는 것이 아니라 내밀한 이야기에 귀 기울임으로써 그들이 잃어버렸을지 모르는 언어를 되찾아 주려 한다는 진정성이 전해지면서 작업에도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짧게는 이틀, 길게는 수개월 동안 교류하면서 작가는 이들로부터 받은 정신적 교류의 결과를 작품으로 표현했다. 작가와 함께 작업에 참여한 일반인들은 정교한 금속 작업으로 이루어진 투구와 갑옷 등의 오브제를 입고 사회 속 보이지 않는 벽에 대항했다. 이들이 상처받았던 사회적인 것들로부터 스스로를 지켜 낼 수 있는 방어 수단을 비로소 얻게 된 것이다.



                              〈Defensive Measure 2008-01〉, 165×210×60㎝, Aluminum, 2008



일반인들도 누구나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 Hero(여기서는 ‘리더’로서의 Hero 개념이 더욱 쉽게 통용되겠다.)적 역할성을 가지고 싶어 하며, 어떠한 기능적, 이미지적인 요소로 인해 자신이 영웅적 이미지로서, 타인 혹은 사회의 공격으로부터 이겨 낼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다-라고 하는 본 작품 테마는, 이러한 ‘Defensive Measure, 즉 자위적 조치가 모든 일반인에게도 필요할 것이며 통용이 가능할 것이다.’라는 개념을 역설적인 표현 양식을 통해 유도하는 효과가 있다고 본다.

다시 말해, 이러한 역설적 표현은 우리 눈에 보이는 분명한 사회적 소외 계층, 예를 들면 신체 및 정신적 장애인들이 그들의 장애를 극복하기 위해 발현해 내는 행동 양상, 그들이 상상하며 추구하고자 하는 보이지 않는 표상과 같은 개념의 ‘그 무언가’를 우리가 일반인이라고 말하는 모든 인간 또한, 각양각색으로 얻고자 하고 있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함이다. ‘그 무언가’는 여러 가지 의미를 내포하는데, 예를 들면 사회적 의미에서의 경제력, 정치력‘, 권력 등을 의미하며, 자신에게 부족하다고 느끼는 모든 것을 내포하며, 결국 자신을 감추려고 하거나 자신을 우월하게끔 느끼게 하는 것, 즉 ‘힘’을 의미한다. 이러한 광범위한 의미에서의 ‘힘’은 이 사회를 살아가는 데 있어서 사회가 요구하는 ‘사회성’을 구비하기 위한 원동력을 발생하게 하며, 그러한 ‘힘’은 다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의 성격을 가지게 된다. 본인의 ‘Defensive Measure’ 개념은 개인이 속한 사회에서의 Hero가 되기 위한 ‘힘’을 표현하는 포괄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 작가 노트 중에서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Defensive Measure〉는 작가가 타인과 세상을 향해 내보이는 이야기인 동시에 작가 자신 안에 내재되어 있는 소통의 힘을 확인하는 자전적인 작업의 일환으로도 생각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작가가 미술을 시작하기 이전 어렴풋하게나마 상상했던 자신의 모습과 사회를 구원할 수 있는 능력의 존재, 즉 ‘히어로’의 외형과 내면이 〈Defensive Measure〉를 통해 오버랩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업 과정은 녹록지 않았다. 스스로에게 힘을 불어넣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존재들과 나누었던 교감이 미끄러지면서 작업에 대한 확신이 희미해지기도 했다.




“2011년에서 2012년 사이에 〈Defensive Measure〉 작업에 의미 있는 사건이 하나 있었어요. 나 스스로도 이 작업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때였는데 모델이 되었던 한 참여자로부터 메일을 받게 되었어요. ‘처음에 자신을 이용하려는 느낌 때문에 (작업을) 거절했는데, 언뜻 차가운 느낌의 오브제를 착용하는 순간 말할 수 없는 따뜻함을 느꼈다.’는 내용이었죠. 당시에도 모델이 작품을 착용하고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는 과정을 사진으로 옮겼는데, 참여자가 직접 자신이 약자가 아니라 (작업에 참여함으로써) 보호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하니 ‘아,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의미 있는 거구나.’란 생각이 들었어요.”


〈Defensive Measure〉 이외에도 손종준 작가는 사이버네틱스를 주제로 한 영상 작업을 선보이는 동시에 〈Normadic Novaho〉에서 보여 준 적이 있는 무용수와의 컬래버레이션 작업을 새롭게 시도하고 있다. 말하는 법을 잊은 누군가에게 다시 언어를 찾아주는 그의 여정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글_강보라(독립기획자, 영상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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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옆집에 사는 예술가

    자기소개/ 사적이고 비밀스러운 창작공간이자 때로는 도전적이고 개방적인 실험의 장으로서 끊임없이 진화해 온 창조적인 장소, ‘예술가의 작업실’에 가 보신 적이 있나요? 《옆집에 사는 예술가》는 지역사회의 중요한 문화 자산인 ‘예술가의 작업실’에서 예술가의 일상을 공유하는 대중 프로그램을 통해 창작의 현장에서 치열하게 고민하고 활동해 온 경기지역 예술가들을 만나는 프로젝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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