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천 경기천년 기자단] 경기를 빛낸 인물, 윤관

천천천 경기천년 기자단은 2018년은 경기천년의 해를 맞아 천년을 이어온 경기도의 다양한 모습을 담고 미래의 꿈을 함께 공유하기 위해 경기도 내 거주자와 학생, 직장인들로 꾸려진 기자단입니다. 



2018년은 경기의 역사가 시작된 지 천년이 되는 해입니다. 고려 시대부터 시작된 ‘경기’의 역사 속에는 수많은 위인들의 흔적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 우리가 알지 못하는 위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오늘 알아볼 위인은 윤관장군입니다.


윤관 영정


본관은 파평(坡平)이며 자는 동현(同玄), 시호는 문숙(文肅)으로 태조를 도운 삼한공신(三韓功臣) 신달(莘達)의 고손이며 검교소부소감(檢校小俯少監)을 지낸 집형(執衡)의 아들입니다. 고려 문종(文宗)때 문과에 급제하였고 숙종 9년(1104)에 동북면행영병마도통(東北面行營兵馬都統)이 되어 국경을 침범하는 여진정벌에 나섰으나 여진의 강한 기병에 패하였지만, 임기응변으로 강화를 맺고 철수하였습니다. 그 후 특수부대인 별무반(別武班)을 창설 대원수(大元帥)가 되어 예종 2년(1107)부원수 오연총(吳延寵)과 함께 17만 대군을 이끌고 여진을 정벌하고 9성을 쌓아 국방을 수비하였습니다. 윤관은 문무(文武)를 겸한 공신으로 예종 6년(1111)에 돌아가자 인종 8년(1130) 예종의 묘정(廟廷)에 배향(配享)되었습니다.



별장지였던 상서대


향토유적 제11호 상서대 : 법원로 웅담천길 46


상서대(尙書臺)는 윤관 장군이 상서(尙書)란 벼슬에 있을 때 여가를 틈타 시문과 휴양을 즐기던 별장지입니다. 그 후 후손들이 여기서 학문을 닦던 유서가 깊은 자리로 묘소가 실전(失傳)된 파평 윤씨 후손들의 비단을 모신 추원단(追遠壇)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상서대가 위치하고 있는 웅담리(熊潭里)마을의 지명 유래에 관해 다음과 같은 일화가 전해집니다. 이곳 상서대에서 윤관 장군의 애첩 ‘웅단’이 전장에 나간 윤관 장군을 기다리다가 상서대 옆에 흐르던 개울의 못으로 몸을 던져 죽었습니다. 그 후 그 못은 웅단이 떨어져 죽었다고 하여 ‘웅담(熊潭)’ 또는 곰소, 곰시로 불렸습니다. 그리고 웅단이 몸을 던진 곳을 낙화암이라 하여 지금도 낙화암비(落花岩碑)가 세워져 있고 웅담이 있는 마을이라 웅담리가 되었습니다. 상서대는 별다른 건축물 없이 단지 장방형의 담장을 두르고 사주문(四柱門)을 세워 출입 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내부 중앙 우측으로 ‘파평윤공상서대(坡平尹公尙書臺)’라 쓰인 비와 그 뒤로 묘소가 실전된 파평윤씨 12위의 추원단이 일렬로 세워져 있습니다. 상서대 내부에는 윤관이 직접 심었다는 느티나무 두 그루가 자라고 있는데 임진왜란 때 병화로 타 죽었으나 그 자리에서 다시 새싹이 자라났다고 전해집니다. 현재 이 노거수 두 그루는 보호수로 지정되어있습니다.



여진정벌의 공을 세운 명장 윤관장군묘


사적 제 323호 윤관장군묘 :광탄면 혜음로 930


고려 예종(睿宗)때 여진정벌의 공을 세운 명장 윤관(?~1111)의 묘로 사적 제323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묘의 소재를 모르다가 1764년(영조 40)윤관의 구비파편(舊碑破片)이 발견된 후 영조가 봉분을 새로 조성하고 치제(致祭)하게 함으로써 윤관의 묘소임이 공인되었습니다. 묘역 규모는 크고 웅장하며 봉분과 석물이 단을 이루며 자리 잡고 있습니다. 봉분아래는 장대석 모양의 호석(護石)을 두르고 봉분 뒤로 담장을 둘러 아늑한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봉분정면에 상석(床石)이 놓여있으며 왼쪽에 묘비가 서있습니다. 한 계단 아래에 양쪽으로 망주석과 상석전면에 사각의 장명등이 세워져 있습니다. 윤관장군묘의 역사를 기록한 비석인 사적비와 윤관의 평생사적을 기록한 ‘고려문하시중 문숙공 윤관장군 신도비’가 거북이 등 위에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세워져 있습니다.


재실                                                                                                                          교자총, 전마총


윤관장군묘 주변에 있는 재실은 제사를 지내기 위해 지은 집으로 제사에 참석하는 사람들이 숙식하며 제사음식을 장만하고, 음복(飮福), 망제(望祭)를 하는 곳입니다. 묘역 입구 오른쪽에 나란히 두 개의 봉분이 보입니다. 둘 중 오른쪽 것은 장군을 태우고 전장을 누볐던 윤관장군의 애마를 사후에 부장한 것이고, 왼쪽 것은 윤관장군이 하사받은 교자를 사후에 부장한 것입니다. 타고 다니던 말과 가마의 무덤을 모두 만들었다는 게 참 신기하죠? 문무에 모두 능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여충사(영당)


윤관장군의 영정을 모셔놓고 제사를 드리는 사당입니다. 늠름한 영정에서 윤관장군의 기운을 느낄 수 있습니다. 윤관장군의 제사일은 음력 3월 10일이며, 이때 방문하면 윤관장군의 제사의식과 의례를 볼 수 있고, 파평 윤씨 후손의 역사 이야기를 들을 수 있습니다


충효관


회의실로도 이용할 수 있는 충효관은 지어진 지 4년밖에 되지 않은 곳인데 윤관장군과 묘에 대한 많은 정보와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곳입니다. 한걸음 더 가까이에서 윤관장군을 뵙는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올해는 경기도가 경기라 불리기 시작한지 천년을 맞이하는 해입니다. 경기천년을 맞이하여 경기도를 빛낸 인물로 윤관 장군에 대해 소개했는데 어떠셨나요? 저는 특히 ‘경기’라는 명칭이 붙여진 고려시대의 위인을 알아보게 되어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하지만 윤관장군처럼 우리가 잘 기억하지 못하는 위인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앞으로의 경기천년에 있어서 역사 속에 잠들어있는 모든 위인들이 존경을 받을 수 있는 미래가 되길 소망합니다. 이상으로 경기천년 기자단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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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수진

    • 자료출저/ 네이버 지식백과,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파주시청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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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경기문화재단

    자기소개/ 경기문화예술의 모든 것, 경기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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