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학가족] 독안룡으로 세상을 보다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심경호

독안룡으로 세상을 보다




심경호(59)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는 스스로 지은 별호가 ‘독안룡(獨眼龍)’이다. 서울대 재학 시절 서울 답십리에서 관악캠퍼스까지 두어 시간 통학버스에 흔들리며 책을 보던 습관 탓에 오른쪽 눈의 망막이 손상됐다. 그 뒤로 30년 넘게 왼쪽 눈에만 의지하면서도 두 눈으로 볼 수 없는 것까지 보자는 생각으로 살아왔다. 당나라의 맹장 이극용처럼 학문세계의 ‘독안룡’이 되겠다는 마음의 표현이다.

몇 년 전에는 뇌종양 수술을 두 차례 받고 오른쪽 귀가 안 들리기 시작했다. 다산 정약용이 자신에게 닥친 시련을 저술로 이겨냈듯이, 그는 이런 신체적 시련을 공부와 글쓰기로 이겨낸다. 단독 저서 30여 권, 번역서 40여 권이 그의 자부심이다. 1955년 충북 음성에서 태어나 서울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교토대 중국문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한문산문미학』 『한시의 세계』 『한국한문기초학사』 『다산과 춘천』 등을 펴냈다.

비가 흩뿌리는 여름 날 오후, 서울 안암로 고려대 구법학관 3층에 위치한 심경호 교수 연구실을 찾았다. 40권이 넘는 저술활동을 한 대학자의 연구실은 뭐가 달라도 달랐다. 들어가자마자 책으로 가득 찬, 마치 미로 같은 연구실이 펼쳐졌다. 필자가 심교수를 처음 만난 것은 1989년 한국학중앙연구원 대학원 학술답사에서였다. 30년이 흐른 지금, 자신의 연구를 설명하며 환하게 웃는 모습에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학자의 모습을 발견했다.





한문학을 공부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한문학에 처음부터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에요. 물론 어린 시절에 집에서 붓글씨도 쓰고 했지만 막스나 헤겔 등 독일 철학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러한 사고가 바탕이 되어 조선 양반들이 주인공인 한문학에 거부감이 있었습니다. 한문을 공부하기 시작한 것은 대학 2학년 때입니다. 김태준 선생이 한국한문학을 골동품으로 규정하고 『조선한문학사』를 집필했던 발상에 동조해 한문 공부는 한문학의 결산 보고서를 작성하는 수단일 뿐이라 생각하면서 시작했습니다. 말하자면 우리 문학을 정리할 생각으로 한문학을 접했을 뿐입니다. 한시를 알아야 한문학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한시 공부를 했지요. 대학 졸업 논문으로 익재 이제현을 연구하면서 한문학을 본격적으로 하게 되었는데, 서양철학의 개념과 방법론이 맹자에서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한문학은 글자 하나하나에 문화가 담긴 것이라 매우 어려운 학문세계입니다. 지도교수의 권유로 일본 교토대에 유학하였고 여기서 ‘고증학’을 본격적으로 연구하였습니다. 이후 고증학을 한 다산과 추사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습니다.




다산의 북한강 기행을 따라 직접 답사도 하시고 책도 쓰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사실 저는 “다산”이라는 호 보다는 “정약용”이라는 이름을 주로 사용합니다. 다산은 강진이라는 공간에 한정된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20여 년 전 일입니다. 당시 정약용이 춘천을 여행한 사실을 알고는 그가 거쳤을 곳을 하나하나 지도에서 확인하고 찾아가보는 일에 흥미를 느꼈습니다. 제대로 연구해 보겠다는 생각에 근무지를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강원대학교로 옮기고 정약용에 대해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지금은 많이 변하여 당시 정약용이 마현의 소내 앞에서 배를 타고 북한강을 거슬러 춘천의 소양정 아래에 이르기까지 240리 36탄의 여울을 하나하나 헤아렸던 그 여행의 깊이를 도저히 체험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의 여행 경로를 여러 차례 따라 가보기도 하면서 정약용의 춘천 여행이 지닌 정신사적 의미에 대해 내 나름대로 해석을 하였습니다. 누가 말했던가, ‘떠나면서 묻는다’라고. 『다산과 춘천』(강원대 출판부, 1996)이란 나의 책은 춘천으로 근무지를 옮긴 뒤에야 펴낼 수 있었습니다.

한문학의 정수는 한시에 있지요. 지금 1400편에서 1800편 가량되는 정약용의 시를 모두 번역하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모두 완성되면 책으로 펴낼 생각입니다. 정약용의 시는 연대순으로 정리되어 있습니다. 시를 통해 그의 생각과 감정이 나이 들어가며 어떻게 변화하는지 잘 느낄 수 있습니다. 일생에서 노년의 시기는 여러 면에서 젊을 때와는 다를 것입니다.




정약용의 실학 정신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요.

정약용의 학문적 특징을 저는 “3M”이라 정의하고 싶어요. 저의 학문 철학이기도 합니다. 3M은 Mind, Method, Map입니다. 저는 늘 과거의 한 인간 또는 구체적인 저작물을 연구할 때 3M이 어떻게 나타나는가에 대해 탐구합니다. 특히 Method와 Map을 중요시합니다. 정약용이 공부를 한 것은 현실의 부조리를 개선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한 Mind로 공부를 한 것이지요. 사람이 어떤 마인드를 가지며 사느냐는 너무 중요합니다. Method는 과거에 어떤 생각을 가지고 전통적인 학문체계를 세웠는지, 이를 어떻게 실천에 연결시켰는지를 연구하는 것입니다. 실학에서의 Method는 곧 기성관념에 사로잡히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이 곧 실학의 정신이기도 하구요. Map은 생산물들이 당대 사회 및 학문 전체와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어떤 면에서 유효했는가 또는 왜 실패했는가에 대한 종합적인 탐구를 하는 것입니다. 정약용은 잘못된 관념과 인식을 바로 잡고 올바른 개념을 통해 학문 지형 즉 Map을 그려나간 인물입니다. 정약용을 박학한 인물로만 알고 있는데 그 박학(博學)도 공부의 지형도를 넓혀갔기 때문에 도달한 것입니다.

정약용은 “학(學)”의 개념을 주자와 다르게 정의 하였습니다. 주자는 “배움[學]과 가르치는 것[斅], 본받는 것[效]”을 같은 것으로 보았습니다. 선각자는 후각자를 깨우쳐 주는 것(先覺覺後覺)이지요. 주자와 달리 정약용은 선배나 선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올바른 개념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정약용은 “학(學)이란 잘못된 것을 깨닫는 것[覺非]이다”고 정의했습니다. 남이 얘기한 것이 아니라 자기 생각을 말할 수 있는 게 중요한 것입니다.




정약용 못지않게 많은 저술을 쓰셨는데, 다작의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인문학자는 많은 논저가 필요 없다는 통념은 잘못된 것입니다. 한 번의 일격을 가해서 완성된 체계를 낼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완성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자기의 학설을 내세움으로써 비판을 감내해야 합니다. 그런 과정에서 자신만의 학문체계를 형성해 나갈 수 있습니다. 이는 제 나름대로의 학습방법입니다.



실학박물관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전시를 예로 든다면, 전시 유물을 나열만 하는 것은 의미 없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 안에서 끄집어 오는 지식, 즉 주머니 속에 든 것을 끄집어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연구”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러한 Mind 안에서 좋은 기획이 나오겠지요. 예컨대 정약용의 과거시험 답안지를 전시한다면 그 속에서 그가 무엇을 고민했는가를 찾아보는, 말하자면 새롭고 구체적인 스토리텔링이 들어간 전시를 해야 합니다. 또 정약용이 자녀들에게 읽어보라고 했던 책들이 무엇이었는지 그러한 것도 재밌는 전시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실학박물관은 아울러 더욱 다양한 실학 관련 주제들을 개발해야 됩니다. 지식인들은 여러 제안들을 해야 합니다. 제안은 곧 비판에서 출발합니다. 정약용은 제안을 한 사람입니다. 그의 많은 저술에는 제안이 담겨있습니다. 학문은 곧 제안입니다. 현재 있는 위치에서 우리들은 사회에 기여를 해야 하고 지식을 환원해야 합니다.




학문이란 올바름과 진리를 구하는 이른바 ‘구시(求是)’를 실천하는 것이다. 그것이 또한 우리가 고전(古典)을 공부하는 이유일 것이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다산 정약용이야말로 ‘실사구시(實事求是)’를 실천한 인물이었음을 다시금 깨달았다. 또한 그러한 면을 심경호 교수에게서 발견할 수 있었던 귀중한 시간이었다.




심경호 교수

서울대에서 국어국문학 학·석사, 교토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9년부터 모교 한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한문고전연구의 엄밀한 방법론을 수립한 학자로 평가받는다. 2006년 제1회 인문사회 분야 우수학자로 선정, 2012년 《한국한문기초학사》가 대한민국학술원 우수학술도서로 지정됐다. 40여 종의 학술저서를 저술하고, 40여 종에 이르는 주요 한문고전 및 해외의 주요 한국학 연구서를 번역하였으며, 현재까지 200여 편에 이르는 학술논문을 발표하였다. 특히 조선 양명학파인 강화학파 연구에 매진하여 이 방면의 연구를 선도하고 있다. 이와 함께 다수의 전문 교양서적을 저술하여 한문고전학의 저변 확대에도 크게 기여하였다. 일본 메이지대학 문학부 객원교수(2011년, 2014년),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 대학(UBC) 한문워크숍 초빙강사(2013년, 2014년)를 역임하여 해외의 소장 연구자들을 지도하였다. 2016년에는‘Oxford Handbook of Literature’의 한국한문학 부분 공저자로 참여하고, 일본 게이오(慶應)대학과 대만 중앙연구원에서 강연을 하여 한국 한문학을 해외에 소개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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