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문화재 : 육구삼+] 이원익 계자손서 李元翼 戒子孫書

경기도유형문화재 제232호




<이원익 계자손서>는 이원익李元翼(1547~1634)이 자손에게 친필로 써서 준 훈계서로 2장이 전해진다. 한 장은 ‘동호초당東湖草堂에서 아들과 손자 및 후손에게 내린 훈계서’이고, 다른 하나는 ‘연풍현감延豊縣監으로 부임하는 손자 수약守約에게 써 준 훈계서’이다. ‘동호초당에서 아들과 손자 및 후손에게 내린 훈계서’는 1599년(선조32) 이원익이 53세에 영의정을 사임하고 판중추判中樞에 임명되어 동호초당에 기거하던 때에 자손들에게 써준 훈계서이다.


 

연풍현감으로 부임하는 손자 수약에게 써 준 훈계서, 2016 ©경기문화재연구원


그가 생전에 중시 여겼던 풍수설에 구애 받지 말고 선산에 묘를 쓸 것과 형제간 재물을 탐하지 말고 화목하게 지낼 것을 강조한 내용으로 일부 내용은 이원익이 84세에 쓴 유서에도 포함되어 있다. 따로 제목은 없으나 『오리선생문집梧里先生文集』 보유편補遺篇에 실린 같은 글의 제목은 ‘서시자손書示子孫’이다.


동호초당에서 아들과 손자 및 후손에게 내린 훈계서, 2016 ©경기문화재연구원


‘연풍현감延豊縣監으로 부임하는 손자 수약에게 써 준 훈계서’는 손자 수약이 연풍(지금의 충북 괴산)에 현감으로 부임하게 되자, 목민관牧民官으로서 백성을 다스릴 때 유념해야 할 덕목을 당부하는 글이다. 과거 여러 차례 지방관으로 부임하였던 이원익이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깨달은 이치들을 소상히 적었다. 이원익의 백성을 위하는 마음과 현명한 목민관이 되기 위한 마음가짐이 담겨있어 지금까지도 귀감이 되는 글이다. 연기年紀가 없이 본문만 기록되어 있으나 『오리선생문집』 보유편에 이 글이 ‘서여손수약부연풍현書與孫守約赴延豐縣’이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고, 작은 글자로 무진戊辰이라는 주를 달고 있어서 1628년(인조6) 이원익이 82세에 벼슬에서 물러나 있을 때에 쓴 것임을 알 수 있다.

이원익이 자손들에게 친필로 써서 준 훈계서는 조선중기 사대부 가문의 가풍家風을 보여주는 것이며, 조선시대 청백리 정신을 이해하는 기본 사료로서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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