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다순

경기문화재단

남한산성 소주 보유자 강석필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13호


『경기도무형문화재총람』은 경기문화재단 경기학연구센터에서 발행한 경기도 지정 무형문화재 종합 안내서입니다. 기능보유자와 예능보유자 66명의 삶을 조망하고 보유 종목에 대한 소개와 다양한 단체에서 제공한 진귀한 사진 등으로 구성된 『경기도무형문화재총람』은 경기도 무형문화재의 길라잡이가 되어 경기도 무형문화재의 가치를 현양하고, 도민이 아끼고 즐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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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료혼합하는 강석필 보유자


남한산성소주는 가정에서 건강주로 만들어 먹던 것이 널리 알려지면서 제사 때 조상에게 바치는 제사 술로 사용되었으며, 귀한 손님 대접이나 선물로 쓰이면서 그 맛과 향취가 각지로 소문나게 되었다.


남한산성을 축조한 조선 제14대 선조(1567~1608) 때부터 빚어지기 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그 후 임금께도 진상되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독특한 재료와 비법을 사용해 죽엽색의 아름다운 빛깔과 벌꿀에서 느낄 수 있는 그윽한 향취를 자아낸다. 처음 내린 술은 85도 이상이고, 후의 것은 점차 주정도가 낮아지므로 이를 섞어 40도가 되도록 조절하며, 높은 알코올 함량에도 숙취가 없고 장기 숙성을 통해 뛰어난 맛과 향을 자랑한다. 남한산성을 중심으로 경기도 일대에서 즐겨 마셨던 이양법의 순곡증류주로 재래식 조청을 술밑에 사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일제침략으로 남한산성에 살던 사람들과 행정기관이 모두 광주로 이전되고 한국전쟁의 포화속에서 산성은 페허가 되고 만다. 그러나 일제시대부터 소주를 빚어오던 이종숙은 페허가 된 남한산성을 피해 송파동에서 송파양 조장을 경영하며 백제소주라는 이름으로 소주를 제조하였다. 그리고 그 기술은 강석필의 부친에게 전해졌고 지금은 강석필이 광주의 곤지암에서 소주의 명맥을 잇고 있다.


요즘 술 선전에서 빠지지 않는 문구중의 하나가 맑은 물을 사용한다는 내용이다. 술의 대부분을 이루는 물은 술에서 그만큼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예로부터 남한산성은 물이 풍부하고 수질이 좋아 지하수를 그대로 양조 용수로 사용했다고 한다. 지금 빚는 소주도 팔당 상수원인 청정지역 경기도 광주에서 제조하고 있다.



고두밥짓기


재래종밀을 누룩 원료로 사용하니 남한산성 소주야 말로 신토불이 술이라 칭해도 될 것이다. 특히 산성소주는 술을 빚을 때 재래식 조청을 사용한 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조청은 산성소주의 특수한 주질을 발현시킬 뿐만 아니라 술의 저장성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 술 먹는 사람들의 최대 고민거리는 다음날 머리를 후벼파는 듯한 숙취이다. 엿은 여기에도 효능을 발휘하여 숙취를 없게 한다.


술은 그 재료도 중요하지만 어떤 방법으로 어떻게 빚느냐에 따라 그 맛이 달라진다. 백미의 고두밥과 누룩가루, 엿물, 양조 용수로 밑술를 만드는 과정이나 술덧을 담그고 숙성시키는 방법은 모두 전래의 비법을 따른 것이다.


산성 소주는 증류주라는 또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술덧을 담금하여 주 발효와 후발효가 끝나면 술덧을 저온 숙성 후 증류하게 된다. 증류가 끝났다고 해서 산성 소주가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산성 소주는 별도의 소주 저장용 술독에서 숙성이라는 기간을 거쳐야만 비로소 세상 구경을 할 수 있게 된다.


산성 소주는 담백한 술맛과 은은하고 그윽한 술의 향취가 배어 나오는 일품의 맛을 지녔다. 이것은 최상의 품질을 지닌 국내산 쌀로 전통적인 기법으로 만드는 누룩과 양질의 용수가 조화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인간의 역사와 함께 해 온 술, 그러나 술은 잘 먹으면 약이 되지만 잘못 먹으면 독이 된다. 숱한 사회문제를 일으키는 원인중의 하나도 바로 술 때문이다. 술을 마심에 있어서 즐기되 경계하는 마음을 잃지 않는다면 산성소주 의 참맛을 알게 될 것이다.



집집마다 김치를 담가 먹듯 술을 빚어 먹던 때가 있었다. 손맛도, 물맛도 제각각이었을 테니 고개 하나 넘으면 술맛이 달라졌다는 말이 과장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런 가양주의 전통은 일제강점기에 주세법이 시행되면서 흔들리기 시작했다


술을 빚으려면 면허를 내고 세금을 납부해야 했으니 버틸 재간이 없었다. 1934년 자가용 술 제조 면허제가 아예 없어져 집에서 빚은 모든 술이 밀주(密酒)가 되었고, 1965년 양곡관리법에 따라 쌀로 술 빚는 것이 금지되자 쌀이 주원료인 전통주는 거의 맥이 끊긴다. 1990년 민속주 제조 허가와 함께 가까스로 몇 종류가 기사회생했는데, 이때 살아난 술이 잘 알려진 안동소주, 이강주, 문배주다. 하지만 전국 방방곡곡에서 이름을 날리던 명주가 어디 이뿐이랴.


삼국시대 이래 역사상 전략적 요충지였던 남한산성에는 조선 선조 때부터 빚어 먹었다는 ‘남한산성소주’가 400년째 이어져 내려온다. 그 맛과 향을 재현해 세상에 내보낸 사람은 경기도 광주의 강석필 옹이다. 남한산성에서 대대로 술을 빚어온 이종숙이라는 이가 술도가를 그만두면서 강석필 옹의 부친(1981년 작고)에게 비법을 전수했고, 강석필 옹이 아버지에게 배운 제조법을 재현해 1994년 경기도 무형문화재 13호(남한산성소주 제조기능)로 지정 되었다.




남한산성소주는 알코올 도수 40도의 증류주다. 요즘 우리가 마시는 소주가 농축된 증류액에 물과 감미료, 향신료를 섞은 희석식 소주인 데 반해 전통 소주는 순수하게 곡물로 만들었다. 화학 성분이 섞이지 않아 알코올 도수가 높아도 숙취가 없고 깔끔한 것이 특징이다. 남한산성소주에는 쌀과 누룩, 물 이외에 독특한 재료가 한 가지 더 들어간다. 재래식으로 고은 조청이다. 조청이 독특한 맛과 그윽한 향을 더하고, 저장성도 높인다. 누룩을 빚을 때 한 번, 백미를 쪄서 식힌 지에밥에 누룩과 물을 섞어 밑술을 만들 때 또 한번, 덧술을 빚을 때 한 번 더 들어간다. 


이렇게 두 번 빚어 발효시킨 술은 맑게 떠내면 약주, 탁하게 걸러내면 탁주가 된다. 소주는 발효주인 약주나 탁주와 달리 증류 과정을 거친다. 전통적인 방법은 소줏고리를 사용하는 것이다. 원 액을 소줏고리에 넣고 불을 지피면 증발해 위로 올라가는데, 소줏고리 맨 위의 냉각수 그릇에 닿아 식으면서 이슬처럼 맺힌 원액을 받은 것이 소주다. 요즘은 소줏고리 대신 현대화된 기계를 쓰는데, 온도를 균일하게 맞추고 완벽한 진공상태를 유지할 수 있어 맛이 더 좋다고 한다.



전수조교 강한구


현재 남한산성소주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아들 강환구 씨가 운영한다. 전통주가 아무리 좋아도 누구나 쉽게 접하고 즐겨 마시지 못하면 소용없는 일. 사명감만으로 전통을 이어가기에 어려움이 많은 것 또한 사실이다. 강환구 씨는 남한산성소주를 알리기 위한 노력과 함께 탁주 생산에도 공을 들인다. 2010년 인기리에 방영된 드라마 〈신데렐라 언니〉의 배경에 등장한 ‘참살이탁주’가 그의 작품이다.




지금은 ‘참살이막걸리’로 제품명을 바꾸어 생산 중이다. 100% 국내산 친환경 무농약 쌀로 만들어 지역 농가에 큰 도움이 되며, 일본과 미국(뉴욕) 등에 수출되어 좋은 반응을 얻었다. 참살이막걸리는 대형 마트에서 쉽게 구입할 수 있지만, 남한산성소주 맛이 궁금하다면 남한산성 행궁 앞 기념품 판매점을 찾아야 한다. 



* 영상자료 : https://youtu.be/iZgd2iMgExg

* 출저 : 경기학연구센터(http://cfgs.ggcf.kr/)>센터자료>영상자료 '물에 담은 불'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13호 남한산성소주


지정일1994.12.24
보유자강석필(1937년생)
전수조교강환구
정보

남한산성소주(https://www.sansungsoju.com/shop)

특기사항남한산성소주문화원 운영


세부정보

  • 경기도 무형문화재 총람

    발행처/ 경기도문화재단 경기학연구센터

    문의/ 031-231-8576(경기학연구센터 담당 김성태)

    발행일/ 20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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