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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화재단

경기천년과 고려 (2)

경기 천년의 과제 & 고려 견국의 의미

이 글은 경기도의 역사와 문화유산 교육프로그램 <2018 경기문화유산학교>의 강의 내용을 정리한 글 입니다.

박종기(국민대학교 명예교수)


3. 경기 천년의 과제


경기 천년을 맞이해 경기의 현재와 미래를 어떻게 성찰해야 할까? 경기가 지향해야 할 비전은 무엇일까? 천년 경기의 비전은 고려시기 경기의 위상과 관련시켜 설정할 필요가 있다. 고려의 경기가 왕조의 정치엘리트 충원 다양한 문화, 군사, 경제의 중심지 역할을 수행했듯이, 현재의 경기도는 대한민국의 새로운 중심지로서의 위상을 정립하는 비전이 필요하다.


첫째, 2015년 경기연구원의 「미래비전 원탁회의 보고서」에 따르면, 경기도민을 상대로 경기도의 이미지를 조사한 결과, 수도권, 다양성, 위성도시 등을 주요 이미지로 들었다. 다음 경기의 특색과 장점으로 수도권(37%), 넓은 면적(13%), 도농복합(11%), 북한, 중국과 인접(6%), 풍부한 인적 물적 인프라(6%), 다양성(6%)을 들었다. 가장 빈도가 높은 경기도의 이미지와 특색은 수도권(위성도시)이다. 현재 경기도에 소속된 31개 시군은 경제, 교통, 의료, 산업생산의 여러 측면에서 비대해진 수도 서울과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있다. 그러나 두 지역이 상호 보완과 상생의 관계가 아니라, 자칫 경기도가 서울의 위성도시 내지 베드타운으로 전락할 위험성이 크다. 경기도는 수도 서울과 차별되는 새로운 비전과 위상 정립을 해야 하는 과제가 요구된다. 한편 위 보고서에서 수도권 다음으로 많이 언급된 개념이 다양성이다. 다양성 속에는 도농 복합도시, 풍부한 산업과 관광 인프라 등도 포함할 수 있다. 이러한 다양성을 어떻게 통합하여 경기도의 정체성과 비전을 확립하느냐 하는 것도 천년 경기의 또 다른 과제이다.


둘째, 천 년 전 경기지역은 상감청자, 인쇄술, 고려지, 나전칠기 등의 제작에 동아시아 세계의 호평을 받은 첨단기술을 발전시킨, 고려 전기 문화와 기술의 중심지였다. 경기도 홈페이지(http://www.gg.go.kr/ggsymbol-brand)에 따르면 경기도의 슬로건은 ‘세계 속의 경기도(Global Inspiration)’이다. ‘첨단 지식과 기술’, ‘창조적인 생각과 행동’을 핵심 전략개념으로 들고 있다. 이러한 전략을 새롭게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실제로 경기도는 성남의 판교 테크노밸리, 수원과 파주의 삼성과 LG 전자단지, 이천의 반도체 등 4차 산업혁명의 기반 산업시설이 자리 잡고 있는 첨단 융합기술의 중심지이다. 경기도 주변은 항공, 항만 시설 등 첨단제품을 세계로 운송할 수 있는 물류시스템이 잘 갖추어져 있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키우는 핵심지역이 경기도이다. 이 같은 특성은 다른 지자체와 차별성을 갖는 경기도의 장점이다. 경기 천년의 미래 비전은 천 년 전 고려와 같은 수준의 첨단 융합기술의 발전 전략을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수립하는 일이다.


셋째, 경기도는 넓은 지역이 북한지역과 접경을 이루고 있다. 따라서 남과 북의 긴장과 대결 상황은 경기도에 커다란 위협이 된다. 남과 북의 화해와 평화는 경기도가 당면한 과제이며, 경기도는 그간 많은 노력을 기울어 왔고 앞으로 기여해야 할 역할도 매우 크다. 한편 한반도에 실질적인 통일국가를 수립한 고려의 역사와 경기 천년의 역사를 성찰하는 것도 남북 화해와 평화를 모색하는 하나의 방안이 될 것이다. 경기도는 좀 더 전향적인 자세로 남북 화해와 평화에 주도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미래 전략을 세우는 일이 경기 천년의 새로운 과제가 될 것이다.





4. 고려 건국의 의미


고려왕조는 통일신라 이후 두 번째로 한반도에 통일국가를 세운 왕조이다. 한반도 첫 통일국가는 668년 삼국을 통일한 신라왕조였다. 그러나 892년과 901년 각각 견훤과 궁예가 국가를 세우면서, 첫 통일국가는 약 220년 만에 사실상 붕괴되고 다시 한반도는 후삼국시대로 분열된다. 최초 통일왕조 신라는 진골귀족 중심의 폐쇄적인 정치로 옛 고구려와 백제의 풍부한 인적 문화적 자원을 배제하여, 통일 후 백년이 지나지 않아 심각한 분열과 갈등을 겪기 시작한다. 후백제 건국 이후 약 50년간의 후삼국 통합 전쟁은 통일국가 수립에 실패한 역사의 참혹한 대가였다. 고려의 후삼국 통합으로, 70년 전 분단되기 전까지, 한반도에 약 천 년 간 통일국가가 유지되었다.


해방 이후 통일국가 수립의 실패와 분단이 결과적으로 북한의 핵무장론과 한반도 전쟁 불사론이 어지럽게 교차하는 오늘의 어려운 상황을 빚게 한 원인을 제공한 점에서 고려왕조의 후삼국 통합은 그 의미가 매우 크다. 고려왕조는 신라와는 다른 역사적 경로를 밟으면서 한반도를 통일했고, 통일 후에도 다른 방식으로 왕조가 운영되었다. 조선의 패망까지 한반도에 천년의 통일국가를 유지한 저력은 고려왕조가 이룩한 개방과 역동, 통합과 포용의 전통이다. 이 전통은 현재 대한민국이 지니고 있는 덕목이자, 더 발전시켜 우리 후손들이 누리게 해야 할 시대 과제이다.


고려왕조가 이룩한 이러한 전통의 힘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태조 왕건은 소왕국의 군주와 같은 호족세력의 자율성을 인정하고 그들의 협조로 새 왕조를 건국했다. 분열된 지역과 민심을 통합하려는 노력이 지방 세력과 타협과 공존의 포용정책을 통해 전쟁의 후유증을 극복할 수 있었다. 타협과 공존에 기초한 포용과 통합은 진골귀족이 독점한 승자 독식의 통일신라 방식에 대한 반성에서 나온 것이다. 고려시대에는 불교, 유교, 도교, 풍수지리 등 다양한 사상이 충돌하지 않고 공존했다. 문화에서 청자, 금속활자 등 세련미의 중앙문화와 철불, 석불 등 역동성의 지방문화가 함께 어울려 찬란한 문화의 꽃을 활짝 피웠다. 옛 삼국의 다양한 사상과 문화를 포용하고 통합해 나간 저력이 통일왕조를 건국하고 이후 천 년 간 유지할 수 있었다.


대외무역 장려 등 적극적 개방정책은 ‘코리아’라는 호칭으로 한반도를 서방세계에 처음 알리게 했다. 왕조에 필요한 인재는 국적과 종족을 가리지 않고 관료로 등용했다. 외국인이 재상이 된 경우는 고려왕조가 유일하다. 개방의 힘과 효과를 믿었던 것이다. 우리 역사에서 하층민의 신분상승과 정치진출이 역시 가장 활발했던 때가 고려왕조였을 정도로 사회는 역동적이었다.


고려왕조 원형질이자 DNA인 개방과 역동, 통합과 포용의 다원사회 전통은 현재와 미래 대한민국의 훌륭한 자산이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인류사의 전환기에 대한민국이 비교적 성공적으로 진입하고 있음은 개방과 역동의 고려 역사전통을 현재의 대한민국이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후삼국 통합전쟁이 빚어낸 분열과 대립을 극복해 사회통합을 이룬 고려의 포용과 통합 정책은 미래 한반도 통일의 반면교사가 될 것이다. 


2018년 8월 29일에 진행된 <2018 경기문화유산학교> 강연 모습



세부정보

  • 2018 경기문화유산학교

    발행일/ 2018.8.13

    기획/ 경기문화재단 경기문화재연구원

    편집/ 경기문화재단 경기문화재연구원

    발행처/ 경기문화재단 경기문화재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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