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문화재 : 육구삼+] 송석 최명창 묘역 松石 崔命昌 墓域

경기도기념물 제178호




조선전기의 문신으로 중종 대 청백리淸白吏에 선정된 최명창崔命昌(1466~1536)의 묘이다. 최명창은 개성최씨開城崔氏이며, 호는 송석거사松石居士이다. 1489년(성종20)에 진사, 1504년(연산군10)에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승문원부정자가 되고, 그 뒤 성균관전적·응교를 역임하였다. 1519년에 예조판서를 거쳐 뒤에 황해도관찰사를 지낸 뒤 전주부윤과 원주목사가 되었다. 관직에 있었을 때는 소신껏 건의하여 많이 채택되었으며, 병이 깊어지자 아들을 불러놓고 검소한 장례를 당부하였고, 항상 집이 누추하여 친구의 방을 빌려 기거하였다고 한다. 이후 그는 중종 때 청백리淸白吏에 선정되었다.



송석 최명창 묘 전경, 2015 ©경기문화재연구원


묘역의 봉분은 쌍분雙墳으로 부인 단양우씨丹陽禹氏와의 합장묘合葬墓이다. 석물로는 묘비 2기·상석 3기·동자석 2기·문인석 2기·향로석 1기 및 계체석 등이 있다. 그리고 묘역의 좌측 30m 아래에는 신도비 1기가 세워져 있다.

쌍분 앞에는 각각 1기의 묘비가 세워져 있는데 신도비문에 의하면 1520년(중종15)에 졸卒한 부인의 묘에 1537년(중종32)에 쌍분으로 합장하면서 2기의 묘비를 함께 건립한 것이다. 따라서 묘표의 재질이 같고, 규모 및 형태도 비슷하나 관석의 문양에 있어서 아주 독특한 특징이 발견되고 있다.


송석 최명창 묘비(좌)·(우), 2015 ©경기문화재연구원


송석 최명창 묘 동자석, 2015 ©경기문화재연구원


관석의 전면은 모두 유운문流雲紋 속에서 한 마리의 이무기가 여의주를 물고자하는 형상을 생동감 있게 표현하고 있다. 반면 관석의 후면은 최명창의 묘비의 경우 유운문에 해를 조각하였고, 단양우씨의 묘비는 유운문 속에 그믐달을 조각하여 놓음으로써 남편과 부인의 묘표에 양陽과 음陰을 묘사하여 놓은 것이다.



송석 최명창 신도비, 2015 ©경기문화재연구원


신도비는 묘역의 좌측 아래에 배치되어 있는데 옥개석屋蓋石·비신碑身·기대基臺·대좌臺座로 구성되어 있다. 비문은 김안국金安國이 찬撰하고, 김노金魯가 글을 썼으며, 임필형任弼亨이 전액篆額을 써서 1537년(중종32)에 건립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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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화 @김다혜

    • 시대/ 조선시대

      규모/ 일원

      / 쌍분, 묘비 2기, 혼유석 1기, 상석 3기, 향로석 1기, 동자석 1쌍, 문인석 1쌍, 계체석, 신도비 1기

      주소/ 양주시 덕계동 산64

      지정일/ 2002.04.08

      소유자/ 개성최씨 참판공파 종중

      관리자/ 개성최씨 참판공파 종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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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경기문화재단

    자기소개/ 경기 문화예술의 모든 것, 경기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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