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문화재 : 육구삼+] 청주한씨 문정공파 묘역 신도비 淸州韓氏 文靖公派 墓域 神道碑

경기도문화재자료 제84호




<청주한씨 문정공파 묘역 신도비>는 문정공 한계희文靖公韓繼禧(1423~1482)와 그의 아들 한사문韓斯文(1446~1507), 한사개韓士介(1453~1521)의 신도비神道碑 2기와 묘갈墓碣 1기이다.

한계희는 조선 초 기내훈구파畿內勳舊派에 속하는 유학자로 시호는 문정文靖이다. 우승지·좌승지·공조참판·이조참판·이조판서·좌찬성을 역임하였고 특히 세조의 신임을 받았다. 최항 등과 함께 『경국대전經國大典』 편찬에 참여하였으며 1477년(성종8) 『의방유취醫方類聚』 간행을 주관하였다. 그는 아들 여섯을 두었는데, 그 중 한사문은 대사헌·병조참판·공조참판·공조판서·함경도관찰사 등을 역임하였고, 아버지의 봉작을 물려받아 서천군西川君에 봉해졌다. 또 중종반정에 공을 세워 분의정국공신奮義靖國功臣 4등에 책록되었다. 한사개는 영흥부사와 해주·광주·진주 등의 목사牧使를 역임하였다.



청주한씨 문정공파 묘역, 2016 ©경기문화재연구원


한계희 신도비의 건립 연대는 1483년(성종14)으로 비문은 서거정徐居正(1420~1488)이 찬撰하고, 안침安琛(1445~1515)이 글씨를 썼다. 신도비는 조선 초의 전형적 양식인 연수방부蓮首方趺의 형태이다. 연수蓮首와 비신碑身은 하나의 화강편마암으로 되어 있다. 




청주한씨 문정공파 묘역 한계희 신도비, 2017 ©경기문화재연구원


한사문 신도비의 건립 연대는 1508년(중종3)이며, 신용개申用漑(1463~1519)가 찬撰하고, 글씨와 전액篆額을 쓴 사람은 동일인으로 ‘윤尹’씨 성만 판독되고 이름은 판독되지 않는다. 연수방부의 형태로 방부의 하부 전·후면에는 각각 구획을 나누고 그 안에는 안상문眼象文을, 상부에는 연당초문을 조각하였다.



청주한씨 문정공파 묘역 한사개 묘갈, 2017 ©경기문화재연구원


한사개 묘갈의 건립 연대는 1564년(명종19)으로 비문으로 김안로金安老(1481~1537)가 찬撰하였다. 비신의 전액篆額에 ‘영흥부사한공묘갈명永興府使韓公墓碣銘’이라 밝힘으로써 신도비가 아닌 묘갈임을 알 수 있다. 신도비는 종이품從二品 이상의 현직現職과 증직贈職, 그리고 종이품 이상의 관직官職과 품계品階를 갖추어야 세울 수 있다. 묘갈은 운수방부雲首方趺의 형태로, 운수의 전면에는 운문雲紋과 해가 조각되어 있고, 후면에는 운문과 상단 중앙부에는 초승달이 조각되어 있는데, 묘갈에 해와 달이 조각된 경우는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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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화 @김다혜

    • 시대/ 조선시대

      규모/ 일원

      / 단분 3기, 묘갈 1기, 신도비 2기

      / 한계희 신도비 높이 250cm

      / 한사문 신도비 높이 231cm

      / 한사개 묘갈 높이 211cm

      재질/ 석재(화강암)

      주소/ 성남시 분당구 율동 산2-1

      지정일/ 1994.04.20

      소유자/ 청주한씨 문정공파 종중

      관리자/ 청주한씨 문정공파 종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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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경기문화재단

    자기소개/ 경기 문화예술의 모든 것, 경기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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