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다순

경기문화재단

청계산 맑은 숲길, 그 끝 아늑한 도량

새소리 물소리 반가운 산사 가는 길

길은 오직 산사를 향해 뻗었다. 총 길이 4.5km의 2차선 도로, 의왕 청계로의 종점은 청계사다. 절을 품은 청계산은 서울, 과천, 성남, 의왕에 걸쳐 있고 청계사는 의왕 시가지에서 가까우니 도심 사찰이라 해도 비약은 아니다. 그러나 사찰로 들어서는 길은 시골 소읍과 닮아 국도변은 온통 녹음이다. 길가에는 청계산에서 내려온 천이 흐르고 빌라들과 백숙집, 커피숍들이 띄엄띄엄 자리한다. 도심을 벗어난 지 십여 분만에 펼쳐지는 다붓한 풍경이다. 나무숲보다 아파트숲이 많은 수도권에서 이런 풍경은 귀하다.


시골길 같은 국도를 달려 이제 사찰인가 싶게 숲이 울창한 지점에 다다르면 왼편에 널찍한 주차장이 하나 보인다. 도심과 절 근처를 오가는 10번, 10-1번 버스의 종점 역시 이곳 청계산 주차장이다. 사찰에서 약 1.3km 정도 떨어진 지점이다. 사실 자동차로 청계사 바로 앞까지 갈 수 있다. 그러나 두 다리가 튼튼한 이들이라면 이곳부터 절까지 걷기를 권한다. 청계사까지는 빠른 걸음으로 15분이면 닿는다. 짧은 길이지만 되도록 천천히 걸어보길 추천한다. 산책로를 포함한 이 일대 숲이 ‘청계산맑은숲공원’이다.


곳곳에 쉬기 좋은 정자와 벤치가 있고 청결하게 관리하는 공공 화장실이 있다. 계곡을 따라 이어진 나무 데크길은 감탄사가 절로 나올 만큼 잘생긴 메타세쿼이아 나무들 사이를 지난다. 오랜 ‘집콕’ 생활로 기분전환이 필요했던 이, 마음의 휴식이 필요한 이, 그저 자연을 느끼고 싶은 이 모두가 만족할만한 길이다. 물소리, 새소리, 바람소리, 그리고 내 자신의 숨소리까지 생생한 사운드가 귓속을 파고든다. 그간의 답답했던 심신이 일시에 열리는 느낌이다. 부처의 세계로 가는 길목, 속세에서 찌들었던 마음이 정화된다. 자동차를 타고 쉽게 도량에 닿을 수도 있지만 차안(此岸)에서 피안(彼岸)으로 불쑥 들어서기보단 시나브로 정토(淨土)에 젖어드는 편이 좋으리라.


걷는 내내 완만한 나무 데크길이 끝나면 살짝 숨이 차오르는 비탈이 나온다. 경사만 지나면 사찰이 코앞이다. 자전거 라이더들은 그 가파른 경사도 아랑곳 않고 페달을 밟는다. 청계사까지 이르는 길은 자전거 라이더들이 즐겨 찾는 라이딩 코스기도 하다. 온몸으로 오감을 열고 당도한 사찰은 더욱 의미 있는 장소로 다가오기 마련이다.

청계사는 따로 일주문이 없고 다만 돌로 조각한 사천왕상이 경내로 들어서는 계단 양쪽에 서 있다. 큼지막한 표지석에는 ‘우담바라 핀 청계사’라고 쓰여 있다. 2000년 10월, 바야흐로 새천년 시작의 열기가 가시지 않은 때였다. 청계사 극락보전 관음보살상 왼쪽 눈썹에 3천년에 한번 핀다는 ‘우담바라’가 피어 세상이 놀랐다. 우담바라는 불경에서 여래(如來)나 전륜성왕(轉輪聖王)이 올 때 핀다고 전하는 상서로운 꽃이다. 육안으로는 잘 보이지 않을 만큼 작은데 대체 그것이 우담바라냐 다른 무엇이냐를 두고 논란도 있었지만 무엇이 됐든 불상의 얼굴에서 생명체가 자랐다는 사실은 신묘할 따름이다.


우담바라가 아니더라도 청계사는 통일신라시대 때 창건한 천년고찰로서 불교사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중요한 역할을 해온 사찰이다. 절의 창건년도는 정확히 전해진 바 없으나 고려 충렬왕 때 평양부원군 조인규가 중창하면서 주요 사찰로 입지를 굳혔다. 중창 당시 조인규의 일대기와 충렬왕, 원나라 황실과의 관계는 사찰 입구 오른 편에 있는 청계사사적기비와 조정숙공사당기비에 자세히 적혀 있다. 이후 고려가 멸망했을 당시 조선 개국에 반대하던 조정의 무리들이 이곳 청계사에 은신했고 억불정책이 심화된 조선 중기에는 봉은사를 대신한 선종 본산으로 자리매김했다. 또한 청계사에는 조선의 대표적인 주종장(鑄鐘匠)이었던 사인 스님이 만든 동종을 볼 수 있다. 한 마리가 아닌 두 마리의 용으로 표현한 용뉴가 특징으로 조선 후기의 범종에서는 보기 드문 형태다. 청계사 동종은 사인 스님이 남긴 8개의 동종 중 하나이며 국가보물 제11호다.


경내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건물이 가파른 계단 위에 자리한 만세루다. 계단 대신 옆으로 난 언덕길을 돌아가면 숨이 덜 차다. 고맙게도 ‘번뇌가 사라지는 길’이라는 팻말이 보인다. 쉬운 길을 선택한 약은 마음을 들킨 것 같아 괜히 머쓱하다. 만세루를 지나면 우담바라가 피었던 불상이 모셔진 극락보전이 모습을 드러낸다.

아미타여래를 모시는 절이기에 사찰의 본당은 대웅전이 아니라 극락보전이다. 극락보전 앞 너른 마당에 서면 청계사가 얼마나 깊은 산중에 있는지를 실감할 수 있다. 산기슭을 조금 올라왔을 뿐인데 아늑함이 느껴질 정도로 첩첩한 능선이 도량을 감싸고 있다. 과연 옛날에는 도읍 한양과 가까우면서도 숨기 좋아 은신처 노릇을 톡톡히 했을 것이다. 마당에 서서 휘 돌아볼 때 눈에 들어오는 전각들이 청계사 가람을 이루는 전부다. 그만큼 사찰 규모는 아담한 편이다. 그러나 열반에 든 부처가 누운 자리를 결코 작다고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극락보전을 바라본 위치에서 오른편으로, 동종과 지장전을 지나면 그곳에 독특하고 거대한 열반상이 자리한다.


열반상은 국내 사찰에서 보기 드문 불상이기도 하지만 특히 청계사의 열반상은 조약돌을 촘촘하게 붙여 만들어 그 외형이 퍽 인상적이다. 길이 11m, 높이 2m의 거대한 규모로 2년간의 제작기간을 거쳐 1999년 완성했다. 불상을 머리 쪽에서 보면 고요하게 눈을 감은 듯하지만, 정면에서 보면 지그시 뜬 두 눈이 세상을 응시하고 있다. 부처가 열반에 들며 “자신을 등불로 삼고 스스로를 의지할 곳으로 삼으라”고 제자들에게 남긴 설법은 비단 불자가 아니더라도 교훈처럼 새길만한 진리다. 열반상 앞에서 서서 새삼 부처의 마지막 말들을 곱씹는다. 옆으로 가지런히 누워 포갠 부처의 두 발은 여느 와불상과 같이 크고 두툼하게 표현되어있다.

‘발’은 곧 평생 길 위에서 가르침을 전했던 석가모니 삶의 상징과 다름없다. 점심시간이면 고요했던 산사 공양간이 분주하다. 공양간 문밖으로 길게 줄이 이어진다. 스님과 불자들도 있지만 산을 오르내리다 잠시 들른 등산객도 많다. 누구에게나 쉼터, 안식처, 기도처, 샘터가 되어 줄 수 있는 청계사다. 어쩌면 청계산이 청계사를 품은 것이 아니라 청계사가 청계산을 품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다시금 ‘청계산맑은숲공원’을 거쳐 산사를 벗어난다. 발걸음이 가벼운 까닭은 비단 내리막길이어서는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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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호수는 청계사에서 5km 정도 떨어져 함께 둘러보기 괜찮은 장소다. 호수 둘레에 나무 데크 산책로가 잘 갖춰져 있다. 총 둘레는 3km로 1시간 정도면 여유롭게 다 돌아볼 수 있지만 그늘이 많지 않아 여름철에는 더운 편이다. 청계산에 둘러싸인 백운호수는 1953년 농업용수 공급을 위해 준공한 인공저수지다.


청계산 계곡이 호수로 흘러들어 물이 맑은 편이고 호수에 반영된 청계산 자락의 풍경이 퍽 아름답다. 백운호수 둘레에는 ‘레이크뷰’를 자랑하는 식당과 카페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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