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문화재 : 육구삼+] 황희선생 묘 黃喜先生 墓

경기도기념물 제34호





조선초기 문신 황희黃喜(1363~1452)와 계배 정경부인 청주양씨淸州楊氏의 합장묘이다. 1383년(우왕9)에 사마시에 합격하고 1389년(공양왕원)에 대과에 급제하였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여러 요직을 역임하였다. 태종 대에 좌부대언과 대사헌의 직에 있으면서 국가 기반을 확립하는데 기여했다. 세종 대에는 강원도 감사와 이조판서를 거쳐 우의정·좌의정, 그리고 국정을 총괄하는 영의정부사를 지냈다. 태종 대부터 세종 대까지 조선의 문물제도 정비, 4군6진의 개척, 그리고 집현전을 중심으로 세종 대의 성세盛世를 이루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황희선생 묘, 2017 ©경기문화재연구원


묘역은 3단으로 구성된 15세기 묘제의 특징을 보여준다. 상단에는 봉분과 상석이 있다. 봉분은 부부를 하나의 봉분에 합장한 사각형태로 짧은 용미가 있으며, 앞면에만 1미터 높이의 호석護石을 설치했다. 호석은 지대석, 면석, 만석의 3단으로 구성되었으며, 만석의 하단은 깎아서 띠 모양으로 돌렸다. 그리고 양단의 끝을 ㄱ자로 꺾어 사다리꼴의 흠향공간歆饗空間을 특이하게 조성했는데, 호석으로 둘러싸인 이 공간은 경건하면서도 웅장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풍화가 심한 상석은 보수를 하였으며, 고석과 향로는 근래에 개비했다.

상석 아래 중계의 동측에는 1824년(순조24)에 건립한 원수방부형圓首方趺形 비석이 있다. 중계 중앙의 장명등은 사각형식으로 체석에 비해 개석이 크다. 원수는 연봉형 보주와 복발覆鉢의 2단구조이며 화창火窓은 요凹자형으로 앞뒤로만 뚫었고, 체석의 장식은 간단한 선각으로 처리했다.


황희선생 묘 문인석(우), 무인석(우), 2017 ©경기문화재연구원


황희선생 신도비, 2017 ©경기문화재연구원


장명등 좌우에 무인석 1쌍이 배치되었는데, 왕릉에서는 문인석이 놓여진 자리에 해당한다. 검을 들고 있지 않으나 방령포를 입고 소모자小帽子를 쓴 채 두 손을 공수拱手하여 시립侍立한 자세이다. 방령포 가슴부분 중앙에는 장방형의 단추구멍을 선각하였다. 하계 좌우의 문인석은 홀을 든 복두공복형幞頭公服形으로, 복두는 전각복두展脚幞頭이다. 머리가 크고 입주변의 팔자주름을 깊게 표현한 조선초기의 양식이다. 무인석은 문인석보다 안쪽에 있고 크기도 작아서 시자侍者의 성격이 강하다. 그리고 문무인석 모두 동측의 것이 반 뼘 정도 크다. 묘역 하단에는 대리석으로 조성된 말각방형末角方形 신도비가 세워져 있다. 비문은 신숙주申叔舟가 지었다고 전하나 비문의 판독이 어려울 정도로 마모가 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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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화 @김다혜

    • 시대/ 조선시대

      규모/ 1기

      / 단분, 묘비 1기, 상석 1기, 향로석 1기, 장명등 1기, 동자석 1쌍, 문인석 1쌍, 신도비 1기

      주소/ 파주시 탄현면 금승리 산1

      지정일/ 1976.08.27

      소유자/ 장수황씨 대종중

      관리자/ 장수황씨 대종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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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경기문화재단

    자기소개/ 경기 문화예술의 모든 것, 경기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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