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다순

옆집에 사는 예술가

사진과 스타일, 그리고 일상

파주_배병우 작가의 작업실





사진은 자연에서 시간과 공간을 끌어오는 것이다. 선택하고 압축해서 보여주는 것이다. 그래서 보는 눈에 따라 다른 사진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아무리 같은 곳에서 사진을 찍어도 사람마다 다른 사진이 나오는 건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사진은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해석하는 것이다. 오랜 시간의 수련으로 장인이 된 사람들만이 자신의 해석을 자유롭게 카메라라는 기계를 통해 보여줄 수 있다.


- 배병우, <배병우, 빛으로 그린 그림> 중에서






사진에 대하여


사진가 배병우에 대한 이야기를 풀자면 가장 먼저 자연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겠다. 그의 작업은 자연에서 시작했고 자연에서 끝나게 될 것 같다고 감히 예측해본다. 전남 여수 출신인 그는 바다와 섬으로 둘러싸인 천혜의 환경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실제로 작가는 자신의 생태 감수성의 뿌리는 우리나라의 바다와 섬이라고 고백한 바 있다. 우리에게는 소나무 작가로 가장 잘 알려져 있는 그가 사실 가장 처음 사진을 찍은 것은 바다였다고 한다. 그러다 1984년 낙산사 앞에서 사진을 찍던 중, 소나무와 운명처럼 마주쳤고 그때 바로 배병우 작가와 소나무의 인연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그는 소나무에서 자신의 모습을, 한국인의 모습을, 나아가 현대인의 모습을 보았다. 소나무라는 자연에서 인간의 모습을 보았고, 바다, 섬, 오름, 꽃나무 등등의 온갖 자연물들을 통해서도 종국에 그가 마주한 것은 인간이다. 그런즉 자연을 재현하는 그의 작업 방식이 자연의 어떤 유일무이한 본질을 꿰뚫는 여정이라고 해석한다면 조금 곤란할 것 같다. 그에게 자연은 한 인간의 기술로는 포획될 수 없는 영역이기에 그저 다양한 관계 맺기만이 가능한 타자의 영역이다. 그러므로 배병우 작가의 사진 앞에서는 무엇을 찍느냐보다는 어떻게 찍느냐에 조금 더 방점을 두는 편이 나을 것 같다.






스타일에 대하여


어떻게 해야 사진을 ‘잘’ 찍느냐는 나의 우문에 배병우 작가는 뜻밖의 현답을 주었다. ‘잘’ 찍는다는 건 없다고, 자신만의 ‘스타일’이 구축될 뿐이라고. 그렇다면 스타일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물론 스타일은 우리가 의식적으로 선택하는 것과 상관없이 구축되는 탓에, 자발적으로 그리고 능동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무언가는 아닐 수 있다. 이런 면에서 스타일은 일종의 습관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러다보니 이 스타일이라는 용어를 정의하는 문제는 여간 까다로운 일이 아니겠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스타일은 그 무엇보다도 예술과 역사적으로 밀접한 관련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다. 본디 그것은 첨필(스틸루스, stylus)이라는 어원을 지니는데 문학에서는 ‘문체’라는 의미로 이해되기도 했다. 그런데 순수예술에 대한 제도적 규정이 이루어지던 18세기에 유럽에서 스타일은 예술을 이해하는 중요한 방법론으로 유용되기 시작했고 오늘날 그것은 우리가 예술에 대해 이야기할 때마다 습관처럼 사용되는 일상적인 용어가 되었다.


19세기 말, 미술사 방법론으로서 양식론을 정초한 이로 잘 알려진 하인리히 뵐플린은 “예술가가 무엇을 말하느냐보다 어떻게 말하느냐가 중요하다”는 말로 예술에 있어서 스타일이라는 개념이 갖는 중요성을 본격적으로 논하였다. 다만, 여기서 ‘말하는 방법’은 단순히 어떤 알맹이를 장식하는 거추장스러운 껍데기 정도로만 이해되어서는 안된다. 그것은 대상과 주체 간에 가로놓인 극복될 수 없는 간극에서 비롯되는 다양한 관계 맺기의 무한한 가능성을 시사한다. 이에 대한 논의는 20세기에 들어서 일상과 예술 간의 가로지르기가 빈번해짐에 따라 한층 더 확장되었다. 수잔 손탁(Susan Sontag)은 <스타일에 대하여>라는 소논문을 통해 한 예술작품 안에서 스타일은 필연적인 것임을 역설한 바 있다. 그에 따르면, 예술작품은 그것과 그 작품이 재현하는 실제 세계 간의 일정한 거리두기가 전제될 수밖에 없는데, 스타일은 바로 그 간극에서 발생하는 인간의 제스쳐들이다.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스타일은 결코 과학적인 인과관계를 수반하지는 않는 임의성을 띠는 지극히 인간적인 행위의 흔적들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최근 미국의 철학자 리처드 슈스터만은 <스타일의 미학>이라는 소논문을 통해 바로 이 인간의 임의적인 행위들이 지니는 신체적 차원에 대해 논의를 개진하였다. 구체적으로 슈스터만은 ‘소마틱 스타일’이라는 개념을 제안함으로써, 스타일이라는 것이 ‘구현’됨에 있어서 결코 인간의 신체적 차원을 비껴갈 수 없음을 강조한다. 소마틱 스타일은 개인 혹은 집단의 신체에 깃든 깊은 습관과 감각을 통해 드러나 일종의 습관적 행동양식이다. 하지만 모든 습관이 창의적인 스타일이 될 수 없으며, 예술적 스타일로 이어질 수는 없다.


첫째, 좋은 스타일은 습관을 기계적으로 사용하기보다는 습관을 특별한 상황이나 영감을 주는 충동에 창의적으로 해석하고 개척하는 데 사용된다는 점이다.

둘째, 몇몇 습관은 본질적으로 창의적이라는 것이다. 창의적인 스타일을 지닌 이는 습관의 맹목적이고 기계적인 감상을 넘어섬으로써 자신의 습관을 창의적으로 사용하는 경향이나 습관이 있을 것이다.


- 리처드 슈스터만 외 <스타일의 미학> 중에서


그러니 배병우라는 한 예술가의 일상에 체화된 습관들을 추적한다는 것은 곧 배병우의 스타일을 오롯이 느끼는 것과 다름없다. 파주에 있는 그의 작업실을 오픈했던 날 비로소 우리는 배병우라는 한 인간의 습관들을 통해 그의 창의적인 스타일을 만나볼 수 있었다.





배병우의 작업실에서의 일상


실제로 작가를 처음 만났을 때 그는 자신이 신체를 단련하는 행위와 사진을 찍는 행위 간에 일정 정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을 것이라 말한 적이 있다. 체력이 따라주지 않으면 그 많은 산과 바다를 돌아다니면서 사진을 찍을 수가 없다는 그의 고백은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가 눈으로 사진을 찍는 것이 아니라 온몸으로 사진을 찍고 있구나를 실감케 하는 대목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의 일상적인 행위들을 추적해볼 수 있는 프로그램들을 준비하자고 제안했다. 이런저런 거창한 수사들을 다 걷어내고 작가의 일상을 공유하는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파주 헤이리 예술마을이 조성되던 초창기부터 줄곧 이곳 작업실을 유지해오고 있다는 그는 조금 더 작업실이 크면 더 좋겠지만, 이곳만큼 조용하고 작업하기 좋은 환경이 없을 거라 충분히 만족하고 있다고 한다. 군더더기 없는 작업실 내부는 딱 필요한 물건들만이 제자리에 놓여있는 정갈한 공간이었다. 그 중에서도 어쩌면 지극히 부자연스러운 물체 하나가 이상스러우리만치 자연스럽게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바로 탁구대였다. 그것은 작업실의 한 가운데에 가장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그 모습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워서 처음에는 무심결에 흘려봤을 정도였다. 작가가 10대 시절부터 꾸준히 하고 있는 운동이라는 탁구는 그가 지금까지도 가장 즐기는 체육 활동이라 했다. 그리하여 오픈 스튜디오가 있던 날, 우리는 그 탁구대 위에서 배병우의 가장 자연스러운 일상의 한 단락을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쌀쌀한 바람이 빗줄기 사이로 스치는 궂은 날씨 속에서도 삼삼오오 정성스러운 발걸음을 해줄 이들을 위해 작가는 행사가 시작되기 3시간 전부터 손수 저녁상을 준비했다. 아니, 이미 며칠 전에 그는 고향인 여수에 특별히 크고 싱싱한 삼치를 예약해두었고, 삼치는 당일 새벽 여수 앞 바다에서 뭍으로 올라오자마자 이곳 파주로 온 것이라고 했다. 적당한 시간 숙성된 삼치를 직접 손질하고 초밥을 만드는 그의 모습은 카메라 앞에 서 있는 모습만큼이나 익숙하고 즐거워보였다. 작업실에 있는 동안은 웬만하면 끼니를 손수 만들어 챙긴다는 그였다. 최근 한국의 맛 기행을 소개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는 그는 소문난 미식가다. 번거롭지 않냐는 질문에 그는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 요리하고 먹는 일만큼 즐거운 일이 더 어디 있겠냐며 나의 게으름을 꾸짖었다. 내 인생을 조금 더 창의적으로 만들어보겠노라며 부지런한 다짐을 했던 가을 저녁이었다.



글_김나리(독립기획자, 미술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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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이고 비밀스러운 창작공간이자 때로는 도전적이고 개방적인 실험의 장으로서 끊임없이 진화해 온 창조적인 장소, ‘예술가의 작업실’에 가 보신 적이 있나요? 《옆집에 사는 예술가》는 지역사회의 중요한 문화 자산인 ‘예술가의 작업실’에서 예술가의 일상을 공유하는 대중 프로그램을 통해 창작의 현장에서 치열하게 고민하고 활동해 온 경기지역 예술가들을 만나는 프로젝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