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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화재단 코로나19 예술백신TFT

이장님댁 음악회(운천3리 이장님, 조은득)

['진심대면-한 사람을 위한 예술'] 임진각 아래 작은 마을에서 함께한 마이웨이

비대면 시대에 문화예술은 어떻게 이어져야 할까요? 이전의 대면 사회에서 우리는 과연 진심으로 대면한 적이 있었을까요? ‘진심대면’이란 예술가와 문화수용자가 주체 대 주체로 만나 귀 기울여 대화하고, 예술의 가치와 위로를 전달하며, 그 속에서 진심을 주고받는 새로운 문화예술 방식입니다. '진심대면-한 사람을 위한 예술'에 선정된 서른 네 팀의 수기를 통하여 진심대면의 순간들을 전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진심대면의 새로운 소규모 문화예술 패러다임을 공유하고, 나아가 예술의 가치와 본질을 발현시키고 재난 시대의 아픔을 치유하기를 희망합니다. 한 사람, 한 가족의 관객을 마주하는 ‘진심대면’의 순간들을 대면해 보세요.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운천3리는 최북단 판문점과 임진각 밑 작은 마을입니다. 이 마을에서는 대중교통이 불편하여 외부로 나가기도 힘들고 어르신들이 경로당에 삼삼오오 모여 시간을 보내며 지내는데, 코로나 상황으로 경로당까지 폐쇄가 되었습니다. 좋은 것은 함께 나누고자 주민 어르신들이 모인 자리에서 연주를 진행하게 되었습니다.먼저, 이 자리를 마련해 주시고 이 먼 곳까지 이 마을까지 악기며, 스피커 등을 가지고 오셔서 노래도 불러 주시고 참 감사합니다. 조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저희 여기 모인 어르신들 정말 많은 것을 겪으며 지금까지 살아왔습니다. 어려운 시기에 태어나, 또 정말 접경 지역에서 전쟁 겪고, 배고프고, 춥고,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들입니다. 노인들만 동네 모여서 살아가고 있는데 불러 주셨던 ‘My way’ 곡이 참 마음을 울렸습니다. 그 곡을 들으면서 올해, 그리고 지난날들을 회상하게도 되었습니다. 우리 어르신들도 같은 마음이라 생각합니다. 또 성탄절을 기리며 캐럴을 들으니 또 희망적이고 생기가 돋는 것 같습니다.우리들에게 위로와 희망이 되는 시간을 마련해 주셔서 다시 한 번 감사드리고, 우리도 조 선생님의 노력과 마음에 부응하여, 우리 마을을 위해 좋은 일이건 어려운 일이건 함께 힘을 모아 지혜롭게 잘 나아가고, 또한 건강하게 이 삶을 잘 살아 나갑시다. 조 선생님을 앞으로 또 볼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지만, 어디서든 건승하시길 바라며 또 만나고 싶습니다.이 연주를 준비하기 위해 실은 이장님 비롯한 마을 어르신들을 찾아뵙고,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었습니다. 어떤 노래로, 어르신들을 만나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어떤 음악으로 마음을 전달할 수 있을까 생각하고 의견을 모으는 작업을 하였습니다.진심대면을 하기 위해 어르신들을 더 잘 아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실로 어르신들을 만나면서, 몰랐던 따뜻한 속정도 맛보았고, 점점 뵐수록 어르신들께서도 더 마음을 열어 주시고, 반겨 주셨습니다. 무엇보다 잘한 것은 이 ‘진심대면’ 연주를 위해 유대를 쌓고 진심을 보여 드린 것이라고 생각도 듭니다. 곡을 여러 곡 준비도 하였다가 코로나 상황이 더 악화되면서, 곡을 줄이기도 하였고, 이 시국에 노래하는 것이 참 어렵고 또 어르신들께서 고연령자 코로나 취약계층이기에 더욱 마음이 쓰이고 어려웠던 것이 사실입니다. 저희가 많이 걱정하고 작은 음악회를 준비하는 것을 알아서 그러신지, 오히려 이장님께서는 “마스크 쓰고 노래하시려면 힘들 텐데 벗고 하세요”라고 웃으며 말씀해 주셔서 걱정이었던 마음을 편하게 해주셨고, 곡명을 말씀 드릴 때마다, “아, 그 노래 좋아요” “노래 끝나고 모두 큰 박수 칩시다” 라며 호응해 주셔서 분위기가 더욱 환하고 걱정하는 마음을 내려놓고 즐겁게 연주할 수 있었습니다.짧은 시간 진행하였기에, 한 곡 한 곡 더 진심을 담아 연주하며 진심대면으로 나아가길 원했습니다. 그 마음을 알아 주셨는지, 어르신들께서 마음으로 또한 받아 주시지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경기문화재단의 ‘진심대면’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어서 저 또한 의미 있고 감사한 시간이었습니다. 문화예술 향유가 어려운 곳에서 어르신들을 만나고, 소통하고, 또 이렇게 음악으로 나눌 수 있어서 뿌듯합니다. 저도 그분들의 진심을 받을 수 있어서 더없이 감사한 시간이었습니다. 날씨도 추워지고, 코로나 상황도 더 악화되어 정말 올 연말은 외롭고 추울 수 있었을 텐데, 진심대면 프로젝트를 통하여 운천3리에서 저를 비롯한 이장님과 어르신들 마음이 따뜻하게 또 실로 많이 웃는 시간이 되었습니다.*더 많은 진심대면의 이야기가 궁금한 분들께서는 지지씨, 네이버, 유튜브에서 '진심대면'을 검색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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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화재단 코로나19 예술백신TFT

마실산책 - 반려그림과 반려식물(이명숙님 외, 김재원)

['진심대면-한 사람을 위한 예술'] 반려그림과 반려식물을 통해 나를 찾아가고 발견하는 시간들

비대면 시대에 문화예술은 어떻게 이어져야 할까요? 이전의 대면 사회에서 우리는 과연 진심으로 대면한 적이 있었을까요? ‘진심대면’이란 예술가와 문화수용자가 주체 대 주체로 만나 귀 기울여 대화하고, 예술의 가치와 위로를 전달하며, 그 속에서 진심을 주고받는 새로운 문화예술 방식입니다. '진심대면-한 사람을 위한 예술'에 선정된 서른 네 팀의 수기를 통하여 진심대면의 순간들을 전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진심대면의 새로운 소규모 문화예술 패러다임을 공유하고, 나아가 예술의 가치와 본질을 발현시키고 재난 시대의 아픔을 치유하기를 희망합니다. 한 사람, 한 가족의 관객을 마주하는 ‘진심대면’의 순간들을 대면해 보세요.   문화적으로 소외된 지역에 거주하며, 한 가정의 주변부에서 자신보다는 가족을 위해 희생해 온 중장년 여성에게 미술과 식물을 접목한 ‘마실산책-반려그림과 반려식물’이라는 또 다른 문화적 경험을 함께하고자 했다.  삶의 모든 관계들이 곧 예술이고, 그 어떤 예술의 영역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나는 건강을 위해 특별한 운동을 하지는 않는다. 다만 산책하듯이 걷거나 혹은 빠른 걸음으로 동네를 구경하듯 돌곤 한다. 혼자만의 시간일 때도 있지만 가끔은 이웃 친구나 동생들과 함께 산책을 하기도 한다. 산책을 하다 보면 지나치는 사람 들도 보고 새로 생겨난 가게들을 발견하게 된다. <가드닝공간온실>도 그렇게 알게 된 가게이다. 식물이 유달리 많은 꽃집이었는데. 밖에서 언뜻 보아도 여느 꽃집과는 좀 달라 보였다. 식물들도 다양한 종류들이 많아서 나중에 한번 들려봐야 지 하며 들렸던 것이 벌써 일 년 전이다. 그렇게 인연이 되어 종종 들려 식물도 보고 구입하기도 했다.   코로나로 조심스러웠지만 <가드닝공간온실>는 동네 작은 공간이기에 편히 들릴 수 있었다. 꽃집 주인은 코로나로 힘든 상황임에도 미술과 식물로 1:1 대면 수업을 했는데 동네 동생과 수업을 신청했다. 가끔 아이들 수업하는 걸 봤었다. 하지만 내가 수업을 한다니깐 뭘 하는 건지 잘 몰랐지만 기대가 되었다. 주인장이 편하게 생각하고 참여하면 된다고 하였다. 수업은 여섯 번 한다고 했다. 첫 번째 수업에서 나에 대해 생각해 보고, 그림이나 글로 표현하기였다. 사실 나에 대해 뭔가를 표현한다는 게 참 어려웠다. 올해 나에게 있던 일 중 제일 잘한 건 40대 큰아들을 장가보낸 일이었다.  두 번째 수업에서는 식물을 선택하여 그림 그리기를 하였다. 학교 다닐 때에도 그림을 잘 그리지 못해서 그림 그리기를 싫어 했다. 그런데 몇십 년 만에 그리기를 하니깐 어려우면서도 나름 설레고 재미있었 다. 역시 ‘아! 나는 그림 재주가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 색감이 좋다고 해주니 뿌듯하고 재미있었다.  세 번째 수업에서는 어항같이 생긴 유리그릇 속에 흙을 넣고 돌도 깔고 화초를 심는 일이었다. 잡념이 사라지고 하나씩 완성해 나가니 제법 근사했다. 집에 갖다 놓으니 집안의 미니정원 같았다.  네 번째 수업에서는 썩은 나무를 다듬기였다. 썩은 나무를 다듬으니 가볍고 단단하 고 식물까지 달아주니 멋스러웠다. 사람 손맛이 참 중요하구나 하고 느꼈다. 나무 모양에 따라 메달은 식물이 새로웠다. 다듬을 때는 힘들었다.  다섯 번째 수업에서 는 화분을 빼고 흙이 달린 식물의 뿌리로 이끼를 끈으로 고정하는 걸 배웠다. 화분이 없으면 어떻게 식물이 살까 걱정을 했는데, 막상 만들어 집에 걸어보니 공중에 푸른 식물이 있어 좋고, 공기가 달라진 느낌이었다.  여섯 번째 수업은 좋아하는 남천나무를 분갈이를 한다고 해서 신이 났다. 나무화분이 마음에 들었다. 크게 잘 키워서 나중에 더 큰 화분에 분갈이를 혼자 해 볼 생각이다. 분갈이는 처음 해 보는 게 아니어서 수업 중 제일 쉬웠다. 이제 막 수업하는 재미가 생겼는데, 여섯 번 수업을 하고 끝낸다고 하니 참 아쉬웠다.  육십을 넘어서 미술공부와 식물 만들기를 해서 너무 좋았다. 화초에 모양을 만들어가며 예쁜 형태가 나오니 흐뭇했다. 또 이런 기회가 왔으면 좋겠다. 처음엔 못할까 봐 조바심이 나고 어려웠는데, 자꾸 하니 힐링이 되었다. 나는 남편과 농사를 짓는다. 봄부터 초겨울까지는 참 바쁘다. 여러 작물들을 심고 가꾸고 거두려면 평일 주말 상관없이 제때 일을 해야만 한다. 그나마 겨울이 오면 동네 언니들하고 산책도 하고 운동도 하고 만나서 수다를 떨 수 있어 참 좋다.  올해는 콩 수확이 늦어져서 그나마 언니들을 잘 못 만났는데, <가드닝공간온 실>에 식물 구경으로 우연히 들렀다가 대면으로 수업한다고 하기에, 참여하게 되었다. 콩 수확을 하고 좋은 콩들을 골라내느라 수업 시간이 겹칠까 조바심이 났 는데, 다행히 안 겹치고 수업을 모두 참여할 수 있었다. 제일 친한 동네 언니와 함께하는 수업이고 내가 좋아하는 작은 식물 가게에서 수업한다고 해서 기대가 되었다.  첫 번째 수업은 나에 대해 생각해보고 그림이나 글로 적어보는 거였는데, 20살 넘어 성인이 되어 직장 다니고 결혼해서 남편 따라 농사에 세 아이 낳고 키우느라 정신이 없어 나를 위해 뭘 해본 게 없는 것 같아 한참을 가만히 앉아만 있었다. 지금 내 직업이 뭔지 생각해보고 하는 일 중, 소원하는 일이나, 잘하는 일, 하고픈 일 등을 그려보고 적어보라고 했다. 잘하고 잘 못하고는 없다고 했지만 용기를 내어 남편이 심은 블루베리 나무를 그리고 내가심은 샤인머스켓 나무를 그렸다. 너무 열려 따기 힘든 블루베리가 조금 열리길 바라고 내가 좋아하는 샤인머스켓이 마구 열리길 기원하는 걸 그리고 적었다. 농사짓는 걸로 나를 표현한다는 게 생소하고 재미있었다.  두 번째 수업에는 식물 그리기를 했다. 그림을 언제 그려보았는지 참, 우리 아이들은 그림을 잘 그리는데 나를 안 닮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 식물 이파리 모양 과 무늬가 다 다르니 그려보라고 해서 살펴보며 그렸다. 식물들은 정말 모양이 다 달랐다. 연필로 그리고 물감으로 칠을 했는데, 스티커나 색종이로 찢어 붙이는 방 법도 알려주셔서 새로운 방법으로 재미나게 했다. 색칠하는 것보다 찢어서 붙이는 게 더 재미있었다.  세번째 수업은 유리볼에 작은 정원을 만드는 거라 하셨다. 재료들이 참 많아서 하나하나 신기했다. 순서에 따라 하나씩 천천히 섬세함이 필요했다. 촬영하러 오신 분이 계셔서 더 잘하려고 천천히 따라 했다. 진짜 모래들이랑 돌도 놓고 식물들을 하나씩 심어주고 이끼로 덮어주니 작은 정원 같았다. 귀여운 강아지 장난감도 넣어주니 귀엽고 뿌듯했다. 집으로 가져와 협탁 위에 올려두니 더욱 빛이 났다. 아들이 물어보기에 테라리움 미니정원이라고 설명해주었다.  네 번째 수업은 나무를 깎고 다듬어 식물을 붙이고 매달아 장식을 한다고 하는 데, 뭘 하는 건지 잘 몰랐다. 사진을 먼저 보여줘서 이해를 했고, 칼로 조심스럽게 나무를 다듬었다. 버려지는 나무들을 이렇게 사용할 수도 있구나! 말하고 생각하면서 진지하게 다듬었다. 깨끗이 다듬고 나니 나무 모양이 자연스럽고 예뻤다. 나무에 흙 없이 사는 이오난사를 여러 개 모아 철사로 잡아 붙여 주는데 맘같이 되지 않았다. 나는 이오난사를 그냥 올려놓고 키웠는데, 이렇게 나무에 잡아 붙여주니 새롭고 예쁘고 만족스러웠다. 나무를 다듬고 매달기는 어떻게 하나 했는데, 해 보니 참 재미있었다.  다섯 번째 수업은 공중에 주렁주렁 매달아 식물을 키우는 이끼볼을 만든다고 했다. 꽃집에서 보기만 했는데, 직접 만든다고 하니 기대가 됐다. 포트에서 식물을 빼내어 흙을 더 붙여주고 이끼로 감싸주는데 잘 되지 않아 당황스러웠다. 이끼에 물에 적셔 주니 동그랗게 잘 만들어졌다. 이끼로 감싸고 끈으로 감아 공중에 매달아보니 신기하고 보기 좋았다. 물주는 방법에 대해서도 물어보고, 집에서도 만들 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식물 키우는 방법이 참 많구나 생각하고 배우니 좋았다.  여섯 번째 수업은 분갈이를 했다. 내가 집에서 하는 분갈이 방법하고 많이 달랐다. 남천나무 분갈이를 했는데, 남천나무를 집에 들여놓으면 남편한테 좋은 일이 생긴다고 하니 잘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깊이 들었다  이렇게 여섯 번의 수업을 하고 나니 짧지만 뿌듯하고 재미났다. 그림 수업은 20대 결혼 후 처음이다. 잘 그리는 게 너무 어렵다. 그래도 종종 이런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 식물을 좋아해서 많이 키우는데 식물 수업을 하는 건 처음이다. 식물 수업 이끼수업 나무에 이식하는 수업도 너무 재미있었다. 집에서 볼 때마다 좋고 예쁘다. 수업에서 한 걸 볼 때마다 기억이 날 것 같다. 나는 2016년 경기도 연천군 전곡읍에 <가드닝공간온실>이라는 식물공간을 시작하였다. 낯선 동네에 이방인의 신분으로 전공한 미술과 좋아하는 식물, 문화예술교육 기획이란 과거 직업을 활용한 관계로 이곳의 삶을 재생산 유지하는 중이다.  여러 문화예술교육 활동 중 주로 아이들과의 활동이 많았고 성인은 원데이클 래스 짧은 방식이 전부였었다. 새로운 매체나 문화 활동에 빠른 반응과 수용하는 아이들에 비해 성인들의 활동 시작은 여러 어려움이 있었다. 물론 생계유지나 기타 시간적 제약에서 자유롭지 못한 이유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자신을 위한 문화 예술 활동에 대한 낮은 관심과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이유였다.  그것은 본 프로그램에서 미술과 식물의 반려 방법을 자신과 결합시켜 진행하고 이해, 해석 하려는 의도와 방법에서도 어려움을 겪었다. 단 한 번도 자신에 대해 말하고 그리고 표현해보지 않았다고 바로 말하는 그것 에서 알 수 있었다. 분명 단 한 번도 자신에 대해 말을 안 하지는 않았을 텐데, 이러한 수업 미술과 식물 등의 다른 매개체를 통한 방식의 응답에는 몹시 당황하는 듯하였다. 그러나 생소함에도 불구하고 수업 진행 후에는 만족도가 꽤 높았다. 그 생소함의 제약을 해소하기 위해 물리적인 거리와 심리적인 거리를 좁히는 문화예 술교육 활동의 유대감 생성에 대해 많은 생각이 들었다.  사실 연천군 지역을 문화 취약 혹은 소외라는 말로 이야기하는 것을 본인은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과도하게 넘쳐나는 도시재생의 개념을 이곳 시골 이라는 지역 도시의 재생과 같지 않게 생각하였으면 한다. 즉 낙후=재생으로 같게 생각하고 있다. 낙후. 그대로 가만히 내버려 두어 활용하는 그 자체야 말로 바로 재생 이상의 발전이라고 생각한다. 과도한 도시재생의 개념과 과도하게 넘쳐나는 동일한 활동들의 존재보다, 이곳은 사실 삶에 가깝게 닿아 있는 것들을 건드리는 기회와 방식을 제공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동네 두 아주머니의 매일 벌어지는 동네 산책과 걷기 운동이 눈에 들어왔고 코로나로 인한 경기문화재단의 ‘진심대면-한 사람을 위한 예술’과 닿아 본 프로그램 ‘마실산책-반려미술과 반려식물’이 진행될 수 있었다.  보통 일반인들은 문화와 예술에 대한 이해나 경계조차 생각지 않고 지나기 마련이다. 특히나 이곳은 더욱 그렇다. 나와 상관없는 것이고 어려운 것들이라고 생각하는 그 부분을 아주 쉬운 일상과 연결해 주고 싶었다. 단순히 문화소외지역 주민들에게 문화와 예술을 만나게 해주는 명분보다는 자신들이 하고 있는 모든 것들의 새로운 시선과 해석하는 방법의 빈도수를 늘리는 즐거움을 함께 느끼고 싶었다.  자신의 이야기를 유도해 큰아들 장가보낸 어머니의 위치와 내가 심은 샤인머스켓 나무 파이팅의 드로잉에도, 새로운 가드닝 방법을 하더라도 자신의 성격과 생활, 습관들이 자연스럽게 나타나도록 이야기를 유도해내고 그 지점을 관찰 하며 하하호호 수다로 마무리할 수 있게 하였다.  매 수업 시 나타난 것들을 함께 이야기하며 즐거워하고 자신이 살고 있는 순간을 만끽하게 되었다. 좋은 방식과 멋지고 훌륭한 예술가가 아닌 빈번한 기회가 제일 좋은 선생님이라는 사실을 느 끼게 해주며 나 또한 깨닫게 되었다. 코로나19로 모두 정지된 상태에서 무언가를 한다는 그 자체와 곳곳에 기회가 있음이 큰 행복이고 문화고 예술이라 생각했다. 동네에 있는 나의 <가드닝공간온실>에 마실과 산책으로 들리시는 동네 분들과 함께 한 좋은 기회의 수업이었다. 이러한 수업은 앞으로도 쭉 이어질 예정이다.*더 많은 진심대면의 이야기가 궁금한 분들께서는 지지씨, 네이버, 유튜브에서 '진심대면'을 검색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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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29호 | [건축가 시점] 마주보는 배려가 필요해요, “구해줘, 학교!”

[지지봄봄] 삶과 공간의 변화 - 앞당겨진 초연결 사회 속으로의 ㅋㄹㄴ ㅅㅍㅇㅅ의 모험

박수정(건축가, 건축공방 공동대표)구해줘! 학교학교는 우리 사회의 미래를 만들어갈 아이들의 공간이다. 뿐만 아니라 배움이 있는 곳에 학교라는 의미를 부여한다 했을 때, 교육과 연관된 공간까지 학교라는 테마로 넓혀서 생각할 수 있다. 경기문화재단과 함께한 문화예술교육 공간을 만드는 ‘구해줘! 학교’ 작업을 통해 코로나19 이후 변화된 일상적 공간의 학교만이 아니라, 문화예술이 학교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건축과 예술을 공유하고, 건축과 예술을 논하여 보는 기회를 갖길 바란다. 학교의 기원교육기관인 학교의 기원은 뜻밖에도 '체육관'이다. 고대 그리스에서 군인을 양성하기 위한 목적으로 시작되었다. 독일에서는 아직도 학교를 뜻하는 말로 '김나지움(Gymnasium)'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체육활동과 더불어 이론적인 수업 과정이 추가적으로 만들어지면서, 일반인들에게까지 확대되었다. 이렇게 시작된 학교라는 공간은 공공 교육의 정착에 큰 기여를 하게 된다. 한 사회의 이념과 방향성을 가르치고, 이를 배우는 곳으로 학교는 그 사회의 가치관을 잘 알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되는 것이다. 과거와 현재의 학교한국의 아이들은 아주 어린 나이 때부터, 공공 교육을 밀접하게 받으며 성장한다. 의무교육기간인 초등학교, 중학교 9년뿐만이 아니라 5세 이전에는 어린이집, 5세~7세는 유치원, 8세부터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에 이르는 과정을 거친다. 거의 20년에 가까운 기간 동안 아이들은 어떤 공간에서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이에 대한 내용을 위해 우리의 학교 건축은 어떤 역사와 모습을 하고 있는지 먼저 살펴보려 한다.서당(단원풍속도첩) 오래된 형태의 학교는 서당(글방)의 형태였으며, 향교와 서원들도 다수 존재한다. 1700년도 후반에 서당을 그린 김홍도의 유명한 풍속화를 들여다보면 건축이나 공간이 자세하게 표현되기보다는 서당의 분위기가 표현된 것을 알 수 있다. 책상에 앉아있는 훈장을 중심으로 학생들은 바닥에 둘러 앉아 글공부를 위해 책을 펼치고 있다. 조금 더 공간이 실질적으로 남아 있는 몇몇 건축물들 중에 안동에 위치한 병산서원(1572년)이 있다. 이곳은 자연에 열린 건축공간으로 설계되었으며, 공부하는 장소와 휴식의 공간이 연결되어 있는 구조를 가진다. 근대 학교는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근대 건축의 영향을 받게 되는데, 이로 인해 재료와 구성 방식에 있어서 단순히 필요한 공간이 생겨났다. 교실, 복도와 운동장으로 이루어진 학교는 교육을 ‘받는’ 일방적인 공간이 되면서, 보수적이고 권위적인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게 된다. 또한 예전의 서원처럼 자연으로 둘러싸인 곳이 아닌 도시 지역에 더 많은 학교가 지어지게 되면서 학교 내에 자연적인 요소들은 더욱 고려되지 못했다. 건축 그리고 문화예술로 보는 학교학교 건축은 최근까지, 변화하는 교육과정의 생각을 담는 곳으로 가지 못하고 과도기적인 건축으로 남아 있다. 우리가 배우는 공간을 떠올려보면 여전히 지식 혹은 무언가를 ‘받는’ 구조가 연상된다. 개인적인 몰입에 최적화하기 위해, 독서실과 학원의 창들은 외부와 단절된 폐쇄적인 형태를 가진다. 주고받는 공간이 아니라 전달받는 공간들이다. 오래된 학교를 레노베이션 할 때면 학교 외벽에 색과 패턴을 넣으려는 시도들이 있지만, 이 또한 건축적인 공간에 관한 것은 아니다. 건축설계는 단지 외관에 관한 것이 아니며, 건축을 통해 변화될 수 있는 소통의 현저한 차이를 의미한다. 공간을 통해, 이용자들이 만들어내는 결과와 더 자유로운 생각의 재료가 되도록 하는 것은 무엇인지, 어떻게 하는지를 고민하는 부분이 중요하다. 이 지점에서 건축과 문화예술의 지점이 맞닿아 있다. 함께 고민할 주제가 있는 것이다.너에게 학교란경기도에 위치한 2곳의 고등학교(동두천 중앙고와 구리 갈매고)에서 진행 중인 문화예술 프로젝트 ‘구해줘! 학교’는 학교의 본질은 무엇인가라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학교 내 인테리어를 바꾸는 작업이 아니라, 아이들에게 학교란 무엇이며, 우리 사회에서 학교의 역할은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프로젝트이다. 심희준, 박수정 건축가는 이 프로젝트가 예쁜 공간을 만드는 작업이 아닌, 학교의 근본적인 변화를 만드는 생각이 될 것을 기대했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추상적인 질문을 했다. 너에게 학교란? 가장 많은 답변으로 아이들의 30%가 공부라고 답했고, 또 다른 30%가 친구라고 했다. 네가 원하는 학교는? 가장 많이 나온 답변은 수평적이고 민주적인 학교였다. 여러 의견 중에는 학교 시설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지만, 가장 많은 의견이 구체적인 공간바꾸기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추상적인 소통의 이야기인 점에 우리의 관심이 닿았다.어떤 학교가 될까아이들과 두 번의 비대면 워크샵, 한 번의 대면 워크샵을 진행하면서 아이들의 이야기와 함께 학교 공간을 세밀하게 들여다보았다. 동두천 중앙고는 1975년에 개교한 학교로 건물이 교실과 복도로 이루어진 전형적인 일자형 학교이다. 비교적 좁은 복도 때문에 아이들은 많은 시간을 교실에서 보내고 있었다. 층과 층을 연결하는 비교적 넓은 계단 공간이 있었고, 본관과 새로 지은 건물을 연결하는 구름다리는 급식 시간이면 학교의 모든 아이들이 한 번 이상은 지나치는 공간이라는 점이 흥미로웠다.구리 갈매고는 2016년에 개교한 학교로 2020년에 첫 졸업생이 배출된 신생 학교이며, 넓은 복도와 유휴 공간이 많은 ㅁ자 구조이다. 새로운 학교에 적용된 넓은 복도 공간이 많지만, 복도의 기능 이외에는 특별한 역할을 하지 않고 있었다. 자율교과수업방식으로 많은 아이들이 스스로 교실을 이동해야 하는 점이 흥미로웠다.두 곳의 학교는 물리적인 환경이 다르긴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유사한 고민을 가지고 있다. 아이들이 원했던 민주적인, 수평적인 소통의 부재가 그것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민주적이고 배려 받는 공간은 어떤 것일까? 학교 설계에서 중요한 것 중의 하나는 아이들이 서로 마주치는 공간이 어떻게 디자인되는가 이다. 복도가 이동하는 동선의 역할만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이 된다면 학교의 일상 자체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영국의 한 고등학교는 학교 폭력이 많은 학교였다. 아이들을 관찰해 본 건축가는 수업이 끝나고 좁은 복도로 아이들이 나와서 서로 부딪히는 과정에서 상당히 많은 학교 폭력이 발생함을 발견한다. 이를 위해 수업이 끝나고 복도가 아닌 중정으로 아이들이 나올 수 있도록 학교 공간을 바꾸면서 학교 폭력이 사라진 학교가 되었다. 본질을 바라보고, 고민하여 가치있는 결과를 만들어낸 것이다.교실과 교실을 연결하는 복도 공간은 이동하는 동선이면서, 만나는 동선이 되기도 한다. 우리 한옥의 툇마루처럼 내부와 외부가 만나고, 개인의 공간이면서 공동의 공간이 되기도 하고, 학교 교육의 핵심인 소통의 플랫폼이 될 수 있다. 이 플랫폼은 직접 참여해서 각자가 얻고자 하는 가치를 주고받을 수 있도록 만드는 환경을 뜻한다.앉다. 대화하다. 쉬다. 학교 플랫폼의 설계는 단순하고 강한 개념으로 진행되었다. 아이들이 앉고, 대화하고, 쉴 수 있는 작업이다. 한 개의 유닛은 기본적으로 앉기에 적합한 높이와 넓이로 만들어진다. 이 유닛들이 서로 붙여져서 긴 플랫폼이 되기도 하고, 짧은 플랫폼이 되기도 한다. 이 플랫폼들은 아이들의 필요에 따라 공용 공간에 배치될 것이다.                                                  우리는 플랫폼의 물성에 대한 고민도 이어가고 있다. 어느 순간에 플라스틱으로 된 책상과 의자에 아이들이 앉아 있다. 벽은 시트지, 바닥은 고무 타일, 창문과 문은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다. 교육 공간에서 본질적인 자연의 재료를 찾기가 힘들다. 시간의 경과 속에 가치가 쌓이는 재료로 작업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플랫폼에는 나무, 철과 돌이 사용되었다. 학교의 풍경 아이들과 학교가 플랫폼의 사용을 어떻게 하는가는 작업의 또 다른 연장선상에 있는 부분이다. 어떤 변화가 생겨날까? 학교는 어떤 풍경을 가지게 될까? 작은 변화가 만들어 낼 유연하지만, 기초적인 작업은 공간을 더 풍요롭게 할 것이다. 공간이 가지는 힘은 크다. 『공간이 마음을 살린다』라는 책에도 나오는 이야기인데, 사람이 환경에 반응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한 것이다. 학교 공간을 만드는 우리의 접근 방식은 공간의 사용자들이 사회의 상호 존중과 나의 개성을 조화롭게 가꾸어 나갈 수 있도록 고민하는 것이었다. 더 나아가 문화예술과 건축에서 민주주의라는 아이디어를 어떻게 구현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기도 했다. 이것은 사회의 공통된 가치를 지니지만, 결코 강요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공간의 표현도 표준화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상황과 아이들이 배워나가는 특별한 과정을 담을 수 있는 것이 된다면 좋을 것이다. 문화예술의 힘은 생각에서 나온다. 질문하고, 고민하고, 시도해보는 일련의 과정에서 만들어진 작은 파장이 교육 공간에 들어가기를 바란다. 학교 공간은 미래세대에게 남겨줄 보이는 혹은 보이지 않는 유산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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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화재단

나라를 위해 금강산에서 온 승려, 김성숙

[경기학 역사인물편] 지지씨가 들려주는 '경기 인물' 이야기

지지씨에서는 경기문화재단 경기학센터가 발간한 도서를 한 걸음 더 가까이 살펴보는' 경기학 시리즈'를 기획했습니다. 경기학 시리즈는 [역사문화편], [현대인물편], [역사인물편], [근대유산편] 총 4부로 나누어 진행됩니다. 본 시리즈에서 소개되는 다양한 발간도서는 경기도사이버도서관 및 경기도메모리 홈페이지에서 원문으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금강산에서 온 승려 김성숙과 봉선사 승려의 3‧1운동 손병희, 한용운 등과 교류, 승려 신분으로 3‧1운동 나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위원 역임▲ 책 『운암 김성숙』 표지 평안북도 철산에서 태어난 운암 김성숙 선생은 1916년, 18세에 고향을 떠나 경기도 양평 용문사에서 불가와 인연을 맺었습니다. 2년 뒤 그는 경기도 남양주 봉선사로 거취를 옮기며 불교 경전을 정식으로 공부하고 정식으로 승려가 되었습니다. 그는 봉선사에서 손병희, 한용운, 김법린 등 당시 활발하게 항일운동을 전개하던 독립운동가이자 종교인들과 교류하며 애국 의식을 고취해갔습니다. 사실 김성숙 선생은 승려가 되기 전에도 중국으로 망명해 독립군이 되겠다는 계획을 했을 만큼 애국심이 남달랐던 인물이었습니다.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김성숙 선생은 승려의 신분으로 만세운동에 참여했습니다. 그는 3‧1운동을 기폭제로 봉선사 승려인 이순재, 김석로, 강완수 등과 함께 항일 의지를 담은 조선독립군 임시사무소 명의의 격문을 제작해 배포했습니다. 격문에는 ‘파리강화회의에서 12개국이 독립국이 될 것을 결정했으므로 조선도 이 기회를 놓치지 말고 열심히 독립운동을 하면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았습니다. 선생은 격문 제작 및 배포뿐만 아니라 같은 해 3월 29일에는 남양주 진접읍 부평리에서 만세시위를 했습니다. 결국 항일활동으로 경찰에 체포된 그는 서대문 형무소에서 2년간 옥고를 치렀습니다. 선생은 1920년 출소해 다시 봉선사로 돌아갔으나 곧 전국 곳곳을 돌며 강연을 했고 이를 통해 대중에게 독립정신을 설파했습니다. 또한 조선무산자동맹, 조선노동공제회 등에 참석해 소작쟁의의 진상을 여러 곳에 알리는 등 적극적인 항일독립투쟁을 이어나갔습니다. 이후 김성숙 선생은 중국 베이징으로 이동해 불교 유학생으로 학업을 잇는 한편 고려유학생회를 조직해 한인의 결속력을 다지고 항일운동을 진행했습니다. 1930년 이후로는 중국 각지의 독립운동가들과 함께 조선민족해방동맹, 조선민족전선연맹, 조선의용대 등에서 활동했고,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된 후에는 임시정부 국무위원을 시작으로 남은 생의 대부분을 정치인으로 살았습니다. 1982년, 김성숙 선생에게는 건국공로훈장 국민장이 추서되었으며 그의 유해는 국립묘지 임시정부요인 묘역에 안장되었습니다. ▲ 운암 김성숙의 일대기를 다룬 책 『조선에서 온 붉은 승려』 김성숙 선생이 적을 두었던 대한불교 조계종 제25교구 본사 봉선사는 세조가 묻힌 광릉의 능침사찰로 잘 알려진 사찰입니다. 후일, 세조와 함께 광릉에 묻힌 정희왕후가 세조가 죽자 선왕을 추모하기 위해 대규모로 중창했습니다. 능침사찰로서 절이 부각되다 보니 일반인들에게 봉선사 승려들의 3‧1운동과 항일운동은 크게 알려진 편이 아닙니다. 일제강점기 당시 봉선사의 상황을 짚을 때 빠뜨릴 수 없는 인물이 김성숙 선생에게 성숙이란 법명을 내린 월초스님입니다. 그는 1906년부터 봉선사의 교종판사로 머물며 1926년까지 꾸준히 가람을 중수한, 사찰의 실질적 중창주였습니다. 1906년 불교연구회 대표를 맡으며 대구에서 벌어진 국채보상운동에 적극적으로 동참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그의 제자인 운허스님 역시 봉선사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운허스님은 평생 동안 불경을 한글로 번역하는 일에 매진하며 불교의 대중화에 힘쓴 인물입니다. 그의 영향으로 봉선사 일주문과 큰법당(대웅전)의 현판은 다른 절과 달리 한글로 쓰였습니다. 운허스님 또한 승려 신분으로 활발하게 항일운동을 펼친 독립운동가입니다. 그는 3·1운동 직후 독립군정기관지인 한족신보의 사장에 취임해 신문을 간행했고, 1920년 2월에는 독립운동기관인 광한단을 조직해서 활동했습니다. 일본 경찰이 감시망을 조이자 강원도 봉일사에 은신하기도 했습니다. ▲ 봉선사 대웅전의 한글 현판 이렇듯 봉선사는 김성숙 선생을 비롯한 여러 승려들의 합심으로 독립운동이 이루어진 역사적인 장소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사찰 내에는 이를 알리는 알림판이나 기념비가 없어 아쉬움을 남깁니다.더 많은 경기학 시리즈를 보고 싶다면?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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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화재단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양조장, 양평 지평양조장

[경기학 근대유산편] 지지씨가 들려주는 '경기도 근대유산' 이야기

지지씨에서는 경기문화재단 경기학센터가 발간한 도서를 한 걸음 더 가까이 살펴보는' 경기학 시리즈'를 기획했습니다. 경기학 시리즈는 [역사문화편], [현대인물편], [역사인물편], [근대유산편] 총 4부로 나누어 진행됩니다. 본 시리즈에서 소개되는 다양한 발간도서는 경기도사이버도서관 및 경기도메모리 홈페이지에서 원문으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양조장, 양평 지평양조장격전지에서 살아남은 국내 최고령 양조장 치열했던 전투가 남긴 3기의 전적비막걸리 애호가라면 지평막걸리를 모르지 않을 겁니다. 전통 막걸리의 맛으로 정평 난 지평막걸리는 90여 년간 3대에 걸쳐 운영되어온 지평주조에서 생산한 막걸리입니다. 지평막걸리의 ‘지평’은 경기도 양평군 지평리의 지명에서 따온 이름입니다. 지평막걸리의 생산은 일제강점기인 1925년, 양평군 지평면 지평의병로62번길 27에 세운 막걸리 양조장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건축적 가치를 인정받아 2014년 국가등록문화재 제594호로 지정된 양평 지평양조장입니다. ▲ 지평양조장 전경 (출처:문화재청)양조장의 건축양식은 조선 전통의 목구조 위에 일식 목구조를 접합한 절충식 구조입니다. 흙벽돌로 외벽을 쌓았으며 환기를 위해 건물 상단에 높은 창을 냈고 보온을 위해 벽체와 천장에 왕겨를 채워 넣은 점이 인상적인 건물입니다. 서까래 위에는 나무 산자 대신 대자리를 짜서 넣은 점도 특징입니다. 당시 탁주 생산 공장으로서의 기능을 잘 살린 건축물로 평가됩니다. 물론 현재 판매되는 지평막걸리는 새로 지은 현대식 공장에서 생산되고 있습니다.지평양조장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양조장으로 한국전쟁의 격전지였던 양평에서 유일하게 잔존한 건물이라는 점 또한 주목할 만합니다. 지평리 전투가 벌어진 1951년에는 중공군에 맞서던 유엔군의 지휘사령부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양조장 입구에는 당시 사령부였음을 알려주는 기념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지난 2020년 6월, 지평주조는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막걸리 100만병에 6.25전쟁 70주년 엠블럼을 부착해 출시하기도 했습니다. 지평리 전투는 1951년 2월 13일부터 15일까지 3일간 유엔군과 중공군 사이에 벌어진 전투로 당시 중공군을 대파하고 1‧4후퇴 이후 한국전쟁을 다시 한 번 반전시킨 전투로 유명합니다. 이는 한국군 6사단이 중공군을 저지하며 큰 전과를 올린 용문산 전투와 함께 양평에서 벌어진 주요 전투로 꼽힙니다. 때문에 지평리 전투는 지평리를 논할 때 빠질 수 없는, 지평리 역사상 가장 큰 사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더불어 지평양조장은 명성 높은 지평막걸리의 생산지였다는 사실 외에도 한국전쟁의 유적으로서 의미가 큽니다.국내에서 지평리 전투는 같은 해 5월 일어난 용문산 전투보다 소홀하게 다루어진 측면이 있습니다. 용문산 전투는 한국군이 대승을 거둔 전투인 반면, 지평리 전투는 미군과 프랑스군이 중공군과 싸워 이긴 전투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미국에는 지평리 전투와 관련한 책이 1,200여 권에 이를 정도로 미군과 UN 참전군에게는 한국전쟁에서 매우 중요한 전투로 다뤄져 왔습니다. ▲ 지평리전투 전적지 전경 평범한 시골 마을 지평리가 격전의 장소가 된 까닭은 전략적 요충지였기 때문입니다. 우리군 입장에서는 지평리가 함락될 경우 중공군과 인민군이 여주 방면으로 진격 후 주력부대를 남하시킬 수 있는 위험이 있었습니다. 당시 횡성과 평창을 함락한 중공군은 여세를 몰아 지평리를 돌파하기로 했고 연합군 23연대는 일찌감치 지평리에 방어진지를 구축했습니다. 그러나 중공군의 병력 규모가 컸기 때문에 지평리 사수 작전은 쉽게 끝나지 않았습니다. 진지를 빼앗기고 또 빼앗는 전투가 3일간 치열하게 이어졌고 마침내 미군 특수임무 부대가 지평리에 도착하면서 적군은 퇴각했습니다. 당시 지평리를 포위했던 중공군 3개 사단을 1개 연대가 막아낼 수 있었던 요인은 미군과 프랑스군의 치열한 저항과 전술, 후방의 화력 지원 등으로 풀이됩니다. 또한 연합군 23연대의 연대장 프리먼 대령은 전투 중 종아리 관통상을 입었음에도 부대의 지휘권을 넘기지 않고 끝까지 싸웠으며 프랑스 외인 대대를 지휘했던 몽끌레아는 이미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군의 영웅으로 불렸을 만큼 이름난 군인이었습니다. 연합군이 참전한 지평리 전투였지만 한국군이 전무하진 않았습니다. 카투사 80명과 일반병 100명 등 180명의 한국군이 프랑스 대대에 섞여 싸웠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지평 사거리에서 400m 떨어진 곳에 지평리 전투를 기리는 비석이 세워져 있습니다. 화강암 계단 위에 편평하게 조성한 대지 위에는 총 세 개의 비석이 자리합니다. 앞쪽 두 개 중 왼쪽은 프랑스군을 향한 ‘지평리전투UN(프랑스) 군참전충혼비’, 오른쪽은 미국군을 향한 ‘지평리전투UN(미국) 군전승충혼비’입니다. 가운데 안쪽에 세워진 비석이 지평리지구 전투전적비입니다. 1957년 7월 국군 제5사단이 건립했으며 중공군 방어전투의 공적을 기념하고 전사한 장병의 영령을 추모하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더 많은 경기도 근대유산이 궁금하다면?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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