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백신] 일상이 삶이다: 외상 후 성장을 위하여

<예술가의 코로나 처방전>6_명지병원예술치유센터장 이소영

<예술가의 코로나 처방전>은 유례없는 팬데믹(pandemic) 시대, 어려움에 처한 문화예술계를 묵묵히 지켜온 작가들의 눈으로 코로나19를 이야기하는 프로젝트입니다. 17명의 예술가가 바라본 코로나19란 무엇이며,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예술가의 코로나 처방전>을 통해 일상 속에 새겨진 코로나19의 아픈 흔적을 함께 나누고 치유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며, 나아가 상처를 회복하고 포스트코로나를 향해 한 발짝 성장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예술가의 코로나 처방전>은 7월 24일(금)부터 8월 28일(금)까지 매주 월,수,금요일 지지씨(ggc.ggcf.kr)에서 만나 볼 수 있습니다.



일상이 삶이다: 외상 후 성장을 위하여



이소영(음악평론가, 명지병원예술치유센터장)



코로나19 확진자가 국내에 처음 발생한 이후 약 5개월 반이 지났다. 두세 달 전만 해도 초기 코로나 충격을 흡수하고 다시 일상으로 복귀할 것이라는 희망이 있었다. 그러나 여름이 와도 확진자가 줄기는커녕 다시 증가 추세로 돌아섰다. 전문가들도 가을에 더 큰 2차 팬데믹이 온다고 한다. 전 세계가 이제 포스트 코로나가 아닌 ‘ing코로나’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이렇듯 코로나 장기화로 마음고생이 심해지면서 ‘코로나 블루’와 ‘마음 방역’에 대한 관심도 높다. ‘코로나 블루(corona blue)’란 ‘코로나 19’와 우울감을 뜻하는 ‘블루(blue)’가 합쳐진 신조어다. 코로나 감염 위험의 우려와 함께 ‘사회적 거리두기’와 ‘비대면’ 상황으로 인한 스트레스 증가, 경제적 위기 및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등이 코로나 블루를 유발한다.


공연예술가들도 코로나 블루에서 자유롭지 않다. 오히려 이들이 겪는 마음고생은 다른 업종에 비해서 더 심각해 보인다. 코로나 이전 대비 95% 이상의 공연이 취소 혹은 연기되었고 이와 함께 수입 감소의 직격탄도 맞았다고 한다. 장기적으로는 현장성과 관객과의 직접적인 소통성이 중요한 공연예술의 존재 방식에 대한 근본적 변화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영세한 자본과 기술을 바탕으로 온라인 중계 시장에서 무한 경쟁에 돌입해야 하는 대부분의 민간 예술인들은 더욱 피해가 클 것으로 예상된다. 문화예술계의 생태계가 파괴될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실정이다. 삶의 터전이자 생존의 통로였던 연주회나 연행이 뿌리째 뽑히는 현실 앞에서 문화예술인의 소외감, 외로움, 무기력함, 분노 등 부정적 감정의 크기도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안타깝게도 소상공인이나 자영업자 등 타 업종의 직업군에 비해 문화예술계는 국가 경제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상대적으로 사회적인 관심은 덜하다. 공연예술계의 경제적 손실과 수입 감소는 예술가들의 생존이 걸린 매우 엄중한 문제다. 그러나 예술가 대부분이 비조직화된 프리랜서이고 문화예술을 사치품 정도로 생각하는 국민 인식 때문에 정치권이나 언론에서 사회적인 이슈가 되지 못하는 듯하다.




그렇다면 문화예술인의 슬기로운 마음 방역에는 어떤 대처법이 있을까? 트라우마 환자들을 치료해 온 전문가들은 지금의 팬데믹 상황을 이겨내는 마음 처방의 첫째 지침으로 ‘일단 잘 버티자’를 제시한다. 이번 위기를 기회로 전환하겠다든가, 이번 손실을 한 번에 만회하기 위해 어떤 모험을 해보겠다든가 등의 공격적인 도전보다는 일단 ‘잘 버티자’, ‘살아남자’는 보수적인 마음가짐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잘 버틴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어떻게 하면 잘 버티는 걸까? 여기에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 객관적 상황(=코로나)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상황에서 어떤 계획을 세우고 뭔가 새로운 일을 도모하려는 노력은 자칫 헛수고가 되거나 자신만 들볶고 에너지를 소진하기 쉽다. 무기력증에 빠지거나 실패의 책임을 자신에게 돌릴 수도 있다. 이런 세계적 차원의 재앙을 통과해야 하는 불투명한 시기에는 먼저 자신이 훼손되지 않고 이 시간을 잘 견디는 게 필요하다. 자기 보존과 돌봄의 인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물리적으로 이 시간은 누구나 다 통과한다. 그러나 통과한 후 너덜너덜해진 자신의 멘탈을 마주하면 다시 일어서기가 쉽지 않다. 그러므로 자기를 최대한 아끼고 다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일상의 평정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일상이 곧 삶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일상을 지켜낼 것인가? 대부분의 불안은 확실치 않은 미래에 대한 걱정에서 온다. 그러니 우리의 시선을 불투명한 미래에 두기보다는 ‘오늘 하루’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오늘 하루를 잘 버티자는 마음으로 매일매일을 살다 보면 이 어려운 시기도 언젠가는 지나갈 것이다. 오늘 하루를 잘 보낸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규칙적이면서 환기가 되는 좋은 습관을 만드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코로나 초기에 코로나 관련 뉴스만 종일 반복적으로 듣다 보니 스트레스와 노이로제를 더 감당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나 역시 코로나 블루에 빠져 계속 악순환의 연속에 있다는 걸 깨닫고 이를 탈출하기 위한 마음 방역 백신 주사를 스스로 구상해 보았다. 내 마음 방역을 위한 첫걸음은 새로운 취미 리스트를 만드는 것이었다. 자전거 타기, 산책하기, 피아노 치기, 주말에는 집에서 영화 한 편씩 보기, 가족들과 야외에서 캠핑 테이블 놓고 식사하기 등등이 최대한 규칙적이고 반복적인 습관이 되도록 노력했다. 이는 일종의 ‘심리적 안전지대’를 구조화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핵심은 개인마다 자신에게 위로가 될 만한 작은 습관과 취미를 만들어 일상을 풍요롭게 바꾸어 가는 것이다.


그런데 이보다 더 나를 코로라 블루에서 탈출하게 만든 계기는 내 일터에서 생겼다. 내가 일하는 명지병원은 국가지정격리병상을 운영하기 때문에 1월 말 코로나 확진 3번 환자가 입원하면서 코로나 초기부터 비상 상황에 돌입하였다. 환자들의 발길은 뚝 끊겼고 주변 아파트 주민들은 병원 출입구 쪽을 다 봉쇄해 버렸다. 지역 아마추어 음악가들의 재능기부로 매일 1시에 열리던 한낮의 로비음악회도 일거에 중단되었고, 예술치료를 받는 소아 재활 환자들의 예약도 줄줄이 취소되었다. 병원이 마술에 걸려 시간이 일시에 정지된 것 같았다. 당시는 대구에서 확진자가 생기기 전이라 상대적으로 병원 밖 세상은 평화로워 보였다. 병원의 시간과 달리 세상의 시간은 따로 잘 돌아가는 듯했다. 상대적 소외감과 박탈감이 더해져 매일매일의 시간은 더디게 지나가고 비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우리 병원만 코로나 병원으로 낙인찍힌 것 같고 사람들이 나를 꺼리는 것 같아 위축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음악 소리도 끊기고 한산한 병원 로비를 바라보며 골똘히 생각해 보았다. 일상을 다시 살아낼 방법이 없을까. 끊긴 음악 소리가 로비에서 다시 울려 퍼지는 게 필요했다. 지나가는 환자들과 의료진이 잠시 그 음악을 들으며 스스로 살아 있음을, 버티고 있음을 상기하는 계기가 필요했다. 관중을 모으기 어려우면 무관중으로, 대신 핸드폰으로 촬영해서 페이스북에 올리기로 했다. “지역의 봉사단들이 못 들어오는데 누가 연주를 하지? 아, 나라도 피아노를 쳐야겠다.” 이렇게 재개한 로비음악회를 소셜 미디어에 올리면서 후속 릴레이 연주회를 위한 지인들의 동참을 호소했다. 이를 본 많은 이들은 지지와 격려의 마음을 담아 릴레이 음악회에 참여해 주었다. 고립된 섬 같던 우리 병원은 온라인 콘서트를 통해 여전히 세상과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일상을 지켜낸다는 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새삼 깨닫는 계기였다.


나는 지금 병원에서 일하지만 원래 음악을 전공했고 지금도 음악평론을 하고 있기에 내 지인 중 대부분은 음악가들이다. 대개는 프리랜서 음악가인데 지금도 언제 끝날지 모르는 팬데믹의 정지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주변의 문화예술인들이 무대에 서지 못하고 음악회를 하나씩 접는 모습을 옆에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참 고통스럽다. 침몰하는 세월호를 그저 바라만 봐야 하던 무기력한 심정이 다시 되살아나는 듯하다.


그런데, 지인 중 프리랜서 피아니스트가 시도한 마음 방역 이벤트는 이 가운데 빛을 발한다. 이 친구는 학교 강의도, 공적 기금과도 거리가 먼, 완전 프리랜서 뮤지션이다. 때때로 들어오는 피아노 반주와 앙상블 연주 수입 등으로 생활하는데 코로나로 모든 연주 의뢰와 수입이 급감하여 생계가 걱정되는 친구다. 허탈한 웃음으로 차압 딱지를 걱정할 만큼 객관적인 상황은 이미 코로나 초기 때부터 안 좋았다. 코로나가 장기화되면서 누구보다 절망하고 있을 거라는 우려와 달리 그 친구는 예의 씩씩함을 잃지 않고 병원의 로비음악회에도 기꺼이 달려와서 연주해 주었다. 더 나아가 동료 음악가들과 의기투합하여 자기가 주관하는 작은 음악회를 스트리밍 무관중 콘서트 형식으로 열었다. 주변 사람들끼리 서로 품앗이를 하여 영상 촬영과 앙상블 연주, 대관, 뒤풀이 비용이 충당되었다. No 개런티, No 매출의 가난한 음악회였지만 그래도 살아 있다는 것, 음악을 한다는 그 자체에 대해 새삼 감사와 행복을 나눈 이벤트였다. 그 콘서트가 당장 생계비용을 해결해 주진 않을지라도 피아니스트로서의 정체성이 훼손되지 않고 음악가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효과적인 자가 치유법임엔 틀림없다. 또한 고립, 반목, 증오가 세계적인 현상이 되어가는 요즘 시대 약자들끼리의 연대와 지지가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가치를 환기해 주었다. 이런 방법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공연예술 생태계를 재편하는 대안이라거나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전략이라고 섣부른 결론을 내리고 싶지는 않다. 다만 이 어렵고 고통스러운 시기를 버티고 통과했을 때 최대한 자신의 정체성과 존엄성이 훼손되지 않고 살아남는 방법의 하나일 수는 있을 것이다. 일상의 작은 습관을 기르고 타인과 연대하는 매뉴얼을 쌓아가는 것이야말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가 아닌, ‘외상 후 성장’으로 나아가는 지름길 아닐까.



[작가소개 _ 이소영]



작가소개 _ 이소영


피아노를 전공한 뒤 서양음악학과 한국음악학의 경계를 넘나들며 통합적 시각에서 한국음악 전반에 대한 음악학적, 평론적 글쓰기를 지속해왔다. 현재는 명지병원 예술치유센터장으로 있으며, 음악의 치유성과 관련한 새로운 글쓰기 영역과 환우와 일반인을 위한 예술치유페스티벌, 힐링콘서트 등을 기획, 감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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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영 @경기문화재단 @어라운드

    • 2020 ggc special feature <예술가의 코로나 처방전>

      기간/ 2020.07.24(금) ~ 2020.08.28(금)

      참여필진/ 박준, 이억배, 안대근, 사이다, 스튜디오 김가든, 이소영, 김정헌, 계수정, 안상수. 한수희, 원일, 장석, 강은일, 허남웅, 김영화, 김도균, 유열

      책임기획/ 노채린(경기문화재단), 김채은(어라운드)

      기획총괄/ 황록주(경기문화재단 통합홍보팀장)

      제공/ 경기문화재단 지지씨, <예술백신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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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경기문화재단

    자기소개/ 경기 문화예술의 모든 것, 경기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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