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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화재단

작고 단단한 공동체의 힘

<예술가의 코로나 처방전>14_세런디피티78 대표 김영화, 설립자 박영민 부부

<예술가의 코로나 처방전>은 유례없는 팬데믹(pandemic) 시대, 어려움에 처한 문화예술계를 묵묵히 지켜온 작가들의 눈으로 코로나19를 이야기하는 프로젝트입니다. 17명의 예술가가 바라본 코로나19란 무엇이며,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예술가의 코로나 처방전>을 통해 일상 속에 새겨진 코로나19의 아픈 흔적을 함께 나누고 치유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며, 나아가 상처를 회복하고 포스트코로나를 향해 한 발짝 성장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예술가의 코로나 처방전>은 7월 24일(금)부터 8월 28일(금)까지 매주 월,수,금요일 지지씨(ggc.ggcf.kr)에서 만나 볼 수 있습니다.



작고 단단한 공동체의 힘





하루 종일 마스크를 끼고 답답한 숨을 쉰 지도 벌써 반년이 지나간다. 그동안 마스크도, 집콕도 울며 겨자 먹기로 받아들였지만 무엇보다 적응하기 힘들었던 일은 좋아하는 사람들을 마음껏 만날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하나둘 모여 있을 때 발생하는 에너지가 혼자만의 것과는 분명히 다름을 알기에, 우리는 쉽게 공동체를 포기하지 않는다. 조금 작아졌다 해도 오히려 더 단단히 굳혀간다.


에디터 이다은 포토그래퍼 Hae Ran




Q. 숲길을 따라 들어오니 이런 멋진 곳이 있네요. 세런디피티78을 직접 소개해 주세요.

A. 김영화 이곳은 동네 책방 겸 북카페 겸 문화 콘텐츠 플랫폼이에요. ‘세런디피티’는 ‘뜻밖의 행운’이라는 뜻이고, 숫자 78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담겨 있어요. 78은 몇 년 전 이세돌 9단이 알파고와 바둑 대국을 치렀을 때 승리를 거머쥔 수인데, 저희는 이 숫자에 우리가 모르는 행운이 숨어 있다고 여기고 있어요. 78세까지 문화생활을 즐기자는 단순한 의미도 있고요. 또, 경제학자 파레토의 법칙에 따르면 전 세계의 인구 중 앞서가는 사람들이 22프로, 보통의 사람들이 78프로라고 하는데요. 78프로의 사람들에게 문화의 문턱을 낮춰주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어요.




Q. 세런디피티78을 열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나요?

A. 김영화 저는 초등학교에서 사서로 오래 일한 후 은퇴했고, 남편은 지금 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어요. 둘다 책과 멀지 않은 삶을 살았죠. 17년 전쯤 우연히 헬렌 니어링, 스콧 니어링 부부의 《조화로운 삶》이라는 책을 보게 되었어요. 1930년대 미국에 경제 공황이 터지고 부부는 사회가 너무 소비 중심적으로만 흘러간다는 생각에 시골 버몬트주로 이사를 해요. 그곳에서 손수 돌집을 짓고 식물을 심고 키우며 자급자족을 이어가죠. 부부는 텃밭을 일구어 이웃과 나누고, 일하는 이외의 시간에는 여가 생활을 즐기며 살았어요. 그런 생활을 꾸준히 유지한다는 점에 크게 감명받았고, 그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A. 박영민 그동안 저는 무농약, 유기농법, 정확히 말하면 지렁이 농법을 연구해 농사를 지으며 지역 농민들에게 농법을 전파해 왔어요. 이 건물이 있는 땅은 원래 고구마밭이었고, 저 앞에 작은 포도밭도 원래는 더 컸는데 이 공간을 열면서 규모를 줄였죠. 세런디피티78의 키워드 중 하나가 ‘실천’이에요. 서로 실천하고 체험해 본 것을 나누자는 의미죠. 제가 지렁이 농법을 공유했듯, 이곳을 전문가와 일반 소비자를 잇는 플랫폼으로 만들고 싶었어요. 저희는 양쪽을 다 아니까 좀 더 진솔하게 다가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Q. 여주라는 지역을 선택한 이유도 궁금해요.

A. 김영화 남편이 결혼 전에 대덕연구단지에 있었는데, 결혼 후 교수직을 맡으면서 함께 여주에 정착하게 되었어요. 벌써 23년이 됐네요. 저는 처음 왔을 때부터 문화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매번 서울로 가야한다는 점이나 지역 도서관의 모임 활동이 대부분 일회성으로 그치는 게 아쉬웠어요. 어차피 여주에 살 거, 하나의 따뜻한 공동체를 만들어 지속적으로 뭔가를 나누고 어우러지면서 늙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그리고 많이 배우거나 가진 분들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할 기회를 마련하고 싶었어요. 현재 세런디피티78에는 강사료를 받으시는 분이 없어요. 자금이 부족하기도 하지만 퇴직하고 나서 ‘나 이런 거 잘했는데, 다시 해보고 싶다.’고 생각만 하다가 능력을 발휘할 기회가 생기니 더 좋은 마음으로 참여해 주시는 것 같아요.


Q. 코로나19 처방전 키워드로 ‘공동체’를 꼽아주셨어요. 세런디피티78에 공동체와 관련된 변화가 있었나요?

A. 김영화 공동체의 규모가 달라졌어요. 예전에는 한 달에 한 번은 꼭 작가와의 만남을 하려고 노력했는데 코로나19 이후로는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강연을 열기가 힘들어졌죠. 자연스럽게 대규모 행사는 뜸해지고 소모임이 다양해졌어요.


Q. 어떤 모임인가요?

A. 김영화 먼저, 독서모임 ‘북세이’는 책을 통해 성장하고자 하는 5, 60대 여성 분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만들어진 모임이에요. 리더인 제가 직접 뽑은 독서 논제를 토대로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는데, 같은 책이어도 모두 다르게 느끼기 때문에 혼자만의 감동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경험을 할 수 있어요. 지금은 개인적인 사정으로 잠시 쉬는 분들도 있지만 남아있는 분들과 작은 모임으로 이어가는 중이에요. 연령대가 비슷해서 그런지 케미스트리가 아주 좋아요(웃음). 또 하나는 매주 토요일 하는 걷기 모임이에요. 여주에는 여주보, 이포보, 강천보 등 좋은 산책길이 정말 많은데, 저희는 잘 알려진 곳들 말고도 회원분들이 살고 있는 동네를 한 바퀴씩 돌아요. 함께 걷고 난 뒤 김밥, 삶은 달걀, 빵 같은 걸 나눠 먹으면서 사이가 더 돈독해지는 것 같아요. 각자 집에서 꽃을 키우고 돌아가면서 정원을 들러 보는 가드닝 모임도 운영해요. 가드닝을 전혀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서 수업도 하고요. 오시는 분들의 수는 많이 줄고 운영은 힘들어졌지만 얻는 것도 있네요.

A. 박영민 모임을 통해 여주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고 있어요. 가드닝 모임을 하면서 타샤 튜더의 정원처럼 정리가 안 된 듯 하면서도 편안한 정원을 보았는데, 코로나19가 아니었다면 아마 그렇게 아름다운 꽃들이 모여있는 집이 있다는 사실도, 그걸 가꿔온 사람의 존재도 모르고 지나갔을 거예요. 꽃을 사러 시장에 갔을 테니까요.


Q. 코로나19로 인해 개인이 고립되는 게 아니라 또 다른 공동체를 형성하면서 주변을 돌아보고 있네요. 회원분들이 자발적으로 모임을 찾는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세요?

A. 김영화 사람에게는 사회적 욕구가 있잖아요. 예를 들어 꽃을 심었다면, 혼자서 봐도 뿌듯하겠지만 자랑하고 싶은 마음도 들 거예요. 꽃이 피어나기까지 얼마나 정성을 들였는지 공유하고 싶을 거고요. 직접 해본 사람들은 식물이 저절로 자라는 게 아니라는 걸 알거든요. 그 알맹이를 들여다보면서 서로 인정하고 인정받고 싶은 거라고 생각해요. 또, 혼자라면 하기 어려운 일들도 여럿이라면 할 수 있어요. 가끔 걷기 모임을 쉬고 싶을 때도 “대표님, 오늘도 모여야죠!” 하는 문자를 받으면 벌떡 일어나게 돼요. 작은 연대지만 함께하니 힘이 나는 거죠. 요즘은 자기 자신을 중시하는 시대이기 때문에 소모임 특성상 자기 의견을 적극적으로 낼 수 있다는 점도 이유가 될 거예요. 다들 소소하지만 우리끼리 나눌 수 있는 걸 원하는 것 같아요. 덕분에 같은 걸 느끼고 서로 위로해 준다는 느낌을 많이 받고 있어요.

A. 박영민 공동체는 멀리 있는 사람이 아니라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 끊임없이 연관돼요. 우리는 이번 사태를 통해 혼자만 잘한다고 모든 일이 잘되는 건 아니라는 걸 깨달았고, 나 자신도 소중하지만 소중한 사람들이 내 옆에 또 있다는 사실과 그들의 존재를 그대로 인정하게 되었죠. 지금은 자신을 돌아보고 가장 본질적인 게 뭔지, 뭘 해야 하는지, 그리고 주변에서는 뭘 하는지 신경 써야할 때인 것 같아요.




Q. 앞으로 또 어떤 일들을 계획하고 있나요?

A. 박영민 학생들을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그들이 독립적 주체로 살아가기를 바라요. 요즘 글쓰기 능력이 정말 중요하다고 느껴요. 자기 글로 자기 생각을 표현하고 효율적으로 전달하는 방법을 글쓰기 교실을 통해 알려주고 싶어요.

A. 김영화 여주의 유적지 탐방도 꾸준히 해나갈 예정이에요. 작년에 계획한 일들인데 올해 상황 때문에 한 템포 쉬어가고 있거든요. 여주를 좀 더 알리고, 여주의 정서가 묻어나는, 저희들만의 독특한 책방을 만들어나가고 싶어요.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지역 주민들이 더욱 풍부한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게 지자체에서 여러 방면으로 지원이 되었으면 해요. 참, 찾아오시는 분들이 좀더 편안하게 머물도록 야외에 벤치를 마련하고 정원도 더 아름답게 가꾸고 싶어요. 저희는 여름에도 에어컨을 거의 안 켜요. 전기료가 감당이 안 되기도 하지만(웃음) 자연에서 오는 바람이 건강하잖아요. 창문을 열어놓고 보면 전깃줄 하나 없이 초록이 가득한 풍경에 마음이 참 편안해져요. 이곳에 가만히 앉아, 사람이 없을 때는 잠시 마스크를 내려 두기도 하면서 도심지에서 느껴본 적 없는 자연을 느끼시기를 바라요.




[ 인물 소개 ] _ 김영화, 박영민



인물 소개_김영화, 박영민


경기도 여주에서 동네책방 겸 북카페 겸 문화 콘텐츠 플랫폼 ‘세런디피티78’을 운영하며, 다양한 강의와 독서토론, 전시와 같은 문화예술 커뮤니티를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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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formation

  • 2020 ggc special feature <예술가의 코로나 처방전>

    기간/ 2020.07.24(금) ~ 2020.08.28(금)

    참여필진/ 박준, 이억배, 안대근, 사이다, 스튜디오 김가든, 이소영, 김정헌, 계수정, 안상수. 한수희, 원일, 장석, 강은일, 허남웅, 김영화, 김도균, 유열

    책임기획/ 노채린(경기문화재단), 김채은(어라운드)

    기획총괄/ 황록주(경기문화재단 통합홍보팀장)

    제공/ 경기문화재단 지지씨, <예술백신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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