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다순

경기문화재단

시선의 자유, 변화의 기록

<예술가의 코로나 처방전>12_해금연주가 강은일

<예술가의 코로나 처방전>은 유례없는 팬데믹(pandemic) 시대, 어려움에 처한 문화예술계를 묵묵히 지켜온 작가들의 눈으로 코로나19를 이야기하는 프로젝트입니다. 17명의 예술가가 바라본 코로나19란 무엇이며,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예술가의 코로나 처방전>을 통해 일상 속에 새겨진 코로나19의 아픈 흔적을 함께 나누고 치유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며, 나아가 상처를 회복하고 포스트코로나를 향해 한 발짝 성장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예술가의 코로나 처방전>은 7월 24일(금)부터 8월 28일(금)까지 매주 월,수,금요일 지지씨(ggc.ggcf.kr)에서 만나 볼 수 있습니다.



시선의 자유, 변화의 기록




도태되지 않는 마음으로 새로운 오늘을 꿈꾼다. 자신을 관통한 변화를 되새기며 지난날을 헤아리는 시간. 해금으로 어떤 소리를 내고 싶은지 오랫동안 궁리해 왔다. 대중에게 국악의 소리를 가깝게 들려준 사람, 해금 연주자 강은일. 코로나19로 급변하는 사회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도전과 변화를 기록하는 그녀의 삶에서 힌트를 얻어본다.


에디터 김지수 포토그래퍼 Hae Ran




Q. 만나 뵙게 되어서 영광이에요. 요즘 어떻게 지내셨나요?

A. 반가워요. 늘 여느 때와 같은 일상을 보내고 있어요. 해금 연주가로서 작업을 이어가면서 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예술감독으로서 공연 기획도 하고 있죠. 해금플러스의 대표로 여러 가지 협동 작업도 함께 하면서요. 오늘 오후에는 가을에 있을 공연 연습 일정이 있어요.




Q.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네요. 서울돈화문국악단의 예술감독을 맡으신 지 벌써 한 해가 훌쩍 넘었어요. 그동안의 시간을 돌아보면 어떤가요?

A. 짧은 기간 동안 많은 가치를 배웠어요. 사실 처음엔 부담이 크기도 했지만요(웃음). 저는 예술감독 전에 해금 연주가이기 때문에 동시에 모든 일을 해낼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앞섰거든요. 하지만 젊고 다양한 예술가들과 함께 일하고 싶은 마음에 용기를 냈어요. 오랫동안 혼자서 해금을 연구하면서 이런 경험이 필요하다고 느껴왔으니까요. 나와 다른 연주가들이 어떤 생각으로, 또 어떤 목표를 가지고 연주하는지 궁금했죠. 실제로 예술감독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국악 연주가들뿐만 아니라 연출자, 작곡가, 기획자 등 새로운 분야의 예술가들과 부딪치면서 배움의 기회를 얻었어요. 생각의 확장도 이룬 것 같고요.



Q. 올해 2월 성공적으로 마친 공연 <오래된 미래: 내 엄마의 엄마의 엄마의 이야기>의 주제도 인상 깊었어요. 직접 기획, 감독하셨다고요.

A. 맞아요. 우리 딸과 저의 관계, 저와 저희 엄마의 관계에 관한 고민으로 시작했어요. 그러다 더 나아가서 할머니 세대까지 그 창이 넓어졌죠. 결국엔 엄마들의 이야기, 곧 ‘여성’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일제 강점기부터 한국전쟁, 급변하는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오늘까지 그 모든 시대의 시련을 겪으면서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여성의 힘이 얼마나 크고 아름다운가를 말하고 싶었어요. 원초적인 관점에서 여성은 ‘창조자’라는 시선으로 세계의 작곡가들과 곡을 만들고 연주를 구성했어요.



Q. 이 공연은 선생님께서 이끄는 ‘해금플러스’와 함께 했어요. 2000년도부터 함께한 그룹이죠. 그 시작이 궁금해요.

A. 해금플러스는 말 그대로 해금과 다른 장르의 합을 이루는 작업을 하는 연주단이에요. 90년도 당시에 잘 이어가던 악단 생활을 그만두고 솔리스트로 전환하면서 시작하게 됐죠. 악단에 속해 있으면 정기적인 수입도 있고 다른 연주가들과 함께 하기 때문에 의지할 수 있다는 점이 안정적이어서 좋았지만, 해금으로 어떤 소리를 내고 싶은지 고민이 깊었어요. 그때는 정기적인 공연이 잡혀 있는 것도 아니고, 유명한 연주가도 아니었기 때문에 더 많은 노력이 필요했죠. 해금과 또 다른 장르의 조합을 믿고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었어요. 마냥 재미있게 느끼면서 무척 신났던 시절이에요(웃음).




Q. 크로스오버 장르를 시도하던 이야기가 궁금해요. 당시에는 엄청난 이슈였을 것 같아요.

A. 맞아요. 대학을 졸업하고 KBS국악단에 들어갔을 때 처음으로 재즈 피아니스트와 작업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어요. 단순히 즐기자는 마음으로 방송에 출연했는데, 국악계가 발칵 뒤집어졌죠(웃음). 당시 선생님들께 ‘이 신성한 악기로 그런 연주를 하면 안 된다’는 소리까지 들었으니까요. 지금은 너무 당연하게 자유롭게 이루어지고 있지만 그때만 해도 한 번도 없던 새로운 시도였기 때문에 반대 의견이 있었어요. 그래도 대중의 반응은 무척 좋아서, 이후로도 계속 그런 작업을 이어가게 되었죠.



Q. 상반된 반응에 혼란스러우셨을 것 같아요.

A. 무척 당황스럽고 두려웠죠. 절대 하지 말자, 마음먹기도 했어요. 그런데 계속 생각해 보니 의문이 생기더라고요. 해금으로 어떤 음악을 연주해야 하는지, 처음으로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 순간이었어요. 제가 하고 싶은 주체적인 이야기가 무엇인지, 저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음악이 무엇인지 고민을 거듭했죠.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의 혼란이 혼자서 자립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 것 같아요. 후배들이 더 다양한 연주를 할 수 있도록, 길을 넓혔다는 데 자부심을 가지기도 하고요.



Q. 모두가 아니라고 할 때 변화와 새로운 도전을 거듭하셨다는 게 놀라워요.

A. 다른 분야의 예술가들과 소통하고 싶은 마음이 저를 여기까지 이끌어 온 것 같아요. 오래전, 국악을 처음 접했을 때의 순간이 떠오르네요. 고등학교 시절에 국악을 처음 접하면서 무척 놀랐어요. 이렇게 아름다운 음악이 있는지 몰랐거든요(웃음). 그 전까지 7년간 바이올린만 배워서 어릴 땐 서양 음악만 접해왔어요. 그것이 곧 우리의 소리인 줄 알았고요. 국악이 힘을 발휘하지 못하던 시대였으니까요. 더구나 해금은 인기가 없던 악기였거든요. 계속 잡아오던 바이올린을 내려놓고 해금을 택한 순간이 아직도 생생해요. ‘국악을 모르는 내가 해금을 잡고 잘 해내고 말 거야.’ 하며 오기를 부리기도 했어요(웃음). 가까운 친구들에게 이 아름다움을 알려야겠다는 생각뿐이었죠. 그때의 심정이 계속 남아서 새로운 도전을 할 때 두려움을 걷어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Q. 그래서일까요? 코로나19를 말하는 키워드로 ‘변화’를 꼽으셨어요. 선생님께서 해금을 통해 이뤄온 행보와 어우러지는 말이에요.

A. 변화는 저에게 늘 중요한 화두였어요. 해금과 국악을 넘어 ‘예술’로 인한 변화는 저의 내적인 삶에 큰 영향을 줬죠. 온전히 나로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얻으면서요. 지금까지 예술로 마음을 다듬어왔다면 이제 코로나19로 변하고 있는 주변을 가꿔가고 싶어요. 이제 코로나19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기는 어렵게 됐어요. 마냥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에도 한계가 있고요. 관습으로 박힌 삶의 방식을 한 번에 바꿀 수는 없지만, 오늘의 사회 모습을 인정하고 변화가 얼마나 중요한지, 인지하는 자세가 필요해요. 천천히 알아가고 바뀌어 보는 것, 돌아갈 수 없다면 받아들이면서 긍정적인 모습으로 바라보는 시선을 다뤄가야겠죠.


Q. 이제 마지막 질문이에요. 해금 연주가로서 오랜 시간을 보내셨는데요. 훗날 어떤 연주가로 남고 싶나요?

A. 제 소리가 아주 오래도록 남길 바라요. 백 년, 이백 년이 흘러도 기억될 수 있는 음악을 만들고 싶어요. 지금은 누군가 만들어준 곡에 연주를 하고 있지만, 곧 스스로 작곡한 곡을 연주해서 온전히 저를 보여줄 수 있는 공연을 하고 싶어요. 지금은 그런 소리를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계속 고민하는 단계예요. 변화를 계속 이어가면서, 훗날 오래 남을 음악을 완성하고 싶어요.




[ 인물 소개 ] _ 강은일



인물 소개 _ 강은일


1988년 동아국악콩쿠르 일반부 대상, 2005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올해의 예술상’ 등을 수상한 우리나라 대표 해금 연주자이다. 현재는 서울돈화문국악당의 예술 감독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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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부정보

  • 2020 ggc special feature <예술가의 코로나 처방전>

    기간/ 2020.07.24(금) ~ 2020.08.28(금)

    참여필진/ 박준, 이억배, 안대근, 사이다, 스튜디오 김가든, 이소영, 김정헌, 계수정, 안상수. 한수희, 원일, 장석, 강은일, 허남웅, 김영화, 김도균, 유열

    책임기획/ 노채린(경기문화재단), 김채은(어라운드)

    기획총괄/ 황록주(경기문화재단 통합홍보팀장)

    제공/ 경기문화재단 지지씨, <예술백신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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