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다순

걷고쓰는사람

보고 느끼고 배우고 즐기는 모두의 캠퍼스

푸르른 계절, 경기상상캠퍼스를 돌아보며


수원역에서 서쪽으로 2km 떨어진 곳에는 드넓은 캠퍼스가 있다. 수원 시내에도 여러 대학 캠퍼스가 있지만 이곳 캠퍼스는 학생이 아니어도 누구나 드나들 수 있는 캠퍼스다. 이곳에 처음 방문했을 때 정말 대학 교정에 들어온 것 같아서 나는 퍽 오래전 학부생이었던 시절의 기억을 소환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는 그때대로 고민 많던 시절이었지만 세월이 흘러 미화된 캠퍼스의 추억은 푸르기만 하다. 공강 시간을 보내던 동아리방, 신문지 깔고 캔맥주에 새우깡을 먹곤 했던 노천극장, 라면이 맛있었던 매점, 무수히 드나들었던 중앙도서관…. 캠퍼스 규모가 작아서 잔디밭과 연못도 없는 학교를 나왔지만 스물 언저리 대부분의 기억이 캠퍼스라는 공간 안에 남아있다. 독재정권 시절의 캠퍼스, 코로나 시대의 캠퍼스는 또 다른 공간적 의미를 갖겠지만 내가 대학생이던 2000년대 초중반의 캠퍼스는 ‘꿈과 낭만’으로 수식해도 물정 모를 소린 아니었다. 봄꽃보다 아름답고 여름 수목보다 싱그러운 시절이었다.




경기상상캠퍼스를 처음 방문했던 때는 활짝 핀 장미가 한창인 5월이었다. 캠퍼스 너른 잔디밭 위에는 텐트도 쳐져 있고 돗자리도 깔려 있었다. 사람들은 잔디밭 보금자리 위에서 김밥, 치킨도 먹고 음악도 들었다. 가족, 친구, 연인들이 한껏 게으르게 늦은 봄 날씨를 만끽하는 중이었다. 뛰어다니는 아이들과 강아지들만 분주했다. 녹지가 넓은 공원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지만 공원이 아니라 캠퍼스여서 특별한 풍경이었다.




전공 서적을 깔고 앉은 스무 살, 스물한 살은 보이지 않지만, 앞구르기하고 봐도 학교 건물이 분명한 2~3층짜리 건물들이 띄엄띄엄 사이를 두고 자리했고 잘 다듬은 수목이 건물들을 에워싸고 있었다. 건물은 모두 개방되어 있고 카페와 햄버거를 파는 식당, 전시실, 강의실, 다목적 공간, 아트숍, 휴게실 등이 자리하고 있었다.




어? 정말 캠퍼스다. 심지어 학생증이 없어도 출입할 수 있고 잔디밭에 돗자리를 펴도 제지하는 사람이 없는 캠퍼스다. 이런 캠퍼스라면 마흔 살, 예순 살도 스무 살 그때처럼 학교 다닐 맛 나겠다. 놀러만 다닐 수는 없으니 뭐라도 배우면 더 좋겠는데 마침 무료로 수강할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들도 다양하다. 캘리그라피, 북아트, 사진, 뮤지컬댄스, 가방 만들기, 드로잉, 단청 그리기, 바느질 공예, 미술심리, 도시양봉, 책 만들기에 이르기까지 대부분 예술과 관련한 ‘교양수업’이다. 대학을 다닐 때도 전공과목보다 교양과목 수강이 훨씬 좋았다. 전공보다 부담이 없었고 무엇보다 내가 관심 있는 인문학, 예술 방면의 지식을 쌓는 즐거움이 있었다. 수원에 살았다면 나는 경기상상캠퍼스를 매일 드나드는 열혈 만학도가 되었을 것이다.




이곳은 2003년까지 서울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이하 서울대 농대) 캠퍼스였다. 서울대 농대가 관악캠퍼스로 이전한 이후 부지는 오랫동안 빈 캔버스로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그러다 2013년 산책로를 조성하고 캠퍼스 전체를 시민에게 개방했으며 2015년부터 경기상상캠퍼스를 조성해 이듬해에 ‘개교’했다.




경기도와 경기문화재단은 시민이 누리는 복합문화공간을 목표로 캠퍼스 내 일곱 동의 빈 건물을 개축해 각각을 창작, 교육, 전시, 휴식을 위한 곳으로 탈바꿈시켰다. 농원예학관은 카페, 책놀이터, 공방 등이 들어선 ‘생활 1980’으로, 농공학관은 공유주방과 생활창작공방, 동호회 공간 등이 자리한 ‘생생 1990’으로 임학임산학관 건물은 전시, 라이브러리, 아트숍 등이 들어선 ‘청년 1981’ 등으로 바뀌었다. 건물에 붙은 숫자는 건물 조성 연도를 의미한다. 단순히 시민들이 오가다 들르는 공간만이 아니라 문화 스타트업체, 지역 문화예술인 등 공간을 꾸려나갈 사람들이 입주했고 2019년에는 경기문화재단이 입주하면서 매일 경기상상캠퍼스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나 같은 뜨내기 눈에는 부러운 근무 환경인데 전해 들은 내부 직원 말로는 공군 비행장이 가까워 전투기 소음이 있고 상권이 멀어 음식점, 병원 등 편의시설 이용이 불편하다고 했다. 그래도 좋은 점은 근무지 전체가 공원과 같아서 산책하기 좋고 자투리땅을 텃밭으로 개간해 방울토마토며 가지, 오이 등 채소를 기르고 수확하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했다. 그렇지 않아도 경기상상캠퍼스 후문을 나와 길 건너편의 넓은 밭이 눈길을 끌었다. 밭은 ‘탑동시민농장’으로 시민들에게 개방해 1,800개 텃밭으로 나눈 일종의 주말농장이다. 수원시가 수원시민에만 텃밭을 분양하는데 경쟁이 굉장히 치열하다고 한다. 하긴 인구 100만 명이 넘는 번화한 대도시에서 나만의 텃밭을 임대받는다는 건 큰 특전일 것이다.

이곳은 원래 서울농대의 연습림이었고 농장 동쪽 가장자리에는 서울농대 학생들이 교사로 서둔동 청소년들을 가르쳤던 ‘서둔야학’ 건물이 보존되어있다. 서둔야학은 1965년부터 1983년까지 운영되었는데 당시 학생들과 지역민의 유대관계, 배움의 열망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지척의 시민농장이 영향을 줬는지는 몰라도 수원 일대 엄마들 사이에서 경기상상캠퍼스는 아이들을 데리고 나들이 가기 좋은 곳으로 입소문이 났다. 인프라 대비 많이 알려지지 않아서 아쉬울 정도라고 입을 모은다. 그도 그럴 것이 수원에 사는 사람들조차 경기상상캠퍼스를 잘 모른다. 서울대 농대라고 해야 ‘아!’한다. 어쩌면 ‘캠퍼스’라는 명칭 때문에, 또 서울대 농대로서 인식되어온 시간이 길었기에 여전히 많은 시민이 이곳을 공공장소로 생각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싶다. 수원역에서 가깝긴 해도 도보권이 아니고 상권이 형성된 지역도 아니라서 오며 가며 들를만한 위치가 아닌 이유도 클 것이다. 입소문이 더 많이 났으면 좋겠는 이유는 많다. 전술했듯 시민 대상 교육 프로그램들이 많기도 하거니와 일상이 축제라고 할 만큼 다채로운 공연과 이벤트가 많이 열린다. 또 주중, 주말할 것 없이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생태체험학교, 창작교실도 저렴한 체험비용으로 운영된다.




특히 매년 봄, 여름 토요일에 펼쳐지는 경기상상캠퍼스의 축제 ‘숲속 모두의 포레포레’는 매회 대성황이다. 캠퍼스 곳곳이 작은 콘서트장이 되고 울창한 나무들 사이로 노천시장이 열리며 건물 안에서는 갖가지 소품 만들기 체험, 북토크, 영화감상회가 진행된다. 일반 지역 축제들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요란한 소음이 없고 자연 친화적이며 건물 앞마당마다 삼삼오오 이벤트가 벌어져 과별로 주막이 차려졌던 대학 축제의 추억이 아련하게 떠오른다.


글·사진 여행작가 유승혜


※ 본 글은 '경기그레이트북스' 시리즈 중 제41권 『우리들의 캠퍼스- 경기 남부로 떠나는 시간여행』, <수원시 : 캔버스와 캠퍼스>에서 발췌했습니다.


세부정보

  • 경기상상캠퍼스

    주소/ 경기 수원시 권선구 서둔로 166 경기상상캠퍼스

    운영시간/ 10:00~18:00

    누리집/ sscampu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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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석구석을 걷고 기록하는 일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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