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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화재단

경기를 빛낸 인물, 조광조

경기천년을 빛낸 인물을 만나다

천천천 경기천년 기자단은 2018년은 경기천년의 해를 맞아 천년을 이어온 경기도의 다양한 모습을 담고 미래의 꿈을 함께 공유하기 위해 경기도 내 거주자와 학생, 직장인들로 꾸려진 기자단입니다. 



올해는 경기도가 고려 시대부터 ‘경기’라는 이름으로 불려진지 천년이 되는 해입니다. 그런 긴 역사를 자랑하는 경기도에 수많은 위인이 있었는데요. 오늘은 그중에서도 조광조라는 인물에 대해 알아보려고 합니다.



조광조


정암 조광조(靜庵 趙光祖, 1482~1519년)가 등장한 16세기 초반도 경기천년이라는 역사를 달성한 오늘과 비슷하게 보수와 개혁의 흐름이 서로 충돌한 시대였습니다. 16세기 조선의 역사는 훈구파와 사림파의 정치적 대립 과정에서 사림파 선비들이 화를 입은 사화(士禍)의 시대가 전개되었습니다. 무오년〔1498년(연산군 4년)〕ㆍ갑자년〔1504년(연산군 10년)〕ㆍ기묘년〔1519년(중종 14년)〕ㆍ을사년〔1545년(명종 1년)〕에 일어난 사화는 새로운 이념과 의욕을 갖고 정계에 막 진출한 사림파의 의지를 꺾어 놓았습니다. 그 중에서도 조광조가 정계의 핵심에 등장하여 적극적인 개혁 정치를 실시하다가 훈구파의 반격을 받아 좌초한 기묘사화는 개혁과 보수의 갈림길에 섰던 시대상과 함께 개혁파 선비 조광조의 꿈과 좌절을 선명하게 보여 줍니다.



문정공 조광조 묘 및 신도비


경기도 용인시에 있는 조광조 묘소 (사진 출저 : 이근호)


조광조의 묘는 1999년 10월 18일 경기도 기념물 제169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상현동 산55-1, 한양 조씨(漢陽趙氏) 묘역에 있습니다. 정경부인(貞敬夫人)으로 추증된 조광조(趙光祖)의 부인 이씨(李氏)와의 어울무덤으로, 봉분은 원형입니다. 봉분의 중앙에는 비좌(碑座)와 월두형(月頭形)의 비신(碑身)으로 조성된 묘표(墓表)가 세워져 있습니다. 비좌(碑座)에는 국화무늬와 복련(覆蓮)무늬가 새겨져 있으며, 묘 입구에는 묘표(墓表)와 같은 양식인 신도비(神道碑)가 세워져 있고 신도비(神道碑)는 1585년(선조 18)에 건립되었으며 높이 311cm 정도입니다. 앞면에는 “문정공정암조선생신도비명(文貞公靜庵趙先生神道碑銘)”이라는 구문이 새겨져 있다고 합니다.



정암 조광조와 학포 양팽손을 배향하는 심곡서원


심곡서원 전경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심곡로 16-9 심곡서원유형문화재 7호입니다. 심곡서원은 조선 중기 중종 대의 학자이며 정치가였던 정암 조광조 (1482∼1519) 선생의 뜻을 기리고 제사 지내기 위해 세운 서원입니다. 선생은 조선 중종(재위 1506∼1544) 때 사림파의 대표로 활약하면서 급진적인 사회개혁정치를 추진하다가 기묘사화로 사약을 받고 죽음을 당하였습니다. 먼 훗날 효종 원년(1650)에 조광조의 학덕과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서원을 설립하였는데, 효종은 ‘심곡’이라는 현판과 토지·노비 등을 하사하여 심곡서원은 사액서원이 되었습니다. 이곳은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 때에도 무사했던 전국 47개 서원·사당중의 하나로서, 선현에 대한 제사와 지방교육을 담당하였습니다.


심곡서원 사당

심곡서원 강당


심곡서원 입구의 홍살문과 외삼문, 강당, 내삼문, 사우(사당)가 거의 일직선으로 배치되어 있습니다. 강당은 서원에서 벌어지는 여러가지 행사를 치르고 유림들이 모여 회의와 학문을 토론하던 장소이며, 각 칸마다 널문을 달아 사면을 전부 열 수 있게 하였습니다. 강당 안에는 숙종의 어제어필이 담긴 현판과 서원의 규약 등이 걸려 있습니다. 사당을 둘러싸고 있는 담장은 다듬지 않은 돌로 쌓았으며, 내삼문은 3칸의 솟을대문 형식입니다. 사당 뒤쪽에는 수령 5백여 년 된 느티나무 가 있는데, 경기도 보호수로 지정되었습니다.


심곡서원 장서각


강당 옆에는 서원의 책과 문서가 보관된 장서각이 있고, 제사를 준비하는 재실이자 배향 객들의 숙소로도 사용된 건물인 고직사가 있습니다. 가장 보존상태가 좋은 건물인 사당은 앞면에 트인 퇴칸이 있으며, 옆면과 뒷면에는 화방벽을 설치하였습니다. 정면 3칸·측면 2칸 크기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입니다. 이곳에는 정암 조광조와 학포 양팽손(문신, 조광조를 위해 여러 차례 상소를 하였음)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고, 매년 음력 2월과 8월의 중정일(中丁 日)에 향사를 올리고 있습니다.


심곡서원중건기(1935년)과 심곡서원도(시기미상) 등의 자료를 참고 하면 심곡서원에는 사당과 동·서재가 최초에 건축되었고, 후에 강당이 세워졌으며, 현재의 연지 인근에 임심루, 산앙재, 문향각 등이 건축되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최초의 동·서재는 현재 강당 뒤편에 있는 치사재와 장서각의 위치로 추정할 수 있으며, 이후 현재 복원되어 있는 위치에 동·서재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결국 심곡서원은 최초 사당을 중심으로 제향기능을 강조하여 지어졌으며, 이후 앞쪽에 강당을 두고 뒤편에 재사를 두는 전당후재의 모습을 보였고, 심곡서원도가 그려진 시기에 앞서서 전재후당의 공간구성을 보이고 있음을 옛 자료를 통해 추정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의 정당과 경기천년 역사 속의 정당은 비슷한 점이 많은 것 같습니다. 정치적 대립을 통해 보다 나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는 점에서 말입니다. 하지만 서로 죽고 죽이는 일은 없어야 할 것입니다. 시대를 앞서나갈 정도로 날카롭고 급진적인 개혁가였던 조광조, 앞으로의 경기천년에 있어서 바른 정치적 대립을 통해 보다 나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으면 좋겠습니다.   이상 경기천년 기자단이었습니다.



세부정보

  • 자료출처/ 네이버백 지식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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