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다순

경기문화재단

님의 침묵 시대와 님을 향한 사랑의 노래

문학-현대-산문 분야 『님의 침묵』 리뷰



경기도와 경기문화재단은 경기천년을 기념하여 ‘새로운 경기’로 나아가기 위해 도민의 생각의 틀을 확장하고 삶의 질 향상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분야별 우수 도서 100선을 선정하였습니다. 전문가들로 구성된 선정위원회의 추천과 심의로 경영경제, 과학, 문학, 문화, 사회, 아동, 인문의 7개 분야에서 200선이 엄선되었고, 10대부터 50대 이상의 경기도민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설문조사를 통해 최종 100선이 선정되었습니다. 선정된 책들은 도민 누구나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는 것들로, 읽을거리를 찾는 도민에게 실질적 가이드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최종 선정된 경기그레이트북스 100선은 경기문화재단 홈페이지(www.ggcf.kr), 경기천년 홈페이지(ggma.ggcf.kr) 및 경기문화콘텐츠플랫폼 GGC(ggc.ggcf.kr)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님의 침묵』

한용운 지음, 미래사, 2016







님의 침묵 시대와 님을 향한 사랑의 노래


우찬제 - 서강대 국문학과 교수





1920년대 한국문학은 잃어버린 시대에 대한 상상적 대응의 소산이다. 일제는 1910년 강제로 한국을 합병한 이후 10년 동안 식민지 지배의 기반을 확립했다. 그 결과 1920년대가 되면 정치·경제·사회·문화 모든 면에서 나라 잃은 고통이 구체화됐다. 1920년대 시에서 나라 잃은 설움은 흔히 ‘고향 상실’과 ‘님 상실’로 형상화된다. 그 상실감을 각기 다른 측면에서 부각시킨 대표적인 시인이 김소월과 한용운이다.


그중 만해 한용운은 한국 근대시사를 빛낸 서정시인이자 독립운동가요, 불교의 선사였다. 만해의 시는 어려운 시대를 견디는 서정시의 역설적 힘과 지혜를 보여준다. 한국문학의 전통 속에서 불교적 명상과 형이상학적 인식의 자리를 새롭게 찾아준 시인이 바로 한용운이다. 불교사상과 민족, 민주사상 그리고 문학사상이 그의 시적 영혼 안에서 미학적으로 빚어졌다. 그는 식민지라는 잃어버린 시대 혹은 그의 비유대로라면 침묵의 시대에 저항의 노래를 불렀다. 님이 침묵하던 시대를 살면서 님의 부활에 대한 강력한 의지로 님을 위한 사랑의 노래를 불렀던 그는 식민지 시대에 민족의 정신을 지킨 민족시인이다. 시집 󰡔님의 침묵󰡕은 불교를 통해 깨달은 정신의 깊이가 감각적 실체로 탁월하게 변용된 시편으로 짜여 있다. 「님의 침묵」 전문을 살펴보자.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숲을 향하여 난 적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서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아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쓰’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은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源泉)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한용운의 대표작 「님의 침묵」은 침묵하는 님의 주위를 휩싸고 돌며 부르는 시적 화자 ‘나’의 ‘사랑의 노래’이다. 님은 갔다.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다. 그런데 화자는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다고 호소한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는 지향 의식 때문이다. 이 믿음과 지향 의식이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도는 사랑의 노래를 가능케 한다. 시인 한용운이 살았던 일제강점기는 모순의 시대요, 침묵의 시대였다. 곧 님이 침묵하는 시대였다. 그러나 침묵한다고 하여 님이 아주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만해는 그 님의 실체를 발견하고, 그를 향한 사랑의 노래를 불렀던 것이다. 즉, 만해는 님이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식민지 시대에 불멸의 민족혼을 깨닫고 이를 고양시켜, 가장 넓고 높으며 깊은 인간성을 절실하게 표현한 시인이다. 또 한국 민족의 전통적인 정신을 현대적으로 재구성하여 가장 빛나는 형상을 창조한 시인이다.


침묵으로 가장 뜨겁게 저항한 시인 한용운에게 ‘님’은 핵심 어휘다. 님의 내포는 심원하다. 조국, 애인, 불교의 진리, 보다 포괄적이고 근본적인 관점에서 생명의 근원적인 가치 등으로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다. 아울러 님은 한용운 시의 창작 원리와 본질을 포함한다. 그러니까 『님의 침묵』은 ‘내가 사랑하고 그도 또한 나를 사랑하는’ 님에 대한 한없는 그리움을 표현한 시집이다. 그런데 그 님은 이별을 통해서 더욱 그리움으로 승화되는 창조적 존재이다. 그래서 만해는 「이별은 미의 창조」라는 시를 노래한다. 이별이 아름다운 것은 본질적인 의미를 새롭게 창조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눈물에서 죽었다가 웃음에서 다시 살아나게” 하는 것이 이별이라고 적는다.


이러한 이별의 노래 속에는, 이별을 계기로 더욱 깊어지는 사랑의 역설적 의미가 들어 있다. 이별을 통해 사랑하는 님의 모습과 님의 본질뿐만 아니라, 사랑하고 사랑받는 나 자신에 대한 인식도 훨씬 깊어진다는 의미다. 「당신을 보았습니다」라는 시는 당신 곧 님을 이별한 상태에서 당하는 능욕의 절정에서, 님을 다시 보게 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다시 본 님을 통해 ‘영원한 사랑’을 확인한 화자는, 새로운 삶과 역사를 시작해야 한다는 강력한 지향 의식을 표출한다. 그러면서 시인은 침묵하는 님을 향해 “오셔요, 당신은 오실 때가 되었어요, 어서 오셔요”라고 강력하게 외친다. 「오셔요」라는 시에서 이렇듯 자신 있게 님을 부르는 나는 이제 님을 맞이할 모든 준비를 다 갖추었다. 님을 침묵케 하는 모든 장애 요소들, 님과 나를 이별케 하는 모든 억압 요소들을 해소할 수 있는 지혜를 깊이 쌓아 두었다. 이는 님이 기쁘게 와서 앉을 수 있는 아름다운 꽃밭이 될 수도 있고, 내게 오는 님이 당할지도 모르는 위험이 있다면, 그것을 막아줄 강철 같은 방패가 될 수도 있다. 심지어 님을 오게 하기 위해서라면, 님을 위해 목숨까지 바치겠다는 의지까지 다진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님을 향한 무한한 사랑을 바치려 한다.


이렇게 한용운의 시는 ‘님과의 사랑―이별―사랑의 회복’ 과정을 변증법적 고양의 단계를 통해 형상화한다. 이는 불교에서 진정한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는 과정과 비슷하다. 요컨대 한용운의 시는 님이 침묵하던 시절에 님을 향해 부른 뜨거운 사랑의 노래다. 또 진정한 깨달음의 한 경지를 보여주는 노래다.







* 함께 읽으면 좋은 책


진달래꽃

김소월 지음, 미래사, 2016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이상화 지음, 미래사, 2003


향수

정지용 지음, 미래사, 2016







우찬제 -  서강대 국문학과 교수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국문학과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했다. 현재 서강대학교 국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팔봉비평문학상, 김환태평론문학상, 소천이헌구비평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저서로 『욕망의 시학』 『상처와 상징』 『불안의 수사학』 『나무의 수사학』 『애도의 심연』과 공역서 『서사학강의』 편저 『오정희 깊이 읽기』, 공편저 『한국문학선집: 소설2』 『4.19와 모더니티』 등이 있다.





세부정보

  • 주최/ 경기도

    주관/ 경기문화재단

    선정위원/ 한기호 위원장(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김종락(대안연구공동체 대표), 장은수(편집문화실험실 대표), 강양구(코리아메디케어 콘텐츠본부장), 김세나(콘텐츠큐레이터)

    진행/ 김세나(콘텐츠큐레이터), 윤가혜(경기문화재단), 김민경(경기문화재단)

    문의/ 문화사업팀 031-231-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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