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다순

걷고쓰는사람

도자기 제작이 취미인 '토야'는 장인이 될 수 있을까?

경기도자미술관과 도총을 둘러보며



이천시립박물관을 나와 서쪽 언덕길을 따라 7분 정도만 걸어 오르면 경기도자미술관이다. 한국도자재단에서 설립한 미술관으로 이천시립박물관의 도자문화역사실이 전반적인 도자 역사와 이천과의 연계성을 짚어준다면 이곳은 세계 도자예술의 흐름과 경향을 보여주는 전시와 예술가들의 창작 레지던시, 도자 체험공간 등으로 이루어진 곳이다.




한국도자재단에서는 이천뿐만 아니라 광주에 경기도자박물관과 분원백자자료관을, 여주에 경기생활도자미술관을 함께 운영하고 있다. 이중 이천의 경기도자미술관이 본관 격으로 규모가 가장 크며 2천여 점의 현대 도자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원래 이곳의 이름은 세라피아였다. 세라믹Ceramic과 유토피아Utopia의 합성어로 전시뿐만 아니라 창작공간, 체험공간으로써 도자를 테마로 한 공원을 지향한다는 의미다. 세라피아라는 이름이 개성 있긴 하지만 경기도자미술관이 좀 더 전문성 있고 공식적인 느낌을 주는 명칭으로 느껴진다. 개명한 이유일 것이다.




홀수 해에 개최되는 세계도자비엔날레가 이곳을 중심으로 펼쳐지며 매년 작가와 주제를 달리한 현대도자 기획전이 열린다. 신진작가 발굴을 목적으로 한 특별전과 레지던시 운영도 이곳 미술관의 주된 역할이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체험전시도 자주 열려서 가족 나들이객의 발걸음도 꾸준히 이어지는 편이다.

미술관의 너른 앞마당에는 도자로 만들어진 마스코트 토야가 서 있다. 반구형 토기 모양을 한 귀여운 얼굴의 토야土也는 만물의 모태이자 도자의 토대인 흙에서 그 이름을 따왔다고 한다. 그 모습이 꽤 낯익은데 그도 그럴 것이 2000년에 탄생한 캐릭터라 어느덧 스무 살을 훌쩍 넘겼다. 이제 어엿한 청년이 된 토야. 한국도자재단 홈페이지 내 토야의 인터뷰에 따르면 토야는 ‘도자기 제작이 취미’라고 한다. 그런 토야가 앞으로 명장의 길을 걸어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도자문화산업이 발전하기 위해선 청년 도예가의 역량 강화가 중요하다고 입을 모으는데 막상 도예 현장에선 돈이 부족해 열악한 상황이라고 하니 어떤 청년이 나서서 도예가의 길을 걸을지 모르겠다.




분명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경기도자미술관 바로 옆에는 ‘세계로 뻗어나가는 우리 도자의 힘!’이라는 현수막을 내건 한국도자재단 도자지원센터가 위치하고 그 옆에는 거대한 흙집처럼 생긴 ‘토락교실’이 있다. 도예가에 대한 행정적 지원은 도자지원센터가, 대중에 대한 도자 홍보는 토락교실이 맡는다.

토락교실에선 일반인을 대상으로 다양한 도예 프로그램이 열리는데 내가 방문했을 때는 ‘1인 가구를 위한 혼밥상 만들기’ 수업이 운영 중이었다. 밥공기, 국대접, 접시 등의 도자기를 직접 만드는 수업으로 가격도 무척 저렴한데다 저녁에 열려 혼자 사는 직장인이 참여하기에 적당하다. 1인 가구가 늘어나고 혼자 먹어도 예쁜 그릇에 맛있게 음식을 차려 먹는 사람들의 세태를 반영한 프로그램명이 눈길을 끈다. 나 역시 당장 등록하고 싶어질 정도였다.

상설 프로그램도 다채롭다. 미니어처 전통도자기 만들기, 나만의 아트토이 만들기, 홈 데코 등 성인과 어린이가 두루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많다. 다만 설봉공원이 번화가에 있지 않고 도자체험 프로그램이 대외적으로 크게 알려진 것도 아니라서 유입되는 인원이 많지는 않은 것 같다. 전통 도자기에 관심을 두는 대중이 많아져야 전통도자문화도 명맥을 잇고 부흥할 수 있기에, 그 속도는 느릴지라도 흥미 위주의 도자체험 프로그램이 지속되고 홍보되어야 마땅하다.




경기도자미술관 뒤편에는 자연 지형의 오름세를 따라 조성된 전통 장작가마가 두 기가 있다. 도예가들이 실제로 이용하는 가마로 주변에 장작이 잔뜩 쌓여 있고 가마 곳곳에 검게 그을렸다. 장장 12시간 동안 불을 지펴 가마 온도를 올리고 매 봉우리(칸 불통)마다 온도를 조절해가며 도자를 굽는다.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몹시 뜨겁고 고된 작업이리라.




가마 뒤에는 도자기 파편이 작은 언덕을 이룬 도총(陶塚)이 있다. 이름 그대로 도자기 무덤이다. 도예 장인들이 범인의 눈에는 멀쩡해 보이는 도자기를 가차 없이 깨뜨려 버리는 모습을 미디어에서 많이 접해 왔다. ‘장인정신’을 묘사하는 상징적인 클리셰이기도 하다. 그런데 막상 도자기 무덤 앞에 서니 새삼 마음이 숙연해진다. 깨지고 흠집 난 파편들이 어지럽게 섞인 도총은 도예가에게는 잔인하리만큼 가시적 형태의 실패다. 그러나 도총 없는 가마 없고 내 작품 버리지 않은 도예가가 없으며 그것은 곧 청자와 백자의 나라로 명성을 드날린 이유였고 현재까지 한국의 도자문화가 계승되어 올 수 있는 정신이었을 것이다.


글·사진 여행작가 유승혜


※ 본 글은 '경기그레이트북스' 시리즈 중 제41권 『우리들의 캠퍼스- 경기 남부로 떠나는 시간여행』, <이천시 : 흙, 물, 불, 혼>에서 발췌했습니다.

세부정보

  • 경기도자미술관

    관람시간/ 10:00~18:00 (월요일 및 도자비엔날레 기간 휴무)

    주소/ 경기 이천시 경충대로2697번길 263

    입장료/ 성인 3,000원

    누리집/ www.gmocc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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