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다순

걷고쓰는사람

권율을 만나러 덕양산에 오르다

행주산성 토성길을 산책하다


행주산성, 동시에 덕양산에 오르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대첩문을 통과한다. 문턱을 넘자마자 권율 장군 동상이 방문객들을 맞이한다. 그의 묘는 양주시 장흥에 있다. 권율은 40세가 되도록 관직에 관심 없이 한량처럼 지냈는데 아버지(영의정을 역임한 권철)의 별세를 계기로 깨달음을 얻고 46세가 되어서야 벼슬길에 올랐다. 조선시대 평균 수명이 40세 전후임을 감안하면 많이 늦은 출세다. 그러나 나이 쉰 살이 훌쩍 넘어 이치 전투, 독산성 전투, 그리고 행주대첩까지 승리로 이끈 명장으로 성장했다. 오늘날까지 그의 명성이 이어지고 있으니 사람마다 다 ‘때’가 다름을 실감한다.



충장사


권율 장군의 동상을 지나 포장도로를 따라 5분쯤 올라가면 장군의 영정을 모신 사당 충장사와 옛 토성을 복원한 토성길이 나온다. 토성길을 따라 걸어도, 원래 걷던 포장도로를 따라 걸어도 결국 행주대첩비가 세워진 정상에서 만난다. 토성길로 올라갔다가 포장도로로 내려오거나 그 반대로 오르내리면 산성지구 한 바퀴를 돌아보는 셈이다. 토성길은 계단이 많고 거리도 좀 더 길다. 그래서 하산길로 택하는 사람이 더 많다. ‘토성’에서 짐작할 수 있듯 행주산성은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한참 전인 삼국시대에 축성된 것으로 추측되는 성이다. 고대에는 토성을 많이 쌓았고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도 건설이 빠르고 비용이 적게 들어 토성을 종종 쌓기도 했다. 우리나라에 잘 알려진 토성으로는 몽촌토성, 풍납토성, 처인성 등이 있는데 이들과 달리 행주산성은 행주대첩의 명성 때문에 당연히 석성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행주산성 토성길


현재 행주산성의 토성은 총 길이 1km 중 415m가 복원되었으며 토성길이 바로 이 구간이다. 석축이 없다보니 그냥 자연적인 언덕길처럼 보인다. 곳곳에 벤치가 있는 아늑한 숲길로 여유롭게 산책하기 좋다. 그런데 엄밀히 말해 행주산성은 토성과 석성의 결합형 산성이다. 2017년, 오랫동안 토성으로 알려졌던 행주산성의 정상 부근에서 석성이 발견된 것이다. 조사 결과 산 정상부에 450m의 석성이 축성되었음이 밝혀졌다.



덕양상 정상 부근 계단길 


토성길이 정상에 다다르면 계단이 많고 가파르다. 그래도 15분이면 충분하다. 계단을 다 올라 거친 숨을 돌리면 평평한 광장이 등장한다. 덕양산의 정상이다. 다른 산들과 많이 다른 정상 풍경이다. 정면에 수직으로 솟은 탑은 1970년에 세운 신 행주대첩비이고 옛 행주대첩비는 그 앞 비각 안에 경기도문화재 제74호로 보호받고 있다. 행주대첩의 승전 과정을 조선의 문장가로 유명한 최립이 짓고 명필 한석봉이 썼다는데 현재는 마모가 되어 식별이 어렵다. 큰 기와지붕 건물은 행주대첩 영상을 상영하는 충의정이다. 그러나 정상에 올라온 이들에게는 이 건축물들보다 사방으로 펼쳐진 자연과 도시 풍광에 먼저 시선이 꽂힌다. 20분 만에 정상에 올라와서 200분을 전망 보는 데 쓴대도 그 시간이 아깝지 않을 만큼 근사하다.



1970년에 세운 신행주대첩비


비록 산의 해발은 낮아도 서울, 고양, 김포, 파주가 발아래에 있다. 남산타워, 63빌딩, 일산 킨텍스, 김포대교, 삼학산이 다 보인다. 그중 가장 웅장한 풍경은 역시 북한산이다. 백운대, 노적봉, 만경대가 선명하고 여러 능선으로 이루어진 바위산의 위엄이 제대로 느껴진다.



행주산성에서 바라본 북한산


행주산성과 북한산을 무대로 한 재미있는 이야기도 하나 전해져온다. 일명 ‘밥할머니’ 전설이다. 권율 장군과 그의 군사들이 행주산성에 주둔하고 왜적들이 산성으로 향할 때 이야기다. 북한산 부근에 살던 문씨 집안의 며느리 해주 오씨는 북한산 봉우리를 볏짚으로 감싸 군량미를 쌓은 노적가리처럼 위장했다. 또 냇물에 석회가루를 풀어 흘려보낸 후 왜군들에게 조선군 주둔지에는 군량미가 산더미처럼 쌓여있고 뿌연 물은 군사 수만 명의 군량미를 씻은 물이라고 소문을 냈다. 이에 왜적들이 크게 겁을 먹어 기세가 위축되었으며 이후 쌀가마니로 위장한 봉우리를 노적봉으로 부르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뿐만 아니라 해주 오씨는 행주대첩에 여성의병장으로 참전해 행주치마에 돌을 주워 나르게 하고 부상병을 돌보았다고 한다. 이러한 공적으로 인조는 그를 정경부인으로 봉했고 후세 사람들이 북한산 창릉 쪽에 밥할머니의 석상과 비석을 세웠다. 머리 부분이 소실된 밥할머니석상(고양동산동약사여래상)은 경기도 향토문화재 제46호로도 지정되어 있다.



정자 덕양정과 빨간 아치가 돋보이는 방화대교 


자유로 위를 달리는 차량 소음이 꽤나 요란하다. 주변에 도로가 없었던 과거, 덕양산의 분위기는 어떠했을지 궁금하기도 하다. 그러나 강과 산, 빌딩들이 만들어낸 광활한 경치 덕에 정상에 머무는 시간은 무한정 늘어진다. 사방이 그림 같은 정상에서도 유명한 포토 스팟은 있다. 해질 무렵이면 신 행주대첩비 앞에 삼각대를 세우고 카메라를 고정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이들의 프레임 안에는 한강을 향해 세워진 정자 덕양정과 그 뒤로 빨간 아치가 돋보이는 방화대교가 있다. 다리 건너 방화동의 빌딩들에 하나 둘 불이 켜지고 방화대교에도 조명이 들어오면 셔터를 누르는 손길이 바빠진다. 덕양정과 방화대교가 겹쳐 있는 풍경은 행주산성을 홍보할 때 반드시 쓰이는 이미지다. 이 역시 묘하게 아름다운 신구(新舊)의 조화다.


글·사진 여행작가 유승혜


※ 본 글은 '경기그레이트북스' 시리즈 중 제45권 『50만 살의 청춘 - 경기 북부로 떠나는 시간여행』, <고양시 : 경계에 서서>에서 발췌했습니다.

글쓴이
걷고쓰는사람
자기소개
경기도 구석구석을 걷고 기록하는 일을 합니다.
누리집
https://www.youtube.com/@yooseunghy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