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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화재단

경기도 북부 중심도시, 사라진 유산과 남겨진 유산

조선후기부터 일제강점기와 해방기, 분단과 전쟁, 그리고 산업화와 민주화 과정까지 격동의 시기를 보낸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역사 속에서 서울과 인접했던 경기도 또한 많은 근대문화유산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경기천년 근대문화 유산답사'에서는 경기도에 있는 근대문화를 소개하고 경기도의 역사와 정체성, 문화유산의 가치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경기도 북부 중심도시 의정부시


의정부시는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가 정사를 의논하며 의결하던 곳으로 조선 시대 관청 의정부에서 유래한 지명이다. 조선 시대에 양주군이었으며, 일제강점기 중반까지 양주면이었으나 1942년에 의정부 읍이 되었다. 경기 북부에서 가장 먼저 도시화가 진행되어, 1963년에 의정부시로 승격하였다. 경기 북부에서 유일하였다.



의정부제일시장


의정부는 북한 접경지역인 동두천, 철원, 포천, 연천으로 가는 길목이다. 한국 전쟁 때 전투가 치열했고 전쟁을 거치며 군사도시로 성장했다. 서울로 출퇴근하는 위성도시 기능이 커져 아파트가 즐비하지만, 여전히 인근에서 교통·산업·경제·문화·교육 등으로 번창한 도시이다. 의정부에 사람이 모이는 것은 1911년 10월 15일에 용산역에서 의정부역 구간으로 경원선을 개통하였고, 더불어 철원까지 연결된 국도 3호선과 경원선이 나란하며, 수도권 전철 1호선도 다녀 교통이 좋기 때문이다.


의정부시에서 구시가지는 의정부역 동쪽의 번화가이다. 의정부시를 지도로 보면, 개발된 곳과 녹지로 남은 곳으로 구분된다. 신시가지는 격자 도로가 대부분이지만, 방사형 도로나 구부러진 길이 있는 곳이 구시가지이다. 의정부 제일시장 부근을 말한다. 의정부역 광장에서 파발교차로에 이르는 행복로와 역광장에서 송산교차로에 이르는 시민로를 구부러진 활 모양으로 생긴 태평로가 에워싼 삼각형 대지의 주변이다. 중앙에 의정부 제일시장이 있고, 태평로 건너 중랑천 언저리에 의정부 청과채소시장이 있다. 행복로는 의정부 젊음의 거리라 부르며 보행자 도로와 거리광장을 조성했다. 행복로 중앙에 화단이나 바닥분수를 만들어 시민 공간이 되었고, 곳곳에 무대를 설치하여 공연한다. 이에 비해 시민로는 버스가 다니며 교통을 책임진다. 시장과 길은 의정부 구시가지의 터줏대감들이다.


의정부제일시장 아케이드


많은 도시에 대형마트가 생겨 전통시장이 힘들어하지만, 의정부 제일시장은 번성 중이다. 분식집, 떡집, 닭집, 채소가게, 잡화가게, 건어물 가게 등이 즐비하고, 요사이 보기 힘든 한복집과 수입품 가게도 눈에 띈다. 마치 남대문시장, 동대문시장, 광장시장 등이 모여있는 기분이다. 경기 북부 최대 전통시장이라는 명성에 걸맞다. 의정부 제일시장의 유래를 찾아보면, 이곳이 근대문화유산이며 소시민의 생활을 보여주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는 한국전쟁 이후 피란민이 모여 노점을 시작한 것이 출발점이다. 이후 도시개발계획에 따라 1954년에 상인이 시장건립위원회를 구성하고, 제1공설시장조합을 창설하였다. 1976년 사단법인 의정부 제일시장 번영회에서 현대 시장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300여 명의 상인이 15,110㎡의 대지를 의정부시에서 사들여 상가건축물을 건립하였다. 상가동은 가동, 나동, 다동, 라동이 있다. 가동은 신발, 주방용품, 나동은 수입 용품과 잡화, 다동은 채소와 과일, 라동은 한복과 의류, 원단 등이 모여있다. 골목이나 상가 건물 한 개 동이 발전하여 영역을 넓혀나간 재래시장과 다른 점이다.


그러나 상가건축물을 완성한 초반은 힘들었다. 각 건물의 외곽 점포와 노점은 사람이 모이지만 상가 내부로 유입이 되지 않았다. 상가 안쪽 십자로 내부에 점포가 고전하며 겨우 자리를 잡았지만, 2000년대 초반은 최악이었다. 가까운 거리에 대형마트가 생기면서 2005년에는 시장 내 빈 점포가 20%를 넘었다. 2004년부터 2년여에 걸쳐 시설을 바꿔나갔다. 먼저 십자로 중앙은 깔끔한 아케이드를 설치하고, 바닥은 하수시설을 손봐서 구정물이 고이지 않게 했다. 시설 변화뿐 아니라 점포 좌판도 정리하여 보행자 통로를 확보하고 공간 재구성도 시도하였다. 2005년은 주변 도로에 노점을 시장 안 아케이드로 옮겼다. 4개 동의 상가건축물의 중심인 중앙 십자로에서 노점이 어우러져 서로 상생한다. 이 노점은 아케이드 천장이 설치되어 외부라 느껴지지 않는다. 4개 동의 42개소 출입구에 문을 설치하여 추위와 더위를 피했다. 십자로는 3m 통로를 확보했으며, 점포마다 가스를 공급하는 방식이 아닌 대형 가스시설을 설치하여 개별점포로 공급하는 안전한 시스템을 갖추었다. 외곽 점포도 간판을 정비하고, 점차 정돈된 시장으로 탈바꿈하였다. 십자로 아케이드에 들어서면, 깔끔한 점포가 모여 있어 장보기가 편리하다. 특히 주차장 접근성도 좋고 승강기가 4개소가 있어 장본 짐을 옮기기도 편하며 대형마트와 비슷하다. 의정부 제일시장은 지하 1층, 지상 4층으로 점포 수가 650개 정도 되는 전통시장으로 성장했으며, 전국적으로 모범이 되는 시장으로 끊임없이 변화하며 진화하는 중이다.


의정부청과채소시장


의정부 제일시장에서 태평로를 건너면 의정부 청과채소시장이 있다. 청과채소시장은 1973년에 시작되었다. 의정부시가 시장정비사업을 시행하여 의정부 제일시장에서 청과와 채소를 팔던 노점을 중랑천 언저리로 옮겨 조성한 것이다. 대지면적 4,289㎡이며 110여 개의 점포가 번성하였으나, 이곳도 2000년대에 힘들게 되었다. 바로 옆에 의정부 제일시장과 마찬가지였다. 역시 2005년에 아케이드를 설치하고, 2009년에 간판정비와 소방 시설을 하였으며 도매 위주에서 도소매 시장으로 바뀌었으나, 아직도 자정부터 오전까지 활발하고 그 외에는 한가하다.


의정부제일시장북쪽 상가 (출처 경기도 근대문화유산 조사 및 목록화 보고서(2004년))


시장을 중심으로 상업이 성장하면서 생겨난 지역에 근대문화유산이 꽤 남아있다. 10여 년 전에 시행한 경기도 근대문화유산 조사 및 목록화보고서 중에서 의정부시 자료를 보고 찾아간 의정부 제일시장 북쪽에 상가 건물이 눈에 띈다. 한국전쟁 이후 전후 복구과정인 1958년에 건립하였으며, 상가주택의 초기 형태이다. 건립 당시 3개 층이었으며 1층과 2층은 철근콘크리트이지만, 3층에 주택은 벽돌을 쌓은 조적조이다. 지금은 1개 층을 조립식 자재로 증축하여 4개 층 규모이고, 외관 재료는 알루미늄 패널로 바꾸었다. 이전에 외관은 근대문화 유산의 가치가 충분했다. 2층 창호와 반복되는 수직 분할 선의 리듬감이 훌륭했으며, 건물 모서리를 곡면 처리하여 모더니즘 건축의 미학을 갖추었었다. 이제 그 모습을 찾을 수 없는 일이 안타깝다.


의정부 구시가지도 변화에 맞설 수 없었을 것이다, 없어진 건물도 있다. 1953년에 미군 지원으로 전몰장병을 기념하며 건립한 의정부감리교회(옛 미1 군단 기념예배당)는 석조교회의 모습이 좋았으나. 2008년에 새 건축물로 신축했다. 또한, 주한미군 한국인 노동조합(USFK Korean Employees Union)의 건물이 있었다. 주한미군 내 노동조합으로 건물 전면에 조각이 다소 선동적으로 의정부에서 주한미군에 근무하는 한국인 근로자의 세력을 알 수 있는 모습이었다. 1964년에 이런 형태를 건축할 수 있었다는 것은 지역적 특징이라 할 수 있다. 큰 의미가 있는 건물로 생각하였으나, 찾기가 어려웠다.


부흥국수


평화로 양측의 옛 건물 중에서 부흥국수 공장이 남아있다. 1962년에 건립한 지상 2층 규모로 조적조이며, 외부 벽에 흰색 타일을 붙였다. 건축 당시부터 최근까지 부흥국수 공장으로 사용하였다. 전후 복구에 흔히 사용하던 부흥이라는 단어가 반갑다. 국수를 널어 말리던 2층은 당시 건축물과 비교하면 창 크기와 면적이 넓은 편이다. 국수가 잘 마르도록 바람이 통하게 하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이제는 매우 낡아서 2층은 비어있고, 비가 새는 지붕은 비닐로 감싸두었다. 아직 남아있는 “50년 전통 부흥국수”라는 간판이 건물의 명맥을 잇고 있을 뿐이다. 평화로 주변의 상가는 대부분 196~70년대 건물이다. 1960년대에 주변이 발전하며 등장한 건물은 규모와 외관이 비슷하고, 건물 구조는 시멘트벽돌로 쌓은 점도 같다. 당시 다른 지역은 시멘트 구하기가 쉽지 않았으나. 의정부 일대는 미군이 많았던 지역 특성으로 시멘트 구하기가 비교적 수월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1960년대 후반부터 철근콘크리트 건물이 등장한다. 1969년에 건립한 철근콘크리트 2층 상가가 남아있다. 건물의 외관으로 조적조 2층과 철근콘크리트조 2층을 구분하는 법은 쉽지 않지만, 입면 창호에 수직선으로 판단할 수도 있다. 조적조는 구조적으로 안정한 내에서 창문 크기를 정할 수 있으므로, 창호와 창호 사이에 벽을 쌓으므로 수직 분할 선이 생긴다. 재료에 특성이 외관 디자인의 특징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 주변에는 한국전쟁 이후에 지어진 한옥군이 있었으며, 문화주택이라 불렸다. 한국전쟁 이후에 한옥이 집단으로 등장했다는 것은 당시 의정부 주거의 대표 유형이 한옥이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10여 년 전 조사에서 한옥 문화주택이 집중적으로 남아있는 것으로 기록하였으나, 대부분 철거되어 다가구주택이 되었다. 서울은 한옥 공급이 뜸해지던 1960년대에 의정부에 등장한 한옥 군집은 눈여겨볼 만했으나, 이제는 한옥 군집의 흔적이 거의 없고, 섬처럼 남은 한 두 채는 관리 상태가 나쁜 편이다.


의정부제2성당 정면


의정부역 서쪽은 1980년대 이후에 발전하였지만, 일찌감치 의정부 제2성당이 있었다. 의정부 제2성당은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99호로 의정부 주교좌성당이라 불리기도 한다. 문화재청 자료에 따르면 이 성당의 전신은 양주군 회천면 덕정리의 덕정리 본당으로 1945년에 의정부리로 옮겨 임시성당과 사제관으로 사용하던 중 한국전쟁으로 소실되었고 1953년에 건립한 성당이 남아있다. 의정부에 주둔하던 미 1군단의 군종 신부와 가톨릭 신자인 군인의 헌금을 지원받아 건립한 석조 성당이다. 지금도 성당 입구에 명판이 남아있다. 1950년대 미군 지원으로 지어진 종교 건축물은 비슷한 형태의 건물이 많다. 누구나 교회나 성당의 건축물로 생각하는 고딕풍이다. 의정부 제2성당은 고딕건축의 특징이 정확하게 나타나지 않지만, 높은 첨탑, 뽀쪽 아치, 스테인드글라스 창 등으로 종교건물의 엄숙함과 위엄을 표현했다. 본당 외에 성당 건물들도 석재로 마감하여 비슷한 분위기이다. 같은 시기에 건립한 사무동과 옛 부속 유치원은 벽돌쌓기 구조이지만 석재로 마감하여 본당과 어우러지도록 했다. 한국전쟁 이후 종교건축물은 석재마감이 꽤 있다. 일제강점기는 붉은 조적조의 종교건축물이 많았으나, 한국전쟁 이후는 석조가 나타난다. 붉은 벽돌을 만드는 것보다 주변 석재를 사용하는 것이 더 저렴했다는 증언이 남아있다. 벽돌을 우리에게 흔한 석재로 대체한 것은 지역 자재로 지역성을 높인 것이라 할 수 있다. 의정부 제2성당은 회천면 덕정리의 돌산에서 채석하였다. 의정부 제2성당에서 양주군 덕정성당까지 16km 정도의 거리이니 덕정성당 주변에서 석재를 채굴했을 것으로 추정해본다.


의정부제2성당 배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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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기천년 근대문화유산 답사

  • 글, 사진/ 이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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