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다순보기

경기문화재연구원

경기지역 고려시대 발굴조사 성과 ④

경기 천년 및 고려 건국 1100주년 기념 학술대회


이 글은 ‘경기 천년 및 고려 건국 천백주년 기념 학술대회’ 자료집에 수록된 발표주제문입니다.


경기지역 고려시대 발굴조사 성과


김영화 | 경기문화재연구원




|목차|

  Ⅰ. 머리말

  Ⅱ. 주요유적

  Ⅲ. 맺음말


Ⅱ. 주요유적


3. 관방유적


관방유적은 단시간 한 시기에 사용되고 폐기되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상황에 따라 수축과 개축을 하면서 오랜 기간 동안 지속적으로 활용되는 특징이 있다. 고려시대 사료에 관련 내용이 기록되어 있으나 발굴조사를 통해 보면 고려시대 초축된 것보다 그 이전 시기에 축조되어 이후 시기인 조선시대까지 지속적으로 사용되고, 삼국시대 성곽으로 알려진 곳의 발굴조사에서 양적인 차이는 있지만 고려시대 유물이 출토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성곽조사는 대부분 지정된 문화재로 학술 및 정비 보존을 위한 목적으로 1990년대 후반부터 발굴조사가 주로 이루어졌으며 수원 고읍성, 용인 처인성, 평택 서부의 관방산성(무성산성·자미산성·비파산성·용성산성·덕목리성), 안성 죽주산성과 망이산성 등이 조사되었다.


용인 처인성


처인성은 『고려사』의 기록에 몽고의 2차 침입(1232년) 때 승려 김윤후가 몽고 장수 살리타를 사살한 전투가 있었던 곳으로 충북대학교 중원문화연구소에서 1999년 시굴조사를 하였다. 조사결과 구릉 경사면의 위쪽에 중심 토루를 축조하고 외면에 보축을 실시한 토축성임이 밝혀졌으며, 남문지, 초석·적심·저장구덩이 등 유구를 성내부에서 확인하였다. 유물은 통일신라양식 암막새와 토기편, 사각편병, 도기편, 기와류, 철기류 등 처인성의 사용 시기를 알려주는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다. 특히 철기류는 철촉·철창·환두대도 등의 무기류와 취사용구인 솥과 솥뚜껑, 농공구인 따비가 출토되어 처인성 전투에서 보다시피 방어용 취락의 성격을 가졌음을 짐작할 수 있다.


안성 망이산성


경기도 안성과 충북 음성에 걸친 망이산에 위치하며, 9부 능선을 따라 테뫼식으로 축조된 토성인 내성과 포곡식 석축산성인 외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6차례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는데 1∼3차는 안성구간, 4∼6차는 음성구간에 해당한다. 서문지 일대 발굴조사에서는 이전 시기에 축조된 성벽과 성문을 고려시대 초기에 성문지를 방어하기기 위한 등성시설과 문 안쪽에 내옹성을 쌓아 개축하였음을 고려 광종의 연호인 ‘준풍4년(峻豊四年, 963)’명 기와가 서문 함몰부 와적층에서 출토됨으로써 확인되었다.


안성 죽주산성


중부내륙 교통의 요지로 고대부터 군사적 요충지이며, 대몽항쟁의 격전지로 고려 고종 23년(1236) 몽고군과의 전투에서 죽주방호 별감 송문주 장군의 전승지로서 알려져 있다. 1970년대 성벽에 대한 조사 없이 대대적인 정비가 이루어져 성벽 붕괴 및 원형의 문제점이 발생됨에 따라 2001년부터 2016년까지 정비와 보수, 복원을 위한 발굴조사를 10차에 걸쳐 실시하였다. 산성은 내성과 중성, 외성의 삼중성으로 증축과 축소했음을 보여준다. 중성은 평면 장방형으로 산성의 중심부에 해당하며 신라시대 축성되어 조선시대까지 사용하였다. 외성은 중성의 북벽 외부에 덧붙여 타원형으로 쌓았는데 고려시대에 축성한 것으로, 내성은 조선시대에 조성한 것으로 보고 있다. 고려시대에 해당하는 유물은 ‘관초(官草)’ 명 기와와 어골문 기와, 청자 등이 수습되었다.


평택 서부 관방산성


고려시대의 관방상황을 파악하기 위하여 서해안 인근 평택지역에 남북으로 이어진 능선상에 일렬로 배치되어 있는 무성산성, 자미산성, 비파산성, 용성리 산성, 덕목리 산성 5개소를 2004년 시굴조사 하였다. 5개소의 성 중 삼국시대에 축성된 자미산성을 제외한 4개소는 통일신라 ∼ 고려시대에 축성되었거나 수축되어 사용된 것으로 축조방법이 대동소이함을 확인하였다. 토성벽은 암반면에 점토를 다져 기저부를 조성하고 그 위로 점토와 모래를 수평으로 차례차례 다져 올려 토루를 만들었는데 비파산성과 덕목리성은 성벽의 기단에 2∼3단 석축을 한 다음 토사를 다졌으나 용성리성은 암반을 삭토한 후 그대로 토사를 다져올린 점이 차이가 있다. 용성리성과 덕목리성에서는 외황과 해자 시설이, 비파산성에서는 내·외벽의 기단부를 보호하기 위한 와적층 시설이 확인되었다. 유물은 고려시대 ∼ 조선시대에 이르는 기와 및 자기와 토기편이 출토되었다. 특히 비파산성에서는 1998년 경기도박물관 지표조사에서 ‘건덕3년(乾德三年, 965)’명 기와가 수습되었고, 시굴조사 결과 와적층에서 ‘거성’이라는 명문기와가 출토되어 이곳이 고려시대 용성현의 치소였음이 밝혀졌으며, 이 명문기와는 산성의 축조시기를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되고 있다. 무성산성, 비파산성, 용성리성, 덕목리성 4개소는 성의 축조방법과 출토유물로 볼 때, 사용 시기는 통일신라 ∼ 고려시대로 추정되며 아산만 일대 해안방어 및 행정치소로서의 기능과 역할을 한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


4. 교통유적


역참, 도로 등으로 구분하고 있으며 이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유적을 확인할 수 없었으나 주요 교통로상에서 확인되는 유적사례로 서울 원지동 원지유적, 안성 보동리 유적이 있다. 원지동 유적은 경부고속도로 확장공사 구간에서 확인되었으며 측면 1칸 건물지 2동과 출입시설, 담장지, 배수로 등이 조사되었고, 유물은 고려시대 연화문과 일휘문 수막새, 어골문 평기와, 청자, 중국자기, 조선시대 수지문 막새, 파문청기와, 분청사기, 백자 등이 출토되었다. 조사지역이 제한적이어서 규모와 성격을 명확하게 판단할 수는 없지만 고려시대 남경 건설에 따른 남북 교통로상에 설치된 원이 조선시대까지 유지된 것과 구전으로 전해 온 원지의 실체를 확인한 점이 중요하다. 보동리 유적에서는 석축과 기단을 갖춘 중심 건물지를 중심으로 남남쪽과 서쪽에 측면 1칸의 행랑형 건물지가 확인되었는데 초석과 적심, 건물지의 배치양상으로 원지일 가능성이 있으며 유물은 연화문 수막새와 어골문가 집선문 평기와가 출토되었다.



‘경기지역 고려시대 발굴조사 성과’ 다음 글 보기



information

  • 경기 천년 및 고려 건국 1100주년 기념 학술대회

    주제/ 중세고고학과 고려시대 경기의 위상 변화

    일시/ 2018.06.15.(금) 13:00 ~ 18:30

    장소/ 경기문화재단 3층 다산홀

글쓴이
경기문화재연구원
자기소개
경기도 문화유산의 가치 발견, 경기문화재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