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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화재연구원

고려시대 경기지역 사원의 성격 ⑥

경기 천년 및 고려 건국 1100주년 기념 학술대회


이 글은 ‘경기 천년 및 고려 건국 천백주년 기념 학술대회’ 자료집에 수록된 발표주제문입니다.


고려시대 경기지역 사원의 성격


이승연 | 경기문화재연구원



|목차|

  Ⅰ. 머리말

  Ⅱ. 고려시대 開京과 京畿지역의 변화

  Ⅲ. 고려시대 開京과 京畿지역 사원의 종파와 기능

  Ⅳ. 맺음말


Ⅲ. 고려시대 開京과 京畿지역 사원의 종파와 기능


4. 院館寺院


고려의 중앙집권적인 역로망은 대체로 성종(981~997)~현종대(1009~1031)에 걸쳐 정비되었는데, 당시에 정비된 역로망은 傳令이나 사신 영송 등 공적 역할이 중심이었으므로 모든 여행자들에게 실질적 여행 편의를 제공하는 데에는 많은 한계가 있었다.(鄭枖根 2008: 32~48) 이에 국가의 부담을 줄이면서 여행자들의 편의를 돕기 위해 제시된 정책이 객관을 갖춘 사원을 건립하고 불교계의 재력과 인력을 동원하여 객관의 운영을 담당하게 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원관사찰들은 현종대에 처음 출현하여 13세기 초까지 활발히 건립ㆍ운영되었는데, 특히 수도 개경 주위 및 남부지방에서 개경으로 향하는 주요 도로들이 만나는 지점에서 확인되고 있다. 몽골항전기 및 원 지배기에는 제대로 운영되지 못하였으나, 공민왕은 육상교통의 발전을 도모하였고, 이 과정에서 역관을 다시 정비, 발전시키려 하였다. 공민왕대 이후의 원관은 이전의 원관사찰과는 달리 佛事의 기능은 없는 순수한 객관의 성격을 띠었다(최연식 2016: 7, 29).


원관사원은 사람이 많이 다니지만, 길이 험하고 별다른 시설이 없어 인적이 드물어 도적과 호랑이의 습격을 받을 수 있는 곳에 건립하였다. 개경에서 남경으로 가는 길(개경-장단-적성-양주-남경, 개경-파주-고양-남경)이 주요 교통로에는 원관사원이 여럿 설치되었음을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다. 원관사원은 일반 사원과는 달리 별도의 객관영역을 구성하였다. 여기에는 사원영역과는 별도로 여행자들이 머무는 客室과 馬廏, 부속시설들을 갖추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발굴유구를 통해 일부 확인할 수 있다.


① 장단 普賢院 (松林縣 境內 普賢館), 임진 普通院, 개경 西普通院


普通院은 본래 중국 당나라 때에 오대산 등의 성지에 승려와 속인을 구별하지 않고 모든 순례자들이 자유롭게 묵고 쉬어갈 수 있도록 설치한 사찰을 가리킨다.


장단 보통원은 임진강 연안에 자리하였을 뿐만 아니라 주요 간선도로상에 위치하여 사람들의 이동이 많은 곳이었다. 이 보현원은 의종이 즐겨 노닐던 곳으로 1170년 8월에 정중부 등의 무인이 난을 일으킨 곳1*이기도 하다. 임진 보통원과 서보통원은 개경 도성 입구의 동서 양쪽 간선도로 상에 설치되어 객관을 갖춘 사원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서보통원의 경우 원 간섭기에 원에 다녀오는 국왕이나 원 고위 관료들이 개성에 들어오기 전에 머무르기도 했다.2*


② 파주 惠陰院[寺]


- 위치 :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석수1동 212-1 일원


혜음원은 개경과 남경 사이를 오가는 사람들을 보호하고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서 1120(예종 15)~1122년(예종 17)에 지어진 원관사원이다. 혜음원의 위치와 창건배경, 공사참여자, 공사과정을 알려주는 「惠陰寺新創記」를 보면 齋祠와 息宿, 廚庫를 갖추었고, 이듬해 인종이 즉위하여 ‘惠陰寺’라 사액하였으며, 이후 임금이 南京 행차시 유숙할 공간이 없다는 이유로 別院을 지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림 9. 파주 혜음원지 배치도 (단국대학교 매장문화재연구소, 2004)

2001~2016년까지 10차에 걸친 발굴조사결과 유적은 두 능선 사이에 형성된 계곡부에 여러 단의 축대를 쌓은 후 좌우로 불전을 중심으로 한 원지영역과 별원(행궁)영역으로 나누어 구성된 것으로 드러났다. 산 능선을 계단식으로 깎고 다져서 모두 11단의 건물터를 조성하였다. 둘레에는 기와를 얹은 담장을 설치하여 외부와 구분하였다. 담장 내부에는 현재까지 조사 결과 총 37동에 달하는 건물을 세웠던 것으로 밝혀졌다. 유구는 건물지, 우물지, 연못지, 배수시설, 담장지가 발굴되었고, 유물은 ‘惠陰院ㆍ惠陰寺’명 기와와 함께 용두, 취두, 귀면와, 막새, 청자, 중국자기, 금동불, 칠기 굽접시 등이 출토되었다.


이중 원지영역은 불전으로 추정되는 3-3건물지를 중심으로 좌측에는 윤장대가 설치된 4-4건물지가, 우측에는 별도의 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3-3건물지의 동쪽과 남쪽에는 정면 2칸마다 화덕시설을 갖춘 측면 1칸의 긴 건물지가 놓여 있다. 원지영역 상단에 배치된 별원(행궁)영역은 정전(정면 3칸, 측면 3칸)과 좌우익사(각 정면 2칸 측면 3칸)로 구성된 중심건물이 자리잡고 있으며, 전면에는 부속건물들이 마당을 둘러싸고 좌우대칭을 이루도록 배치되어 있고, 후면에는 후원이 있다.


혜음사의 창건은 임진도로의 활성화에 따른 유동 인구의 증가에 대응한 것으로 볼 수 있다(정요근 2006: 206~207), 혜음원이 가장 활발히 운영되었던 것은 12세기이며, 14세기 이후에는 대규모 화재로 건물이 무너지고 일부 지역만 복구되어 유지된 것으로 보인다. 이는 1240년대 몽고군의 침입과 연관된 것으로 보이며,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다른 역원들과 같이 국유화되면서 사찰의 기능이 없어진 것으로 보인다(단국대학교 매장문화재연구소, 2006: 376~378).


③ 남경[서울] 三角山 沙峴寺[弘濟院+棲仁館]


- 위치 : 서울시 서대문구 홍제동 (오층석탑 보물 166호 남아있음)


현종대 봉선홍경사가 건립되고 20년이 지난 1045년에 혜소국사 정현(972-1054)이 三角山 沙峴 고갯길에 사찰과 객관의 기능을 하는 沙峴寺를 창건하였다. 이후 왕은 사원과 객관에 각각 ‘弘濟院’과 ‘棲仁館’이라는 이름을 내려주었다.3*



1.『高麗史』 卷第128, 열전 제41, 반역 2, 정중부.

2.『高麗史』 卷第34, 충숙왕1 즉위년 6월.; 고려사 권105, 열전 제18 홍자번.

3.金顯, 「七長寺慧炤國師碑」(10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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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기 천년 및 고려 건국 1100주년 기념 학술대회

    주제/ 중세고고학과 고려시대 경기의 위상 변화

    일시/ 2018.06.15.(토) 13:00 ~ 18:30

    장소/ 경기문화재단 3층 다산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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