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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화재연구원

경기지역 고려시대 발굴조사 성과 ⑥

경기 천년 및 고려 건국 1100주년 기념 학술대회


이 글은 ‘경기 천년 및 고려 건국 천백주년 기념 학술대회’ 자료집에 수록된 발표주제문입니다.


경기지역 고려시대 발굴조사 성과


김영화 | 경기문화재연구원




|목차|

   Ⅰ. 머리말

  Ⅱ. 주요유적

  Ⅲ. 맺음말


Ⅱ. 주요유적


6. 불교유적


고려시대 사지는 유적의 성격을 파악하고 정비와 보존을 위한 학술자료를 확보하기 1990년대 후반부터 발굴조사가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역사적 사실이나 문헌에 근거한 내용을 밝히고 또 고고학적으로 자료를 통해 가람 성격과 변천양상 당시의 생활상과 사회상을 알 수 있다. 대부분 지정된 문화재를 대상으로 연차적으로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학술조사가 진행된 주요유적으로는 강화 선원사지, 여주 고달사지, 안성 봉업사지, 하남 천왕사지, 용인 서봉사지, 수원 창성사지 등이 있다. 개발에 따른 구제조사에서 확인된 주요 유적으로는 여주 원향사지, 오산 갈곶리 유적, 안성 장능리 사지, 안양 안양사지 등이 있다.


강화 선원사지


1976년 동국대학교 지표조사에서 발견하여 1996년부터 2001년까지 4차례에 걸쳐 발굴조사 되었고 2012 ∼ 2013년 주변지역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졌다. 그 결과 독립된 건물지 21개소와 부속 행랑지 7개소, 축대, 배수시설이 확인되었으며, 서쪽구역은 북고남저의 지형 위에 동서로 긴 4개의 층단을 두고 건물지가 대칭되게 배치되어 있다. 제1단에는 중문지와 동서회랑, 제2단에는 동서 건물지, 제3단에는 금당지를 중심으로 좌우에 같은 규모의 건물지가, 제4단에는 중앙 건물지를 두고 좌우에 건물지가 배치되었다. 동쪽구역의 건물지는 남향이며 일렬로 배치되었으며 온돌시설이 확인되어 주거공간일 가능성이 높다. 선원사지 건물지는 유구 간에 시기차를 둔 중복현상이 없음에 주목하여 단기간에 집중 조영된 것으로 보고 있다. 유물은 양질의 자기류, 연화문·당초문·범자문·귀목문 막새, 평기와, 취두·잡상·용두 등 특수기와와 유적의 성격을 말해주는 금동탄생불, 청동나한상, 탄화된 금니사경, 묵서사경 등 다양하게 출토되었다. 발굴조사에서 고려팔만대장경을 판각했던 선원사(禪源寺)터로 볼 수 있는 직접적인 고고학적 자료가 확인되지 않았지만 출토유물의 편년을 고려할 때 선원사의 존속시기인 1245 ∼ 1398년과 관련한 시기에 해당한다.


여주 고달사지


고려시대 대표적인 선종사원으로 사료에 따르면 현욱이 개성연간(836∼840) 혜목산에서 개창하고의 제자 심희와 찬유가 선종사원의 종풍을 유지해 나갔다. 고려 광종대에는 부동사원 왕실의 후원을 받으며 확고한 위상을 정립하였으며 12세기 초 의천에 의해 천태종으로 회합하였다가 의천이 입적하자 다시 산문으로 돌아와 17세기 전반까지 명맥을 유지한 것으로 보인다. 1998년부터 2014년까지 8차에 걸쳐 이루어진 고달사지 발굴조사에서 건물지 31동, 축대 10기, 쌍사자석등지, 탑지 2기, 석조 2기 등 유구를 확인하였고 고달사지 승탑 및 원종대사혜진탑비 주변 일대를 조사하였다. 유구는 통일신라 말 이래로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여러 차례의 중창과 개수를 거치면서 변화를 겪어왔는데 지형을 따라 크게 3단의 축대 위에 법당지와 불전지, 승방지, 욕실, 요사채 등 31동 이르는 건물지가 쌍사자석등지와 탑지, 담장지 등과 어우러져 여러 개의 축과 원을 이루면서 영역을 구성하고 전체적인 질서를 갖추어 나갔다. 이는 사료상에 보이는 의천 입적 후 기록과 17세기 초까지 사원이 존재했던 기록과 상통하는 부분이다. 유물은 연화문·귀목문 수막새와 당초문·인동당초문·초엽문 암막새, 귀면와, ‘고달사’명을 비롯한 여러 점의 명문와, 평기와, 전, 도기, 청자음각국화문 화형잔탁을 비롯한 자기, 중국자기, 청동향로, 청동여래입상 등이 출토되었다. 발굴조사에서 확인된 유구와 유물은 고려시대 선종사원이 갖는 역사적 가치와 특징을 밝혀내는 실마리와 건축적인 부분은 물론 미술사·고고학·불교사 등 다양한 분야에 중요한 연구자료를 제공해 준다.


안성 봉업사지


‘봉업사’는 1966년에 수습된 향로와 반자의 명문을 통해 이름이 알려졌다. 『고려사』에 공민왕 12년(1363년) 왕이 죽주에 묵었으며 봉업사에서 태조의 진전을 알현하였다는 기록으로 태조 왕건의 진전사원으로 주목되었다. 1997년부터 2005년까지 3차례 발굴조사를 통해 통일신라시대 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목탑지를 비롯하여, 금당지, 강당지, 진전지 등 31개소의 건물지와 부속시설을 확인하여 중부지역 최대의 평지가람으로 평가되고 있다. 유물은 기와류, 자기류, 도기류, 금속류, 불상편 등 다양하며 출토량도 상당하다. 특히 명문기와가 단일 유적으로는 최대인 60여종 700여 점이 출토되어 봉업사 이전의 창건, 사찰명, 중창 등에 대한 역사적 내용을 알려준다. 자기류는 고려청자가 다수를 차지하고, 소량의 고려백자와 송대 월주요와 요주요, 정요, 건요에서 생산된 중국자기도 확인된다.


하남 천왕사지


천왕사는 975년(광종 26) 제작된 ‘원종국사혜진탑비’에 태조 왕건의 청에 따라 원종국사 찬유가 머물렀고, 『고려사』와 『고려사절요』에 1366년 천왕사의 사리를 왕륜사에 안치하였다가 되돌아 온 기록이 남아 있으며 국내 최대인 보물 제332호 철조석가여래좌상이 있었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2000년 ∼ 2001년 2차례 시굴조사 후 보호구역으로 설정되었으나 2009년 이후 소규모 개발에 따른 조사가 20여 차례 실시되었다. 조사결과 탑지, 금당지, 강당지, 회랑지 등의 중심 사역과 요사채 등 부속시설, 기와가마, 숯가마 등 생산유구가 확인되었다. 중심사역의 가람배치는 중문(남문)-탑-석등-금당-강당이 일렬로 배치된 1탑 1금당으로 추정되며 탑과 금당의 주위에 회랑을 돌려 부속건물과 구분되게 하였다. 또한 주변에서 확인된 생산유구는 천왕사에 사용되는 기와 등을 수급하기 위해 운영했던 것으로 보인다. 유물은 ‘천왕사’ 명문와, 막새, 평기와, 자기류, 도기류 등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다.


여주 원향사지


원향사는 1999∼2001년도에 중부내륙고속도로 건설에 따른 발굴조사에서 ‘원향사와장승순문(元香寺瓦匠僧順文)’명 기와를 비롯하여 ‘원향사’명 기와가 다수 출토되어 ‘영월 흥녕사 징효대사탑비「寧越 興寧寺 澄曉大師塔碑」’(944년 고려 혜종 원년 건립)에 나오는 ‘음죽현원향사(陰竹縣元香寺)’가 이 유적임이 밝혀지게 되었다. 발굴조사 결과 금당지, 추정 목탑지 등 21기의 건물지가 확인되었는데 8 ∼ 9세기에 작은 규모의 초창 가람이 조성되어 9세기 말 사자산문과 관련된 선종계 사찰로 존속되다가, 11세기에 들어서면서 호족세력의 후원으로 대대적인 중창이 이루어져 문지, 탑지, 불전지와 법당지, 회랑지이 건립되면서 사세가 확장되고, 12세기에 한 차례의 중창 후 13세기에 폐사된 것으로 추정된다. 유물은 소조나한유희좌상, 소조나한상, 소탑, 귀면와, 연목와, 인화문 토기편, 고식기와, 전형적인 신라양식의 막새기와, 명문와, 고려청자 및 고려백자, 중국자기 등을 비롯한 다양한 종류의 공양구, 장엄구, 의식구, 생활용구 등이 출토되었고, 고려전기에 주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금동탄생불과 청동범종이 발견되어 매장문화재로 신고․수습되었다. 건물지의 형태와 다양한 출토유물로 볼 때 상당한 사세와 위엄을 갖춘 고려시대의 사찰로 이 시기 지방사찰과 청자, 기와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그러나 가람 배치의 대략적인 양상은 파악되었지만 도로공사 구간에 한정한 구제발굴이라 원향사의 전모를 밝히지 못하고 추정되는 사역의 절반밖에 조사하지 못한 한계가 있다.


창성사지


진각국사대각원조탑비(보물 제14호)를 통해 진각국사 천희가 1382년 이곳에서 입적하였고 1386년 승탑과 탑비가 조성된 것을 알 수 있다. 2014년부터 2016년까지 발굴조사가 진행되었다. 그 결과 이곳에서 나말여초(9∼10세기), 고려시대(10∼14세기), 14세기∼17세기, 18세기 후반의 문화층과 유물이 확인되었다. 고려시대 창성사의 위상을 알려주는 유물로 석탑부재, 석조불상편, 건축부재, 북송대 중국자기 및 청자양각접시, 창자 투각 돈, 운학문과 모란문 청자 등 최고급 청자류가 출토되었다.


오산 지곶동유적


건물지는 A구역 건물지(선축, 역 ‘ㄱ’자형)와 B구역 건물지(후축, ‘ㅁ’자형)로 구분된다. A구역 건물지는 정면 3칸, 측면 1칸이며 할석으로 기단을 쌓았다. A구역 상부에는 B구역 건물지의 요사체로 보이는 구들유구 2기와 건물지 주변의 부속시설물인 담장, 암거시설, 벽체 건물지 등이 밀집하여 분포하고 있다. B구역 건물지는 불당지 있는 북쪽 건물지를 중심으로 동․서․남쪽에 배치된 형태이고, 정면 3-3-5-3칸, 측면 1칸으로 이루어져 있다. B-1 건물지의 초석은 치석된 단면 철(凸)자형이며, 초석과 마주한 기단석은 다른 것에 비해 크고 편평한 점이 퇴칸의 존재를 추정하게 한다. 중앙부 계단지가 남아있다. B-1 건물지 서측에 치우쳐 불당지가 확인되었는데 동쪽을 향하고 있어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과 비슷한 것으로 판단된다. 불당지 북동쪽에서는 상륜부 등은 불에 녹고 탑신과 기단 일부만 남아 있는 청동제 소탑이 1점 출토되었는데 논산 개태사지 출토품과 비교연구가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유물은 고려시대 이후의 무문, 어골문, 사격자문, 어골복합문 기와와 청자, 고려백자가 출토되었다. 건물지의 조영연대는 출토유물로 보아 선축인 A구역 건물지는 11C 후반에서 12C로, 후축인 B구역 건물지는 12C에서 13C 전반으로 보았다.


안성 장능리사지


건물지 6동과 온돌유구, 적석유구 등이 확인되었다. 금당지로 추정되는 2호 건물지를 중심으로 동쪽에 4호, 서쪽에 5호, 남쪽에 3호 건물지가 조영된 ‘ㅁ’자형 배치이다. 유물은 금동불상과 청동종을 비롯하여 ‘태평흥국칠년임오…’명 기와, 청자, 백자 등 유물이 다수 출토되었다. 유구와 유물로 보아 10세기 중엽에 창건되어 중수와 개축을 하다가 16세기에 폐사된 것으로 추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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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기 천년 및 고려 건국 1100주년 기념 학술대회

    주제/ 중세고고학과 고려시대 경기의 위상 변화

    일시/ 2018.06.15.(금) 13:00 ~ 18:30

    장소/ 경기문화재단 3층 다산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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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화재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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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문화유산의 가치 발견, 경기문화재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