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다순

경기도박물관

검은 베일 '몽수'

몸을 가린 고려 여인의 복식

‘베일’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어떤 사람에게는 생소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결혼식 때 신부가 머리에 쓰는 새하얀 면사포(面紗布)를 연상할 수도 있다.


900년 전 고려시대에도 ‘베일(veil)’이 있었으니 고려인들은 이를 ‘몽수(蒙首)’라 불렀다.


‘몽수’는 서긍(徐兢)이 쓴 ‘고려도경(高麗圖經)’이란 책에 기록되어 있다. 고려도경은 그가 송나라 사절단으로서 1123년 고려에 방문해 한 달 남짓 머무르며 고려의 생활상을 기술한 책이다.


따라서 고려도경에는 고려인들의 복식에 대한 내용도 있는데, 당시 왕과 관리의 관복부터 서민의   옷차림까지 다양하게 묘사했다. 그 중 ‘몽수’는 여성들이 착용하는 것으로 다른 여성복식보다 많이 언급하며 직물의 종류와 대략적인 치수까지 기록했다.


그가 보기에 고려 여인들의 ‘몽수’가 송나라의 복식과 달랐기에 관심이 갔던 것일까.

그의 설명에 따르면, “몽수는 검은색 성근 견직물(皂羅) 3폭에 한 폭의 길이가 8자(현재 치수로 약2.4m)로 이마에서부터 머리를 덮고 나머지는 땅에 끌리게 했다. 또한, 말을 탈 때도 몽수를 쓰는데 그 끝이 말 위를 덮으며 쓰개(笠)을 쓴다. 몽수의 값은 은(白金) 한 근과 맞먹었기에 돈이 없어서  못하는 것이지 착용이 금지된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그런데, 땅에 끌릴 만큼 긴 ‘몽수’가 불편할 법도 한데 고려 여인들은 왜 ‘몽수’를 착용했을까.


이 물음과 관련해 고려도경에 표현된 고려 여인들의 또 다른 모습에 주목해보면, “고려 여인들은 몸매가 드러나지 않도록 넉넉한 바지를 입고, 손톱마저 드러내는 것을 부끄러워해 주머니로 가린다.”고 서술하고 있다.


이와 같은 이유로 ‘몽수’ 역시 몸이 드러나지 않도록 착용했던 것이 아닐까?

아쉽게도 고려 여인이 착용했던 ‘몽수’는 기록만 존재할 뿐 몽수의 형태를 증명할 수 있는 그림이나 실물자료가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았다.


그렇기에 ‘몽수’에 대한 궁금증은 클 수밖에 없다.

이에 경기도박물관에서는 ‘몽수’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도록 고려도경의 기록을 참고하여   ‘몽수’와 함께 900년 전 고려 여인의 복식인 하얀 모시저고리와 황색치마 ‘백저황상(白紵黃裳)’, 옷감 8폭을 이어 만들어 겨드랑이까지 끌어올려 입은 선군(旋裙), 백저포(白紵袍)를 재현했다.


검은 베일 '몽수'를 쓴 900년 전 고려 여인은 <900년 전 코리아를 방문한 이방인-고려도경> 展이    끝나는 10월 21일까지 기획전시실 앞에서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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