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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고쓰는사람

지금 이 순간, 이성산성

백제의 전설과 신라의 흔적


의도치 않게 한여름, 푹푹 찌는 더위 속에 이성산을 찾았다. 그럼에도 산을 오르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주변에 아파트단지나 상권이 없어서 집에서 도보로 가볍게 찾을만한 곳은 아니다. 자동차를 이용해서 일부러 와야 하는 위치인데도 산을 찾는 이유는 정상에 오르면 쉽게 이해된다.


하남시 춘궁동과 초일동, 광암동의 분기점에 자리한 이성산은 남한산성이 있는 청량산에서 북쪽으로 내려오는 줄기와 만나 길게 맥을 이루는 금암산 줄기와 맞닿아 있다. 산 남쪽은 평야를 둘러싼 높은 산들이 있고 북쪽은 작은 언덕만 있어 주변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위치다. 사실 이성산과 이성산성은 동의어나 다름없다. 산성은 산 정상을 빙 둘러 축조되었기 때문에 산성을 오르는 일이 곧 산 정상에 닿는 것과 같다. 이성산은 해발 208m의 야트막한 높이다.



해발 208m로 야트막한 이성산에 축조된 이성산성 


산성의 둘레는 1.9km로 산을 찾는 이들은 보통 산성 남문지 쪽으로 진입해 동문지를 향한다. 산성 안쪽으로 들어오면 몇 갈래로 길이 나뉘기도 하지만 산이 아담해서 금세 이어진다. 주차장에서 남문지로 오르는 약 300m의 산책로는 나무 데크로 오솔길처럼 예쁘장하게 조성되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 옛 성벽의 흔적이 남아있는 완만한 둔덕이 눈앞에 펼쳐지는 데 흡사 누군가의 산소인가 싶기도 한 풍경이다. 하지만 둔덕을 오르면 묘가 아니라 작은 저수지가 있다. 성안에서 물의 확보는 필수적이다. 뜬금없는 저수지의 등장은 실은 산성임을 알리는 자연스러운 표식이다.



이성산성에 축조된 저수지


이성산성에는 2개의 저수지가 있다. 1990년 여름, 두 곳의 저수지 중 상부에 있는 저수지에서 ‘무진년’ 간지와 함께 신라 관직명인 ‘도사’가 적힌 목간이 출토되었다. 출토 위치도 처음 성벽을 쌓았던 지층 위치와 근접해 이성산성은 백제가 아니라 신라가 축조해 방어기지로 쓰였을 것이라는 추측이 사실에 가까워졌다. 발굴하면 할수록 백제 왕자 두 사람, 아마도 비류와 온조가 이 산에 살아서 이성산(二聖山)이라 칭했다는 전설은 무색하리만큼 산의 지층은 신라의 흔적이 짙었다.



직사각형 건물지


첫 저수지를 지나면 ‘12각 건물지’와 ‘8·9각 건물지’로 향하는 두 갈래 길이 나온다. 어느 길을 택해도 결국 다 만나게 되지만 초행이 아닌 이들은 대부분 시야가 시원스레 트인 동문지 방향, 즉 ‘8·9각 건물지’로 향한다. 이성산성이 대중의 주목을 받는 요인 중에는 8~12각의 건물지의 비중이 크다. 직사각형 건물이 아닌 8각, 9각, 12각 형태의 건물은 산성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보기 드문 형태다. 용인 할미산성에서도 8각 건물지가 발견되었는데 이곳 역시 신라가 쌓은 석축산성으로 조사되었다. 그밖에 순천의 검단산성, 경주의 나정 등에서 다각형 평면을 가진 건물터가 발견된 바 있다. 이상의 발견을 토대로 연구자들은 이러한 다각형 건물은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천단, 토지신에 제사를 지내는 사직단으로 추정하고 있다. 즉 고대인들에게 이성산성은 군사시설일 뿐만 아니라 신성한 장소로 여겨졌음을 추측할 수 있다. 산서에서는 쇠, 흙 등으로 만든 말 조각을 부러뜨려 묻은 신앙유적도 발굴됐다.



정교하고 탄탄하게 새워진 성벽


성안에는 80평이 넘는 대형 직사각 건물 6곳, 8각 건물지 1곳, 9각 건물지 2곳, 12각 건물지 1곳 등 20여 개의 건물지가 드러났다. 기단과 주춧돌만 남았지만 그 터만 보더라도 산 위에서 보기 어려운 대규모 단지임을 짐작할 수 있다. 남은 기초로 복원한 건물의 모습을 앞서 들른 하남역사박물관에서 볼 수 있다. 여러 동의 다각형 건물로 이루어진 산성 내 단지 모습이 웅장하고 입체적이어서 궁궐을 보는 듯하다. 한편 성벽은 매우 정교하고 탄탄하게 세워졌다. 직사각형의 돌로 1차 성벽을 쌓고 그 바깥 면에 다시 돌을 쌓았는데 바깥 돌은 옥수수알 모양으로 둥글게 다듬어 쌓아 조형미까지 갖추었다.



동문지에서 바라본 미사동 일대


산성 방문자들의 목적지나 다름없는 동문지로 가면 미사동 일대와 검단산, 동서울과 구리시, 예봉산 등의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200m 정도의 낮은 산이지만 발아래 풍경은 광활하기만 하다. 사람들은 벤치, 돗자리, 흙바닥 위에 앉아있다. 도심과 산을 바라보며 그저 멍을 때리고 있거나 두런두런 수다를 떨거나 음악을 듣는다. 그늘에 가만히 있으니 살랑살랑 시원한 바람도 느껴진다. 이성산 정상에 오른 모두에게 이곳은 열린 거실 같다. 20분 정도 가벼운 산행에 이 정도 보상이라면 일부러 찾아올 만하다. 누군가는 하남에서 ‘미래를 사세요’라고 말했지만 지금 이 순간 이성산성이라는 과거에 오른 사람들은 현재를 산다.


글·사진 여행작가 유승혜


※ 본 글은 '경기그레이트북스' 시리즈 중 제45권 『너머의 도시들- 경기 중부로 떠나는 시간여행』, <하남시 : 은은한 품위>에서 발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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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석구석을 걷고 기록하는 일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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