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다순

경기문화재단

방자유기장 보유자 김문익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10호


『경기도 무형문화재 총람』은 경기문화재단 경기학연구센터에서 2017년 발행한 경기도 지정 무형문화재 종합 안내서입니다. 이 책은 기능보유자와 예능보유자 66명의 삶을 조망하고 보유 종목에 대한 소개와 다양한 단체에서 제공한 진귀한 사진 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지지씨에서는 이 책에 소개된 경기도의 무형문화재를 시리즈로 소개합니다.

『경기도 무형문화재 총람』 전문 보기




오래 전 한국의 가정에서는 유기 즉 놋쇠로 만든 그릇들을 많이 쓰는 편이었다. 식기의 경우 여름에는 백자, 겨울에는 유기를 즐겨 썼으며, 그 밖에 갖가지 유기제품이 세간에도 많이 쓰였다.


방자유기는 구리와 주석을 78:22의 비율로 배합한 놋쇠를 6명이 한 조가 되어 불에 달구고 두드려 견고하게 만들어 낸 우리나라 전통의 그릇으로, 그 제작기술은 쇠를 이용해 각종 용품을 만들던 청동기 시대로 거슬러 올라갈 만큼 가장 오래된 수공예 중 하나다.


방자유기는 불에 녹여낸 합금덩어리를 망치로 두드려서 오직 두들겨서 만들어 내는 유기를 말한다. 원래 방자란 말은 두드리기 전의 합금을 말하 는 것이었는데, 요새는 두드려 만드는 유기를 칭하는 말이 되었다.


주물로 녹여 내면 될텐데 왜 하필 두들겨서 만드는 것일까? 그 이유는 첫째는 징이나 꽹과리와 같은 악기는 주물로 만들면 소리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또 악기는 음을 조율해 주어야 하는데, 음을 맞추기 위해서 두께와 크기를 섬세하게 조정해야 한다.


둘째로 방자 제품은 믿을 수 있기 때문이란다. 방자란 구리와 주석을 72:28로 섞은 합금이다. 이 비율이 0.01%라도 틀리거나 아연이나 다른 합금이 조금만 섞여도 두드리면 터져버린다. 때려서 악기와 그릇을 만들어 내는 것도 신기하지만 우리 조상들이 이런 비율을 어떻게 찾아냈는지도 신기 하기만 할 따름이다.


구리와 주석 외에 유일하게 들어가는 합금이 금과 은이다. 금은 악기에 섞이면 부드럽고 맑은 소리를 낸다. 은이 섞이면 높은 소리를 낸다. 금은 식기에도 들어간다. 금이 섞인 유기는 손으로 만져도 손자국이 나지 않는다고 한다. 고급품일수록 금이 많이 들어간다. 이 공방에서 제작하는 식기 중에 는 밥그릇, 국그릇 한 조에 금7돈이 들어가는 것도 있다.




김문익은 경남 함양군 안의 출신이다. 이 지역은 예로부터 방자 유기, 그 중에서도 꽹과리와 징, 바라 등 악기제작으로 유명하던 고장이다. 60년대 이전만 해도 유기는 대단히 수익성 높은 상품이었다. 얼마나 벌이가 좋았는지 “하루 일하면 식구를 한 달 먹일 수 있다”, “유기장 집 개는 쌀밥도 안먹는다”는 말까지 있었다고 한다.


보수가 좋았던 만큼 기술의 전수과정도 어려워서 보통은 자기 자식 외에 는 절대로 기술을 가르쳐 주기 않았다. 전수과정도 아주 엄격해서 함부로 다른 연장을 만지기만 해도 당장 쫓겨났다고 한다. 김문익은 유기업에 종사하는 고모부와의 인연으로 12살 때 이 길로 입문했다.


방자는 아무리 실력이 뛰어난 사람도 혼자서는 제작할 수 없고 6명이 한 조를 이루어야 한다. 한사람은 화로에 바람을 넣어주는 풍금을 잡고, 한사람은 쇠를 다시 불에 달군다. 한사람이 달군 쇠를 집게로 잡으면서, 세 사람 이 망치를 들고 차례로 내려친다.


어떤 고정된 틀이나 보조기구는 전혀 없다. 아무런 형체를 만들어 낸다. 형이 나오면 식기는 표면을 깍아서 다듬어서 광을 낸다. 꽹과리는 징은 다시 고망치라는 작은 망치로 두드려서 음을 조율한다. 이것을 “소리 잡는다”고 한다.


소리를 고르게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용도에 따라 소리를 만들어 나가는 것 역시 중요하다. 무속용이라고 해도 산에서 사용하는 것과 배에서 사용 하는 것, 보살이 사용하는 것이 다 소리가 다르고, 지방에 따라 또 다르다. 그러므로 사실은 주문을 받으면 합금할 때부터 금은의 배율을 다르게 해야 하고,소리 잡을 때도 원하는 소리를 내주어야 한다.


옛날 악기와 지금 악기의 소리도 다르다. 옛날에는 황소 울음이 산을 넘고 물을 건너간다고 소리가 크고 멀리 퍼져야 했다면 요즘의 현대 악기에 맞추어야 하므로 잡음 없고 부드러운 소리를 선호한단다. 이래 저래 숙련된 장인의 솜씨가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다.




성황을 누리던 유기업은 60년대에 들어 급속히 쇠락했다. 5.16이후 유원 지에서 놀이를 금지하고, 무속인들을 배척하면서 징과 꽹과리의 수요가 현격하게 줄어들었다. 또 하나의 주범은 60-70년대의 한국의 명물이었던 연탄이었다. 원래 유기는 수십 년을 사용해도 색이 변함이 없고 아무리 오래 된 것도 한번 닦아주면 광채가 살아난다고 했던 것인데, 연탄가스가 이 명성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가스에 오염된 유기는 빛을 잃고 시커먼 얼룩을 남기며 변색되어 갔다. 결국 사람들은 연탄가스에도 끄떡없고 값싼 스테인레스 제품으로 눈을 돌렸다.


다행히 80년대 아시안게임, 올림픽을 계기로 국악 붐이 다시 일어나고 최근에는 유기가 독성이 전혀 없고, 건강에 좋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전국의 한식당, 냉면집에서 유기를 찾는 수요가 크게 증가했다. 다만 아쉬운 점이라면 유기의 생산단가가 너무 높다는 것이다.


현재 김문익의 공방은 군포시 대야동에 있다. 7월에 근처에 새로운 공장을 지어 이전하는데, 시에서 전시관을 마련해 주시로 했다. 이를 계기로 김문익은 군포를 유기공업의 새로운 명소로 만들겠다고 한다.



* 영상자료 : 경기학연구센터(http://cfgs.ggcf.kr/)>센터자료>영상자료 '놋쇠에 거는 희망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10호 방자유기장


지정일1992.6.2
전수조교이춘복
정보

국일방자유기(https://www.gukilyugi.co.kr)

특기사항2017년 현재 전수관 건립 중



세부정보

  • 경기도 무형문화재 총람

    발행처/ 경기도문화재단 경기학연구센터

    문의/ 031-231-8576(경기학연구센터 담당 감성태)

    발행일/ 20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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