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다순

경기문화재단

우주 탄생의 비밀, 처음 3분에 있다

과학 분야 『모든 사람을 위한 빅뱅 우주론 강의』 리뷰



경기도와 경기문화재단은 경기천년을 기념하여 ‘새로운 경기’로 나아가기 위해 도민의 생각의 틀을 확장하고 삶의 질 향상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분야별 우수 도서 100선을 선정하였습니다. 전문가들로 구성된 선정위원회의 추천과 심의로 경영경제, 과학, 문학, 문화, 사회, 아동, 인문의 7개 분야에서 200선이 엄선되었고, 10대부터 50대 이상의 경기도민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설문조사를 통해 최종 100선이 선정되었습니다. 선정된 책들은 도민 누구나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는 것들로, 읽을거리를 찾는 도민에게 실질적 가이드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최종 선정된 경기그레이트북스 100선은 경기문화재단 홈페이지(www.ggcf.kr), 경기천년 홈페이지(ggma.ggcf.kr) 및 경기문화콘텐츠플랫폼 GGC(ggc.ggcf.kr)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을 위한 빅뱅 우주론 강의』

이석영 지음, 사이언스북스, 2017









우주 탄생의 비밀, 처음 3분에 있다


이명현 - 과학책방 갈다 대표






어느 시대나 과학적 질문은 늘 궁극적이었고 도전적이었다. 그 근원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에 늘 당대의 최첨단 장비가 동원되었고 역동적이었다. 그런데 과학기술 문명이 발달할수록 과학자 집단의 성취를 일반인들이 공감하고 같이 호흡할 수 있는 여지가 점점 줄어드는 것도 사실이다.


과학자들은 자신의 성취를 보통 전문가 집단 안에서만 공유한다. 과학 분야의 ‘저널’을 통해서 전문적인 언어로 발표한다. 그러니 점점 더 복잡해지고 정교해지는 과학 탐구 업적을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점점 어려워지는 것이다. 이 간극을 메우는 작업이 이른바 ‘과학 대중화’인데, 그 중심에 ‘교양 과학책’이 자리 잡고 있다.


이 글을 쓰면서 서울 시내 대형 서점 한 곳과 인터넷 서점 한 군데를 들러서 천문우주학 교양서들을 관심 있게 살펴보았다. 현대 천문우주학의 화두가 생생하게 담긴 책들이 넘쳐났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현실은 참담했다. 솔직히 고백하면 몇 권을 제외하고 읽을 만한 책을 발견하기 어려웠다.


우선 현대 천문우주학의 쟁점을 현장감 있게 담은 책이 부족했다. 여전히 지난 세기의 이야기를 버젓이 현대적인 논쟁이라며 늘어놓고 있는 책들이 많았다. 심지어 잘못된 내용이 확대 재생산된 듯 여러 책에서 비슷하게 설명되고 있는 경우도 있었다. 과학이라는 탈을 쓴 종교 서적도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모든 사람을 위한 빅뱅 우주론 강의』는 단비와 같은 책이다. 국내 천문학자가 직접 쓴 몇 안 되는 교양 천문우주학책이기도 하거니와 그만큼 희소성의 가치가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지금 인류가 갈릴레오, 뉴턴, 아인슈타인의 시대 이상의 지식 혁명 시대를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주의 기원과 운명이 밝혀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주의 기원과 운명, 이것이야말로 인류 지식의 궁극적 목표가 아닐까?”


“그런 지식의 혁명이 바로 지금 일어나고 있다. 바로 이 순간, 인류 최대의 질문인 우주의 기원과 운명이 밝혀지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50년쯤 지나면 과학 교과서가 말할 것이다. 2010년경에 드디어 인류가 우주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알게 되었다고.”


작가는 현재 진행 중인 천문우주학적 사건의 중요성을 잘 인지하고 있으며, “나는 이 책을 통해서 무한 우주의 심연 속으로 여러분을 초대하고 싶다”면서 독자들과 천문우주에 관해 소통하고 싶은 의지를 분명히 밝혔다.


책은 지은이를 닮았다. 이 책은 지은이만큼이나 스마트한 책이다. 현대 우주론 이야기를 흐트러짐 없이 차분하고 깔끔하게 서술하고 있다. 한편, 서술이 스마트한 만큼 글이 까칠할 수 있는데 책 곳곳에 녹아 있는 작가의 경험담이 이를 상쇄하면서 따뜻한 책이 되었다.


“귀국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신촌 거리를 걷다가 우연히 옥외 광고를 보게 되었는데 거기에 ‘A letter from Abell 1689’라고 씌어 있었다. 그래서 그날 강의에서 학생들에게 ‘아벨1689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은하단인데 도대체 이 광고는 무엇인가요?’라고 물었더니 한 학생이 ‘인기 가수가 부른 노래 제목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얼마나 눈물 나게 반갑던지. 21세기 한국 사람들은 과학에 상당히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구나 하고 감탄했다.”


또 다른 장면에서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어느 날 내가 새로운 분석을 해서 그림 하나를 만들어 옴러 교수에게 보이며 ‘별다른 관계식을 찾을 수가 없는데요’ 했더니 ‘아냐, 관계식이 있어’ 하면서 얼핏 보기에는 무작위 분포처럼 보이는 자료 사이로 굵직한 선을 하나 긋는 것이 아닌가. ‘앗! 이런 돌팔이가 있다니….’ 그런데 훗날, 동일한 천체에 대해 더 나은 관측 자료를 얻고 보니 거짓말처럼 바로 그 관계식이 나타났다. 역시 거장의 눈에는 별게 다 보이나 보다. 안타깝게도 그게 무슨 관계식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야기가 잠시 옆으로 샜다.”


이 책의 가독성을 높이는 또 다른 요소는 천문우주학적 사건의 역사적 배경에 대하여 풍부하고 친절하게 설명했다는 점이다. 또한 각 장의 끝에 등장하는 천문우주학 관련 연구소를 소개하고, 그곳에서 일하는 천문학자들에 대한 에피소드를 넣어 이 책의 재미를 더했다. 무엇보다 현대 우주론 이야기를 자신의 것으로 녹인 후 자신의 고유한 목소리로 이야기해서 신뢰감을 주었다.


이 책은 빅뱅 우주론을 중심으로 현대 천문우주학이 던지는 쟁점에 대하여 현대 우주론적 해답을 설명하는 식으로 구성됐다. 개인적으로 이 책의 백미는 ‘빅뱅 핵 합성’이라는 생소하고도 어려운 내용을 정확하고 쉽게 비유하여 짧고 설득력 있게 설명한 대목이다.


“우주의 나이가 1초가 되었을 때 운명의 순간이 왔다. 우주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가 벌어진 것이다. 이때 우주의 크기는 오늘날의 100억분의 1이고, 온도는 약 100억 도였다. 이 순간, 우주에 가득 찬 광자들의 에너지가 중성자와 양성자의 질량 차이에 해당하는 에너지와 같아졌다. 이 순간부터 광자가 가지는 에너지는 양성자와 반응해서 중성자를 다시 중성자로 되돌려 줄 흑기사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된 것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양성자의 수가 많아져서 우주의 나이가 2~3분 정도 될 때 양성자 대 중성자의 개수 비는 대략 8대1이 된다. 이때 우주 역사의 한 막이 오르게 되는데, 최초로 수소와 헬륨 원자핵이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우주의 나이 1초부터 3분까지 일어난 이 현상을 빅뱅 핵 합성이라고 부른다.”


이 책은 그 자체로서 존재감이 있다. 반갑고 고맙고 매력적인 책이다.







* 함께 읽으면 좋은 책


『세상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크리스 임피 지음, 이강환 옮김, 시공사, 2013


『빅뱅의 메아리』

이강환 지음, 마음산책, 2017


『날마다 천체 물리』

닐 디그래스 타이슨 지음, 홍승수 옮김, 사이언스북스, 2018






이명현 - 과학책방 갈다 대표


삼청동 과학책방 갈다 대표. 천문학자이자 과학 저술가. 연세대학교 천문기상학과를 거쳐 네덜란드 흐로닝엔대학교에서 전파천문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강연, 신문 잡지 기고, 책을 통해서 끊임없이 별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명현의 과학 책방』 『이명현의 별 헤는 밤』을 출간했다. 삼청동에 과학 전문 서점 갈다를 열고 새로운 실험을 진행 중이다.

세부정보

  • 주최/ 경기도

    주관/ 경기문화재단

    선정위원/ 한기호 위원장(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김종락(대안연구공동체 대표), 장은수(편집문화실험실 대표), 강양구(코리아메디케어 콘텐츠본부장), 김세나(콘텐츠큐레이터)

    진행/ 김세나(콘텐츠큐레이터), 윤가혜(경기문화재단), 김민경(경기문화재단)

    문의/ 문화사업팀 031-231-0849

@참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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