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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화재단

이대원장군 묘 및 신도비 李大源將君 墓 및 神道碑

경기도기념물 제56호





남해안에 침입한 왜구를 격퇴하다가 적의 포로가 되어 전사한 이대원李大源(1566~1587)의 묘이다. 이대원은 1583년(선조16)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을 거쳐 녹도만호가 되었다. 1587년 남해안에 왜구가 침입하자 부하를 거느리고 추격하여 20여척의 배를 대파하는 전과를 올리고 적장을 붙잡아 수사水使 심암沈巖에게 바쳤으나, 전공戰功을 자신에게 돌리려는 심암의 요청을 거절하여 미움을 샀다. 다시 왜구가 흥양에 침입하자 심암의 명으로 군사 100여명을 이끌고 출병하여 손죽도 해상에서 적과 격투 끝에 붙잡혀 항복 권유를 거부하다가 결국 참살당하였다. 이에 앞서 관찰사의 장계狀啓로 그의 승전이 조정에 보고되어 심암은 파면되고, 장군은 수군절도사에 발령되었다. 그러나 조정朝廷의 명命이 도달하기 전에 죽었다. 이에 장군을 병조참판에 추증하였으며 충신의 정문旌門을 내려 충절을 기리게 하였다.


이대원장군 묘, 2017 ©경기문화재연구원


이대원장군 신도비, 2017 ©경기문화재연구원


이대원장군 사당, 2017 ©경기문화재연구원                             이대원장군 신도비각, 2017 ©경기문화재연구원


묘역은 사성으로 둘러져 있다. 봉분은 3기가 있는데 중앙에 장군의 묘가 있고 좌·우의 봉분은 두 부인의 묘이다. 중앙의 봉분 앞에는 원수방부형圓首方趺形 묘비와 상석, 향로석이 배치되어 있고, 그 앞쪽 좌우에는 망주석이 1쌍 배열되어 있다. 신도비는 묘역 아래에 세워져 있는데 비문은 남구만南九萬이 찬撰하고 조상우趙相愚가 글을 썼으며 김진규金鎭圭가 전액篆額을 써서 1699년(숙종25)에 건립한 것이다. 근래에 후손 등이 사당祠堂을 중수重修하고 장군의 동상을 건립하는 등 묘역을 정화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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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부정보

  • 시대/ 조선시대

    규모/ 1기

    / 묘비 1기, 상석 1기, 향로석, 망주석 1쌍, 문인석 1쌍, 신도비 1기

    / 신도비 높이 325cm

    재질/ 석재(화강암)

    주소/ 평택시 포승읍 희곡리 산83-6

    지정일/ 1980.06.02

    소유자/ 이씨종중

    관리자/ 이씨종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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