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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화재단

문제적 개인 홍길동, 문제적 작가를 만나다

문학-고전-산문 분야 『홍길동전』 리뷰



경기도와 경기문화재단은 경기천년을 기념하여 ‘새로운 경기’로 나아가기 위해 도민의 생각의 틀을 확장하고 삶의 질 향상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분야별 우수 도서 100선을 선정하였습니다. 전문가들로 구성된 선정위원회의 추천과 심의로 경영경제, 과학, 문학, 문화, 사회, 아동, 인문의 7개 분야에서 200선이 엄선되었고, 10대부터 50대 이상의 경기도민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설문조사를 통해 최종 100선이 선정되었습니다. 선정된 책들은 도민 누구나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는 것들로, 읽을거리를 찾는 도민에게 실질적 가이드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최종 선정된 경기그레이트북스 100선은 경기문화재단 홈페이지(www.ggcf.kr), 경기천년 홈페이지(ggma.ggcf.kr) 및 경기문화콘텐츠플랫폼 GGC(ggc.ggcf.kr)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홍길동전』

허균 지음, 김탁환 옮김, 백범영 그림, 민음사, 2009







문제적 개인 홍길동, 문제적 작가를 만나다


송성욱 - 가톨릭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한국 소설을 통틀어 『홍길동전』보다 유명한 소설은 아마 없을 것이다. 『춘향전』이 쌍벽을 이룰 수 있을지 모르지만 『홍길동전』은 『춘향전』보다 훨씬 앞서 창작되었기 때문에 인기를 누린 세월이 그만큼 더 길다. 『춘향전』의 유명세에는 판소리가 한몫을 했지만 『홍길동전』은 주인공의 이름값이 한몫을 했다.


고전소설 주인공 대부분이 가상의 인물이지만 홍길동은 실존 인물이다. 그것도 이름만 들어도 사람을 떨게 만들었던 조선시대 최고 도둑 중 한 명이다. 영화 『군도』를 본 관객들이라면 알겠지만 조선시대 백성 중에는 관리의 학정을 견디다 못해 산으로 숨어들어 무리를 만들고 도둑 집단 즉 군도를 형성하는 경우가 다수 있었다. 규모나 활동 측면에서 임꺽정, 홍길동, 장길산 등이 이끄는 군도가 크게 이름을 날린 것으로 알려졌다. 그중에서도 홍길동은 의금부가 직접 나서 체포를 할 정도로 위세가 대단한 군도의 우두머리였다. 그런 만큼 조선시대 독자들에게 『홍길동전』은 각별한 소설로 인식되었을 것이다.


『홍길동전』은 실존 인물 홍길동을 모델로 하지만, 작가 허균의 개인적 삶이 묘하게 결합되어 있는 허구적 구성의 소설이다. 소설 속의 활빈당 이야기는 홍길동의 실제 행적과 간접적 연관이 있고, 적서차별과 같은 이야기는 허균과 삶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이 책의 구성은 크게 보아 네 가지로 구분된다. 적서차별을 다룬 부분, 활빈당 활동을 다룬 내용, 나라에서 홍길동을 쫒는 부분, 율도국 건설 등 네 가지 이야기가 순차적으로 전개된다.


길동은 시비(侍婢) 춘섬의 몸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집안에서는 적서차별의 갈등을 겪을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 났다. 현대 시각에서 볼 때 사실 이 부분은 문제가 심각하다. 길동의 부친과 시비 춘섬과의 결연이 남성에 의한 일방적 희롱의 성격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적서차별이라는 당시의 사회적 제도도 문제가 크지만 근본적으로 적서를 발생시킨 과정이 더 큰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소설에서는 적서차별만 문제 삼지, 홍 판서의 춘섬 희롱 사건은 전혀 문제 삼지 않는다. 이 점은 당시 사회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견지하는 『홍길동전』과 조선시대 가부장제의 한계라고 할 수 있겠다.


적서차별의 갈등을 겪는 홍길동은 부친에게 ‘호부호형’(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고 형을 형이라 부름)을 허락받지만, 길동을 시기하는 무리와 갈등을 극복하지 못하고 가출을 단행한다. 자객의 습격 등 살해의 위협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자신의 이름을 세상에 드러내려는 의도가 가출의 결정적인 동기라고 볼 수 있다. 적서차별의 문제가 ‘호부호형’의 허락으로는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적서차별이 엄연히 존재하는 사회에서, 가출한 길동이 자신의 이름을 드러낼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을 것이다. 의기에 찬 홍길동이 만난 사회는 탐관오리, 굶주린 백성, 살 길을 찾아 나온 도적 무리가 존재하는 세상이었다. 이미 집안에서 신분적 불평등을 경험한 길동은, 사정은 다르지만, 사회에서도 불평등을 목도하게 된다. 이로 인해 길동은 활빈당을 조직하여 군도를 결성하고 탐관오리의 재물을 빼앗아 가난한 백성을 돕는다. 조선시대 군도의 전형적인 모습이자 실존인물 홍길동과의 연관성을 짐작하게 하는 부분이다.


홍길동의 소동이 거세지자 나라에서는 온 힘을 다해 잡으려 하지만 도술을 자유자재로 부리는 홍길동을 끝내 잡지 못한다. 홍길동은 스스로 임금 앞에 나타나 조선을 떠날 것을 약속한다. 여기에서 눈 여겨 볼 부분은 길동이 벼슬을 요구하고, 임금과 만나는 장면이다. 소설 장면이 아니라 실재 현실이었다면 도둑 우두머리와 임금의 독대, 일개 도둑이 임금에게 벼슬 요구하는 장면은 상상도 하지 못할 장면이다. 길동은 임금 앞에서 당당하게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고 당당하게 요구했다. 조선시대나 현대의 독자들 모두 이 장면을 보면서 당당함의 아름다움을 맛보았을 것이다.


임금과 만남 이후 길동은 마침내 조선을 떠나 율도국이라는 나라를 세운다. 이 율도국에서 길동은 왕이 되어 도불습유(道不拾遺), 산무도적(山無道賊). 즉, 길에 떨어진 것을 줍지 않고 산에는 도적이 없는 행복한 국가를 만든다. 자신이 태어난 조선이라는 나라에서 꿈꿀 수 없었던 일을 실현한 것이다. 이 율도국은 어쩌면 소설 속 홍길동이 아니라 실존인물 홍길동과 가난을 참고 살았던 당시 백성의 염원이자 이상향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율도국은, 이보다 한참 뒤에 창작된 연암의 박지원의 『허생전』에서 허생이 세운 또 하나의 이상국 무인도와도 대비된다.


『홍길동전』을 수식하는 말은 무수히 많다. 그중에서 허균이 실존인물 홍길동을 소재로 창작한 한국 최초의 국문소설이라는 수식어가 모범 답안일 것이다. 실존인물 홍길동에 대해서는 앞서 언급했으니 마지막으로 작가 허균에 대해서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홍길동전』을 허균이 창작하지 않았다는 주장도 있지만 작가의 개인사가 작품의 내용과 일치하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여전히 허균은 『홍길동전』의 작가로 인정받는다.


허균은 조선을 대표하는 시인이자 여성 시인으로 유명한 허난설헌의 동생이다. 허균은 선조와 광해군 시절을 모두 보낸 사대부로, 광해군 5년에 ‘일곱 서자의 난’에 연루되었던 인물이다. 사람의 재주에 귀천이 따로 없다는 「유재론」, 천하에 두려워해야 할 존재는 오직 백성이라는 「호민론」 등의 글을 남기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허균은 당대 비판 지식인 중 한 명으로 인식된다. 『홍길동전』의 전반부가 적서차별로 시작하여 시종일관 사회 비판적인 논지를 유지하는 이유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어떻게 보면 「유재론」과 「호민론」을 소설로 형상화한 것이 『홍길동전』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허균은 자신의 생각을 소설에 담기 위해 허구적 인물을 상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하필이면 당시의 가장 문제적 인물인 홍길동을 택했던 것은 그가 얼마나 파격적인 인물이었는지를 짐작케 한다. 따라서 『홍길동전』은 문제적 개인 홍길동과 문제적 작가 허균의 만남으로 탄생한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 함께 읽으면 좋은 책


『전우치전』

작자 미상, 김남일 옮김, 창비, 2006


『장길산』 (전12권)

황석영 지음, 창비, 2004


『임꺽정』 (전10권)

홍명희 지음, 박재동 그림, 사계절, 2008





송성욱 - 가톨릭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에서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고전소설이 주 전공이며, 주요 저서로 󰡔한국 대하소설의 미학󰡕 『조선 시대 대하소설의 서사문법과 작가의식』 등이 있다. 역서로 『구운몽』 『춘향전』 『사씨남정기』 등이 있으며, 최근 논문으로 「고전소설의 이원적 구조와 TV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와 〈도깨비〉와의 비교를 중심으로」가 있다.



세부정보

  • 주최/ 경기도

    주관/ 경기문화재단

    선정위원/ 한기호 위원장(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김종락(대안연구공동체 대표), 장은수(편집문화실험실 대표), 강양구(코리아메디케어 콘텐츠본부장), 김세나(콘텐츠큐레이터)

    진행/ 김세나(콘텐츠큐레이터), 윤가혜(경기문화재단), 김민경(경기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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