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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화재단

민족문화의 장관, 겨레어의 보물창고

문학-현대-운문 분야 『미당 서정주 전집 1 – 시』 리뷰



경기도와 경기문화재단은 경기천년을 기념하여 ‘새로운 경기’로 나아가기 위해 도민의 생각의 틀을 확장하고 삶의 질 향상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분야별 우수 도서 100선을 선정하였습니다. 전문가들로 구성된 선정위원회의 추천과 심의로 경영경제, 과학, 문학, 문화, 사회, 아동, 인문의 7개 분야에서 200선이 엄선되었고, 10대부터 50대 이상의 경기도민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설문조사를 통해 최종 100선이 선정되었습니다. 선정된 책들은 도민 누구나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는 것들로, 읽을거리를 찾는 도민에게 실질적 가이드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최종 선정된 경기그레이트북스 100선은 경기문화재단 홈페이지(www.ggcf.kr), 경기천년 홈페이지(ggma.ggcf.kr) 및 경기문화콘텐츠플랫폼 GGC(ggc.ggcf.kr)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미당 서정주 전집 1 – 시』

서정주 지음, 은행나무, 2015









민족문화의 장관, 겨레어의 보물창고


윤재웅 -  동국대 국어교육과 교수 





미당 서정주는 15권의 시집을 냈다. 1972년 일지사에서 『서정주 문학전집』이 출간되었는데, 기존 시집에 수록되지 않은 55편이 거기 수록되었다. 이를 포함, 15권 시집 전체에 수록된 작품이 950편이다. 신문 잡지 등에 발표했으나 시집 미수록 작품까지 합하면 1200편이 넘는다.


1000편 시의 성취도 가볍지 않지만, 서정주만큼 대표작이 많은 시인도 우리 문학사에 없다. 소월, 지용, 백석 등이 이름을 겨룰 만하나 그 질적 성취에서 견주기 어렵다. 소월은 낭만적 애상에 출중했으나 젊은 채로 갔고, 지용은 우리 언어의 새로운 모습을 다채롭게 보였으나 생의 현묘한 경지를 펼치지 못했으며, 백석은 민족문학에 치중했지만 세계문학의 보편성에 이르지 못했다.


문학사를 눈 주어 살펴보라. 열정, 모순, 방황, 전통, 현실, 신화, 역사, 종교, 여행, 달관 등이 한 데 뒤섞인, 다양하고 풍요로운 목소리를 서정주 외의 다른 시인들에게서는 들을 수 없지 않은가. 모국어의 절묘한 어법과 가락마저도 서정주가 독보건곤(獨步乾坤)이다. 민족문화의 장관(壯觀)이요 겨레어의 보고(寶庫)라 불러도 손색없다.


서정주를 마음먹고 읽은 독자라면 이 말을 금세 이해한다. 이런저런 선입관 없이, 유행하는 시대 담론에 휘둘리지 않고, 그의 시를 소리 내어 읽어 몸에 감아 본 이들은 언어의 심층 속 무형(無形)의 힘에 가슴 떨리는 경험을 한다. “스물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다”(「자화상」)와 같은 경구. “무어라 강물은 다시 풀리어/ 이 햇빛 이 물결을 내게 주는가”(「풀리는 한강 가에서」)와 같은 절창. “내 마음속 우리 님의 고은 눈썹을/ 즈믄 밤의 꿈으로 맑게 씻어서/ 하늘에다 옮기어 심어 놨더니”(「동천」)와 같은 음악의 경지에 다다른 시혼의 세계는 비슷하게 흉내 내기도 어렵다.


요컨대 서정주라는 시적 개성이 펼쳐 보여주는 ‘겨레말의 숨 쉬는 놀이터’는 직접 뛰놀아봐야만 그 깊고 아득한 아름다움을 체감할 수 있다. 왜 그를 일컬어 ‘부적 방언의 요술사’라 하는지, “세계의 명산 1628개를 다 포개 놓은 높이보다도 시의 높이와 깊이와 넓이는 한정 없기만 하다”는 자기 고백이 왜 오달하고 심오한지도 겨레어의 보물창고를 찬찬히 살펴봐야만 가능한 것이다.


문학을 사랑하고 사랑하여 낮이나 밤이나 끼고 앉아 쓰다듬어 읽으면서, 자기의 내면에서 솟구치거나 외부에서 찾아오는 감동을 표현하려 무진무진 애쓰는 이를 일컬어 ‘정통’이라 한다면, 문학을 깊이 읽거나 짓지도 않으면서 문학 외적인 일을 시비 삼아 논쟁거리로 만드는 이를 ‘속류’라 한다. 일컬어 문학 마당에는 ‘정통과 속류’가 있게 마련인데, 정통은 점잖아서 조용하고 속류는 시끌시끌하게 마련이다. 비유컨대 오뉴월 무논에 말없이 쑥쑥 자라는 벼가 사람 몸에 살이 되고 피가 되는 정통이라면, 그 물에 몸 담근 채 공연히 귀만 시끄럽게 만드는 개구리는 속류인 것이다.


보라, 속류는 시비 판단을 발 빠르게 선점하고 정의의 기치를 내세우나 오래 남아 살아가는 보편의 문학과 거리가 멀다. 시류가 지나면 생명이 다하고 만다. 아름다운 미녀가 죽어 백골이 되는 이치와 같다. 적어도 서정주 시는 그런 문학은 아니다. 삶의 모순적인 본질, 현실의 한계와 그 초극, 민족문화의 정체성, 영원한 정신 생명 등을 탐구하기 위해 가슴의 피를 짜내어 쓴다. 한국어 사용자의 민감한 촉수를 의식의 깊은 곳에서부터 건드린다. 죽은 사람의 가슴에 꽃을 문질러서 살려내는 아름다운 이야기는 수천 년간 이어오는 구비전승의 문학이다. 그 심원한 이야기의 역사는 현대의 독자들에게도 낯설지 않다. 민족문화의 원형(原型)을 일구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슨 꽃으로 문지르는 가슴이기에 나는 이리도 살고 싶은가”와 같은 구절은 듣는 즉시 그 자체로 모국어의 전율이 된다.


미당은 시만 쓴 게 아니다. 자서전을 비롯한 일반 산문도 많이 발표했다. 70년 가까이 문필 생활을 한 까닭에 청년부터 노년까지의 목소리가 다채롭게 펼쳐진다. 시론, 소설, 희곡, 방랑기, 세계의 민화, 전기문, 번역에 이르기까지 장르가 다양하다. 형식의 다양성 못지않게 내용의 풍요로움도 서정주 문학의 미덕이다. 과도한 열정으로 방황하는 10대의 모습부터 원숙한 달관을 보여주는 80대의 면모까지, 그의 문학은 인생의 파노라마가 풍성하다. 그뿐인가. 고조선 역사부터 임종 직전 자기 삶의 모습까지, 고향 마을 이야기부터 세계 전역의 산과 도시의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다루는 글감의 시공간 진폭도 크고 넓다.


다른 시인이 무언가 새로운 걸 해볼라치면 어쩌나 먼저 밭 갈고 씨 뿌린 시인이 미당이다. 그 예술적 지존의 절대자아 앞에서는 주눅도 들고 질투도 난다. 그런 점에서도 그는 대가인 것이다. 피카소가 죽었을 때, 세계의 많은 화가들이 애도와 동시에 만세를 부른 심정을 헤아리면 된다. 오죽하면 뉴욕의 어느 화가는 피카소가 타계한 날 “오늘 우리들 예술의 아버지가 죽었다”고 중얼거렸겠는가. 그런 거다. 밉든 곱든 서정주는 ‘한국문학의 아버지’라는 점에서 별 이의가 없는 시인이다.


미당의 문학 세계는 지구의 공간을 두루 섭렵하고, 민족의 5천 년 역사를 꿰뚫는다. 심지어 시간을 초월하는 영원한 ‘정신 경영’의 세계를 꿈꾸기도 한다. 기독교와 불교의 본질을 비교해서 자신이 문학에 그 젖줄을 댈 줄 알며, 전통사상으로서 풍류도를 찾아 미적 이데올로기로 재생시키기도 한다. 문학의 영토 자체가 광범위하다. 정신은 높고 넓고 깊다.


이 모든 걸 모은 게 20권으로 엮은 『미당 서정주 전집』이다. 그의 시 950편이 1권부터 5권에 걸쳐 편집되어 있다. 이 다섯 권이 『미당 서정주 전집』의 핵심이자 정수인 ‘시 전집’이다. 1권은 『화사집』『귀촉도』『서정주 시선』『신라초』『동천』『서정주 문학전집』의 수록본이다. 초기와 중기의 대표작들이며 미당 서정시의 경구절창들이 즐비한 ‘시집의 왕자’다. 어찌 손으로 어루만져가며 읽어보지 않겠는가. 그대가 정녕 정통을 좋아하고 꿈꾼다면 아무 망설일 필요가 없다. 미당 읽는 밤. 그 밤의 책상이 기다린다.








* 함께 읽으면 좋은 책


『원본 소월전집』

김종욱 편, 홍성사, 1982


『원본 정지용 시집』

정지용 지음, 이숭원 주해, 깊은샘, 2003


『원본 백석 시집』

이숭원 지음, 깊은샘, 2017  







윤재웅- 동국대 국어교육과 교수


동국대학교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했다. 대학 재학 시에 미당에게 문학 강의를 많이 들었다. 박사 논문을 『서정주 시 연구』로 쓰고, 동국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교육과 연구에 힘쓰고 있다. 서정주 사후 유품 정리 책임을 맡았고, 고창의 미당 시문학관 전시 업무를 담당했다. 『미당 서정주 전집』 편집위원, 사단법인 미당기념사업회 사무총장 등을 맡아서 서정주 문학의 정리와 보급에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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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최/ 경기도

    주관/ 경기문화재단

    선정위원/ 한기호 위원장(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김종락(대안연구공동체 대표), 장은수(편집문화실험실 대표), 강양구(코리아메디케어 콘텐츠본부장), 김세나(콘텐츠큐레이터)

    진행/ 김세나(콘텐츠큐레이터), 윤가혜(경기문화재단), 김민경(경기문화재단)

    문의/ 문화사업팀 031-231-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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