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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화재단

돈의문 경기감영 (4)

경기감영각방중기&한성문 外


본 자료집은 조선시대부터 경기도를 관할했던 경기감영부터 광화문 앞 구 경기도청사와 현재 수원·의정부 경기도청사에 이르는 경기도의 무구한 역사를 기록한 기록집입니다. 이제는 흔적만 남아있는 경기감영 터와 광화문 앞 경기도청사의 흔적이 사라지지 않도록 영상과 사진, 3D스캔 등 많은 자료로 남겼습니다. 2018 경기천년의 해를 맞아 찰라의 순간에 우리 눈앞에 나타났다 다시 사라진 경기감영과 광화문 경기도청, 그리고 현재의 경기도청사의 모습을 만나보시기 바랍니다.

경기감영각방중기京畿監營各房重記|한국학중앙연구원 제공


 중기는 관청에서 관리가 교체될 때 인수인계 문서로 작성되거나 연차별로 재고에 대한 재물조사 성격을 띠는 문서를 가리킨다. 6방별로 나누어 작성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런 일반적인 기록 외에 화재가 일어나 관청 건물이나 재산상에 큰 변동이 발생했을 때에도 별도의 중기가 작성되었다. 또 특별히 따로 관리해야하는 물건이 있을 때 물건의 수량이나 품목, 소장내력 등을 작성한 중기도 있다.


1843년(도광 23년)본 경기감영각방중기|한국학중앙연구원 제공

 국내에 현전하는 3건의 경기감영 각방중기는 1843년(도광23년/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1886년(광서12년/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1889년(광서15년/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의 세 시기에 쓰인 것이다. 중기는 이전에 작성한 내용을 옮겨 적으면서 새로 추가된 사항들을 덧붙여 작성하는 것이 관례였다. 따라서 위 3건의 중기 역시 1843년의 중기는 내용이 적은데 비해서 1886년의 것이 앞의 1848년 중기의 내용을 반복하면서 새로 추가된 내용을 덧붙였고 마지막 1889년의 중기가 가장 분량이 많다. 다시 옮겨 적는 과정에서는 불필요한 사항은 생략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국외에 현전하는 중기는 미국 버클리대학교 동아시아도서관에 1892년(광서18년) 중기가 보고된 바 있다. 각방중기는 기록을 남길 사안이 있는 경우에만 각 색 별로 기술하였기 때문에 관찰사의 이름은 간헐적으로 등장한다. 특히 영고색, 호방색 등은 거의 한 두 기록에 그치고 있다. 가장 기록이 많고 내용이 상세한 것은 공방색이다. 공방색에는 모두 49명의 관찰사가 나오고 각 관찰사 시절에 있었던 업무 내용이 명시되어 있다. 업무 내용은 건물의 수리나 신축 등이 3분의 2정도를 차지하며 나머지는 자금의 조달 및 지출, 깃발이나 조총, 병장기 등 군기물의 마련 외에 병장도설이나 지도류의 서책에 대한 사항들이 언급되어 있다. 『경기감영각방중기』(1843)에는 다른 두 중기에 없는 선화당을 비롯한 경기감영의 주요 건물을 기록해 두었다.

수선전도|서울역사박물관 소장본 제공, 1864년 본

 돈의문 밖으로 기영圻營 표시가 보인다. 우측으로 경교, 북으로 못(池), 천연정, 모화관, 영은문이 기재되었고 남쪽에 고마청雇馬廳 표시가 보인다.




동여도 중 도성도|서울역사박물관 제공, 보물 제 1358호, 서울지도 , 2006

 1856~1872년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기영圻營이 표시되어 있고, 기영 북쪽으로 천연정, 연지, 모화관과 영은문이 보인다.


구경기영빈관 모습|국립중앙도서관 제공, 조선총독부, 『경성부사』 제 2권, 1936

한성부 및 고양군청으로 전용된 경기빈관의 모습이다.

고양군청|서울역사박물관 제공, 조선총독부, 『朝鮮 : 写真帖』, 1921

고양군청에서 근무 중인 조선인 관리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한성부 청사|서울시정개발연구원·서울학연구소 제공, 『서울, 20세기 : 100년의 사진기록』

 한성부 청사의 모습으로 비교적 널리 알려진 사진이다. 사진 속 건물과 전면부의 답도, 가석과 폐석의 모습은 <경기감영도>의 선화당 모습과 유사한 부분이 있다. 정면 오른쪽부터 6번째 칸에 편액이 걸리고 그 칸을 중심으로 양 옆 칸에 해당하는 부분만큼 계단이 설치되고 답도가 깔려있다. 전면 칸의 구성은 사진과 <경기감영도> 간의 차이가 보이나 양성바름과 단청 등 격식을 갖춘 모습 또한 유사점이 보인다. 이 사진 속 건물이 한성부 전용 당시의 옛 경기감영 선화당의 모습이라는 근거는 용마루 양성의 얼룩에서도 찾을 수 있다. (경기도청 청사 역사문화자원 조사연구 용역보고서[(재)역사기술건축연구소] 발췌)

성부 정문|서울학연구소 제공, 카를로 로제티, 『꼬레아 에 꼬레아니』 수록
한성부 전용 당시 구 경기감영 포정문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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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부정보

  • 기록으로 남은 경기감영, 경기도청

    인쇄/ 2017년 12월 31일

    발행/ 2017년 12월 31일

    기획 및 편집/ 경기도·경기문화재연구원

    발행/ 경기도·경기문화재연구원

글쓴이
경기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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