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다순

경기문화재단

내 손에 반딧불

의왕_박준하 작가의 작업실



내손동을 비추는 반딧불 '내손에 반딧불'



경기도 의왕시 내손동 구시가지 골목이 미술관으로 변했다. 박준하 작가의 작업실이 있는 내손동 골목 주민들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지 호기심어린 눈으로 바라본다. 골목을 이루고 있는 주택 벽 곳곳에 박준하 작가의 영상 작업이 투사되고, 작업실 골목 모퉁이에는 “내손에 반딧불”이 써진 커다란 현수막과 함께 오스트리아에서 온 작가가 이상한 소리를 내는 사운드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작업실 주변 곳곳에는 색색의 조명들이 골목을 밝히고 있었고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 학부모, 그리고 특이한 옷차림의 사람들이 그 광경을 즐기고 있었다.


“내손에 반딧불”, 박준하 작가의 오픈스튜디오 제목이다. 이미 대부분 아파트가 들어선 내손동이지만 예전 골목을 품은 주택가가 남아있다. 골목 한편 건물의 지하를 작업실로 쓰고 있는 작가는 예전 함께 작업했던 서정국 작가에게 오픈스튜디오 행사의 협업을 요청했다. 그리고 내손동 동네 이름을 바탕으로 서정국 작가와 조명작업을 함께 할 계획을 세우고 도시에서는 이제 볼 수 없는 반딧불을 추억하며 오픈 스튜디오 제목을 정했다. 그리고 참여자들과 함께 손전등을 만드는 워크숍을 계획했다. 참여자들은 직접 만든 손전등으로 내손동 골목을 밝히며 마치 반딧불이 날아다니듯 골목을 색색의 빛으로 채웠다.





박준하 작가는 개인적으로 경험한 과거의 공간과 시간에 대한 생각들을 작업에 담는다. 지금은 댐 건설로 수몰된 고향마을을 기억하며 영상 설치 작업을 선보였고, 시안에서 경험했던 탑을 바탕으로 새로운 공간을 만드는 작업을 진행했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파란색 사과를 보고 기억을 더듬지만 곧 사과는 빨갛게 익어 과거의 모습을 변화시킨다고 한다. 하나의 대상을 통한 과거와 현재의 관계에 대한 고민과 통찰을 바탕으로 작품을 만들어가며 작가는 자신과 세상의 관계 시간 속에 놓인 인간의 존재에 대한 생각을 드러낸다. ]


작가가 유학한 독일의 자르 Saar 지역은 유럽 최대의 제철소가 있는 푈클링엔 Volklingen Ironworks이 지척에 있다. 푈클링엔 제철소는 현재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한때 수많은 노동자와 독일 산업 발전의 주축이 된 공업단지는 한국의 포항제철 등 다른 국가들의 산업에 밀려 이제는 과거의 영광만을 희미하게 내보이는 곳이다. 작가는 독일 수학 중 진행한 세계문화유산에 관한 프로젝트를 계기로 현재 문화유산에 대한 교류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진행하는 큐레이터도 겸하고 있다. ‘세계문화유산교류 프로젝트’라는 단체를 이끌며 독일과 한국을 중심으로 문화유산에 대해 예술적인 연구를 지속하며 매년 세계문화유산 교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작가는 인간이 만들어 놓은 과거의 유물, 유적에 관심을 기울이며 그것이 현재와 어떻게 관계하고 있는 지를 고찰하는 작업을 진행하는데 이는 작가의 개인 작업과도 맥을 같이하는 프로젝트다. 현재까지 수원화성, 조선 왕릉 등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에 대한 리서치를 바탕으로 재해석하는 작업을 여러 작가들과 함께 진행했다.



박준하 작가는 동네 분식집 음식을 준비해서 손님을 맞을 준비를 했다. 동네 떡집과 분식집에서 맞춘 찹쌀떡과 김밥, 지인들과 함께 데운 와인을 준비했는데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온기를 만들어주는 적합한 음식이었다. 서정국 작가와 계원예대 학생들이 준비한 야외 조명 작업은 날이 어두워져야 제대로 감상이 가능한 작업이었고, 골목 곳곳에 작가의 영상작업을 빔 프로젝터를 이용해 투사하는 것도 어두워져야 비로소 감상이 가능한 것이었다. 그래서 작가는 먼저 작업실 내부에서 방문객들을 위해 자신의 작업에 대해 설명하는 발표시간을 가졌는데 방문객의 다수가 초중고학생들이어서 이해하기 쉽게 자신의 작업 세계에 대해 설명했다. 과거와 현재에 대한 생각, 자신이 어떠한 고민을 가지고 작업을 하는 지 그래서 어떤 매체를 통해 생각을 담는 지 등 구체적인 설명이 이어졌다. 작업실은 미리 프레젠테이션이 가능하도록 프로젝터와 스크린 의자들이 놓여있었고, 스튜디오 벽면은 서정국 작가와의 협업 작품인 조명들이 독특한 그림자를 만들어내며 전시되어있었다. 작가의 작품 설명 이후 작업실을 둘러보며 준비한 음식을 먹는 시간을 가졌고 어두워지기 전 참여자들과 함께 미리 준비한 재료들로 손전등을 만드는 워크숍을 진행했다. 조그마한 LED 조명과 전등 갓, 색을 칠하거나 자를 수 있는 재료를 통해 참여자들은 각자의 개성을 담을 수 있는 손전등을 만들어 골목을 돌아다녔다.



스튜디오 밖 골목에는 작가의 작품이 상영되고 있었고 곧 이어 오스트리아 출신의 작가인 스테판 티펜그래버 Stefan Tifengraber의 사운드 퍼포먼스가 진행되었다. 스테판 티펜그래버는 2015년 7월 부터 12월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창동창작스튜디오 입주 작가로 한국에 머물며 작업하고 있는 작가로 박준하 작가의 작업과 어울리면서 이웃주민들에게 익숙한 예술 대신 내손동 골목에서 현대미술의 최전선의 작품을 선보이자는 취지로 초청되었다. 스테판 티펜그래버는 오스트리아 린츠의 아르스 일렉트로니카 등 세계 유수의 사운드 페스티발에 참여하고 활발하게 작업하고 있는 작가로 한국에서 익힌 사물놀이의 징을 이용해 자신이 고안한 악기를 통해 다양한 소음과 빛을 이용한 음악을 퍼포먼스에서 선보였다. 조용한 내손동 주택가 골목이 현대미술의 빛과 소리로 가득하는 순간이었다. 주민들은 익숙지 않은 소리에 집밖으로 나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지 호기심어린 눈으로 쳐다보았고 박준하 작가와 오픈스튜디오 관계자들이 주민들에게 예술가의 작업실이 여기 있고 골목을 예술 공간으로 바꾸는 이벤트라고 설명해주어 자칫 민원을 유발할 수 있는 행사였지만 많은 주민들이 관람객이 되어 호응해 주었다. 작가 작업실이 있는 골목 모퉁이에 많은 사람들이 서서 퍼포먼스와 작가의 작업을 감상하는 기이한 풍경이 만들어졌다. 퍼포먼스가 끝나고 참여자들은 자발적으로 의도가 무엇이고 어떻게 그런 소리를 만들어내는 지를 작가에게 질문하고 직접 소리를 만들어보는 시간도 가졌다. 그렇게 오픈스튜디오는 경기문화재단 G-오픈 스튜디오 ‘옆집에 사는 예술가’의 취지에 맞게 여기 예술가가 작업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릴 수 있었다. 그리고 몇몇 다른 예술가들이 찾아와 자신의 작업실도 지척에 있다고 나중에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만들어보자고 박준하 작가에게 제안을 하기도 했다.




박준하 작가의 오픈스튜디오는 지하 스튜디오를 개방해 사람들에게 선보이는 것뿐만 아니라 방문자들이 오픈스튜디오의 참여자가 되는 워크숍을 통해 감상이 아닌 체험하는 이벤트가 되었고 참여자들이 만든 색색의 손전등과 서정국 작가와 계원예대 학생들이 만든 특이한 조명, 골목 건물 벽들에 투사되는 작가의 영상작품, 사운드 퍼포먼스가 어우러져 잠시나마 조용한 주택가 골목을 예술 공간으로 변모시켰다. 길을 지나는 사람들에게 잠시나마 일상의 틈을 만들어 예술적 체험을 할 수 있도록 시도한 이번 오픈스튜디오는 전문 전시장에서만 이루어지던 예술 활동을 일상의 공간으로 끌어들이는 적절한 시도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아파트로 둘러싸인 내손동 구시가지는 서울의 위성도시 계획으로 의도되어 세워진 마을이지만 이제는 오랜 삶의 흔적을 간직한 곳이 되었다. 현재 또다시 재개발이 예정되어 있다. 과거와 현재의 관계에 대해 고민하며 작업하는 작가에게 이런 동네의 특성은 결국 또 다시 작가의 작업의 맥락 속으로 들어가면서 작가의 예술 활동의 일부가 된다. 근대적이며 남성적인 방법으로 원래 사는 이들을 몰아내고 아파트를 짓겠다는 계획은 이런 예술가들의 활동을 통해 창조적으로 재설정될 수 있다. 곧 재개발의 광풍이 몰아칠 이곳에서 주민들은 예술가가 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골목이 예술적으로 바뀌는 일을 경험할 수 있었고 그러한 활동을 호의적으로 즐겁게 체험했다. 현재 대한민국에서는 헌 것, 오래된 것들을 찾아보기 힘들다. 심지어 문화유산이라고 하는 궁궐들조차 ‘새 것’이다. 과거와 대화할 수 있는 대상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박준하 작가의 작업은 이러한 현실을 반추할 수 있는 유효한 지점을 만들어낸다. 더불어 재개발이 예정되어 있는 내손동 지하실을 중심으로 골목 자체를 예술 공간으로 전유하는 행위는 작가의 작업의 연장선으로 볼 수 있다. 자칫 밋밋하게 스튜디오만을 공개하는 행사가 될 수 있는 ‘오픈스튜디오’를 작가는 새로운 예술 체험의 장으로 만들었다. 그렇게 작가가 만들어낸 ‘내손의 반딧불’을 통해 삶의 흔적이 묻어있는 골목을 새롭게 인식하고 경험하게 만드는 이번 행사는 예술의 또 다른 역할과 가능성을 제시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안타깝지만 곧 내손동 구시가지에도 곧 아파트들이 들어설 것이다. 그러나 골목길에서 벌어진 예술을 체험한 이들은 예술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았고 그것들을 삶에서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것이다. 그렇게 조금씩 사람들의 마음을 바꿔 나가는 일을 통해 세상은 조금씩 바뀔 수 있을 것이다.





글 서준호 스페이스 오뉴월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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