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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화재단

숨길 트이는 푸름, 발길 머무는 초록, 남양주

경기학광장Vol.5 _ Trip & Healing

< 숨길 트이는 푸름, 발길 머무는 초록, 남양주 >


- 경기학광장Vol.5 _ Trip & Healing -



경기학광장은 경기문화재단 경기학센터가 발간하는 계간지입니다. 경기도와 31개 시군 지역의 역사와 문화에 관심있는 많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이용하고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넓은 공간이고자 합니다. 전문학자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경기도의 역사와 문화에 관심을 가진 누구라도 즐길 수 있도록 문을 활짝 열어두겠습니다. 경기학광장의 더 많은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경기도사이버도서관에서 원문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여름이면 푸르름을 더하는 광릉숲


여름의 기운은 초록으로 만발한다. 짙은 녹음이 마음까지 푸르게 물들인다. 여름 안에서 사방으로 기운을 뻗치며 지칠 줄 모르는 자연을 바라보자면 한철 무더위가 밉지만은 않다. 남양주는 여름에 가장 찬란한 고장이다. 숲이 깊고 물이 맑아 그 푸름이 유난하다. 어느 계절이나 좋지만 특히 여름에 가면 기운을 얻는 동네다. 시원한 강변길을 시속 15km로 달리고 상쾌한 숲길을 시속 4km로 걷는다. 이 여름, 남양주에서 숨길이 트이고 발길이 머문다.



다산길 2코스가 지나가는 다산생태공원



매년 여름 연꽃이 아름다운 봉선사 진입로 연못


두 바퀴가 부드럽게 구른다. 페달에 닿은 두 발이 지면을 딛고 섰을 때보다 가볍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거의 없는 길, 자전거는 바람에 실린 듯 강변을 달린다. 강, 산, 하늘 제각기 다른 채도의 푸름이 시야에 들어찬다. 여백 없이 황홀한 자연. 그 안을 오가는 자전거들은 자동차와 달리 소음이 없고 육중하지 않아서 다만 점처럼 찍혔다 사라지길 반복한다.

대한민국의 모든 길이 이 길만 같다면 걷지도, 자동차를 타지도 않을 것이다. 오로지 자전거 페달만을 굴릴 것이다. 시속 15km의 행복이 여기, 남한강자전거길에서 절정에 다다른다. 주말마다 자전거와 한 몸이 되는 자전거 라이더의 라이딩 찬양이 아니다. ‘남양주 찬양’을 하기 위한 포석이다. 기실 남한강자전거길은 팔당대교에서 충주 탄금대까지 이어지는 136km의 짧지 않은 코스다. 그러나 남양주를 수식하기 위해, 이 지면에선 그중 딱 10km만 달리려 한다. 팔당역부터 능내역을 거쳐 운길산역에 이르는 길이다. 팔당호의 수려한 경치를 품은 이 코스는 남한강자전거길의 하이라이트이자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자전거길이라 표현해도 부정할 이 없을 코스다. 무엇보다 남양주8경의 1경 정약용유적지와 남양주의 ‘올레길’로 불리는 20.1km의 다산길이 이 길과 겹친다. 시속 15km가 아니라 시속 4km로 걸어도 좋은 길이라는 의미다. 이 길이 끝나면 곧바로 3경 북한강자전거길이 이어진다. 2경은 후술할 광릉숲이다.



북한강변에 조성된 물의 정원 풍경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자전거길로 꼽히는 남한강자전거길


느리게 달리고 가만히 멈추는 길


무장한 라이더들에게 주눅들 필요 없다. 팔당역 옆에는 자전거 대여소가 여러 곳이다. 자전거를 타기 전에 잠시 역전 박물관에 들러도 좋겠다. 팔당역 앞에 자리한 남양주시립박물관이 남양주 여행의 길잡이가 되어 줄 것이다. 알고 나서 만나는 풍경은 더욱 사랑스럽다.

자전거는 내내 물길을 따라간다. 남한강과 북한강이 이제 막 합류한 지점이어서일까, 햇빛에 부서진 강물이 유난히 찬란하다. 강 양쪽으로 울울한 산들이 이어진다. 남양주의 한강은 남양주만의 한강이다. 서울의 한강과 김포의 한강과는 그 풍경이 다르다. 일단 건물들이 보이지 않으니 숨통이 트인다. 이대로 냅다 달리면 충청도, 아니 강원도까지 금세 닿을 것만 같다. 회색빛 인공구조물은 7km 쯤 달리면 보이는 팔당댐이 전부다. 자전거길이 어쩌면 이리도 완만하게 잘 트였을까 싶을 때 터널이, 그리고 아담한 역이 나타나 실은 이곳이 철길이었다는 힌트를 준다. 한때 경춘선 기차가 지나던 봉안터널, 긴 그늘을 지나면 얼굴에 맺혔던 땀이 식는다. 터널서 10분쯤 더 달리면 옛 기차역의 정취를 간직한 능내역이 보인다. 초행자라면 이곳을 그냥 지나치기 어렵다. 폐역은 50년 넘게 달렸다던 기차의 일부 차량과 함께 작은 휴게소가 되어 이방인을 맞이한다. 역사 안에는 1960~70년대의 능내역과 능내리 마을을 찍은 사진들이 걸려 있다. 옛 기차 시간표와 낡은 의자도 그대로다. 주변에는 고소한 기름 냄새 풍기는 식당, 세련된 카페도 있지만 이곳에 바퀴가 멈추는 이유는 시간의 더께가 앉은 능내역 덕분이다.

능내역과 비선골마을, 삼태기마을을 지나 4km 쯤 더 달리면 운길산역이 나온다. 운길산역을 못 미쳐 북한강철교를 건너면 두물머리가 있는 양수리다. 다리를 건너지 않고 그대로 길을 따라 가면 물의 정원, 마음의 정원을 지나는 북한강자전거길이다. 어디로 가든 좋다. 여기까지 달렸다면 이미 남양주의 가장 아름다운 얼굴을 봤을 테니까. 잠시 멈추어도 좋다. 곳곳에 벤치와 쉼터가 있다. 이 길은 달리는 것이 아니라 보고 느끼는 데 목적이 있다.



정약용유적지의 중심인 정약용의 생가와 그 주변



폐역이지만 옛 기차역의 정취를 간직한 능내역


지나고 나면 고작 밤 한 톨에 불과할 것을


남한강자전거길을 달리다가 팔당댐을 지나 우측으로 빠지면 그곳이 바로 정약용이 생몰한 마재마을, 바로 정약용유적지다. 능내역까지 가서 마을길로 들어서도 된다.

남양주는 ‘정약용의 도시’다. 다산길, 다산생태공원, 다산신도시에 이르기까지 조금 비약하면 오만 곳의 이름이 정약용의 호 ‘다산(茶山)’이다. 사실 다산은 정약용의 유배지였던 전남 강진의 만덕산에서 따온 호다. 만덕산에 차나무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약용이 태어나 자라고 또 생을 마친 고장이 남양주이기에 설사 도시 이름이 다산시나 정약용시로 바뀐대도 어색하지 않을 것 같다. 남양주에서 가장 큰 연례행사도 ‘정약용문화제’다. 2018년까지 다산문화제로 불리다가 2019년 정약용문화제로 이름이 바뀌었다. 축제의 메인 무대가 정약용유적지다.

다산은 조선의 르네상스 시대를 일군 만능 엔터테이너이자 신지식인이며 개혁가다. 『목민심서』, 『경세유표』 등 500여 권에 이르는 책을 저술하며 백성이 행복할 수 있는 방법에 골몰했던 실학자, 한강 배다리와 거중기, 수원화성을 설계한 건축가이자 과학자, 아내의 치마에 그림을 그리고 사진기를 이용했던 예술가, 자식들에게 편지를 즐겨 썼던 다정한 아버지…. 이 정도면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부럽지 않다.

두물머리에서 만난 남한강과 북한강이 한강으로 휘돌아 드는 지점, 삼면이 강으로 둘러싸인 비옥한 땅에 다산의 생가와 무덤이 나란히 있다. 생가 옆에는 기념관이, 앞에는 실학박물관이 있다. 실학박물관 앞 꽃밭이 다산생태공원이다. 그야말로 다산의 모든 흔적을 모아둔 백과사전 같은 땅이다. 부족한 게 있다면 그건 아마도 유배지 강진의 다산초당에 있을 것이다. 강둑에 서서 그가 응시했을 풍경을 눈 안에 담아본다. 다산도 같은 자리에서 산책을 하고 차를 마시고 또 시를 읊었을 것이다. 그가 두 아들에게 전하길 인생사 서글픈 모든 일들은 밤 한 톨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던가. 달관한 선비의 표정이 잔잔하게 흐르는 강물 위로 오버랩된다.


매년 정약용유적지를 중심으로 열리는 정약용문화제의 풍경



메타세쿼이아가 울창한 광릉수목원의 여름


그때 그 나무는 여전히 청춘처럼 푸르고


남양주의 여름이 그 어느 곳보다 찬란할 수 있는 까닭은 오롯하게 숲, 울울창창한 숲 덕분이다. 대한민국 온천지가 산임에도 ‘광릉숲’은 워낙 특별해서 편애하게 된다. 세조는 자신이 사냥터로 자주 찾던 숲에 묻혔고 그 자체로 왕릉이 된 숲은 오랜 시간 불가침의 영역으로 보존됐다. 나무를 벨 수도, 돌을 캐갈 수도, 또 누군가가 묻힐 수도 없던 땅은 오롯하게 자연의 질서로만 일구어진 원시림이 되었다. 덕분에 1987년, 이곳에 국립수목원이 문을 열었다. 광릉이 아니었으면 수목원은 없었을 운명이다.

수목원은 여타의 다른 수목원과 비교할 수 없이 빽빽하고 무성하다. 500년의 황실림은 인공적인 느낌 없이 품위 있는 자태를 보여준다. 돋보이려고 애를 쓴 부분 없이, 발이 닿는 모든 구역에 태곳적 나무들과 자연석들이 채워져 있다. 긴 시간 자연을 보존한 노력 덕택으로 온대북부지역에서는 보기 어려운 온대활엽수극상림이 이뤄져 있고 희귀 생물자원이 남아있는 산림생태계의 보고다. 언뜻 제주 곶자왈이 떠오르기도 한다.

20~30년 전 수목원에 왔던 이들은 같은 나무 아래서 그 즈음의 추억을 곱씹는다. 다만 행정구역상으로 국립수목원은 포천에 속한다. 이웃한 광릉은 남양주 소속이다. 광릉숲이 포천과 남양주의 경계에 걸쳐 있다. 그러나 나무가 어디 행정구역을 보고 나고 자라던가. 뿌리는 땅의 경계를 가르고 가지는 볕 따라 하늘로 뻗는다. 온전히 자연만의 이치와 질서로.


정약용유적지에 위치한 실학박물관 내부


‘큰법당’ 뒷산에는 어떤 비밀이 있을까


광릉과 국립수목원, 여기에 봉선사가 더해지면 완벽한 삼위일체가 이뤄진다. 봉선사는 광릉보다 500년 앞서 존재했다. 고려 광종 20년(969년)에 창건된 이 절은 세조가 세상을 떠난 후 정희왕후가 능침사찰로 크게 중창했다. 억불숭유 정책을 폈던 조선에서 가장 불심이 강한 왕이 조카와 동생들을 죽이고 왕이 된 세조라는 점은 참 아이러니하다. 어쨌든 세조 덕에 규모를 확장한 봉선사는 이후 교종 수사찰로 조선의 주요 사찰이 되었으며 오늘날까지도 교육과 수행 포교 중심 사찰로 그 명맥을 잇고 있다. 많은 이들이 광릉숲에 오면 98번 광릉수목원길만 스윽 드라이브하거나 수목원만 들렀다 가곤 한다. 그러나 봉선사를 그냥 지나치기는 아쉽다. 역사적인 의미를 차치하더라도 이방인의 눈길을 끌만한 요소가 많기 때문이다.

방문객을 맞는 봉선사 일주문의 편액은 한자가 아니라 한글로, 그것도 세로쓰기로 ‘운악산 봉선사’라고 쓰여 있다. 1970년, 사찰의 주지였던 운허 스님의 유고(遺稿)에서 집자한 서체로 건 편액이다. 한자 일색의 사찰들에서 볼 수 없는 파격은 경내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대웅전에 걸린 편액에는 동글동글한 한글 서체로 ‘큰법당’이라 쓰여 있다. 그러니까 이 절의 대웅전은 대웅전이 아니라 큰법당이다. 큰법당 기둥의 주련(柱聯)도 한글이다. ‘온 누리 티끌 세어서 알고/ 큰 바다물을 모두 마시고/ 허공을 재고 바람 얽어도/ 부처님 공덕 다 말 못하고’. 큰법당 편액은 서예가 금인석이, 주련의 글씨는 석주 스님이 썼다. 뒤편 조사전의 주련도 한글이다. 한글이 주는 편안함이 사찰 전체의 분위기를 온화하게 만든다.

독립운동가 출신으로 불교 대중화에 앞장선 운허 스님은 경전을 이해하기 쉬운 한글로 번역하면서 같은 맥락으로 사찰 편액 또한 한글로 걸었다. 광릉에 묻힌 세조가 조선 최초의 한글 대장경 『월인석보』를 간행한 ‘한글 사랑꾼’이었음을 상기하면 이 또한 묘한 인연이다.

그밖에 조선 초기의 동종양식을 보여주는 보물 제397호 봉선사대종, 목조가 아닌 콘크리트 철근으로 지은 ‘큰법당’, 수련이 아름다운 사찰 앞 두 곳의 연못 등 봉선사는 특별한 볼거리 많은 절이다. 사찰 역시 유네스코 생물권 보전지역에 포함되어 있는데, 뒷산은 일반인의 입산이 금지되어 있지만 템플스테이를 하면 큰 스님을 따라 잠시 산책을 할 수 있단다. 이른바 비밀의 숲 포행이다. 도시에 살다 숨이 갑갑하게 느껴질 즈음 잠시 절에 들러 뒷산의 비밀 좀 엿보아야겠다.



연못을 앞에, 광릉숲을 뒤에 둔 봉선사 전경


글·사진 유승혜

광운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여행작가로 활동하며 국내외 곳곳을 걷고 문장으로 적는 일을 한다. 지은 책으로 『쉼표,앙코르와트』, 『쉼표,경주』, 『쉼표,제주』, 『같이 오길 잘했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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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formation

  • 경기학광장 Vol.5 _ 2020 여름호

    발행처/ 경기문화재단 경기학센터

    발행인/ 강헌

    기획/ 이지훈, 김성태

    발행일/ 2020.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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