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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30호 | 나의 비평 웹진(들) 사용기

비평의 자격과 문화예술교육

1. 들어가며


  나는 2016년 11월 25일에 음악 웹진 [weiv]에서 「이랑이라는 무언가」라는 제목의 글을 발표했고, 그 이후로 계속 동시대 대중음악과 대중음악 비평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 그런데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나는 이 글이 '정말로' 나의 비평 데뷔작이라고 할 수 있는지를, 그리고 내가 '정말로' 대중음악 비평가인지를 끊임없이 되묻는다. 그러나 이 되물음이 겸손의 표현은 결코 아니다. 내 물음은 '이렇게 부족하고 모자란 나의 글을 감히 비평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따위가 아니라 '1) 어떠한 제도적 승인도 얻지 못했고 2) 심지어 비평이라는 지식 노동에 응당 지급되어야 하는 원고료를 거의 받지 못하는 나의 글을 정말로 비평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라는 축자적인 의문이기 때문이다.
  물론 위와 같은 두 물음이 2021년의 모든 예술 비평가에게 일반화될 수는 없을 것이다. 대중음악이 아닌 다른 예술 영역의 비평가는 충분히 적절한 제도적 승인을 받는 게 가능할 수 있고, 마찬가지로 합당한 보수를 받으며 비평을 지속하는 게 가능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누군가는 비평에게 제도적 승인 따위는 결코 필요 없으며 비평이 합당한 보수를 받아야 하는 노동의 일종으로 간주될 이유도 없다고 반론할 수도 있다. 아마 이런 문제들은 내가 한국의 대중음악 비평이라는 다소 특수하고 기이한 씬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유독 두드러지게 보이는지도 모르겠다. 어찌됐건 내가 계속 곱씹고 있는 두 물음이 모든 예술 비평가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문제라고 확언하기 어렵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그러므로, 이 글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한정된 나의 비평 경험에 기대어 쓰였음을 밝힌다. 더 구체적으로는, 이 글은 2016년부터 국내에서 몇몇 비평 웹진을 전전하며 대중음악 비평을 수행하고 있는, 한 90년대생의 비평 경험만을 토대로 삼는다. 특히 나의 비평 경험은 물성을 갖는 지면에 대한 경험이 극히 드물고 비평 웹진에 대한 경험이 주를 이룬다. 요컨대, 이 글은 ‘나의 비평 웹진(들) 사용기’이다. 특히, 앞서 언급했던 두 물음에 기반하여 나를 둘러싸고 있는 불확실성과 관련하여, 나의 비평 웹진(들) 사용 경험으로부터 비평 웹진의 양가성에 대한 몇 가지 생각들을 늘어놓는 글이 될 것이다.



2. 나의 비평 웹진(들) 사용 내역

  나의 비평 웹진(들) 사용 내역을 잠시 살펴보자. 나는 2016년부터 본격적으로 동시대의 대중음악과 대중음악 비평에 대한 글을 웹진 [weiv]를 통해 써왔다. 앨범 리뷰나 싱글 리뷰는 물론이고, 작가론이나 메타-비평도 있었다. 웹진 [weiv]에서의 활동 이력은 내 활동의 밑거름이 되었다. 멜론에서 운영하는 『멜론 매거진』이나 음악 웹진 『Beehype』에서 글을 쓰게 되는데 큰 도움이 되었으며, 여러 형태의 원고 청탁을 받는 기반이 되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점차 [weiv]에서만 글을 쓰지는 않게 되었다. 여러 이유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탓이지만, 그래도 굳이 이유를 꼽는다면 가장 큰 이유는 내가 지식 노동의 측면에서 비평 활동을 점점 바라보게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나는 가장 좋아하는 매체인 [weiv]에서만큼은 여전히 원고료 여부와 관계없이 자발적으로 글을 쓰고 있지만, 내 생계를 고려하지 않은 채로 마냥 무급 노동만을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생계를 위한 다른 일들을 하면서 간헐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자연스레 글쓰기에 투자할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었는데, 이렇게 한정된 시간 동안의 글쓰기조차 나의 생계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수 있게끔 선택과 집중을 하게 되었다. 이는 당연하게도 자발적인 무급 지식 노동에 해당하는 [weiv]에서의 글쓰기 대신, 조금이라도 원고료를 받는 유급 지식 노동에 해당하는 원고 청탁과 타 매체 기고를 중심으로 글을 쓰게끔 만들었다.

  게다가, 메타-비평에 가까운 글을 쓰다 보니, 굳이 대중음악에 관심을 가진 독자에 한정할 필요 없이 더 많은 사람에게 노출될 수 있는 매체에 기고하고 싶었다. 그래서 주제나 형식을 제한하지 않고 글을 받아주는 웹진 『크리틱-칼』에 두 편의 글을 기고하게 되었다. 『크리틱-칼』은 필자에게 소액이지만 원고료를 지불하기 때문에(2021년 1월 기준, 7만원), 일반적인 청탁과 다르게 내가 원하는 주제와 형식으로 글을 쓸 수 있으면서도 소액의 임금을 보장한다는 점에서도 꽤 만족스러운 매체였다.

  『크리틱-칼』에서의 경험은 새로운 비평 웹진을 만들어보고 싶은 마음으로도 이어졌다. 그래서 음악에 대해 무언가를 쓰고 있는 몇몇 이들과 함께, 자신이 쓰고 싶은 것에 대해 자유롭게 쓰되, 비평이라는 지식 노동에 대해 조금이라도 수익이 창출되는 『Various Critics』라는 매체를 만들었다. 『Various Critics』는 포스타입이라는 웹 플랫폼을 활용하여 필자가 사전에 설정한 금액을 지불해야만 글을 읽을 수 있는 구조로 운영되고 있다. 내 글은 1,500원에 판매되고 있는데, 수수료를 제한 2020년 10월 12일부터 11월 31일까지의 판매 수익은 28,035원이었다. 매우 소액이긴 하지만, 비평문을 읽기 위해 비용을 지불하는 독자의 존재를 직접 확인하면서 일말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희망을 품게 된 상황이다.


3. 나를 둘러싼 불확실성

  지금까지 나의 비평 웹진(들) 사용 내역을 살펴보았다. 엄청나게 뛰어난 글만을 써왔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나름 착실히 비평을 지속해왔다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비평 웹진(들)을 사용하면서 어떤 문제의식들과 불확실성을 마주해왔다. 지금부터는 그것들에 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먼저, 나의 첫 번째 물음을 상기해보자. 나는 ‘어떠한 제도적 승인도 받지 못한’ 나의 글이 정말로 비평인지를 계속 스스로 물어왔다고 밝혔다. 어떤 글이 비평이기 위해서 제도적 승인이 반드시 선제 되어야만 한다고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나는 모든 글이 비평이 될 수 있고 누구나 비평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 의구심은 조금 결이 다르다. 이 의문은 '불확실성'에 관한 것이다. 더 구체적으로는 비평가라는 정체성의 정당화 문제에서 발생하는 ‘불확실성’에 관한 것이다.

  나는 단 한번도 “전대한은 대중음악 비평가이다.”라고 공인받은 적이 없다. 즉, 내게 비평가라는 정체성을 귀속시켜주는 명시적인 주체가 없다. 감사하게도 몇몇 비평가들이 나를 비평가로 호명해주고 있기에, 이 정도면 충분히 공인받고 있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을 것이다. 분명, 비평가라는 정체성은 어떤 구체적인(혹은 확립된) 제도의 승인이 아니라 암묵적이지만 정합적인 승인 정도를 필요충분조건으로 가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진 않는다. 왜냐하면, 많은 경우 나를 비평가로 호명해주는 그들조차도 “~는 비평가이다.”라고 공인받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비평가로 공인받지 않은 이에게 비평가라고 공인받는 일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그것은 정당화될 수 있는 귀속일까? 결국, 비평가라는 정체성의 귀속을 참으로 만들기 위한 정당화에는 이와 같은 무한퇴행 문제와 순환성의 문제가 미결로 남는다.
  물론 비평가라는 정체성의 귀속이 제도와 같은 외부 대상에 의해 이루어질 필요가 없고 자기-정당화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반론도 가능할 것이다. 오직 나 자신이 스스로를 비평가로 호명하기만 하면, 그 귀속이 충분히 정당화될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이것이 내가 느끼는 불확실성의 직접적인 원인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입장을 견지하면서 비평을 지속할수록, 내가 비평가라는 사실을 참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오직 나 자신 하나뿐인 것처럼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이 오래 지속될수록 나는 비평가라는 정체성의 자기-귀속의 정당성을 끊임없이 재고하게 된다. 끝내, 자기-규정 혹은 자기-정당화는 자기-최면으로 전락하여 나를 옥죈다.

  물론 비평가라는 정체성의 귀속이 제도와 같은 외부 대상에 의해 이루어질 필요가 없고 자기-정당화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반론도 가능할 것이다. 오직 나 자신이 스스로를 비평가로 호명하기만 하면, 그 귀속이 충분히 정당화될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이것이 내가 느끼는 불확실성의 직접적인 원인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입장을 견지하면서 비평을 지속할수록, 내가 비평가라는 사실을 참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오직 나 자신 하나뿐인 것처럼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이 오래 지속될수록 나는 비평가라는 정체성의 자기-귀속의 정당성을 끊임없이 재고하게 된다. 끝내, 자기-규정 혹은 자기-정당화는 자기-최면으로 전락하여 나를 옥죈다.

  최대한 나의 경험과 생각에 한정하여 마주하는 문제의식과 불확실성에 대해 진술했지만, 사실 이는 내게만 해당하는 건 아닌 듯하다. 함께 글을 쓰는 대중음악 비평가들은 대부분 비평이 아닌 다른 일을 통해 생계를 해결한다. 또한, 동시대 대중음악 비평 웹진 중 필자에게 원고료를 지불하는 웹진은 없다. 나름 대표성을 띠는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회조차 무급으로 운영된다.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하겠는가?


4. 비평 웹진(들)의 양가성

  비평 웹진이라는 양태는 이러한 불확실성의 문제를 강화하는 동시에 한편으로 해소한다는 점에서 양가적이다. 우선 비평 웹진이 어떻게 위와 같은 불확실성의 문제를 강화하는지 살펴보자. 일반적으로 웹진은 '종이(출판물)'로 대표되는 기성 비평 매체의 대립항으로 간주된다. 왜냐하면, '종이'로 대표되는 기성 비평 매체가 가진 속성이 웹진에는 대체로 부재하기 때문이다. 물성이나 자본, 역사, 상징 권력과 같은 요소들이 대부분의 웹진에 부재한다. (물론 그러한 부재가 비평 웹진을 기성 비평 매체의 대안으로 만들기도 하지만) 바로 이러한 부재가 불확실성을 강화한다. 역사도 없고, 상징 권력도 없고, 자본도 없으며, 심지어 매체의 물성조차도 없어서 내 글이 기고된 장소가 언제든 소실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만 한가득 내포하고 있는 웹진이, 대체 어떻게 비평가라는 정체성을 공인해줄 수 있겠는가? 종이로 대표되는 기성 비평 매체의 (상대적) 확실성과 비교하면, 이러한 불확실성은 쉽게 이해될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비평 웹진은 불확실성의 문제를 해소한다. 다만, 이는 애당초 물성을 가진 비평 매체가 부재해 온 동시대 대중음악 비평 씬에만 해당하는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내가 비평 활동을 시작했던 2016년에 이미, 대중음악 비평 씬에서 웹진이 아닌 다른 양태의 비평 매체는 모두 망해 있었다. 그나마 살아남은 매체들은 모두 웹진이었고, 그마저도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지는 않았다. (나는 다른 글에서 이 상황을 “폐허의 폐허”라고 진단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웹진이라는 양태가 디폴트인 씬이기에,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오래 유지되고 있는 몇몇 웹진들을 일종의 기성 비평 매체로 받아들인다. 내가 속해 있는 웹진 [weiv]가 대표적이다. 1999년에 창간되어서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고, 그동안 거쳐 간 비평가나 연구자가 여럿 존재하는 매체라는 이유로, [weiv]는 일종의 기성 비평 매체로 작동하고 거기에 속한 나는 어느 정도 정체성을 인정받는다. 적어도 [weiv]에서 음악 글을 쓰고 있다고 소개하면, 비평가라는 정체성이 내게 귀속되는 일이 어느 정도 타당한 것으로 여겨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양가성은 두 번째 물음과도 연관되어 나타난다. 웹진은 분명 ‘종이’로 대표되는 기성 비평 매체의 양태보다 지속가능성을 도모하기가 쉬워 보인다. 물성을 가진 출판물을 만들기 위한 비용과 비교했을 때, 웹 페이지를 만들기 위한 비용은 대체로 훨씬 적다. 이는 매체의 유지 비용 측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다 보니, 비평 웹진에 그 차액을 비평가의 지식 노동에 대한 임금으로 지불할 여유가 생긴다. 아마 『크리틱-칼』과 같은 웹진이 소액이지만 원고료를 매번 지불할 수 있는 이유는 이러한 점 때문일 것이다. ([weiv]도 에디터가 아닌 외부 필자의 기고문에는 5만원의 원고료를 지불하고 있다).

  하지만 비평 웹진이라는 양태는 의외로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가 어렵다. 매체를 만들고 유지하는 비용은 크지 않지만, 그 매체가 창출하는 수익도 크지 않기 때문이다. 매체마다 상황이 다르겠으나 내가 속한 [weiv]를 예로 들어보면, [weiv]는 도메인비와 서버비 등 매체를 유지하기 위한 비용으로 연평균 20만원을 지출한다. 한편, [weiv]가 2020년에 구글 애드센스를 통해 벌어들인 수익은 120,844원이었다. 아주 단순하게 여기까지만 보아도 이미 연평균 8만원의 손해가 발생한다. 여기에 추정 상의 원고료와 운영진의 인건비 등을 고려한다면, 비평 웹진조차도 사실 지속가능성을 전혀 확보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웹진이라는 비평 매체의 양태는, 나의 불확실성의 근원이면서도 동시에 이를 어느 정도 해소해준다는 점과 지속가능성을 쉽게 도모할 수 있을 듯하면서도 동시에 지속가능성이 쉽게 확보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양가적이다.


5. 나가며
  한때 비평 웹진을 기성 비평 매체의 대안으로 치켜세우기만 하던 낙관적인 시선들은 이제 온데간데없다. 비평 웹진은 이제 낙관이나 비관의 대상이 아니라 그저 현실일 뿐이다. 게다가 이젠 돌아갈 수도 없다. 사실 나는 이전으로 돌아간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도 모른다. 나의 비평 경험은 이미 웹진이 디폴트인 시점에서부터 시작되었으니, 웹진이 창궐하기 이전의 비평계란 내겐 그저 상상의 대상일 뿐이다.

  그럼 대체 뭐 어쩌라는 걸까? 애석하게도 모든 사용기가 그러하듯, 이 글도 어떤 해결책이나 대안까지 제시하진 않는다. 그렇지만 이 사용기가 아직 완결된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나의 비평 웹진(들) 사용기는 적어도 당분간은 계속될 것이다. 불확실성과 양가적임을 끌어안고서, 그 답을 찾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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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진 '지지봄봄' / 경기문화재단 경기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에서 2012년부터 발행하고 있습니다. ‘지지봄봄’은 경기도의 문화예술교육 현장을 가까이 바라보며 찌릿찌릿 세상을 향해 부르는 노래입니다. 문화예술교육 현장이라면 어디든 드라마처럼 펼쳐지는 다양한 삶과 배움의 이야기와 그 안에 감춰진 의미를 문화, 예술, 교육, 생태, 사회, 마을을 횡단하면서 드러내고 축복하고 지지하며 공유하는 문화예술교육 비평 웹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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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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