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다순

경기문화재단

백남준아트센터 《오픈코드, 공유지 연결망》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기계적 사고방식'이 아니라 '기계의 사고방식'이다

오영진(문화평론가, 한양대 에리카 창의융합교육원 겸임교수)


손거울을 소지하고 다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요즘 우리는 핸드폰 카메라의 전면 카메라를 통해 자기 얼굴을 들여다보곤 한다. 이 때 카메라에 비친 얼굴은 광학과 소프트웨어로 제어된 해상도 높은 이미지의 산물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맨눈으로는 잘 보이지 않던 기미 주근깨를 자세히 확인할 수도 있고, 잡티 따위 쯤은 실시간으로 지워버리는 일도 가능하다. 카메라 앱뿐 아니라 소셜 네트워크에 올려지는 셀피(selfie)들은 어떠한가? 이제는 보정이 되지 않은 사진을 찾기 힘들며, 올리는 사람도 보는 사람도 재현되고 변형된 이미지를 기준으로 현실을 재구성하는 중이다. 현대인의 '나 자신의 이미지'는 필터라고 불리우는 소프트웨어의 알고리듬 속에서 구성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각적 이미지 뿐 아니라 각종 생체정보의 기록과 가공, 자동화된 생산성 도구들까지 생각해보면 우리는 정말 다양한 소프트웨어 속에서 살고 있다. 어쩌면 오늘날의 인간성은 그들이 사용하는 소프트웨어를 고찰함으로써 나온다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소프트웨어는 인간이 사용하는 도구 이상으로 인간을 재설정하는 매개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코드와 관계 맺기에 관하여

백남준아트센터의 전시 《오픈코드, 공유지 연결망》(2021.07.01.~10.24)은 오늘날 우리가 일종의 코드적 산물인 소프트웨어와 관계 맺는 방식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그것으로 인해 새롭게 수립되는 인간성의 단초를 보여주는 전시다. 2017년 독일 ZKM에서 시작되어 인도, 스페인, 중국 등의 예술기관에서 현지작가들과 더불어 전시를 확장해 왔고, 이번에는 한국에 도착해 또 다른 판본을 선보인다.


배인숙,<비트 스텝>, 2021, 센서, 컴퓨터, 90X400cm


이번 전시에서 우선 배인숙 작가의 작업이 흥미롭다. <비트 스텝>(2021)이라는 장치는 관객들의 걸음걸이에서 템포를 측정해 그와 유사한 K-팝의 목록을 화면에 띄워준다. 평범하고 아무 의미가 없는 신체적 정보가 데이터로 환원되어 음악적 요소로 파악되자, 자신이 어떤 K-팝의 템포와 공명하고 있는 지 견주는 일은 즐거운 놀이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한편으론 우리가 오늘날 K-팝이 제공하는 리듬에 속박되어 있음을 풍자하는 작업처럼 보이기도 하다. 오늘날 K-팝은 만든 이의 개인 작업물 이전에 철저히 계산되어 코드화된 노동요의 속성을 가진다. 손쉽게 관객의 템포가 <비트 스텝>을 통해 측정된다는 것은 실은 측정되기 쉬운 몸이 되었다는 의미로 읽어야 한다. 이 작품은 장치가 오히려 K-팝의 목록을 보여주지 못할 때, 또 유머와 자유의 감각을 선사한다.



김승범,<완벽한 원을 그리는 방법> , 싱글채널비디오, 7분30초



소프트웨어를 구성하는 컴퓨터 언어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하나의 독자적인 사고의 방식으로서 그 자체 음미되어야 하는 논리체계이기도 하다. 김승범 작가는 <완벽한 원을 그리는 법>(2021)을 통해서 비전문가들 위해 개발된 프로그래밍 언어 Processing에서 원을 그릴 때 명령어가 'Ellipse' 즉 타원임을 발견하고, 어쩌면 컴퓨터가 완벽한 원을 그릴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영상 에세이로 만들었다. 왜 이 컴퓨터 언어는 명령어를 개발할 때 'Circle'이 아니라 'Ellipse'를 택했을까? 아마도 타원이 원을 포함하는 개념이라 폭넓게 쓰기 위해 그랬을 수도 있다. 하지만 작가의 상상력은 완벽한 원을 그린다는 것은 인간이든 컴퓨터든 애초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 불가능성 앞에서 다양한 시적인 변주를 통해 어찌되었건 원에 도달하려한다고 해석했다. 작가가 Processing을 한국어로 개량한 새 컴퓨터 언어체계에서는 원을 그리는 법 중 하나를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ㅣ아무도 밟지 않은 눈 쌓인 공터에

ㅣ발자국으로 천천히 그리는

ㅣ공터를 채우는 큰 원처럼

ㅣ반복한다.


ㅣrepaet 360 [

ㅣ go 1

ㅣ turn 1

ㅣ]


컴퓨터의 언어와 인간의 언어체계가 공명하며 완벽한 원을 향한 탐구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감동적이다. 시적인 컴퓨터언어, 컴퓨터언어적인 시를 탐구하는 작가의 노력은 디지털 코드 환경과 인간이 맺는 상호적인 관계의 좋은 판본을 제시하고 있다. 사실 우리는 기계를 사용할 뿐, 기계 내부로 들어가 기계의 생각을 읽어내지 못한다. 기계의 생각이라는 것은 거창하게 SF 속 인간에 육박하는 인공지능의 의식 같은 것이 아니다. 특정한 알고리듬이 작동하는 원리와 그에 대한 이해, 이해를 통한 기계적 사고방식의 습득 등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오로지 사용관계만이 있을 뿐이다.


(좌)언메이크랩, <유토피아적 추출> 2020, 3채널비디오,돌,웹캐므컴퓨터, 실시간 객체인식 AI 시스템, 백남준아트센터 소장

(우) 마틴나달&세자르 에스쿠데로 안달루즈,<비터코인,최악의 광부>2016,계산기, 싱글채널비디오,3분14초


언메이크 랩의 <유토피아적 추출>(2021)은 사대강 사업으로 파헤쳐진 자연현상에서 가져온 깨진 돌을 인공지능이 학습하도록 만든다. 데이터 증강 작업을 통해 25장의 돌 이미지는 1만장으로 증폭되고, 이를 학습하는 지난한 과정을 시연한다. 인간의 입장에서는 무용한 이러한 학습은 돌이라는 자연계의 증언자와 인공지능이라는 기술계의 증언자가 공모해 벌이는 은밀한 작당같이 보인다. 인간은 자연과 기술 어디에도 친분을 얻지 못하고 이 교신 가운데 터져나오는 우발적인 사건을 바라볼 뿐이다. 이 작품은 관객으로 하여금 그동안 발 디뎠던 인간중심주의의 시선을 거두게 만든다. 같은 맥락에서 마틴 나달과 세자르 에스쿠데로 안달루즈의 작품 <비터코인, 최악의 광부>(2016)는 작은 공업용 계산기에게 블록체인 관련 연산을 맡김으로써 영원히 끝나지 않을 노동을 부과하여 학대하는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언뜻 비트코인 열풍을 풍자하는 작업처럼 보이지만, 노동하는 기계의 입장을 몰입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기계의 입장을 세운 작품으로도 읽어야 마땅하다. 이러한 작품을 통해 우리는 드디어 기계 내부로 상상으로나마 들어가 볼 수 있게 된다.


서울익스프레스, 2021, 컴퓨터, 디스플레이, 커스텀 소프트웨어와 엔클로저,피지컬 인터페이스, 인쇄 이미지, 가변크기


서울익스프레스의 <2021>는 관객이 참여해 작품의 결과가 자동생성되는 예술장치다. 관객은 마우스+키보드가 아닌 특별히 디자인된 인터페이스를 통해 인터넷에서 특정한 키워드로 이미지를 검색해 볼 수 있고, 미리 준비된 알고리듬은 이미지의 메타데이터를 조합해 코딩을 배울 때 가장 먼저 출력해 보는 단어 'Hello World!'를 시각적 이미지로 산출한다. 여기서 관객은 코더가 아니지만 코딩을 하는 셈이고, 작가가 아님에도 작가가 된다. 이 같은 체험을 통해 디지털 코드와 예술, 작가와 관객은 상호적 관계를 획득한다.


디지털코드는 더 오픈되어야한다

이 전시를 관람하고 나니 기계와 우리의 관계가 그동안 얼마나 소원했는가를 느끼며 현재의 기술적 환경이 아닌 전혀 다른 방식으로도 기술과 관계를 맺을 수도 있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일방적인 사용관계나 등가적 교환관계를 훌쩍 넘어서는 급진적인 상상력은 역시 예술가의 몫이다. 소개하지 않은 많은 작품들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 현재의 우리를 풍자하거나 다른 미래를 제시한다.


개별의 인간이 파악할 수 없을 만큼 방대한 데이터셋을 사용하고 확률론적 알고리듬으로 구성되는 인공지능이 등장하면서, 컴퓨터 언어와 소프트웨어는 점점 블랙박스화 되어가지만 그저 모르겠다고 손 놔두기는 또 찜찜하고 옳지 않은 것 같다. 당장 보아도 올해 초 인공지능 챗봇 이루다 논쟁은 소프트웨어를 학습시키는 인간 사용자의 데이터에 대한 법적인 권한과 윤리적 사용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없는 틈을 타 이루어진 촌극이지 않은가?


세상은 점점 더 디지털 코드로 구성되어가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들도 한편으론 디지털 코드화 된다. 오늘날 우리의 인간됨을 알기 위해서라도 디지털 코드는 더 오픈되어야 하며, 사회적 공유지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 기능적으로 코딩을 배우자는 말보다 시급한 것은 기계 내부를 음미하는 일이다. 이는 다른 말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이 '기계적 사고방식'이 아니라 '기계의 사고방식'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다. 이 차이가 무엇인지 곰곰히 생각하며 《오픈 코드. 공유지 연결망》 전시를 둘러본다면 작품을 한층 깊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백남준아트센터 전시 《오픈코드, 공유지 연결망》를 경기문화재단 유튜브채널에서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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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진은 2015년부터 한양대학교 에리카 교과목 [소프트웨어와 인문비평]을 개발하고 [기계비평]의 기획자로 활동해 왔다. 컴퓨터게임과 웹툰, 소셜 네트워크 등으로 대변되는 디지털 문화의 미학과 정치성을 연구하고 있다. 시리아난민을 소재로 한 웹반응형 인터랙티브 스토리 <햇살 아래서>(2018)의 공동개발자, 가상세계에서 비극적 사건의 장소를 체험하는 다크투어리즘 <에란겔: 다크투어>(2021)의 연출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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