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다순

경기문화재단

곱슬곱슬 부처머리 닮은 불두화 핀 석남사

드라마 도깨비 촬영지 안성 석남사를 찾아서

부처님 오신 날 맞아 찾은 고요한 산사

신록은 한층 짙어져 사방이 푸르고 거리마다 산천마다 오색연등이 넘실거린다. 5월, 마음이 들뜬다. ‘그분’이 오시는 날이다. 감사를 전하는 5월의 마지막 잔칫날은 부처님 오신 날이다. 고적했던 산사도 부처님 오신 날만큼은 흥성인다. 불가의 축제날, 야단법석한 대형 사찰도 좋고 드나들기 수월한 도심 사찰도 좋지만 자연이 생동하는 작은 사찰 방문도 좋을 것 같다. 해서 필자는 석가탄신일 주간에 맞춰 안성 서운산 자락의 석남사에 발을 디뎠다. 절간이 분주한 때인데도 경내에 들어서니 말하는 사람보다 지저귀는 새들의 목청이 높다. 울울한 숲으로 둘러싸인 석남사. 대문 격인 금광루 앞에 서니 새삼 이곳이야말로 번잡한 세상에서 한 발짝 물러난 아늑한 정토(淨土)구나 싶다.

그렇다고 석남사 가는 길이 멀고 깊지만은 않다. 서운산자연휴양림에서 1km만 더 산 쪽으로 들어가면 곧 부도(浮屠)가 보이고 경사진 지형을 따라 전각이 들어선 절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자동차로 절 입구까지 들어올 수 있어서 수고롭지 않게 올 수 있지만 일단 경내로 들어서면 첩첩산중인 듯 온통 울창하다.

금광루로 누하진입(樓下進入)하니 경내를 질러 쭉 뻗은 돌계단과 계단 좌측에 종무소 역할을 하는 중심당, 우측에 팔작지붕의 영산전이 보이고 최상단에는 사찰의 가장 중심인 대웅전이 자리한다. 시선은 자연스레 대웅전의 열린 문으로 조그맣게 보이는 본존불로 향한다. 특히 돌계단의 야트막한 담장이 공간을 정리해주면서도 주불전에 주목하게 하는 효과를 낸다. 현재의 가람배치는 1978년 이후 완성된 것으로 과거에는 영산전 앞에 대웅전이 있었고 돌계단도 없어 지금과는 많이 다른 분위기였다. 석남사의 그윽한 멋은 돌계단과 담장에 큰 빚을 지고 있지 않나 싶다.

석가탄신 봉축하는 불두화 만개

계단 양옆에는 불두화가 만개해 부처님 오신 날을 봉축하고 있다. 부처의 머리 모양을 닮았다 해서 불두화로 불리는 이 꽃은 신기하게도 4월 초파일을 전후해 펴서 많은 사찰이 정원수로 심는다. 불두화뿐만 아니라 곳곳에 작약도 화사하게 피었다. 절 전체가 수십 년간 스님과 불자들이 가꾼 정성어린 꽃밭이다.

대웅전으로 향하는 돌계단을 오르다 말고 영산전 부근에서 몸을 돌려 앞을 바라본다. 시야는 울울창창한 초록의 서운산으로 가득 찬다. 대웅전과 영산전의 석가모니 불상의 시선도 산을 향하고 있다. 이따금 불상을 마주할 때보다 불상의 시선이 향하는 방향을 함께 바라볼 때 더욱 감흥이 인다. 부처님이 계신 곳은 전각 안의 불단이 아니라 ‘지금 그대가 서 있는 바로 그 자리’라 했던 법정스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허나 어리석은 중생은 일상 속에서는 부처의 마음이 되지 못하고 이렇게 겨우 도량에 와서야 여유를 부리고 자비를 운운할 따름이다. 하여 자기성찰의 방편으로 종종 사찰을 방문할 필요가 있구나 싶다.

안성시는 과거 불교문화가 크게 융성했던 고장이다. 20여 기에 이르는 미륵이 여러 부락을 지키고 칠장사, 청룡사, 석남사 등 오래된 전통사찰이 자리하며 봉업사지라는 대형사찰의 흔적이 남아 있다. 그중 석남사는 통일신라 문무왕 때 창건되고 고려 초기에 혜거국사가 중수했다고 전하는 천년고찰로 이 고장 불교의 큰 축을 담당해왔다. 현재는 주지스님 한 분이 기거하는 작은 절이지만 조선 후기에 지은 대웅전과 영산전이 장엄한 자태로 긴 세월 절의 위상을 드높인다. 대웅전은 맞배지붕이라 단아하고 영산전은 팔작지붕이라 화려한데, 두 법당이 앞뒤로 위치해 서로 다른 건물의 조화가 또다른 볼거리다.


영산전은 1562년 건립되었으머 석가모니의 일대기를 그린 팔상도가 건물 외벽에 그려져 있으고 내부에는 석가모니불과 나한상이 모셔져 있다. 불상을 장식하고 보호하는 닫집이 화려하고 별도의 불단에 500나한상을 봉안한 점이 돋보인다. 지붕 처마의 다포 양식이 조선 초기에서 중기 사이의 건축 기법을 잘 보여주고 전체적으로 튼튼하고 균형 잡힌 건축미를 갖춰 국가 보물로 지정되었다. 본당 대웅전은 사찰의 중심다운 양감을 갖는다. 도드라진 외관은 아니나 단출하면서도 과묵한 모습이 신뢰감을 준다. 영산전이 팔작지붕으로 눈길을 끌어도 겸손하게 느껴지는 까닭은 단지 대웅전보다 몇 계단 아래에 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대웅전 앞 계단 양 끝에 세워진 호리호리한 두 기의 석탑은 고려 후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측된다. 수수하고 질박한 석남사의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


다붓한 산길 걸어 만난 숲속 부처

대웅전 앞에 서서 가람 전체와 서운산 자락을 조망하다 보면 시간이 잘도 흐른다. 그 풍경이 자연이 그린 5월의 유화 같아서 오래토록 감상하고 싶다. 그러나 석남사를 찾는 또다른 즐거움을 위해서는 경내를 빠져나와 짙은 유화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절을 바라보고 좌측 산길로 들어선다. 석남사 마애여래입상을 만나러 가는 길은 경쾌하다. 내내 계곡을 따라가기에 물소리가 청량하고 곳곳의 작은 폭포와 웅덩이는 맑고 시원해서 바라만 봐도 가슴이 트인다. 단풍나무가 군락을 이룬 산길을 따라 700m쯤 걸어 오르면 석남사 마애여래입상으로 향하는 샛길이 나온다. 팻말이 있어 쉽게 찾을 수 있다. 가파른 경사를 30초만 걸어오르면 커다란 암벽에 새겨진 부처님이 등장한다. 가는 선으로 음각되어 있지만 넓적한 얼굴에 길게 늘어진 두 귀, 두툼하게 접힌 목과 불거진 눈이 선명하다. 강렬한 인상이면서도 매섭지 않고 인자하다. 높이 5.3m의 석남사 마애여래입상은 통일신라 마애불 양식이 남아 있는 고려 전기의 작품으로 추측된다. 세 줄기 주름으로 표현된 목은 번뇌와 업, 고통을 상징하는 삼도의 표현이다. 경기도 유형문화재로 특출난 부분 없이 형식적인 불상이라고는 하나, 불교 미술에 문외한 뜨내기에게 숲속의 돌부처는 그저 신비롭고 아름답다.


산을 오르거나 호숫가를 걷거나

마애여래입상을 빠져나오면 두 가지의 선택지가 있다. 산길을 계속 오르거나 산길을 벗어나 주변 볼거리를 찾아나서거나. 기실 많은 사람들이 석남사를 들머리로 서운산을 오른다. 서운산을 오르는 길은 산 너머 청룡사를 비롯해 여러 갈래가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석남사 들머리를 최고로 친다. 산길 또한 절의 고졸한 정취를 닮았는데, 맑은 계곡변으로 나무 그늘이 울창하고 그 아래로 폭신한 낙엽길이 한동안 이어진다. 10분 쯤 오르면 석남사 마애여래입상에 닿고, 한 시간쯤 오르면 해발 547m의 서운산 정상이다. 정상에서 올라왔던 길 반대 방향으로 다시 한 시간 쯤 내려가면 서운산 남서쪽 청룡사에 닿는다. 안성남사당패의 본산인 청룡사는 저잣거리 연희패를 품어준 곳답게 무대처럼 넓은 절마당과 웅장한 대웅전을 자랑한다. 석남사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라서 산을 오르내리며 두 절을 두루 구경하는 즐거움이 있다. 서운산은 안성에서 가장 높은 산이지만 산세가 험하지 않아서 초보 등산가들도 어렵지 않게 오르내릴 수 있다.


산을 오르지 않는다면 석남사에서 가까운 서운산자연휴양림이나 마곡호수를 산책해도 좋다. 석남사 등산로 입구에서 주차장으로 쓰는 넓은 공터로 들어서면 서운산자연휴양림으로 향하는 산길이 있다. 20분 정도면 걸어서 휴양림에 닿는다. 자동차로 도로를 이용하면 1분 거리다. 산림청 홈페이지를 통해 캠핑사이트나 카라반, 숲속의집(펜션형 숙소)을 예약해 하룻밤 숙박해도 좋고 조경이 잘 되어 있어 산책 삼아 한 바퀴 걸어도 좋다. 석남사에서 2km 떨어진 길목에는 마둔호수가 있다. 저수지가 66개에 달하는 안성시는 기존에 농업용수 용도로 쓰던 저수지들을 하나 둘 관광화 시키고 있는데 마둔호수도 그 중 한 곳으로 ‘저수지’에서 ‘호수’로 개명 후 걷기 좋은 둘레길이 조성되었다. 마둔호수에서 10km 정도 떨어진 곳에는 안성의 호수를 대표하는 금광호수가 있다. 마둔호수보다 훨씬 규모가 크고 박두진 문학길로 명명된 호수 산책로가 걸을만 하며 주변에 카페, 식당 등 상업시설이 발달했다.


글, 사진 여행작가 유승혜

출처 중부일보 (원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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