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다순

걷고쓰는사람

어느 평범하고 특별한 한강변 호수공원

여름날 구리 장자호수공원에서


구리에는 장자호수공원이 있다. 시민들에게는 장자못이란 이름으로 더 익숙하다. 공원 주변의 넓은 부지에는 부추를 재배하는 비닐하우스가 들어차 있는데 시내 인근에 여전히 농지가 존재한다는 점이 새삼스럽다. 농장들을 지나왔기에 장자호수도 일제강점기 때 축조된 저수지인가 싶었지만 왕숙천이 홍수에 범람할 때마다 장자못 방면으로 물길이 나면서 형성된 자연 호수란다.물길은 퇴화하고 못만 남았는데 장자못이 아차산과 한강 사이 배후 습지가 되면서 특별한 생태를 이루게 되었다.

1970년대까진 다양한 생물체가 살며 녹색을 땅으로 불리던 장자못은 1980년대부터 진행된 급속한 도시화와 산업화로 죽음의 호수로 변해갔다. 특히 주변의 레미콘 공장에서 나오는 폐수가 흘러들어 매우 심각하게 오염되었고 이는 한강까지 악영향을 끼쳤다. 15년 넘게 별다른 조치 없이 방치되었던 악취 나는 못은 1997년에서야 하천 정비 사업으로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했다.




2000년대 들어서 구리시는 본격적으로 장자못을 공원화하는 계획을 세웠다. 수질 개선, 수면 생태계 복원사업, 시민 공원과 생태학습장 조성 등 다각도의 노력을 거친 끝에 오늘날의 장자호수공원으로 거듭났다. 호수에는 물고기 개체 수가 급증해 수질 보전 차원에서 물고기 잡기 행사를 실시할 정도였고 2021년에는 제9회 경기정원문화박람회도 열렸다. 개과천선이라는 고사성어가 어울릴 법한 장소다. 못이 아니라 사람들을 겨냥한 말이 될 수도 있다. 도시발전이라는 명목으로 정화 장치 하나 없이 오폐수를 흘려보낸 인간의 이기심과 무관심이 장자못을 오염시켰다. 뒤늦게 심각성을 인지한 사람들은 결국 몇 배의 자본과 시간을 들여 장자못을 되돌려놓아야 했다. 이미 오랜 시간 엄청난 양의 오폐수가 한강과 바다로 흘러들었으니 ‘되돌려놓았다’는 표현은 온당치 않을 것이다.

지금도 세계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장자못이 존재한다. 미디어에서 수없이 환경오염과 지구온난화 문제에 대해 다루기에 더 이상은 무지로 인한 실수라고 변명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본을 앞세운 욕망과 이기가 지구를 망가뜨리고 종국에는 인류를 위협하고 있다.




사실 장자못이라 불리는 못은 전국에 백여 개에 이를 만큼 그 이름이 흔한데, 어느 한 곳을 특정하지 않은 장자못 설화가 내려온다. 먼 옛날, 아주 인색하던 부자에게 한 승려가 시주를 받으러 온다. 고약한 심성의 부자는 승려에게 외양간의 쇠똥을 퍼주었고 이에 천벌을 받은 부자의 집터는 늪으로 변했다고 한다. 세부 내용은 지역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큰 줄거리는 못된 마음을 가진 자가 벌을 받는 인과응보의 이야기다.

맑은 물에 쇠똥을 줄기차게 퍼주던 인간은 결국 똥이 풀어진 더러운 물을 마시게 될지도 모른다. 아니, 이미 마시고 있다. 짧은 반세기 동안 일어난 장자못의 변화를 되새기면 소비와 배출을 일삼는 한 인간으로서 자연에 미안한 마음 뿐이다.




장자못에는 이무기에 대한 구전 설화도 내려온다. 장자못에서 물을 끌어와 논농사를 지을 적에 이무기가 물을 대는 구멍을 막아 버려 농사가 어렵게 되었다. 이에 사람들이 정성을 들여 고사를 지내자 이무기가 빠져나갔다는 이야기다. 옛 어른들은 장자못에는 이무기가 뚫어 놓은 굴이 있는데 그 굴이 인천 바다까지 연결되었다고도 했다. 이 설화 또한 함부로 자연을 건드려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준다. 어쩌면 오늘날의 아름다운 공원 모습은 자연 입장에선 그저 눈에 보이는 곳만 보기 좋게 다듬어 놓은 치장 정도로 여겨질지도 모른다.




설화 소개를 핑계로 너무 부정적인 이야기만 늘어놓은 것 같다. 어쨌거나 오늘의 장자호수공원은 과거의 흔적을 모두 지운 채 평화롭기만 하다. 평탄하게 뻗은 산책로, 보기 좋게 다듬어진 잔디밭, 깨끗한 호수…. 높이 치솟는 분수는 청량하고 구획을 나누어 종류별 꽃을 심은 색색의 정원은 화려하다. 그리고 활기차게 운동하는 사람들, 정답게 수다 떠는 사람들, 호수를 바라보며 망중한을 즐기는 사람들, 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사람들이 있다. 주말에는 작은 음악회나 전시회가 열리는 등 시민들을 위한 이벤트의 공간이 되기도 한다. 내가 찾았을 때도 잔디광장에서 한 뮤지션이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고 그 모습을 삼삼오오 구경하는 시민들이 있었다.




이방인이 보기에 아주 특별한 볼거리가 있는 공원은 아니다. 그저 잘 가꾼 도심 근린공원이다. 그렇지만 보이지 않는 흔적을 더듬어 걸을 때 평범해 보이던 공원도 사연 있는 땅으로 특별한 의미를 갖게 된다. 공원 한 바퀴를 다 돌고 나니 구리 시민에게 장자못은 도시의 허파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허파가 앞으로도 내내 건강하길 소망하며 한강으로 향하는 공원 굴다리로 발걸음을 옮긴다. 공원 굴다리를 지나 5분쯤 걸으면 바로 한강 둔치다.


글·사진 여행작가 유승혜


※ 본 글은 '경기그레이트북스' 시리즈 중 제33권 『50만 살의 청춘- 경기 북부로 떠나는 시간여행』, <구리시 : 뿌리와 보루>에서 발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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