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다순

걷고쓰는사람

1박 2일, 멍 때리러 절을 찾았다

가평 명지산 대원사 템플스테이



대원사 산신각에서 내려다본 풍경


스님이 모는 차 타고 명지산 깊은 골짜기로

오후 2시 30분. 가평역 앞에 스님이 운전하는 승합차가 섰다. 탑승한 이들은 주로 20~30대 여성들. 혼자 온 이도 있고 둘씩 짝지어 온 이들도 있었다. 가평역에서 대원사까지는 약 17km, 차로 30분쯤 걸린다. 스님의 ‘픽업 서비스’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템플스테이 손님에 대한 배려다. 차는 가평천과 명지산 자락을 따라 골짜기 깊은 북쪽으로 향했다. 길목 곳곳이 펜션과 캠핑장이지만 오늘은 절집에서 숙박하기로 한다. 연인산에서 흘러 내려오는 백둔천이 가평천을 만나는 지점에서 가파른 산길을 700m쯤 오르자 산 중턱, 대원사 종무소에 닿았다.

사찰은 공사로 어수선했다. 높이 7m의 석조쌍미륵대불이 조성되는 중이고 대웅전 또한 보수 작업 중이라 건물이 완전히 해체되어 있었다. 종무소에 모여 간단한 사찰 안내를 받고 방사를 배정받았다. 오늘 대원사에 묵어가는 템플스테이 인원은 15명. 작은 사찰치고 많은 인원이다 싶었는데 내일은 45명이나 된다고 했다. 올가을 들어 템플스테이 예약인원이 대폭 늘었는데 총무스님인 선일스님도 이유는 잘 모르겠단다. 하룻밤 묵어보면 대원사의 진가를 조금 알 수 있지 않을까. 1박2일 동안 절을 찬찬히 둘러보기로 했다.



대원사 약사전 내부. 자연 석굴을 단장해 법당으로 꾸몄다.


전란 속 은신처, 전통사찰 된 사연

대원사의 역사는 6·25전쟁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가평전투 등 가평 일대에서도 크고 작은 폭격이 일어났고 당시 명지산 아랫마을 주민 70여 명은 명지산 석굴로 숨었다. 다행히 석굴 안에 물이 흘러 이들은 이 물을 받아 마시며 전란을 견뎠다고 한다. 그 석굴이 오늘날 대원사의 약사전 석굴 법당이다. 약사여래불상이 모셔진 석굴 안쪽에선 지금도 졸졸 물이 흘러나오고 있다. 전쟁이 끝난 후, 불심이 깊었던 선심화 보살이 이곳에서 주민들과 기도정진했고 1964년에 사재를 털어 법당을 지은 것이 대원사의 시작이다. 목숨 부지가 우선이었던 어려운 시절에 피난민의 은신처가 되어주고 생명수를 제공한 자비의 땅이 사찰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숱한 천년고찰의 창건 설화보다 핍진해서 객의 발길을 이끈다.



명지산 대원사 전경


MZ에게도 인기, 산사에서의 하룻밤

대원사가 내어준 하룻밤 누울 자리는 석굴과 비교할 수 없이 아늑하고 쾌적했다. 배정받은 방은 심검당의 ‘마후라가’였다. 불법을 수호하는 팔부신중 중 하나다. 옆 방들도 ‘건달바’, ‘아수라’, ‘야차’ 등 나머지 팔부신중 이름이 붙어있었다. 방은 두 사람까지도 충분히 머물만한 크기에 깨끗한 욕실이 방 내부에 있고 개별보일러가 설치되어 있다. 절집에서의 무더위와 한파, 지저분한 침구와 불편한 합숙, 야외 해우소는 다 옛날얘기다.

2002년 한일월드컵 때 시작된 템플스테이는 이제 20년이 넘었고 전국 템플스테이 운영 사찰들의 숙박 환경과 프로그램은 크게 개선되고 발전했다. 2015년에 템플스테이 운영사찰로 지정된 대원사도 그중 한 곳이다. 종무소에서 나눠준 법복으로 옷을 갈아입고 작은 책상 하나 놓인 방에 앉았다. 열어둔 문 사이로 들어온 소슬바람이 뺨을 스쳤고 온 사위는 고요했다. 문밖으로 나서자 시야는 온통 울울창창한 가을산으로 채워졌다. 수덕산과 명지산이다. 템플스테이를 ‘나에게로 체크인’이라고 하는 이유를 알겠다. 방마다 신발 한 켤레씩 문 앞에 놓여 있었다. 다들 나와 같은 마음이겠지 싶다. ‘명상나한기도도량’이라더니, 평소에는 하지도 않는 명상이 절로 되는 자리이다.



대원사 대적광전에 모셔진 석조비로자나불좌상


60년 된 사찰에서 만난 얼굴 없는 천년불

그런데 심검당은 가람 가장 아래쪽에 있어 대웅전이나 공양간까지 가려면 가파른 계단을 10분가량 올라야 한다. 등산이 따로 없다. 심검당에서 머무는 이들은 ‘천국의 계단’이라 불렀다. 불가에 어울리게 고치면 도솔천의 계단이라고 해야 할까. 산 위에 자리 잡은 절들은 좁고 가파른 지형에 건물을 올려야 해서 비탈지고 계단이 많을 수밖에 없다. 호흡에 집중하고 잡념을 정리하기에는 계단 오르는 일만 한 게 없다. 계단 중간중간, 샛길에서 마주치는 전각들을 구경하며 쉬엄쉬엄 오르기로 했다.

사실 석굴인 약사전을 제외하고 대원사의 전각들은 대부분 2000년대 이후에 지어졌다. 현재도 가람을 확장하고 있기에 ‘현재진행형’ 사찰이라고 할 수 있다. 심검당을 올라 가장 먼저 마주치는 건물은 오백나한상을 모신 나한전과 그 옆의 약사전이다. ‘내 마음을 닮은 얼굴’은 어디 있나 나한전 안을 휘 둘러보고, 약사전에서 물 흐르는 소리를 눈감고 들었다. 조금 더 오르면 대적광전이다. 이곳에는 경기도문화재자료인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이 모셔져 있다. 사찰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1982년 강원도 춘천에서 발견된 불상을 대원사 석굴에 모셨다가 2017년, 새로 지은 대적광전으로 옮겼다. 얼굴은 닳아서 표정은 보이지 않지만 굵은 머리털과 목의 삼도, 몸에 걸친 가사는 선명하다. 양식으로 볼 때 신라 말이나 고려 초에 제작된 것으로 추측된다. 대적광전에서 보이는 산길을 따라 걸어가면 대원사 템플스테이의 자랑, 찻집 사바하가 있다.




대원사 지키는 강아지 자매 ‘대원이’, ‘소원이’

잠시 묵언했던 시간을 보상이라도 받듯, 결국 사바하에서 방언이 터졌다. 사바하는 템플스테이 참여자들의 사랑방이다. 사찰안에 이렇게 쾌적하고 모던한 인테리어의 무인카페가 있다니! 심지어 경내에서도 잘 보이지 않는 가람 바깥쪽에 자리해 명지산의 아지트라 할만하다. 처음부터 템플스테이 이용자들의 전용공간으로 만든 절집 안의 찻집이다. 이곳에서 만난 이들은 모두 홀로 절에 왔다가 ‘일일 도반’이 된 사이였다. 보이차를 우리고 원두를 갈아 커피를 내려 마시면서 절을 찾은 사정을 주고받았다.

고미연 씨(40)는 “어릴 때부터 부모님을 따라 절을 자주 다녔지만 템플스테이는 처음”이라며 “대원사 회주 보인스님과 나눈 대화가 일상의 큰 위로가 되었다”고 했다. 대원사를 찾은 이유는 템플스테이를 검색했더니 홈페이지 최상단에 뜬 절이었단다. 이재인 씨(23)는 인스타그램에서 “대원사에 사는 강아지들 사진을 보고 너무 귀여워서 템플스테이를 결심했다”고 했다. 태어난 지 3개월 된 진도와 리트리버의 믹스견 강아지 자매 ‘대원이’와 ‘소원이’는 대원사의 마스코트다. 얼마 전 절집을 나간 진돗개 ‘아빠 대원이’가 마을에 내려가 사고를 치는 바람에 엄마개를 키우던 견주가 새끼들을 절 앞에 놓고 갔단다. 강아지들은 ‘대원사 템플스테이의 특별 복지’로 통하며 높은 인기를 구가 중이다.



정성으로 내어준 절밥


공양주 보살 정성 담뿍 담긴 절밥 한 그릇

오후 5시. 기다리던 저녁 공양 시간이 되었다. 스님들이 먼저 공양간에 들고 이후 보살, 거사들이 들었다. 스님 이외의 사람들은 모두 보살이고 거사이다. 대원사에 온 후로 가장 많은 사람을 공양간에서 만났다. 이들을 한자리에 모이게 한 이는 회주, 주지스님도 아닌 공양주 보살님들이다. 절에서 밥 짓는 일만큼 고된 일이 없다고, 공양주의 공덕은 출가수행 못지않다는 말을 익히 들어왔다. 그들이 정성으로 내어준 음식을 감사히 받아먹었다. 들깻가루에 무친 시래기나물, 들기름에 볶은 무나물, 마늘종장아찌, 견과류조림, 애호박튀김, 배추겉절이, 녹두설기까지 접시가 넘치도록 식탐을 부렸다. 고기 없는 절밥이 유난히 맛있는 이유는 따로 없다. 공양주 보살들이 밥이 아닌 복을 지어서다. 그 와중에 사바하에서 말문을 튼 도반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밥을 먹다가 종무소 거사님의 주의를 들었다. 공양 또한 수행임을 잊고 있었다.



타종 시범을 보이는 스님


절에 오니 ‘디지털 디톡스’가 되더라

오후 6시. 범종각에서 타종체험이 있었다. 스님이 시범을 보인 후 한 사람씩 종을 쳤다. 스님이 치는 것만큼 장중하고 깊은 소리가 나진 않았지만 종이 울릴 때마다 가슴이 울리는 듯 묘하게 뭉클한 데가 있었다. 이후에는 저녁 예불이 진행됐다. 예불 참여는 개인 자율이다. 공식적인 일정은 여기까지다. 이후 템플스테이 참여자들은 카페 사바하나 각자의 방으로 들어갔다. 가뜩이나 해가 짧아진 늦가을, 산사의 어둠은 일찍 찾아왔다. 평소 자정을 넘겨 잠자리에 들어서 산사의 밤은 길기만 했다. 뭘 해야 할지 몰라 습관적으로 스마트폰에 손이 갔다. 그러다 문득 ‘노트북 등 전자기기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템플스테이 청규가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가평 대원사 템플스테이를 신청한 것도 ‘나는 멍때리고 싶다’라는 프로그램명이 마음에 들어서였다. 이참에 디지털 디톡스를 겸해 ‘멍때리는 시간’을 가져 보기로 했다. 그렇게 멍을 때리다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카페 사바하 가는 길


‘미라클 모닝’이 별건가

얼마 만에 새벽 기상인가. 타종 소리에 정신이 깼다. 아침 6시, 명상하는 기분으로 아침 예불에 참여했다. 구름이 낀 흐린 날씨라 아쉽게 대원사의 자랑인 해돋이 장관은 보지 못했다. 그러나 절에서 가장 높은 곳인 산신각에 올라 맑은 공기를 마시고 풍경 소리 들으며 산 아래를 굽어보니 ‘미라클 모닝’이 따로 없었다. 아침 공양으로 말간 콩나물뭇국에 머위나물 들깨무침을 맛있게 먹었다. 아침식사를 하지 않는 편인데도 꿀맛이었다.

식사 후 선일스님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가 사바하로 가서 커피를 내려 마셨다. “아, 좋다”하는 감탄이 터져 나왔다. 절에서 머무는 일이 수행이라면 템플스테이는 수행이라 말하기 겸연쩍다. 너무 달게 쉬고, 먹고, 자고, 멍때렸다. 하루 더 머물고 싶었지만 방이 없었다. 여기, 명지산 골짜기 절과 연이 닿은 또 다른 이들이 만원이란다. 마후라가 방을 깨끗이 치우고 대원이와 소원이의 배웅을 받으며 다시 승합차에 올라탔다. 다음 봄에 오면 훌쩍 큰 절집 멍멍이들을 만날 수 있겠다.


글·사진
여행작가 유승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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