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다순

걷고쓰는사람

자연 암벽 속 숨은 부처‧코끼리 찾기, 남양주 천보사

불암산 자락 아름다운 고찰


봉우리가 ‘불상’ 그 자체인 산

부처바위라는 뜻의 불암산(佛巖山). 주봉이 마치 송낙(여승이 쓰는 모자)을 쓴 부처의 형상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서울과 경기도 경계에 걸쳐있는 수락산이나 북한산, 관악산 등에 비하면 해발도 인지도도 낮은 편이다. 그러나 암벽과 숲의 조화가 아름답고 전망 또한 뛰어난데다 소위 ‘영험한 기운’이 있다 해서 사계절 내내 등산객의 발걸음이 잦다. 이름과 형상이 ‘부처’ 그 자체라서 불자라면 한 번씩 오르고 싶어 하는 산이기도 하다.



불암산에서 내려다 보이는 남양주 별내신도시 


부처의 눈에는 부처 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불교에선 마음먹기에 따라 부처는 어디에나 존재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도량을 찾아야 겨우 참선에 들까 말까한 중생에게 불암산은 그 이름만으로도 마음이 끌리는 산이다. 산에는 크고 작은 절들이 중턱과 자락에 포진해 있다. 그중 가장 유명한 절이 산과 이름이 같은 불암사다. 신라 헌덕왕 때인 824년에 지증대사가 창건한 천년고찰로 서울을 수호하는 4대 명찰 중 하나로 꼽힌다. 오랜 명성 덕에 오늘날에도 찾는 이들이 많다. 이번 글에 소개하는 천보사는 불암사에서 서남쪽으로 500m 쯤 떨어진 곳에 자리한다. 내내 불암산 자락이어서 산길을 통해 두 절 사이를 오갈 수 있다.



불암산 등산로를 따라 천보사 가는 길 


자동차로 진입하는 입구는 다르다. 별내 쪽에서 불암산로를 따라 산을 향하다보면 경사가 시작될 즈음 두 갈래 길이 등장한다. 길이 갈리는 지점에 천보사 일주문이 있어 헷갈릴 일은 없다. 지붕 없이 나무기둥 세 개를 이어서 세우고 편액을 건 일주문이다. 기둥이 아름드리라서 장식 없이도 웅장하고 근사하다. 그런데 이왕 시간을 내 불암산에 왔다면 왼쪽의 천보사길이 아닌 오른쪽의 불암사길로 들어서길 추천한다. 온 김에 불암사, 천보사, 불암산을 두루 둘러보자. 큰 힘 들이지 않고 모두 도는데 넉넉하게 두어 시간이면 충분하다. 불암사길을 추천하는 또 다른 이유는 천보사로 곧바로 가는 길의 경사가 굉장히 가파르기 때문이다. 어떤 차량도 큰 소음 없이 오르기가 쉽지 않고 걸어 오르는 것도 만만치 않다.



불암산 천보사 가는 길


불암사 일주문은 갈림길에서 조금만 더 올라가면 나오는데 일주문 편액에는 천보산 불암사(天寶山 佛巖寺)라고 쓰여 있다. 불암산의 다른 이름이 천보산이다. ‘하늘의 보배’라는 뜻이다. 천보사도 같은 한자를 쓴다. 그러니까 불암산이기도 하고 천보산이기도 한 산에 불암사와 천보사가 모두 있는 셈이다.


절 안에 코끼리는 모두 몇 마리일까?

차는 불암사 문루인 제월루 앞에 세울 수 있다. 시간이 여유롭다면 불암사 도량부터 한 바퀴 둘러보자. 대웅전과 지장전, 칠성각 등의 주요 법당들과 대웅전 뒤편의 마애삼존불상, 석가사리탑까지 돌아보며 고찰의 고즈넉함을 만끽하자. 인근에서는 유명한 사찰이지만 그렇다고 방문객으로 붐비는 절은 아니다.


도량을 나와 제월루 앞으로 서면 오른쪽에 천보사 이정표와 함께 나있는 산길을 볼 수 있다. 그 길을 15분 정도 오르면 천보사다. 500m가 채 되지 않는 거리인데 나름 비탈진 등산로라서 숨이 차다. 그래도 자동차로 오르는 길보다 훨씬 운치 있고 호젓하다. 또한 잠깐이지만 산행다운 산행을 즐길 수 있고 두 사찰을 한꺼번에 구경할 수 있어 나름 알찬 사찰 여행 코스라고 할 수 있다. 울창한 숲을 빠져나와 천보사 도량에 닿으면 남양주 별내 신도시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아파트가 빽빽한 신도시 풍경이 특별한 감흥을 주진 않지만 사위가 고요한 산사에서 도심을 내려다보고 있자면 그간의 체증이 내려가는 듯하다.



불암산에는 천보사, 불암사가 자리한다. 불암산의 또다른 이름이 천보산이다. 


축대 위에 다져 올린 땅에 몇 채의 전각으로 이루어진 천보사는 건물들만 봐선 이렇다 할 이야깃거리가 없어 보인다. 해방 직후 중창한 지장전을 제외하고는 2000년대 이후 지은 새 건물들인데다 편의를 위해 세운 콘크리트‧조립식 건물들이 섞여 있어 투박하고 조화롭지 못하다. 그러나 범종루 앞에서 가파른 시멘트길을 오르는 순간, 눈앞에 나타나는 거대한 자연 암벽은 감탄을 불러일으킨다. 이방인에게는 비로소 ‘천보사에 오른 보람’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축대 위에 세워진 절, 하늘하늘한 코스모스 뒤로 대웅전이 보인다


웅대한 암벽 앞에 천보사 대웅전이 오롯하게 자리한다. 암벽은 코끼리바위 혹은 치마바위로 불리는 불암산의 주요 암벽이다. 이름처럼 커다란 코끼리 형상의 바위인데 이를 반영한 듯 대웅전 용마루에는 외람되지만 ‘앙증맞은’ 코끼리 한 쌍이 올라서 있다. 불교에서 코끼리는 매우 성스러운 동물이다. 마야부인은 흰 코끼리가 품 안에 들어오는 태몽을 꾸고 싯다르타 태자를 잉태했으며 자비의 덕을 담당하는 보현보살은 흰 코끼리를 타고 다닌다. 천보사 대웅전 안에도 흰 코끼리를 탄 보현보살 탱화가 있다.



암벽에 보각된 마애여래좌상


자연이 조각한 불교의 다양한 상징들

돌거북과 용왕이 인상적인 용왕당 뒤편에는 암벽으로 향하는 뒷길이 나있다. 정확히는 암벽에 조각한 마애여래좌상과 삼성보궁으로 향하는 길이다. 천보사는 예로부터 천연보궁(天然寶宮)으로 불리며 기도영험이 있는 사찰로 유명했다. 확인할 수는 없지만 오랜 옛날부터 사람들이 절을 하고 기도 했던 자리는 코끼리바위 앞이었을 것이다. 처음 경내에 들어선 이들도 본당인 대웅전보다 대웅전을 병풍처럼 둘러싼 암벽으로 먼저 발걸음이 향한다. 판판하고 드넓은 암벽은 부처님을 새겨 넣기 좋은 최상의 캔버스 같다.(물론 화강암을 깎아 조각하는 일이 쉽지 않겠지만) 하여 암벽에 다가서기 전에 돌에 조각한 불상이 하나 정도 있을 것이라는 예상을 쉽게 할 수 있다. 실제로 코끼리바위에는 크지도 작지도 않은 규모의 마애여래좌상이 조각되어 있다. 다만 근래에 조각한 불상으로 문화재적 가치가 있진 않다.


용왕당에서 암벽으로 향하는 뒷길


천보사의 창건 시기는 정확한 기록으로 남아있지 않다. 구전과 추측으로 조선 세조 때 창건했다는 설과 신라 경문왕 때 도선국사가 창건했다는 설이 전해진다. 긴 세월 기도처로 쓰였음에도 어째서 불상을 새겨 넣지 않았을까 궁금할 수 있다. 이때 암벽에서 한발짝 떨어져서 전체적인 바위의 윤곽을 가만히 바라보자. 그 느낌이 오묘하다. 불암산 주봉이 ‘송낙을 쓴 부처’의 형상인 것처럼 코끼리바위 역시 보는 각도에 따라, 햇빛을 받는 음영에 따라 그 형상이 조금씩 달라 보인다. 부처님의 얼굴이 보이기도 하고 동자승이 보이기도 하며 이름처럼 코끼리가 보이기도 한다. 이미 부처의 모습을 한 바위를 굳이 조각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다만 불심이 부족한 중생의 눈에는 부처의 형상이 얼른 비치지 않아 분주해지는 눈동자가 괜스레 머쓱하다. 


근래에 새긴 마애여래좌상의 윗부분과 아랫부분도 주시해보자. 연화좌로 조각한 부분이 마치 코끼리의 옆모습과 뒷모습으로 보인다. 각도에 따라 3~4마리 정도를 볼 수 있다. 마애불의 위쪽을 자세히 보면 음각으로 새긴 보살상도 보인다. 실선처럼 가는 음각인데다 쪼개진 두 바위 사이에 있어 집중해서 봐야한다. 암벽 아래 쌓은 석축에는 미륵불좌상과 오층석탑이 올라가 있다. 오층석탑은 천보사의 인공구조물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조선후기 양식을 띄고 있다. 물론 부처님이 곳곳에 숨어있는 자연 암벽 앞에서 오래됨을 따지는 일이 무슨 대수일까도 싶다. 코끼리바위에서 한바탕 숨은그림찾기를 하고나면 천보사는 더 이상 처음 마주했을 때의 절이 아니다.



천보사 삼성보궁


바위를 바라보는 위치에서 왼쪽으로 삼성보궁이 있다. 얼핏 석굴처럼 보이지만 실제 동굴은 아니고 암벽에 돌처럼 보이도록 만든 자재를 덧대 만든 기도도량이다. 내부에 들어서면 암벽에 새긴 치성광여래좌상, 독성상, 산신상을 볼 수 있다. 다른 절과 달리 크게 모셔둔 용왕당과 산신상이 눈에 띈다. 이곳이 오랜 세월 기도처로 이용되면서 민간신앙과 불교가 자연스럽게 결합된 공간으로 발전했음을 알 수 있다.


글·사진 여행작가 유승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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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부정보

  • 남양주 천보사

    주소/ 경기 남양주시 불암산로 145 불암산천보사

    문의/ 031-528-87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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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석구석을 걷고 기록하는 일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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