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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고쓰는사람

판교 신혼부부와 돌방무덤

판교신도시와 판교박물관을 돌아보며


얼핏 판교신도시는 새 아파트와 번화가로 단장한 제2의 분당신도시처럼 보인다. 서로 이웃하기 때문에 생활권을 어느 정도 공유하지만, 판교는 여러 대기업과 중견기업을 유치해 초대형 업무지구를 갖춘 경제적 자립도시라는 점에서 분당과 다르다. 매끈하고 세련돼 보이는 빌딩들이 모여 있는 판교테크노벨리는 판교신도시의 대표적인 이미지이기도 하다. 대규모 아파트단지를 먼저 떠올리게 되는 다른 신도시와 다르다.

판교신도시는 도시 개발 단계에서부터 개발 면적의 60%를 업무지구로 계획했다. 그래서 인구 분산을 위해 조성한다는 신도시 개발 목적에 부합하지 않게 주거지가 부족하다는 비판도 있다. 그럼에도 판교신도시는 판교테크노밸리를 통해 이루어 낸 IT산업 집적화와 일자리 창출 효과, 상대적으로 작지만 녹지 비율을 38%대로 끌어올려 자연 친화적인 분위기를 살린 주거단지를 들어 국내에서 가장 성공적인 신도시 개발 사례로 인정받고 있다.  




판교 사람들은 판교에 산다고 말한다. 분당구 안에 판교동이 있고 판교가 포괄하는 백현동, 삼평동, 운중동이 있다. 그런데 판교에서 살거나 일하는 사람들이 분당을 먼저 말하는 경우는 드물다. 성남시 분당구에 살지만 성남시에 살지 않는 분당구민들은 판교 거주 여부로 그 안에서 또다시 분화한다. 판교 사람들은 판교를 안고 있는 성남에도, 그리고 분당에도 살지 않는다. 심지어 판교동 안에서도 동판교와 서판교로 거주지를 구분 짓고 짐짓 경제적, 사회적 입지의 우열을 가린다는 것이다. 서판교에는 소위 재벌들이 사는 고급 타운하우스들이 있다.  


핵개인의 시대라지만 개인의 고유성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풍토는 없다. 획일적인 욕망을 좇아 그 안에서 서열을 정하고 너와 나의 다름을 구분한다. 그리하여 열등감과 우월감이 팽배해져 정신적으로 멍든 사회를 분당과 판교로 대표되는 신도시 일면에서 본다.   ‘성남이 아니라’고 말하는 동네들을 끌어안은 성남시의 정체성을 무엇이라 할 수 있을까.

같은 욕망 아래 분화된 지역들을 마주하면서 이 도시의 정의는 욕망이 꿈틀대는, 아니 욕망으로 들끓는 도시가 아닐까.




소비와 과시로 점철된 자본주의 욕망의 총체, 백화점은 판교에서 유일하게 이방인을 끌어당기는 장소다. 2015년 문을 연 현대백화점 판교점은 줄여서 ‘판교 현백’으로 불리며 성남뿐만 아니라 서울과 경기 남부권 전역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경기도 소재 백화점으로는 최초, 최대의 명품 매장들을 입점시키고 경기도 및 일반시 소재 백화점으로는 최초로 연매출 1조 원을 기록했다. 1조 원이 얼마나 큰 금액인지 나는 가늠하지 못한다. 잘 먹고 잘사는 동네에 장사 잘되는 백화점이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울 일은 아니다.





욕망은 수직으로 뻗어 차등을 두고 침묵은 수평으로 드리워 고르게 평등하다. 아파트도 백화점도 수직이다. 판교박물관은 대지에 낮게 드리워져 얼른 눈에 띄지 않는다. 내가 살던 동네 아파트단지 사이에 있던 고인돌이 떠오른다.

판교박물관 안에는 무덤이 있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평등하다. 박물관으로 들어서면 1층을 전망대 삼아 지하 1층의 무덤 11기를 내려다볼 수 있다. 고구려인, 백제인들의 돌방무덤이다. 무덤은 2002년부터 2008년 사이 판교지구 택지개발사업 예정부지에서 발굴되었다. 건물을 세워야 하므로 이들을 2012년에 박물관으로 ‘이장’했다. 삼국시대 고분을 국내 최초로 발굴 상태 그대로 이전한 사례라고 한다. 고구려 돌방무덤은 부재 하나하나를 해체하는 아나스틸로스 공법을 적용해 이전했고 백제 돌방무덤은 축조기법이 정교해 무덤을 통째로 옮겨왔다. 무덤은 300톤 크레인에 들려 박물관 천장을 통해 건물 지하에 들어갔다. 1,500년 전 사람이 묻힌 무덤이 다시 박물관에 묻혔다.




IT산업의 중심지이자 자산가와 젊은 인재가 모여 사는 미래지향적 도심 판교에서, 판교박물관은 유일하게 과거로 향하는 하강의 공간이다. 선사시대부터 수만 년에 걸쳐 현재까지 이어진 판교 주민의 세월은 통조림처럼 압축되어 있지만 밀도가 높진 않다. 모아 놓은 무덤 위에 지붕만 씌워놨다고 해도 과장이 아닐 만큼 박물관을 차지하는 대부분 영역은 돌방무덤이다.

택지 개발 전 판교 땅에서는 구석기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다양한 유적과 유물이 나왔다고 하나 전시된 유물은 그리 많지 않다. 1층에는 시대별로 분류한 유물 몇 점, 가령 신석기의 빗살무늬토기, 삼국시대의 금꾸미개, 고려시대의 작은 청동불상들이 있다. 판교 역사는 간략하게 스케치 되어 있고 그 증명은 퍽 간소하다.




판교는 용인에서 발원해 성남을 거쳐 서울로 흘러드는 한강의 지류인 탄천과 가까워 구석기시대부터 사람들이 살았다. 한편 지명 판교板橋는 분당구 운중동과 판교동을 지나는 운중천을 건너기 위한 널다리에서 유래했다. 운중천은 탄천으로 흘러든다. 반달돌칼, 찌르개 등 선사시대 유물이 탄천과 가까운 붓돌마을에서 출토되었고 판교박물관 일원에서는 다수의 백제토기가 출토되었다. 특히 한성백제의 중심지에 가깝고 인근의 용인, 안성 등 내륙지역의 주요 교통로에 위치해 군사적 요충지였기에 한성백제의 돌방무덤이 밀집했다. 백제에 비해 수가 적은 고구려의 돌방무덤은 고구려가 백제를 밀어내고 한때 이 지역을 지배했을 때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각 돌방무덤의 가장 큰 차이는 천장의 형태로 백제는 둥그스름한 아치형의 궁륭형이고 고구려는 반듯한 돌들을 걸쳐 쌓아 천장의 공간을 줄여 쌓는 모줄임형이다. 그러나 박물관에 이전된 돌방무덤들은 천장과 돌방 상부가 세월이 흘러 없어졌고 개방된 형태로 전시되어 있다. 박물관이 이들 무덤의 천장이 된 셈이다.


분당 1세대가 그러하듯 판교 신혼부부도 늙어갈 테고 ‘최첨단’이란 수식을 십수년째 붙이고 다니는 IT산업도 예상보다 가까운 미래에 청동기 반달돌칼보다 무딘 사양사업이 될 것이다. 수백, 수천 년 후 우리 후손은 판교의 무덤에서 무엇을 볼까.


글·사진 여행작가 유승혜


※ 본 글은 '경기그레이트북스' 시리즈 중 제45권 『너머의 도시들- 경기 중부로 떠나는 시간여행』, <성남시 : 도시의 트렌드세터>에서 발췌했습니다.


세부정보

  • 판교박물관

    관람시간/ 화~일요일 9:00~18:00 (월요일 휴관)

    관람료/ 무료

    주소/ 경기 성남시 분당구 판교로 191 판교박물관

    누리집/ museum.seongnam.go.kr/pangyo

글쓴이
걷고쓰는사람
자기소개
경기도 구석구석을 걷고 기록하는 일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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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yooseunghye